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 "김 가이버"
유월의 수원성지는 갖가지 들꽃과 순례자의 기도 소리가 어우러져 천상의 화원을 연상케 한다.
미사를 안내하는 자매에게 복수동 성당 연령회장인 김영성 마태오 형제를 찾으니 앞자리에서 기도하고 있는 머리 하얀 분
이라고 알려준다.
기도가 깊어 인사를 잠시 미루고 안내하는 분에게 마태오 형제님에 대하여 물으니, 말도 못하게 훌륭한 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아드님은 꾸리아 단장이고 며느님은 쁘레시디움 단장, 손자 3명이 소년단원에 따님들까지 한 집에
사는데 가족 8명이 레지오 단원이라고 묻지도 않은 가족관계까지 소개한다.
미사의 복사를 서는 형제님은 동작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한다. 그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세를 바로잡게
한다. 등나무 아래에서 형제님을 기다리며 본당 신자들에게 넌지시 형제님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람은 누구라도 모든 사람
에게서 다 좋은 평가를 받긴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몸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이라며 형제님을 칭찬한
다. 잠시 뒤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 형제님의 모습이 참으로 해맑다.
형제님은 1940년에 출생, 6.25를 겪으면서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때 좌절감에 빠지
기도 했으나 1967년 현순자 아녜스 자매와 혼인하여 슬하에 4남매를 두었다. 결혼 후 안정을 찾은 형제님은 1981년 레지오
에 입단하였고 단장과 부단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천사들의 모후 꾸리아 소속 그리스도의 어머니 쁘레시디움에 복무하
고 있다.
살면서 역경도 많았으나, 하느님께서는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셨다. 형제님은 이제
여생을 오로지 주님께 봉헌하며 살기로 했다면서 지난날을 회상한다. 12년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던 일,
그 후 교통사고를 당해 인공 뼈를 박았던 일, 28년 레지오 단원으로 살면서 수많은 냉담자를 회두시킨 보람 등 크고 작은
시련과 기쁜 일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현재의 삶을 물으니, 한 집에 아들네와 두 딸네가 함께 사는데 증조부 때부터 이어온 가족기도를 매일 밤 9시면 어김없이
모여서 바친다고 하신다. 자식들이 착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니 사는 게 재미있다며, 틈틈이 농사 지어 자식들 식량과 푸성
귀를 대준다고 한다. 아내가 모친 병수발을 7년이나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칭찬하는데, 마침 부인이 주보를 접으러
나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매님 역시 힘든 일 가운데서도 남편이 인정해주니 힘든 줄 몰랐노라고 한다.
가정생활을 하는 기자에게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3대가 한 지붕 아래 모여 사는 가족이라, 게다가 가족기도를 공동으로 한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가정방문을 요청했더니
선선히 응하신다. 그래서 며칠 뒤 기도 시간에 맞춰 형제님 댁을 방문했다.
15명의 가족이 모여 사는 집. 1층에는 형제님 내외분이 살고, 이층에는 아들네 가족, 3층에는 두 딸네 가족이 산다.
기도시간이 가까워지자, 가족들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이윽고 거실을 가득 채운다. 손자들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서슴없이 "맥가이버가 아니고, 김가이버" 라고 대답한다. 비빔국수며 떡볶이며 손수 간식도 만들어 주고 뭐든지 다해 주
신다는 자랑이 뒤따른다. "다들 바쁠 때는 간식 먹여 성당에 보내야지요" 하는 형제님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두 딸은 손해 보는 일도 많고, 봉사가 몸에 배인 아버지는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
사위들은 친아버지 같은 장인 이라고 하고, 꾸리아 단장인 아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아버지 라며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내는 모습에서 훈훈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밤 9시가 되자 형제님의 주송으로 저녁기도가 시작되었다. 15명의 기도소리는 우렁찼고, 막내 손자의 또랑또랑한 기도
소리는 이슬처럼 영롱했다. 삼종기도에 이어 저녁기도, 묵주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부모를 위한 기도, 자녀를 위한 기도
가 차례로 이어졌다. 대가족이 한 지붕 아래 모여 화목하게 살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기도상 아래에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궁금하여 물으니 입교대상자 명단이라고 한다. 지향을 두고 매일 기도를
드리는데 맨 위에 적힌 분은 이미 입교를 하였고, 입교를 결심한 분도 몇 분 된다고 한다.
그 옆에 나란히 쌓여 있는 책은 두 번째 쓰는 성서 필사본 이라고 한다.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담아 선물로 드리고 싶어서
조명시설은 없지만 가족사진을 활영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현관 입구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신발들이 참으로 정
겹다.
살면서 가장 기뻤던 날은 동생이 신부되던 날이었고, 소망은 자손들이 지금처럼 하느님 공경하며 우애있게 지내는 것이
라는 형제님의 말씀이 가슴에 메아리친다. 누구에게 물어도 칭찬이 넘치고,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김 영성 마태오 형제의 삶을 엿보며, 사랑과 희생은 모두를 품어 안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리 깊은 느티나무 그늘처럼 ....
=== 레지오 마리애 2009. 8. ===
첫댓글 '소망은 자손들이 지금처럼 하느님 공경하며 우애있게 지내는 것이라는 형제님의 말씀이 가슴에 메아리친다.'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 주는 것, 참으로 힘들고도 거룩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신앙을 실천하며 생활화 하는 가족 앞에 머리 숙여 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