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 이 영화 볼 생각을 1도 안 했습니다.
그러다 역사와 연관이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서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보는 중에도 그만 볼까 하는 생각도 났어요.
그만큼 으스스하고 무서웠습니다.
법사 봉길에게 들어간 오니 때문에 봉길이 죽을 수도 있어서
그 오니를 물리치기 위해
세 사람(신녀, 지관, 장의사)은 쇠말뚝을 찾아 무덤 속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쇠말뚝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습니다.
1910년부터 시작된 토지조사사업이 그 명분이었고, 삼각 측량을 위한 삼각점으로 쓰겠다며 쇠말뚝을 박았지요.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토지 조사가 목적이었을까요?
원래 목적은 우리 국민들의 땅을 빼앗기 위해서였죠.
당연히 그 일은 저항을 받았고, 우리 조상들은 쇠말뚝을 뽑아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당이라고 생각하는 땅에 쇠말뚝이 박히는 경우가 많았고요.
그러니까 풍수학적으로 우리 땅의 기운을 억누를 목적도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 외에도 일제의 만행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우리 땅의 지명을 바꾸어 일본의 혼을 불어넣는 일도 있었습니다.
1. 경복궁 서쪽에 인왕산이 있습니다. 무학대사가 조선왕조의 주산(主山)으로 삼으려 했다가 정도전의 반대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이 산은 음력으로 세종 15년 7월 9일 자(양력 1433.7.25) <세종실록> 등에는 '임금 왕'이 들어간 인왕산(仁王山)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국권침탈 6개월 전에 발행된 1910년 2월 19일 자 <대한매일신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랬던 것이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1912년 3월 7일 자 <매일신보>에는 인왕(旺)산으로 나타난다. '왕성할 왕'으로 바뀐 것입니다.
2.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왕림리(王臨里)도 일제 때 왕림(旺林)리로 개칭됐습니다. 경기도 의왕시(義王市)도 이 시기에는 의왕(儀旺)으로 불렸습니다. 경기도 포천시의 왕방산(王方山)도 왕(旺)방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왕(旺)은 뜻 자체는 좋지만, 일(日)과 왕(王)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쓰임이 있는 글자입니다. 왕방산이 포함된 포천·동두천·연천 지역 신문인 2012년 3월 23일 자 <경기북부타임즈>에 실린 '본래의 지명을 되찾아 민족정기를 바로잡자'라는 사설은 이 글자와 관련해 "일왕을 연상하게 하는 것으로 이는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국가의 자존심을 짓밟은 일제시대의 잔재"라고 분개했습니다.
3. 백제 도읍인 한성이란 지명에는 소서노와 온조를 비롯한 백제 건국 주역들의 정신이 묻어 있습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고대 한국인들이 사용한 한(韓)은 유목제국의 '칸'이나 한(汗)처럼 군주의 칭호였다고 말합니다. 한성이 '한의 도읍', '칸의 도읍'이었다는 설명이지요. 이처럼 웅대한 의미를 담은 한성이란 명칭도 일제 때는 공식적으로 사라졌습니다.
4. 조선총독부와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전라남도 광주를 대표하는 무등산(無等山)을 '머리가 없는 산: 무두산(無頭山)'으로 지명을 날조하여 이 지역에서는 우두머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문자적인 대못을 박았습니다. 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모체였던 학생조직 성진회(醒進會)는 '비린내가 퍼져나가는 모임: 성진회(腥進會)'로 표기하였습니다.
첫댓글 그들이 그러는 건 괘씸하지만 이해는 가요.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이면서 친일하다 못해 숭일하는 자들!
요즘 너무 많이 보여 괴롭네요.
울화통 터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