눈보라 헤치고 솟때봉 가는 길
춘설이 하늘 가득 내려 春雪滿空來
보이는 것마다 꽃이 피는 것 같네 觸處似花開
정원의 나무 구분할 수 없어 不知園裏樹
눈꽃이 모두 매화인 줄 알았네 若個是眞梅
―― 동방규(東方虯, 당나라 때 시인, 생몰연도 미상), 「春雪」
▶ 산행일시 : 2017년 4월 1일(토), 비, 눈, 햇빛, 눈, 비, 햇빛, 비
▶ 산행인원 : 19명
▶ 산행거리 : GPS 거리 15.8km
▶ 산행시간 : 8시간 20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1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36 - 횡성군 안흥면 성산리 하영랑, 산행시작
09 : 14 - △686.6m봉, 첫 휴식
10 : 37 - 임도, 781.1m봉
10 : 44 - 788m봉, 묵은 헬기장
11 : 24 ~ 12 : 03 - 상터, 점심
13 : 04 - 표때봉(△864.5m)
13 : 47 - 866.8m봉, 묵은 헬기장
14 : 05 - 임도
14 : 36 - 1,103m봉
15 : 00 - 오봉산(△1,124.6m)
15 : 30 - 폭설, 임도
15 : 40 - 임도, 바닥 친 안부
15 : 50 - 솟때봉(△882.7m)
16 : 33 - 740.6m봉
16 : 56 -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물안이, 산행종료
17 : 38 ~ 19 : 38 - 횡성, 목욕, 저녁
21 : 08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오봉산 정상에서
2. 오봉산
▶ 788m봉, 묵은 헬기장
봄이 와도 봄 같지 아니하다(春來不似春).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虯)의 「소군원(昭君
怨)」의 제3수 중 제2구다. 「소군원(昭君怨)」은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후궁으로 적과
의 화친을 위해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 單于)에게 시집가야 했던 왕소군(王昭君, BC 52
년~BC 20년 추정)의 비참한 처지를 읊은 시다.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히 옷 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 이는 허리 몸매 위함이 아니었도다
지난주 망령산에 이어 오늘도 ‘봄이 와도 봄과 같지 아니한(春來不似春)’ 날씨다. 일기예보
에 강원도 산간에는 폭설이 내릴 것이라고 했다. 오늘 산행지인 표때봉 등도 강원도 산이다,
변방이지만. 영동고속도로 횡성 가는 길은 비가 내린다. 아마 산에는 눈이 내리겠지, 미리 스
패츠 매고 우비 입고 배낭 커버 씌우고 손난로 핫팩까지 준비한다.
하영랑은 영랑리(永浪里)의 맨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신라 때 화랑인 영랑(永郎)이 선유암
에서 놀았다고 해서 영랑이라 한다(2010.8.15.자 횡성뉴스). 이 근처에 선유암이 있는지 의
문이거니와 영랑(永郎)이 영랑(永浪)으로 변한 것도 괴이하다. 그러나 오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심산에서나 볼 수 있는 겨우살이들이 마을 뒤편 거목인 갈참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농로도 밭두렁도 진창이다. 등산화가 금방 무겁다. 비는 멎었다. 무대뽀적인 생사면 가파른
오르막에 더운 봄기운을 그예 이기지 못하고 껴입었던 겉옷을 벗기 시작한다. 단숨에 긴 한
피치 올라 550m봉이다. 정상에는 신안 주씨(新安 朱氏)의 묘소가 넓게 자리 잡았다. 절충장
군(折衝將軍)을 지냈다는 주찬규(朱燦奎), 통정대부를 지냈다는 주성도(朱聖道)라는 분들
의 묘다. 신안(新安) 주씨의 신안은 우리나라 전라남도의 신안이 아니라, 중국의 안휘성(安
徽省) 휘주부(徽州府) 신안(新安) 지역을 말한다.
안개 속에 든다. 하늘 높이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 열주를 사열하며 간다. 한편, 걸음걸음 연
이은 수묵농담의 동양화 대폭 병풍을 감상하며 간다. 얼굴 들어 맞아보는 빗발이 시원하다.
△686.6m봉. 삼각점은 ‘423 재설, 77.8 건설부’다. 우산 받치고 이른 첫 휴식한다. 상고대 님
이 녹두 빈대떡을 펼쳐놓자 불현듯 입산주 탁주 술맛이 동한다.
