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 법구경 이야기,풀이,시조단상]286 - 이야기와 풀이
세존께서 기원정사 계실 때 한 상인이 오백 대의 수레에 심홍색으로 물들인 천을 잔뜩 싣고 베나래스에서 사위성으로 출발해서 사위성이 보이는 강
건너편에 도착하여 내일 강을 건너야겠다고 생각하고 소의 멍에를 풀어주고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밤새도록 폭우가 쏟아져서 강물이 불어나 홍수가 되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일주일 간의 축제기간에 천을 팔아야 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는 먼 길을 왔는데 되돌아가 내년에 오기도 그러니 여기서 우기와 겨울과 여름을 보내면서 옷감을 팔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 곳에
머물게 된다.
세존께서 사위성에서 탁발을 하시다가 상인의 생각을 알고 미소를 지으시니 시자인 아난 존자가 연유를 물었다.
세존께서 답하시길,
"그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여기에서 올 해를 보내고 내년에 상품을 팔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아난이 그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자 그는 일주일 더 살고 물고기 입으로 들어갈 것 이라고 말씀 하신 후 게송을 설하셨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당장 실천하라.
내일 죽음이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늘 죽음의 강한 힘과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밤낮으로 지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은
하룻 밤을 살더라도 행복하다고
마음이 평화로운 성자가 말씀하시네.
세존께서 상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어도 좋다는 허락을 얻고 아난 존자가 상인을 찾아가 말했다.
" 재가 신도여 당신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도를 깨닫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태만하지 말고 주의깊게 마음챙김을 유지하시오."
이 말씀을 듣고 상인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하여 일주일 동안 공양을 올리고 마지막 날에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발우를 받아들자 세존께서는 그에게 축원과 법문을 하셨다.
"재가 신도여, 현명한 사람은 여기서 우기와 겨울과 여름을 보내면서 이런저런 일을 하겠다 생각만 하지 않고 생명의 종착역인 죽음에 대해
명상한다."
세존께서 설법을 마치시고 다시 게송을 설해주자 게송을 들은 상인은 초과(수다원과)를 성취했고 그 곳에 모인 대중들도 많은 이익을 얻었다.
상인은 부처님과 비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와서 머리에 두통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후 침대에 눕자마자 죽어 도솔천에 태어났다.
정초 삼사 순례 법회에는 불보 법보 승보를 상징하는 세 곳의 사찰을 참배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세 곳의 절을 참배하고 방생을 해야 한 해를
편안하게 보낸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들어오는 삼재, 나가는 삼재를 이유로 자기와 가족 친척, 친지와 손주까지 챙기며 각종 부적과 절 달력을 받아 모으는 등 삼사 순례를 하면
삼재를 없앨 수 있다는 대단히 비불교적인 행사를 불교적인 것이라 여기며 불교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일부는 관광 삼아서 일부는 효도
관광이라고 일부는 누구 누구 표 찍으라고 선심 공세와 함께 구름처럼 모여드는 그 날은 참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추위에 마당에 얇은 천 하나 깔고 기도를 하는 천여명 천오백여명의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안스럽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들의 잘못된 귀의처에 안스럽기도 하다.
포행 중에 마주치는 성지 순례단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이 산신각이며 칠성당이요 용왕당이니 과연 그들에게 있어 석가모니 세존은 어떤 분이고
승려는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들의 귀의처는 일명 기도발 잘 받는 곳이라 하여 누가 그러더냐고 물으면 보살님이 알려주었다하니 어떤 보살인지 몰라도 참으로 안타깝고
주워들은 풍문을 귀의처로 여기는 사람들도 안타깝다.
그들이 귀의처로 삼는 것은 삼보가 아닌 삼보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포용한 민간신앙 이라는 것에서 또 한번 불교 포교의 저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그들의 진정한 귀의처인 삼보는 이러한 상황에서 속수무책 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삼사 순례 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벌어지는 춤판과 술판과 웃음판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참으로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
필자가 도반의 권유로 객승으로 잠시 머물던 절에 그런 행사에 따라 갔다가 술을 권하며 뽕짝을 부르라는 소리에 출가한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온 몸에 표시가 나서 그들이 순진한 스님이 뭘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 풀어본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그런 일은 없어졌겠지만 그 경험 이후 방생 법회니 성지순례 법회니 하여 차를 타고 단체 행동 하는데 적지 않은 불편함을
느꼈다.
후에 서울 길상사의 순례차를 동승하고 이렇게 모범적인 곳도 있구나 감탄을 한 적도 있으니 모든 절이나 모든 불자들이 그런 것이 아님도 역시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2566. 11. 7 법주도서관 심적 대견 합장
자림 시조 단상 286
어리석은 사람은 우기와 건기,열기 때
어디에 머물까를 계획하고 살아가나
죽음의 위험이 바로 코 앞에 있음 모른다네
-----자림 대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