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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자 대학생이 이성교제 상담게시판에 동갑내기 남자친구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자친구는 엄청나게 돈을 아끼며 짠도리란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일상 생활중 돈 쓰는 일을 대단히 아꼈습니다. 식사나 간식등 먹는 것에 돈 쓰는 것도 아껴서 왠만하면 한 끼 건너뛰든지 어떻게든 자기 돈 들이지 않고 한끼씩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합니다. 옷도 거의 안사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얻어 입으며 헌 옷을 구해 의류구입비를 아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자기 돈으로 식사해결해야 할 상황, 어쩔 수 없이 옷을 사 입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가능한 최고 싼 음식, 최고 싼 옷을 찾아서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아끼는 남자친구는 여자 친구의 옷 사는 습관이라든지 여자 친구의 식욕에 대해 잔소리가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너무나 속이 상하고 교제하는 일이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경제관념이 제대로 서 있으니 돈을 아끼는 것 아니겠냐?”며 자조하며 남자친구를 좋게 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상담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며칠 전 한 전자제품을 샀는데 조그마한 스마트워치였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시계인데 스마트폰과 연계해서 각종 알림기능이 있으니 참 편리하다며 하나 샀다고 합니다. 가격을 알아보니 수십만원이었습니다. 이 조그마한게 뭐가 그렇게 비싼 건지 그리고 며칠 전 여자친구에게 밥사주는 것, 옷사주는 것에 대해 몇 백원, 몇 천원 때문에 잔소리하고 벌벌 떨던 사람이 고가의 전자제품을 너무 쉽게 사는 모습을 보며 서운함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게 서로의 가치관차이구나, 성격의 차이라는 것이 이렇게 돈쓰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주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 중 세상 사람들의 물질관, 재물에 대한 가치관이 어떤 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어떤 재물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 지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재물의 활용을 통해 우리가 진짜 신앙인인지, 가짜 신앙인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재물에 대한 가치기준을 바로 세우고 진짜 신앙인으로 재물을 잘 관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재물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신앙, 첫째 재물많은 불신앙인이 있습니다. 부자이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갑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재물에 대한 개념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재물에 대한 가치관을 보면 정말 신앙인인지, 신앙인이 아닌 지를 볼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재물에 대한 개념속에서 이방인이 될 것인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32절을 먼저 볼까요?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주변의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지적하시면서 그들의 염려와 걱정이 결국 이방인들과 같다는 사실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과 택한 백성의 구분을 위해 가르쳐주신 것을 보면 재물 소유 여부와 함께 재물 활용 방법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지난 주 우리가 살펴본 재물에 대한 가치관 첫 번째 시간의 말씀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재물 소유 여부로 신앙인과 불신자를 갈라놓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그렇게 보는 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한 번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일단 이방인이라고 표현된 불신자들이 평소 어떤 걱정을 할까요?
마태복음 6장 25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우리는 여러 번 이 본문과 관련된 말씀을 들으면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염려와 걱정을 한다고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을 우려하는 말씀임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면서 오히려 부자이기에 이런 고민을 많이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이 매일매일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우리 주변의 사람들중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 중 가난한 사람이 많을까요? 부자인 사람들이 많을까요? 매일매일 의식주 문제에 대해 선택권을 가지고 무엇을 택해야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일까요? 부자일까요? 저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자들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택권이 많다보니 그 많은 먹을거리들에 대해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 아닙니까? 선택지가 많아지니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소유한 차가 많아지면 어떤 차를 탈지 고민하게 되고 그 차에 대한 인테리어나 수리, 관리등의 고민이 많아지는 것 아닙니까? 자녀들이 많아지니 자녀들의 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뭘 해줘야할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은 복입니다. 분명 우리가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것은 복입니다. 그런데 그 복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려다 보니 어떻게 써야 할지, 무엇을 위해 써야 할지 고민하고 걱정하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우리가 ‘재물’이라고 쓰는 단어가 성경속에서 ‘돈’, ‘값지고 보배로운 물건’, ‘소유물’, ‘보물’, ‘보배’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재물’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인간들이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이런 재물에 대한 욕심, 욕망, 재물의 그릇된 활용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3~25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성경에는 히브리어 רְכוּשׁ(레쿠쉬), חַיִל(하일), 그리고 헬라어 σκῦλον(스퀼론), μαμμωνᾶς(맘모나스), βίος(비오스), χρῆμα(크레마)등 ‘재물’ ‘소유물’, ‘재산’, ‘돈’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많은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모두 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소유해야 하고 삶 속에서 활용해야 하는 수단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수단이 우리 목적이 되고 이 재물, 재산, 돈 때문에 우리가 걱정하고 고민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우리는 멸망의 자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입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돈이 있어서 그 돈을 어떻게 쓸 지 매일 고민하며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습니까? 