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金海市) ‘길손의 회포‘ 한시(漢詩)편 1.> 총10편 中
경상남도 남동부에 있는 김해시는 1995년 김해군과 통합되어 도농통합형태의 김해시가 되었다. 낙동강과 김해평야를 끼고 있는 옛 가락국의 고도로서 선사문화와 가야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부산과 마산을 연결하는 교통도시이며, 김해평야가 발달한 지역이다. 현재 부산시로 편입된 부산 강서구 일대를 모두 포함한 지역이 옛 김해부(金海府) 관할 지역이다. 시청소재지는 경상남도 김해시 김해대로 2401이고, 면적 463.26㎢, 인구 528,865명(2015년)이다.
● 김해지방은 농경에 유리한 자연환경과 철 산지의 보유, 해운의 이점 등을 활용해 부와 기술을 축적, 삼한시대에 구야국이라는 소국 단계로 발전했다. 삼국시대에는 가야국으로 발전해 가야연맹체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42년 김수로왕이 건국하고 10대 491년을 지난 532년 구형왕 때에 신라에 항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신라는 이곳에 가야군을 설치했고, 757년 김해소경으로 바꾸었다. 고려에 들어 940년 김해부로 강등된 후 임해현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1413년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김해군이 되었고, 1906년 지방구역 정리로 대산면을 창원군으로 이속시키고 양산군의 두입지인 대상면·대하면을 이관받았다.
1934년 낙동강 일천식개수공사 완공으로 낙동강 하류의 상습 수해지가 비옥한 평야로 바뀌었다. 1931년 김해면, 1942년 진영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대저면에 1938년 일본군 군용비행장이 설치되었다. 1976년 김해 국제공항이 개설되었다. 부산의 도시 팽창에 따라 1978년 군의 동남부인 서낙동강의 강동지역 대저읍·명지면과 가락면 일부가 부산직할시 북구, 1989년에는 가락면·녹산면이 부산직할시 강서구에 편입되었다.
1) 김해, 즉석에서 짓다[金海口占] / 강 유(姜 瑜 1597∼1668)
海濶潮侵岸 광활한 바다에서 조수가 밀려오면
秋晴月滿城 맑은 가을날 달빛이 성에 가득하여
自然添旅恨 자연스레 객지의 한이 더하는데
直是坐浮名 바로 이 자리도 헛된 명성일 뿐.
老病同工部 늙고 병든 것이 이 공관(工官)과 같으니
才華異正平 뛰어난 재주도 치우침 없이 정확해야 한다.
孤吟仍不寐 거듭 잠들지 못해 외로이 읊조리다
悄悄到三更 근심 가득 안고 삼경에 이르렀네.
2) 남역 도중에[南驛途中] 김해(金海) / 남효온(南孝溫 1454∼1492)
大海東頭首屢回 큰 바다 동쪽 끝을 머리 자주 돌려 보니
此翁行樂亦奇哉 이 늙은이 즐거운 유람 또한 기이하도다
浪驚獨石攻三面 놀란 파도 바위 하나 삼면에서 찰싹이고
鷺羽宛丘萬舞來 해오라기는 언덕으로 훨훨 날아오는구나
3) 김해 황산강을 제하다[題金海黃山江] / 강혼(姜渾 1464∼1519)
泊舟金海府 김해부에 배를 정박하고
却望晉陽山 문득 진양산을 바라보니
納納雲天遠 넓고 넓은 구름 하늘이 멀고
茫茫水國寬 아득히 물이 질펀한 나라는 넓고나.
江湖今夜興 강과 호수에 이 밤이 흥겹고
琴酒此生閒 거문고와 술에 이생이 한가롭네.
明日蓬萊島 내일은 봉래섬에서
尋眞學鍊丹 진경을 찾아가 연단(鍊丹)을 배우리라.
[주1] 봉래도(蓬萊島) :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서 선인이 산다는 곳이다.
[주2] 연단(鍊丹) : 예전에, 중국에서 도사(道士)가 진사(辰砂)로 황금이나 약 같은 것을 만들었다는 일종의 연금술(불로장생 약 제조)이나 그 약을 이르던 말.
4) 김해부[金海府] 제영(題詠) / 송득사(宋得師) 조선태종 때 관료.
山秀雲生畵 산(山) 모습 빼어나 구름이 그림같이 피어오르고
天遙海接空 하늘이 먼데 바다는 허공(虛空)에 닿았구나.
脩篁繞砌碧 긴 대숲 그림자 둘려져 섬돌이 푸르고
佳樹滿庭紅 고운 나무 꽃 피어 뜰에 가득 붉구나.
5) 김해 객사에서[題金海客舍] / 김득배(金得培 1312~1362) 고려 후기의 문신.
