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자멸사(apoptosis)에 시동을 건다 경피증(scleroderma) 환자의 피부에서 채취된 근섬유모세포(myofibroblast)를 나타낸 그림. 근섬유모세포는 다량의 콜라겐을 생성함으로써, 섬유증(fibrosis)의 전형적 특징인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의 경직화에 기여한다. 라가레스 등(참고 1)은 활성화된 근섬유모세포(스트레스 섬유, 청록색) 내부의 손상된 미토콘드리아(자주색)가 생존을 위해 세포자멸사 억제단백질(antiapoptotic protein)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경피증 환자와 피부섬유증(dermal fibrosis) 모델 마우스에게서 채취된 세포를 ABT-263(세포자멸사 억제단백질을 저해하는 약물)로 치료한 결과, 섬유증이 역전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섬유모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 상태를 평가하면 섬유증의 효과적인 약물표적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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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폐, 심장 등의 장기에 생긴 치명적 흉터로 고통을 받는다. 이 질병을 섬유증(fibrosis)이라고 하는데, 장기이식 외에 뾰족한 치료방법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이제 새로운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섬유증을 초래하는 근섬유모세포(myofibroblast)를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의 단서를 제공했다. 마우스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 방법은 섬유증의 해로운 효과를 중단시키거나 역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비록 예비연구이지만, 이번 연구는 '종종 다루기 까다로운 질병'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근섬유모세포를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은 설득력이 매우 높다"라고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존 바르가 박사(류머티즘학)는 논평했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근섬유모세포는 손상된 조직의 수리를 완료한 후 저절로 파괴된다. 그러나 간혹 '자폭하라'는 신호에 반응하지 않고 불필요한 증식을 계속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뻣뻣한 결합조직(connective tissue)이 축적되어 흉터가 형성됨으로써 장기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섬유증의 극적인 사례 중 하나인 자가면역성 경피증(scleroderma)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경피증은 피부가 서서히 딱딱하고 팽팽해지는 질환인데, 폐와 같은 내부장기로 확산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경우, 가스교환이 완전히 차단되어 질식사하게 된다"라고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섬유증을 연구하는 보리스 힌츠 박사(세포생물학)는 말한다.
이번 논문의 제1저자인 앤드루 테이저 박사(내과전문의)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다년간 폐섬유증을 연구해 왔지만, 지난 여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그래서 그의 멘티인 재생의학 전문가 데이비드 라가레스 박사가 바통을 이어받아,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여 출판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근섬유모세포의 자폭, 즉 세포자멸사(apoptosis)라는 세포과정을 유도하는 데 집중했다. 그들은 경피증을 추동하는 활성화된 근섬유포세포를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에 BIM(BCL-2-interacting mediator of cell death)이라는 '세포자멸사 촉발 단백질'이 풍부하게 존재하는데도, 근섬유모세포가 자멸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근섬유모세포는 자폭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멸사 프로그램이 실행되지 않고 있었다"라고 라가레스 박사는 회고했다.
연구진은 선행연구 결과를 기초로 하여 BCL-2라는 단백질군(群)에 눈을 돌렸다. 이 단백질군은 세포자멸사를 유도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는데, 연구진은 '과활동성 근섬유모세포에서 이 단백질군의 균형이 파괴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피증 마우스 모델에서 세포를 채취하여 유전자 프로파일링을 해보니, 연구진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세포자멸사를 중단시키는 Bcl-xL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므로, 연구진은 "Bcl-xL을 녹다운시킬 수만 있다면, 근섬유모세포가 저절로 파괴될 것이다"라고 추론했다.
때마침 다양한 암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계류되어 있는 나비토클락스(navitoclax; ABT-263)는 Bcl-xL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연구진이 나비토클락스를 경피증 마우스에게 투여하자, 해로운 근섬유모세포를 말끔히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그것은 선택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병터에 몰려드는 근섬유모세포들은 다량의 Bcl-xL을 발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2017년 12월 13일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기고한 논문에서(참고 1), "나비토클락스가 섬유증의 효과를 중단시킬 뿐만 아니라, 역전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뻣뻣한 흉터조직이 눈 녹듯 사라졌지만, 정확한 원인과 메커니즘은 아직 불투명하다"라고 라가레스 박사는 말했다.
이번 연구는 몇 가지 새로운 의문을 낳았다. 섬유증의 주범인 Bcl-xL가 마우스뿐만이 아니라 인간에서도 문제를 야기할까? 만약 그렇다면, 그게 단독으로 작용할까? 여섯 명의 환자에게서 채취한 섬유증 피부를 분석해본 결과, 말썽쟁이 근섬유모세포를 활발하게 유지시키는 세포자멸사억제단백질(antiapoptotic protein)이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세 명의 경우에는 Bcl-xL이 발견되었지만, 다른 세 명의 경우에는 하나의 다른 단백질 또는 두 단백질의 복합체가 용의자로 떠올랐다.
"연구진은 섬유증에 관여하는 세포자멸사 경로를 파악하는 성과를 거뒀다"라고 힌츠 박사는 말했다. "하나의 약물로 섬유증을 치료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연구진의 전략은 임상에 적용될 잠재력이 충분하다. 왜냐하면 BCL-2를 차단하는 베네토클락스(venetoclax)라는 백혈병치료제를 나비토클락스와 함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매우 훌륭하지만, 후속연구가 좀 더 필요하다"라고 바르가 박사는 말했다. 그는 경피증 환자를 돌보고 있는데, 정밀의학(섬유증의 추동요인에 따라, 환자별로 다른 치료법을 사용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라가레스 박사는 경피증 환자에게서 더 많은 피부 생검을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손상된 조직에서 근섬유모세포가 제거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후속연구를 실시할 계획이다. "우리는 조직이 재생되고 치유되는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http://stm.sciencemag.org/content/9/420/eaal3765
※ 출처: Science http://www.sciencemag.org/news/2017/12/pushing-cells-self-destruct-combats-deadly-fibros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