하루 꽤 긴 시간을 “뭘 먹을까? 뭐 마실까? 뭘 입을까?”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선택지가 많은 것이 복일 수도 있지만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하다 보니 그것이 저주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정말 내게 주신 물질, 내게 주신 시간을 내 목숨을 위해, 내 명예를 위해 내 멋을 위해, 내 자랑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지 마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는 참된 부자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재물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신앙, 둘째 재물없는 불신앙인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방인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32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재물에 대한 염려에 대해 살펴보면서 두 번째 부분에서는 그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부분이 가진 것이 없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권면이라는 관점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아니 매시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합니다. 정말 한 끼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모르는 형편의 사람들은 이것이 걱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오늘 본문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지금 살펴볼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그런 고민보다 “오늘은 또 어떻게 먹을거리를 만들까? 어떻게 마실 물을 찾을까? 어떻게 입을 것을 구할까?”라며 고민할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소유한 것이 없어서 염려하고 고민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인질강도범죄자가 주택을 침입하여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습니다. 그가 체포되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외쳤고 그것이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이야기가 되어 이제 종종 죄를 범하는 많은 죄인들이 자신은 돈이 없어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유명한 핑계 문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돈이 없어 죄인이 되었다는 말도 맞을 수 있지만 우리가 돈이 없기에 이런 염려와 걱정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 정말 돈이 없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속에 내가 가진 게 없어 걱정할 수밖에 없고, 내가 가진 게 없어 죄를 지어서라도 목숨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우리는 멸망의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으로 떨어질 죄를 돈 때문에 짓게 된다면 그것은 돈이 없어 문제가 아니라 결국 돈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영혼의 멸망이 찾아온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순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잠언 27장 7절입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기 힘듭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마실 물을 찾기도 힘듭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입을 옷을 찾기도 힘듭니다. 종종 보는 유튜브채널을 통해 세계의 여러 나라의 형편을 그 곳에서 살다 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됩니다. 그 유튜브를 보면 정말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살게 되었는 지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특히 탈북자들이 우리나라 정착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깜짝깜짝 놀랍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몇 년동안 지낸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우리나라는 북한에 비해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탈북해서 한국에 들어오면 국정원에서 운영하는 한국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교육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일단 임대아파트를 한 채씩 준다고 하네요. 문제는 정착금이라고 받는 조금의 돈과 임대아파트만으로 사회물정을 모르는 탈북민이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신이 똑바로 박히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탈북민들은 필요한 가전제품, 필요한 옷, 필요한 가구를 구하기 위해 재활용센터나 아파트 폐기물 처리장을 찾아간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보면 한국 사람들이 쓸만한데도 버려놓은 가전제품, 가구, 옷 등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무려 공짜이니 그냥 가져가서 쓰면 되는 것입니다. 최근 어느 탈북유튜버가 이야기하는 북한 장마당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누가 입던 속옷을 깨끗이 세탁해서 그냥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장마당에서 판다고 합니다. 라벨이나 품질등을 보면 이게 대한민국제품인지 알게 되는데 누가 입었던 옷이라는 사실도 공공연히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인기가 좋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입던 속옷을 사서 입을까? 그런데 그게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그 사회에서는 한국에서 버린 것마저도 귀하게 쓴다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버리는 것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는 쓰고 싶는데 구하지 못할 물건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물을 너무나 쉽게 쓰지만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는 물 한 모금없어서 하루를 어떻게 갈증을 해결할지 감당할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상수도처리시설이 없어 흙탕물이나 각종 오물이 썪인 웅덩이의 물을 마시는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물로 인한 질병이 생겨서 어린 나이에 죽음에 이르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곳에는 얼마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한 걱정이 많을까요? 