능선마루는 임도가 간다. 솔잎 낙엽이 걷기 알맞게 깔렸다. 임도 양쪽 옆은 소나무가 길게 늘
어섰다. 한갓진 산책로다. 임도 갈림길에 느닷없이 ‘표때봉’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그 뒤로 한
피치 오른 781.1m봉을 말하는 것 같다. 오른쪽(동쪽)으로 방향 틀어 잠깐 오르면 묵은 헬기
장인 788m봉이다. 하산! 바로 옆의 △835.7m봉을 들르지 않은 것이 걸리지만 남진한다.
축축한 풀숲과 잡목 숲 헤치느라 바지자락 다 젖는다. 그래도 등산화 속은 비닐봉지를 동여
맨 임시방편의 스패츠 효과로 보송보송 안전하다. 방화선 같은 능선 길이 열리고 낙엽 지치
며 줄달음하여 내린다. 주천강 지천을 징검다리로 건너고 도로에 올라선다. 상터 윗녘이다.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는 두메 님이 때마침 도착하였다.
3. 진창인 밭두둑을 지나
4. 산행 들머리인 하영랑 마을
5. 안개 속 소나무 숲 등로
6. 안개 속 소나무 숲 등로
7. 벌목한 능선과 사면의 모수
8. 능선마루에 임도가 뚫렸다
9. 임도가 난 능선마루
10. 능선마루 임도가 산책로다
▶ 표때봉(△864.5m), 오봉산(△1,124.6m)
개울 건너 폐가 앞에 원두막이 보여 거기에다 점심자리 편다. 한 팀은 원두막이 비좁아 난데
에 자리 편다. 마치 우리가 밥술 뜨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린다. 원두막에 앉아 돌배주
반주 기우리며 개울가 버들개지 희롱하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운치가 그만이다. 한 축은 그
빗속에서 웅크리고 머리 맞대며 라면발 추리느라 여념이 없다.
사유지이니 무단출입을 엄금한다는 팻말을 뒤로 하고(주인은 출타 중이다) 농가 텃밭 지나
지능선을 붙든다. 잔뜩 부른 만복 안고 숨차게 오른다. 갑자기 갈잎 낙엽에 후드득하는 수다
스런 소리가 들리기에 빗발인가 둘러보니 싸락눈이다. 갈잎에 떼굴떼굴 구르는 눈방울이 보
기 좋고 듣기도 좋다. 소나기눈이었다. 시치미 뚝 떼는 날씨다. 햇볕이 쨍쨍 난다.
햇빛은 눈부시게 빛나고 산등성이에는 모락모락 안개가 피어오른다. 우리는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부화뇌동한다. 어느새 표때봉이다. 널찍한 묵은 헬기장이다. 삼각점은 ‘안흥 306, 19
89 재설’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멀리 백덕지맥 오봉산 연릉이 설산이다. 그 설원을 누
비고 싶어 발걸음이 다급해진다. 길 좋다. 이때는 봄날이었다. 봄날을 간다.
표때봉 잠깐 내렸다가 긴 오름길 866.8m봉이 비록 이름을 얻지 못했지만 우리들에게는 명
산이다. 좌우 사면을 들러 코끝이 시커멓도록 향긋한 손맛을 다수 볼 수 있어서 그렇다.
866.8m봉 정상도 묵은 헬기장이다. 866.8m봉 내린 안부는 임도가 지난다. 춘설, 그 눈길이
시작된다. 희끗희끗하던 눈은 고도를 높임에 따라 점점 깊어간다. 바람이 능선 군데군데 모
아놓은 눈 더미에는 푹푹 빠진다.
잡목과 키 작은 산죽 숲 헤치고 벌목한 사면으로 내려가 장성장릉인 백덕지맥을 전망한다.
오봉산, 문재, 사자산이 골 건너다. 멀리 백덕산은 구름에 가렸다. 이윽고 ┳자 주릉인 백덕
지맥 1,103m봉이다. 진즉 홀로 앞서갔다는 신거이버 님이 오봉산에서 덜덜 떨며 우리를 기
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오래 쉴 수가 없다. 어쩌면 신가이버 님은 머지않은 안나
푸르나 등정을 앞두고 혹독한 전지훈련을 자청하는 게 아닐까?