來管盆城二十春 이 분성에 와서 관기 노릇한 지 스무 해 전이라
當時父老半成塵 그 당시의 부로들은 반이나 티끌 되었네
自從書記爲元帥 서기(管記)로부터 원수 된 이 보나니
屈指如今有幾人 지금 세상에 손가락 꼽아 몇 사람이 되는가
6) 김해[金海] / 민사평(閔思平 1295∼1359)
肇跡神王類紇干 나라를 연 신령한 왕이 흘간과 비슷하니
天敎靈匹會新官 하늘이 신령한 배필을 보내 신랑과 만나게 했네
頗同漢武瑤臺遇 한 무제가 요대에서 서왕모를 만난 일과 자못 같노니
何異楚襄巫峽歡 초 양왕이 무산에서 신녀와 즐겼던 일과 무엇이 다르랴
千載孤城稱駕洛 천 년이 된 외딴 성을 가락국이라 일컬으니
一番盛事似槐安 한 번의 성대한 사업은 괴안몽과 같구나
空餘七點山橫翠 푸른빛 가로지른 칠점산만 부질없이 남았으니
留與游人指點看 유람하는 이들에게 남겨 주어 가리키며 보게 하네
[주1] 나라를 …… 비슷하니 : 신령한 왕은 김수로왕(金首露王)을 가리킨다. 흘간(紇干)은 《진서(晉書)》 권125에 나오는데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닌 신비한 존재를 일컫는다.
[주2] 하늘이 …… 했네 : 김수로왕이 즉위 후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하여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니,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천신(天神)의 명으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기에 왕비로 삼았다는 고사이다.
[주3] 한 무제(漢武帝)가 …… 일 : 요대(瑤臺)는 화려하게 장식한 무제의 승화전(承華殿)을 말한다. 한 무제가 7월 7일 승화전에 있을 때 청조(靑鳥) 한 마리가 서쪽에서 날아와 전각 앞에 이르기에 그 이유를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었더니 동방삭이 “이것은 서왕모가 오려는 징조입니다.” 하였다. 한참 만에 과연 서왕모가 오색 반룡(五色斑龍)이 끄는 뿌연 구름의 연(輦)을 타고 전각으로 왔다고 한다.
[주4] 초 양왕(楚襄王)이 …… 일 : 초 양왕의 선왕(先王)인 회왕(懷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유람할 때 꿈에 무산(巫山) 신녀를 만나 시침(侍寢)하도록 하였다는 고사이다. 《文選 卷10 高唐賦》 이 고사는 후대에 초 양왕이 신녀와 만난 것으로 자주 와전되어 쓰였다.
[주5] 괴안몽(槐安夢) : 허망한 인생사를 비유하는 데 쓰는 말이다. 당(唐)나라 이공좌(李公佐)의 《남가기(南柯記)》에 “순우분(淳于棼)의 집 남쪽에 큰 홰나무가 있었는데 순우분이 날마다 그 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았다. 하루는 술에 취하여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괴안국왕(槐安國王)이 사자를 보내어 그를 불렀다. 사자를 따라가 남가 태수(南柯太守)가 되어 영화를 누리다가 깨어 보니 바로 홰나무 밑에 개미굴이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주6] 칠점산(七點山) : 경상도 양산군(梁山郡) 남쪽 44리 되는 바닷가에 있다. 일곱 봉우리의 산이 점과 같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가락국(駕洛國) 때 참시선인(旵始仙人)이 놀던 곳이라 한다.
<경남 김해시(金海市) ‘나그네의 회포‘ 한시(漢詩)편 2.> 총10편 中
경남 김해시 역사를 살펴보자. 관내 곳곳에 선사시대 유물·유적이 분포한다. 김해지방은 농경에 유리한 자연환경과 철 산지의 보유, 해운의 이점 등을 활용해 부와 기술을 축적, 삼한시대에 구야국이라는 소국 단계로 발전했다. 삼국시대에는 가야국으로 발전해 가야연맹체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42년 김수로왕이 건국하고 10대 491년을 지난 532년 구형왕 때에 신라에 항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신라는 이곳에 가야군을 설치했고, 680년에는 금관소경을 설치했다가 757년 김해소경으로 바꾸어 양주(양산)에 속했다.
고려에 들어 940년 김해부로 강등된 후 임해현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 김해안동도호부로 개칭하여 영동도에 속했다. 1012년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 의안군·함안군·칠원현·웅신현이 속군·속현이 되었다. 1270년 금녕도호부로 승격했다가 안렴사 살해사건으로 1293년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으로 승격했다가 1310년에 다시 김해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 김해도호부로 승격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김해군, 1906년 지방구역정리로 대산면을 창원군으로 이속, 양산군의 두입지인 대상면·대하면을 이관받았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대저면이 읍으로 승격했으며, 1976년 김해 국제공항이 개설되었다. 부산의 도시 팽창에 따라 1978년 군의 동남부인 서낙동강의 강동지역 대저읍·명지면과 가락면 일부가 부산직할시 북구, 1989년에는 가락면·녹산면이 부산직할시 강서구에 편입되었다. 1981년 김해읍이 시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행정구역개편으로 김해군과 다시 통합되어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7) 김해부[金海府] / 남용익(南龍翼 1628∼1692)
畫角三聲罷 화각소리가 세 번 울리고 난 후
邊城報閉門 변방의 성문을 닫는다고 알리네.
