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왜 우리가 길을 잃을까?
흔히 양은 똘똘 뭉치는 힘이 아주 강해서 그냥 두면 한 여름에도 너무 붙어있어 털끼리 엉겨 붙어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개들이 양 사이를 갈라놓아서 귀한 털이 엉겨 붙지 않게 하기도 하고, 피부에 병이 생기지 않게 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염소는 늘 혼자 돌아다니며 뿔을 들이대고 싸우기를 좋아한답니다. 양과 염소는 같은 종족이지만 그렇게 다르답니다. 그래서 양과 염소를 구별해서 성경에서는 많이 쓰이고 있는가봅니다. 똘똘 뭉쳐 있는 백 마리의 양 가운데 한 마리가 무리를 탈출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양을 찾아 나섭니다.
경영학적으로 보면 이 주인은 아주 잘못하는 것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보면 이런 행동은 아주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칫하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정말 무모한 것입니다. 손실이 기대하는 이익을 훨씬 능가할 수 있는 일입니다. 생산성의 문제로 계산하더라도 1%의 생산효과이며, 투자 차원에서 보더라도 투자 수익률도 1%에 불과합니다. 승률로 계산해도 99대 1이라는 승률을 가지고 전쟁에 나가는 장수와 같아서 전혀 승산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길을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것을 택하신 것은 이익을 따지는 경영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랑경영에 관한 문제로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투자수익에 관한 문제가 아니며, 기회비용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양과 주인을 많이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이 무리를 떠나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답니다. 어떤 경우가 길을 잃은 양인가 하는 것이 계속 머리에서 맴돌고 있답니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는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다.>라는 뜻입니다. 전국시대의 사상가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양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양의 주인이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또 양자에게 하인을 청하여 양을 찾아가려 하였답니다. 그래서 양자가 궁금해서 물었답니다. “아니 양은 한 마리를 잃었는데 어찌 쫓아가는 사람이 많은가요?” 이웃 사람은 “갈림길이 많아서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이윽고 여러 사람이 돌아왔으므로 붙잡았느냐고 물으니, “양을 잃어버렸습니다.”하더랍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쫓아갔는데 어찌 잃었단 말인가?”하고 물으니 그들이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고, 또 갈림길이 있어 양이 어느 길로 갔는지 알 수 없어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왜 양이 길을 잃을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갈림길이 많이 때문입니다.
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가지를 많이 칩니다. 큰 고속도로처럼 뻥 뚫린 길이 아니라 가지를 많이 친 갈래 길일 수록 길을 잃기 쉽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리와 떨어져 같이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갈라진 길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서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 갈 길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어느 길로 가야 올바른 길인지 알지 못하고 있답니다.
2. 무리와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리의 미움을 받아서 무리 안에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리에서 왕따를 당해서 함께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자 은근히 도망해야 하는 서러운 처지에 있을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떠나면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이 언제나 나를 유혹합니다. 혼자 있고 싶고, 아무의 간섭도 받기 싫고, 가족도, 친구도 모두 떨쳐버리고 그냥 혼자 있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막연한 기대가 나를 꿈에 부풀게 하고, 헛것에 정신을 팔리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당해서 마지못해 그 공동체에서 떠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가슴에 원망과 서러움을 품고서 그렇게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3. 자신이 가는 길이 최고로 여기는 고집 때문입니다.
좋은 길이라고 고집을 피우고 혼자서 앞장서서 가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뒤따라오는 양이나 사람이 없으면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혼자서 잘난 척하며 너무 앞장서서 나갈 때 사람들과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길을 잃어버리고 혼자서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4. 무서운 동물을 만나면 뿔뿔이 도망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자나 표범과 같은 큰 동물들이 잡아먹으려고 덤벼들면 자연히 가던 길을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야 하기 때문에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런 동물들은 무리에서 떨어지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잡아먹고 공격하기에 적당한 환경을 만듭니다. 세상을 살면서 그런 위험한 때를 많이 만나기도 합니다.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강한 적이 공격해오면 더욱 무리를 떠나지 말아야 하는데도 그 때는 그 것을 모르고 삽니다.
5. 길잡이를 잘못 만나서 엉뚱한 길로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어린 양을 잘 인도해 주는 대장이 엉터리로 양들을 인도하기 때문에 철모르는 어린 양은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도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답니다. 부모도, 스승도, 선배도, 신부님도, 직장의 어른들도 모두 나를 이끌어 주시는 대장이랍니다.
6. 내 욕망이나 목표에 따라서 길을 볼 수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이라는 말이 있지요. 잘 아시는 것처럼 <사슴을 쫓는 자 산을 보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라는 말입니다. 사슴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건너편에 있는 풀이 더 맛있어 보이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입니다.’ 분수를 알고 사는 것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7. 세상이 모두 암흑천지라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잃고 헤맬 수 있습니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어둠이 판치며 정의가 숨어버려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는 세상이라서 길을 찾지도 못하고 무리가 보이지도 않는 경우입니다. 나도 지금 그런 어둠 속에 있는 듯합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