주위가 어두워지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눈보라가 몰아친다. 기왕에 내린 눈도 깊다. 한
겨울이다. 옷깃 여미고 종종걸음 한다. 1,129.6m봉 넘고 길게 내렸다가 잠시 주춤하면 오봉
산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신가이버 님은 엄청 떨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래서도 곧바로 단체
기념사진 찍고 솟때봉을 향한다.
11. 표때봉 넘어 오봉산 가는 길
12. 표때봉 넘어 오봉산 가는 길
13. 임도 주변
14. 임도 지나 오봉산 가는 길
15. 오봉산 가는 길
16. 오봉산 연릉
17. 멀리는 백덕산, 오른쪽은 사자산
18. 오봉산
19. 검은 줄은 벌목하고 모아 놓은 잡목이다
20. 오봉산 가는 길
21. 오봉산 가는 길
▶ 솟때봉(△882.7m)
우리는 남진하는 백덕지맥과 헤어져 북동진한다. 오봉산 내리는 길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
트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게 눈보라가 퍼붓는다. 그간의 산행 중에 이렇듯 장관인 눈보라
를 만나본 적이 있던가? 얼른 기억나지 않는다. 춘설, 그 눈보라도 맵다. 무수히 사선 긋는 빗
발 같은 눈발, 혹은 함박눈 화려한 그 군무를 가다말고 넋 잃고 구경한다.
이 길밖에 없다 춘설 내린다
(この道しかない春の雪ふる)
방랑시인 산토카(山頭火)의 하이쿠다. 그런 길을 간다. 눈길에 엎어지고 넘어지고 고꾸라지
고 자빠지며 간다. 901.3m봉에서 능선 마루금 잡기가 애매하다. 메아리 대장님이 보이지 않
게 직진하였기에 잘못 가고 있으니 뒤돌아 오시라 크게 외쳐 불러주고는 그 불행(?)이 즐거
워 킬킬거리며 대다수는 상고대 님 뒤를 따라 오른쪽 엷은 능선을 잡았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든 이는 메아리 대장님이 아니라 우리였다. 어차피 임도로 떨어지고 임도
를 빙 돌아 산모퉁이 능선으로 가야 했다. 그러고 잔솔밭을 내린다. 바닥 친 안부는 임도가
지난다. 눈보라는 거짓말처럼 멎었다. 다시 봄날 햇살이 비춘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한 피치 올라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솟때봉은 오른쪽이고 우리가 하산할 능선은 왼쪽이니 배
낭 벗어놓고 솟때봉을 다니러간다.
눈길이라 미끄럽다.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솟때봉. 삼각점은 ‘402 재설, 77.6 건설부’이다.
사방 키 큰 나무들이 둘러 있어 아무 조망이 없다. 하산! 정점에 오르기보다는 거기서 내리는
길이 더 어려운 법이다. 넘어지면 그대로 뭉개 내린다. 814.8m봉 오르고 내리는 길. 오솔길
이다. 잘 다듬었다. 미음완보하기 적당한 숲길인데 막 줄달음해버린다.
일로직등. ┣자 갈림길 안부를 지나고 740.6m봉을 오른다. 선두의 행방이 묘연하다. 지도를
살피니 잘못 왔다. 선 그은 등로는 740.6m봉 오르기 전 안부에서 왼쪽으로 내리는 외월암이
다. 뒤돌아간다. 안부에서 외월암 쪽은 길이 분명하지 않고 전기가 통하는 철선 두 가닥을 길
게 둘러쳐서 출입을 막았다. 잘난 길을 따라 물안이 쪽으로 내린다.
더덕밭 지나고 콘크리트 포장한 농로에 내려선다. 산기슭에 드문드문 보이는 아담한 펜션이
이국적이다. ‘음악이 흐르는 숲’이라기에 새삼 귀 기울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펜션 이름이
다. 계촌저수지 아래 물안이 지나 대로가 나오고, 740.6m봉 넘어 방금 전에 도착한 선두 일
행과 만난다. 오늘도 무사산행을 자축하는(오봉산 내리는 도중 눈길에 숱하게 고꾸라지고
넘어졌지만) 하이파이브 나누기 바쁘게 오랜만에 향긋할 입맛 다시며 횡성으로 간다. 가랑
비 내린다.
23. 춘설, 그 눈보라도 매웠다
24. 설경은 그림이었다
25. 지도 꺼내보니 잘못 내려왔다
26. 솟때봉
27. 멀리 가운데는 청태산
28. 우리가 내려온 오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