深春花未落 늦은 봄에도 아직 꽃이 지지 않았는데
近海雨常昏 가까운 물가에는 비가 내려 어둑하다.
駕洛墟爲府 가락국의 터에 고을이 되었고
君王墓在村 군왕의 묘가 마을에 있구나.
京師一千里 일천 리 서울을
回首暗傷魂 돌아다 바라보니 더욱 마음 상하네.
8) 김해 어진사 차운[金海 次魚進士韻] / 정유길(鄭惟吉 1515∼1588)
燒燭東軒坐夜深 동헌에서 촛불 켜고 깊은 밤에 앉았거니
老年顔面少時心 노년의 얼굴에 어릴 적 마음일세.
團欒三十年前事 단란했던 삼십년 전 일을 생각하다
忘却吾生到海潯 내가 바닷가에 이르렀음을 망각했네.
9) 김해[金海] / 조수삼(趙秀三 1762∼1849)
駕洛山河古 가락국의 오래된 산하(山河),
珠邱葬聖君 주구(珠邱)에 성군을 장사지냈네.
史官稱首露 사관(史官)이 수로왕이라 칭했는데
東國半仍雲 동국(東國)의 절반이 후손일세.
風雨深松栢 비바람이 송백(松栢)에 깊어지니
春秋薦苾芬 봄가을에 좋은 향기를 뿜어낸다.
王妃隣卜兆 왕비를 근처에 묘 자리를 잡아
兩姓一支分 양 성(姓)이 한 가지에서 나뉘었다네.
[주] 주구(珠邱) : 순임금의 무덤에 새가 날아와 구슬을 떨어뜨린 것이 쌓여서 언덕을 이루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임금의 능침을 뜻한다.
10) 김해 옛 여행을 회상하며[懷金海舊遊] / 정몽주(鄭夢周 1337∼1392)
燕子樓前燕子廻 연자루 앞에 제비가 날아드는데
郞君一去不重來 낭군은 한 번 간 뒤 다시 오지 않나니
當時手種梅花樹 그때에 손수 심은 매화나무는
爲問東風幾度開 봄바람에 몇 번이나 피었었느냐
11) 김해 회고[金海懷古] / 김안국(金安國 1478∼1543)
千古伽倻國 천고의 가야국
興亡事可憑 흥망의 일을 증명할 수 있지
雲閑婆塔古 구름에 가린 옛 파사탑
春老首王陵 늦은 봄날 수로왕릉
海燕來何早 바다제비는 어찌 빨리 왔느냐
山花問不應 산의 꽃에 물어도 대답치 않네
秪今聞舊曲 지금 옛 곡조를 듣자하니
凄切客愁增 처절하여라 더해지는 수심.
12) 옛 가락국[古駕洛] 김해(金海)와 창원(昌原) 지역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
首露古邦域 옛날 옛적 김수로왕(金首露王)이 세운 나라
瘡痍今可憐 가련하여라 폐허로 변했구나
居民多逐客 주민도 대부분 쫓겨온 나그네들
耕地是屯田 논밭이 있다 해도 모두 둔전답(屯田畓)일세
織貝輸官稅 비단을 짜서는 세금으로 납부하고
編筐拾海鮮 광주리 들고 나가 해산물 주워 담네
路逢襁負者 포대기 둘러맨 이 길에서 만나 보니
逋役趁新年 새 세상 올 때까지 숨어 살려 한다고
13) 김해 술회[金海述懷] / 송병선(宋秉璿 1836∼1905)
幽都舊駕洛 아득한 도읍(都邑) 옛 가락(駕洛)에
開業同羅時 왕업(王業) 열어 함께 시대(時代)를 펼쳐 나갔네.
水轉江通海 물은 구르고 흘러 강(江)물이 바다로 통(通)하고
山圍壤接夷 산(山)이 둘러싸 땅은 오랑캐와 접(接)했네.
鎭風留古㙮 진풍탑(鎭風塔)은 옛날 탑(塔)이 머물고 있고
崇善瞻遺祠 숭선전(崇善殿)에서는 남은 사당(祠堂)을 보네.
落日盆城下 해 지는 분성(盆城) 아래에서
徘徊歌黍離 노래 부르며 배회하다 서속(黍粟)밭을 떠난다네
14) 금관기속시[金官紀俗詩] / 이학규(李學逵 1770~1835)
桂華衣履謾塵灰 계화의 옷과 신 아득하여라 티끌과 재 되었고
旵始遺踪片石堆 참시가 남긴 자취 조각조각 돌로 쌓였구나
千古王京風氣在 천년 왕도의 습속이 남아있어
麥秋時節葦魚來 보리 거두는 시절 웅어가 돌아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