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이병률
치아가 이상해서 치과를 찾았더니
뭔가 참을 일이 많은 직업을 가졌냐고 묻는다
의사는 이에 실금이 많이 가 있다고 했다
왜 이렇게 윗니를 아랫니에 꽉 무느냐 했다
요즘 제가 참는 건 혀입니다, 라고 했더니
감정을 참느라 이가 성한 게 없다고 하였다
요즘 참는 건 돌아다니는 일이라고 내심 말을 바꾸려는데
어딜 좀 걸으면서라도 자기를 달래라고 하신다
잘 때도 이를 하도 꽉 물어서
어금니는 아예 닳았노라 했다
치아의 틀을 떠서 나에게 보이며
이에 쉼표라곤 없다고 설명했다
먹는 일 끝내고도
말하는 일 마치고도
쉬는 동안까지도 참아야 했다니
틀을 떠놨으니
제대로 참고해야겠는 일은
살아 있음을 참느라
생을 종잡을 수 없었던 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먹이활동을 하고, 먹이활동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마련하면 아름답고 멋진 꿈을 위해서 살아가게 된다. 먹이활동을 한다는 것, 아름답고 멋진 인생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그러나 수많은 장애를 만나게 되고, 우리는 이 장애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괴로워하게 된다. 강물이 장애물을 만나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나 순조롭게 흘러가지만, 그러나 수많은 협곡과 절벽을 만나면 그 장애물의 크기만큼 소용돌이를 치며 그토록 처절하고 사납게 울부짖게 된다.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장애를 만난다는 것이며, 장애를 만난다는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장애를 만나고, 고통을 만나고, 이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 먹이활동을 비롯한 아름답고 멋진 삶의 최고급의 비결인 것이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고, 인내는 모든 성공의 어머니라고 할 수가 있다. 권토중래捲土重來란 어떤 일의 실패 뒤에 힘을 길러 다시 시작하는 것을 말하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풀섶이나 볏짚 속에 누워자며‘실패’를‘최종적인 승리’로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3전 4기의 신화’나 ‘오뚝이 신화’, 그리고‘9회말 투 아웃’이후의 대역전의 드라마가‘인내의 기적’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생은 참음이며, 참음은 고통과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을 소화시키며, 이 소화의힘으로 우주왕복선을 쏘아올리는 것이다. 이병률 시인의 [틀]은 그가 창출해낸 언어의 발사체이며, 그는 [틀]이라는 우주왕복선을 쏘아올리기 위해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다 참아왔던 것이다. 이에 실금이 가도록 윗니로 아랫니를 꽉 무는 직업, 혀를 참으며 타인들에 대한 분노와 험담을 참는 직업, 안으로 안으로 화를 삭히며 감정을 참는 직업, 세계적인 대유행병 코로나 때문에‘돌아다니는 일’, 즉, 사람을 만나거나 세계여행을 참는 직업,“먹는 일 끝내고도/ 말하는 일 마치고도/ 쉬는 동안까지도 참아야”했던 직업,“살아 있음을 참느라/ 생을 종잡을 수 없었던”직업, 참는 것이 직업이며, 윗니로 아랫니를 꽉 무느라고 모든 이빨이 다 상해 틀니를 해야 하는 직업----. 이병률 시인의 [틀]은 인내의 미학이며, 이 인내의 미학으로 [틀]이라는 우주왕복선을 쏘아올린 것이다.
이병률 시인의 [틀]은 의사와 시인의 최고급의 말놀이로 되어 있으며, 이 말놀이를 다만 말놀이가 아니라 최고급의 역사 철학적인 성찰로 이끌어 올린 시라고 할 수가 있다.“치아가 이상해서 치과를 찾았더니”, 의사는“뭔가 참을 일이 많은 직업을 가졌냐고 묻는다.”윗니로 아랫니를 꽉 무느라고 대부부의 치아에 실금이 많이 가 있었기 때문이다.“요즘 제가 참는 건 혀입니다, 라고 했더니”의사는“감정을 참느라 이가 성한 게 없다고”한다.“요즘 참는 건 돌아다니는 일이라고 내심 말을 바꾸려는데” 의사는“어딜 좀 걸으면서라도 자기를 달래라고”한다. 하고 싶은 말과 분노와 험담을 참는 것도 힘 들고, 사람을 만나거나 세계여행을 못하는 것도 힘 들고, 이 모든 것이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 반작용으로 이를 꽉 물게 한다. “잘 때도 이를 하도 꽉 물어서/ 어금니는 아예 닳았고”, 그의“이에 쉼표라곤 없다고”한다. 참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이 어렵고 힘든 만큼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병률 시인과 의사와의 대화는 말놀이와 말놀이로 이어지면서,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는 법으로 이어지고, 이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는 법은 [틀]로서 완성된다. 먹는 일 끝내고 말하는 일 마치고도 참아야 하고, 잠을 자고 쉬는 동안에도 참아야 하고, 그리고 끝끝내“살아 있음을 참으려면”그의 인생이 끝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 하루의 삶은 참는 것이고, 인생도 참는 것이고, 이 참음 자체가 인생인 것이다. 이 참음, 이 인내의 기적이 [틀]이라는 제일급의 시, 즉, 언어의 우주왕복선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눈앞의 사소한 이익을 버리고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귀하고 위대한 사람은 없다. 그는 수많은 지류와 협곡을 거치면서 마침내 바다에 도달한 강물과도 같으며, 그 어떤 난관과 고통 앞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영웅이라고 할 수가 있다. 지혜로운 자는 용기가 있고, 용기가 있는 자는 성실하다.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의 삼박자를 다 갖춘 사람은 인내의 천재이며, 이 인내의 천재만이 전인류의 스승이 될 수가 있다. 옴팔레 여왕의 열두 노역을 다 감당해냈던 헤라클레스, 비너스의 질투로 온갖 시집살이와 수많은 노역을 다 감당해야만 했던 프시케,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내고도 10여 년 동안 이역만리를 떠돌아 다녀야만 했던 오딧세우스, 코르시카 섬 출신으로서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던 나폴레옹,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던 유태인으로서 상대성 이론을 정립해냈던 아인시타인, 대학교수직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디오니소스의 철학(비극철학)을 정립해냈던 프리드리히 니체 등은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을 다 갖춘 인내의 천재였던 것이다. 참고 견디는 자만이 최종적인 승리를 이끌어낼 수가 있고, 최종적인 승리를 창출해낸 사람만이 전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모든 신전, 사원, 모든 사당과 학교, 그리고 모든 시와 예술과 문화의 축제는 이러한 전인류의 스승들에게 바쳐지는 것이며, 우리 인간들의 삶이란 이처럼‘인내의 승리’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이병률 시인은 섣불리 화를 내지 않고 참는 자이며, 이빨이 다 닳도록 북북 이를 갈며 시를 쓰는 자이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며, 그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으로 전인류를 인도해가고 있는 것이다.
인내는 불이고, 불은 [틀]이며, [틀]은 우주발사체이다. 이병률 시인은 [틀]은 그가 그의 인내, 즉, 그의 언어로 쏘아올린 우주왕복선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