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9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디모데의 DNA 》
살전 3:1~11
<성경의 인물을 아는 은혜>
저는 어려서부터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이 꽤 많았습니다.
제가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이고, 영화를 보면서 배우를 흠모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배우, 탤런트, 가수에 대한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귀담아 들었습니다.
☞ 고등학교 입학 직전에 온 가족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저의 삶에 베어드는 일은 참 더뎠습니다.
성경의 인물은 이미 한 장의 고서화 속 인물이니, 굳이 알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그제야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관심이 없던 인물을 ‘공부’로서 알아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새롭게 알아가는 중에, “이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유명한 가수, 배우, 탤런트보다, 성경 인물을 더 알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성경의 인물을 아는만큼 장차 천국에 가면 천국이 더욱 푸근해질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갔는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심심하고 무료할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더 많이, 더 깊이 안다면 천국의 기쁨이 클 겁니다.
☞ 오늘 설교를 듣는 여러분은 반드시 이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침 디모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데살로니가서 전반에 디모데가 등장합니다마는, 오늘 본문은 좀 더 특별합니다.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전도하고 쫓겨난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 3 사람은 늘 기도합니다.
“주여, 데살로니가에서 주님을 영접한 초심자들을 꼭 붙들어주옵소서!”
“기회가 되면 다시 가서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해 주고 싶어요!”
그런데 여의치 않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 아테네에 당도했을 때입니다.
☞ 바울과 실루아노는 예정된 길을 가고,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파송하기로 결정합니다.
디모데가 가 보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잘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루아노 디모데가 함께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오늘은 디모데, 그의 삶과 인생을 심도있게 들여다보면서 은혜를 누리고자 합니다.
<디모데의 고향, 가족 이야기>
어떤 사람을 깊이 알고자 할 때, 여러분은 그 사람의 무엇이 가장 궁금하지요?
나이? 학력? 부모? 고향? 성향?
요즘에는 이런 모든 사항이 ‘개인 정보’라고 해서 “질문 금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디모데에 관하여 꽤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후대의 크리스찬에게 알리는 것이 유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디모데를 만나면서 성령 충만과 기쁨과 행복의 은혜를 누리고자 합니다.
☞ 디모데의 고향은 투르키예 ‘루스드라’입니다.
루스드라는 바울과 바나바가 첫 번째 선교여행지 중 하나였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전도한 내용이 소상히 나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보니,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성령의 강한 역사로서, 그 사람을 일으켜 걷게하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를 목격한 루스드라 사람들, 난리가 났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행 14:11)
그 자리에서 바나바는 ‘제우스’로, 바울은 ‘헤르메스’로 숭앙받습니다.
제우스는 그리스신화의 최고의 신이고, 헤르메스는 웅변의 신입니다.
루스드라에서 그리스 신화는 신화가 아닙니다. 빼도박도 못하는 믿음, 신뢰, 그 자체입니다.
루스드라에는 제우스 신당이 있고, 거기에 상주하는 제사장도 있었습니다.
그 제사장이 소 한 마리를 끌고 왔습니다. 당장에 잡아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가 기겁을 했습니다. 옷을 찢고 큰 소리로 제지하였습니다.
☞ 루스드라가 이러한 곳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디모데의 외할머니는 ‘로이스’ 어머니는 ‘유니게’입니다. 유대인의 혈통입니다.
외조모, 모친이 신실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친이 이방인인 헬라인과 결혼합니다.
유대인은 가급적이면 유대인 끼리 결혼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과 결혼합니다.
거기서 디모데가 태어났습니다. 혈통이 좀 불분명해졌습니다.
성경은 디모데의 아버지는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일찍이 사망했던 것이지요!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디모데에게 외할머니, 어머니는 성경을 읽어주면서 키웠습니다.
외할머니, 어머니의 치마 폭에 쌓여서 자란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남성적인 기개보다는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순종형의 청년으로 자랐습니다.
두 여성의 보살핌으로 자라다보니 눈물도 많았습니다. ‘잘 우는 남자’였습니다.
☞ 바울은 디모데의 이러한 성품을 눈여겨 보아두었습니다.
<2차 선교 여행에서 해후>
바울과 바나바는 투르키예 선교 여행을 2년 남짓 하고 돌아왔습니다.
잠시 안디옥 교회에서 쉬었다가 2차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이때 바나바와 바울은 결별합니다. 따로따로 선교여행을 갑니다.
바울은 실루아노와 파트너가 되어 1차 선교여행지인 투르키예에 다시 갑니다.
당연히 루스드라에도 갔습니다. 거기서 청년 디모데와 반가운 해후를 합니다.
그동안 복음을 영접하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신실한 청년이 되어있었습니다.
외할머니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와 함께 기독교 가문으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유순하고, 순종 잘하고, 웃기 잘하고, 울기도 잘하여, 칭찬받는 신실한 청년 디모데!
바울이 디모데를 탐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 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고 하셨던 것처럼!
디모데를 선교여행의 동반자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 그러자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들이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했습니다.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향후 선교에 유익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는 향후 기독교인이 되는 과정에서 할례는 제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16장에서 디모데의 할례가 나옵니다.
디모데의 신분이 유대인과 헬라인의 경계선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할머니 어머니는 유대인인데,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할례도 안 받았습니다.
