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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 행하라(갈 5:16-18)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는 성령강림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은 성령강림절이면서 교회의 설립기념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죄를 사해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믿는다면 이미 우리 안에는 성령이 거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를 구주라 시인하며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구세주이며 예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는 마땅히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부터 18절까지 다시 한 번 한 목소리로 읽기를 원합니다.
16-18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성령을 따라 살기는 커녕, 예수믿기 전과 다를 바가 없이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서도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내 안에서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해주셔도 거절하고 대적합니다. 아니 내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을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거절하고 소멸하면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슬퍼하십니다. 그러면 성령님과 연결된 내 영혼이 기쁨과 평안을 잊어버립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우울합니다. 왜 그렇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슬퍼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성도는 내안에 계신 성령님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진정 애쓰고 힘써야 할 일은 세상 그 무엇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따라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성령님이 내안에 내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표식은 성령님의 내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롬 8: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령이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으면 성령이 그와 함께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 3:16절에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고전 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즉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안에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곧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성막을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살 때, 성막은 그들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왜냐하면 성막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그들가운데 거하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표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의 지성소에 임재하신다는 의미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상징으로 성막을 봉헌하는 날, 불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번제단의 제물을 살라 버렸습니다.
(레 9:23-24)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하나님은 불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도록 임재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광야의 성막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소의 가치와 존귀함은 더욱 커졌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성전이 거룩한 곳으로 구별된 것은 금과 은으로 치장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치와 존귀함과 거룩함은 성전이 하나님이 임재하는 장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막이나 성전의 가치는 외적인 요소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누가 존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성도의 참 진가는 자기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하나님에 의해서 발견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저와 여러분의 가치는 지금 우리의 외적인 모습이나 우리의 경제적인 능력이나 지적 수준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내주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신 성전입니다. 옆사람에게 이렇게 말해보십시다. “당신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내안에 모시고 사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깨닫고 확신하고 증거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라는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혜사’로 소개하신 것입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인도하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인정할 뿐 만 아니라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듯이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요 16:13,14)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하시고 그 복음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복음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우리는 영적인 맹인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성령이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빌립은 한참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능력을 나타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때에 성령께서 광야로 가라고 하신 겁니다. 여러분? 광야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가끔 지나가는 나그네나 한 둘씩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잘 나갈 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 빌립은 ‘하나님! 지금 여기 사람들이 많은 사마리아에서 복음 전하기도 바쁜데 왜 광야로 가라고 하십니까?’ 그러면서 안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성령의 인도따라 광야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키고 돌아가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빌립은 그에게 거기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디오피아에 복음이 증거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 때에는 성령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광야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나침반도 없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가야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를 때에 그들은 안전하게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더 쉬웠습니다. 왜냐하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가는 대로만 가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왼쪽으로 가라.’ 그러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라.’ 그러면 오른쪽으로 가면 됩니다.
‘여기 멈추어서 머물러 있으라.’ 그러면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됩니다. 밤에도 불기둥이 일어나서 ‘가야 된다.’고 하면 비록 밤이라 할지라도 그 불기둥을 따라가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그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가는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지 않으면, 성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성가가운데 (주님 말씀하시면)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 곳에 나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성령을 따라 살아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따라 살지 않으면 우리는 육체를 위해서 사는 것일 뿐,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도 따라 살지 않는 것은 곧 내 마음대로 사는 것과 같기때문에, 육체의 열매만 맺게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롬 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오늘 본문 17절에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면 육체의 욕심을 이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늘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육체의 소욕대로 살 것이냐?’ 만일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으로서 육체의 욕심을 죽이면 산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가운데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성도는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합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감으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살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라 행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능력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내게 그런 능력이나 지혜가 없어서 못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지위나 환경이 뒷받침 되어주지 못해서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 우리의 무능력을 능력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시면 우리 인간의 능력이나 인간적인 지혜를 초월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는 불가능했던 것도 온전히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배우지 못한 갈릴리 어부 출신이며 배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으며, 그의 말씀을 통해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베드로의 말 주변으로 어떻게 그런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권세와 능력이 아니고는 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우리에게 돈이 없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혹 건강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과 능력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니까 기적이 나타나고, 60만의 이스라엘 민족을 그 거대한 제국 애굽에서 구원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의 모세는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이미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늙었고, 무능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그를 들어서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볼품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도,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왜소하게 보일지 몰라도 성령의 권세와 능력을 공급받아 살아가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놀라운 힘이 나타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신있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지혜가 생깁니다. 뿐 만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시면 능력이 있습니다. 그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담대해집니다. 골리앗앞에서 다윗처럼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가노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의 진정한 삶이란 바로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함께 고백합시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여러분, 무당은 귀신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귀신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귀신이 주는 힘으로 일하고, 귀신이 주는 지식으로 점을 치기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술에 중독된 사람들은 술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술이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부끄러운 줄도 길거리에서 아무데나 실례를 하기도 하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술에 취해서 술의 지배를 받게 되니까,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귀신의 지배를 받거나 술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엡 5:15-18)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렇다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이 바로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에 이끌려 살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서,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성령충만한 삶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충만한 삶,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 즉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 때에 우리에게는 참된 평안과 참된 기쁨이 넘쳐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수 하비콕스의 ‘하늘로부터의 불(Fire from Heaven)’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교리도 모르지만 말씀 그대로 붙들고 ‘주여, 성령을 주옵소서’ 간절히 구한 사람과 교회에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한번 있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시작된 성령의 불길은 21세기를 열어가는 시점에 이르러 전 세계 교회로 확산되었습니다.
‘주여, 성령을 주옵소서’ 밤낮없이 기도하며 사모하는 교회들은 183%나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놀라운 역사를 행하십니다. 그러나 구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는 성령이 어떤 역사도 행하시지 않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이미 성령님은 내 안에 내주하시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면 우리도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조금 서툴고 힘들어도 한 걸음 또 한걸음 성령님을 따라 걷다보면 성령을 따르게 되고, 성령의 충만은 일생을 성공하게 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먼저 성령님이 내안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의 지혜와 능력이 임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