그러니 디모데는 유대인도 아니고, 헬라인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 발탁했을 때, 이 점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유대인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영접했다”라고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와 디모데, 이후로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아들아~”라고 부르는 관계까지 되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다니는데, 디모데는 숫기가 조금 부족했습니다.
남들이 업신여기고 무시해도, 그냥 받아 넘기는 순박한 청년이었습니다.
더욱이 디모데는 젊었습니다. 조금 나이 든 사람들이 디모데를 쉽게 대하려고 합니다.
이를 본 사도 바울이 편지에 적었습니다.
딤전 4:12a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바울과 디모데>
오늘 설교 제목을 제가 “디모데의 DNA”로 정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갖지 말고, 2천 년 전 인물이지만, 디모데를 보자는 의미입니다.
성경 속 인물을 깊이 아는 만큼, 우리의 신앙도 깊어집니다.
디모데는 주님을 영접하고, 사도 바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디모데가 참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출신, 혈통, 성품, 인격을 유리알 보듯 투명하게 읽어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주님 앞에서 큰 사명을 감당케하는 대들보로 세워나갑니다.
디모데에 대하여 수박 겉핥기 식으로 파악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스승으로서 제자 한 사람을 바로 세워 하나님이 쓰게 하시려면, 바울만큼 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DNA를 속속들이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일으켜 세웁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필요할 때마다 적재 적소, 핵심을 찔러줍니다.
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딤전 4:14은 우리가 꼭 눈여겨 봐야 할 대목입니다.
예수 안 믿다가 주님을 영접할 때에는, 꼭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확인해야 합니다.
_ 하나님은 나를 이 세상에 왜 보내셨을까?
_ 하나님은 내가 무슨 일을 하라고 이 땅에 보내셨을까?
_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어떻게 영광을 받으려 하실까?
_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은사입니다.
오늘 설교 “디모데의 DNA” 들으시고, 각자가 자기의 DNA를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가 예수 믿게 하셨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으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는 어떻게 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늘 기도하고, 응답을 받고 행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 그렇게 하려면 사도 바울과 같은 스승을 만나야겠지요?
오늘날에는 성경이 완벽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이 첫째가는 스승입니다.
<디모데의 죄에 대한 감수성>
디모데는 빼어난 스승 바울을 만나서 하나님 앞에서 큰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 통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입니다.
오늘날에는 디모데전서 후서를 “목회서신”으로 일반화시켰습니다.
“목회를 하겠다면 디모데전후서를 필독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목회를 하려면 디모데와 같은 성품과 건강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면 틀립니다.
디모데는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 사람들의 특성 가운데에는 “죄에 대한 감수성” 항목이 있습니다.
5세기 교부 어거스틴, 그는 죄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어렸을 때, 친구들과 어울려 배 서리를 합니다.
주인 몰래 들어가서 배 한 자루 따 왔습니다.
가져와서 보니, 아직 안 익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돼지나 가축에게 주면 좋았을 것을 친구들은 그것을 아무데나 내버립니다.
어거스틴은 다른 친구들과 달리 민감한 죄의식에 괴로워합니다.
‘배서리는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배 맛을 보기 위함도 아니다. 그럼 왜 했을까?’
“그것은 죄를 즐기기 위해서였다.”라는 매우 통찰력 있는 결론을 냅니다.
사람들에게는 “죄를 즐기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거스틴의 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내린 결론입니다.
디모데 얘기하다가 어거스틴 이야기를 했습니다.
디모데 역시 ‘죄에 대한 감수성’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죄에 대한 감수성은 제각각입니다.
똑같이 배 서리를 했지만, 어떤 친구는 돌아서서 잊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어거스틴처럼 그 일로 평생을 괴로워합니다.
디모데는 아마도 어거스틴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의 DNA 그리고 바울의 처방>
디모데의 DNA에서 언뜻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성품이 엿보입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기를 번제로 바치려 할 때 반항하거나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버지와 결별했다는 성경의 해석은 있지만, 번제 사건 당시는 아니었습니다.
순순히 결박 당하고, 나무더미 위에 눕혀졌습니다.
디모데가 어쩌면 그런 성품이었습니다.
유대인 할머니 로이스,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의 치맛 폭에 쌓여 자랐습니다.
남성다운 호방함 보다는 여성스러움을 지녔습니다. 웃기도 잘했지만 울기도 잘 했습니다.
디모데는 건강도 썩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여리여리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 칭찬받는 청년이었습니다.
자기 나이가 어리다고, 어른들이 함부로 대해도 별 문제 의식 없이 따랐습니다.
외할머니, 어머니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할 때도 순순히 따랐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데리고 선교를 하자고 했을 때도 순종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자기에게 할례를 행하는데도 고분고분 따랐습니다.
한편 죄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했습니다.
이러한 기질은 스승 바울을 잔뜩 긴장하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훌륭한 스승으로서 디모데에게 매우 적절한 말씀을 해 줍니다.
첫째, 은사를 기억하라!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은사를 기억하라”(딤전 4:13)
크리스찬은 처음 예수 믿을 때 자기 은사를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너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크리스찬은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셋째, 자신과 이웃을 구원하라!
“은사를 행함으로써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라”(딤전 4:16)
크리스찬은 받은 은사와 담대함으로 자신과 이웃을 구원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DNA는 스스로 바꿀수 없습니다.
바꿀 수는 없지만, 여기에 대한 처방은 분명히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를 만나, 디모데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파악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세워,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 온고을교회가 이런 교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