하루하루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걱정일까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이런 염려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아무 것도 없어져서 그 가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 가난으로 매일 염려와 걱정으로 살아가지 않게 되기를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궁핍함이라는 것이 결국 멸망으로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먹고 살기위해 죄가 우리를 찾아오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은혜를 갈망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재물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신앙, 마지막 셋째는 재물소유 여부를 떠나 참 주님의 백성이 있습니다. 신앙은 재물의 여부가 아니라 은혜 여부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34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결론적으로 참 신앙인이 가질 물질관에 대해 우리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 말씀을 우리는 듣게 됩니다. 우리는 절대 이방인으로 살면 안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천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을 뜻함과 동시에 이 땅에서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우리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물질가치관, 재물에 대한 활용방법이 보여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재물에 대한 개념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늘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채워주시고 그 물질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재물을 받은 것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관리자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18절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신앙인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신구약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재물에 대한 가치관을 제대로 잡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 성실히 땀 흘려 얻은 재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 재물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바른 삶입니다. 하지만, 그 재물을 얻기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고 타인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재물을 얻으면 이것은 멸망의 삶을 살아가는 지옥 형벌받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재물이라고 하더라도 재물을 의지하며 재물에 소망을 두며 부자인 것을 자랑하며 재물을 권력으로 휘두르는 일을 한다면 그것 또한 멸망받을 지옥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목적과 수단을 절대 바꾸면 안 됩니다. 돈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9장 21~23절을 보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절대 부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절대 돈을 버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나눔과 베풂이 같이 되어야 합니다. 쌓아놓는 것만 되면 안되고 나누고 베풀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신앙인의 판단기준은 재물의 소유여부가 아니라 재물의 활용여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재물에 대한 관점보다 재물의 활용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잠언에 이런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잠언 30장 8,9절입니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앞에서 재물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가난하지도 부하지도 않고 은혜가운데 믿음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가 지난 주 살펴본 말씀에서 재물과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절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물에 집중하면 하나님을 놓치고 하나님에 집중하며 재물에 대해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섬기는 자의 모습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삶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섬기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3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하나님이 다 채워주십니까? 우리가 세상적 관점으로 현실만 보면 그렇지 않은 듯 보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입고 싶은 것,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늘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판단, 우리의 기준에 따라 우리에게 필요한 재물 정도를 판단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판단기준으로 내 욕구를 채우려 합니다. 그래서 결국 멸망의 길로 더 나아갑니다. 가나안을 향해 광야를 지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만큼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는데도 그들은 늘 부족하다고 불평과 원망을 터트렸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곧 영원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 땅의 것에만 관심을 갖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이 땅의 것에만 집착하기보다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말씀을 읽고 우리의 재물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바르게 잡아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3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세상적 욕망으로 매일 걱정하고 염려하며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갈지, 뭘하며 돈을 벌어야 할지, 어떤 것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걱정하며 살아갈지 고민하는 저와 여러분,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민한다고 조금도 나아질 것이 없고 한치의 키에 보탬도 되지 않는데 왜 고민하고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십니까? 많이 가져서 고민하는 사람들, 너무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마시고 우리가 많이 가졌든 많이 가지지 못했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지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 하나님께 영광이 될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에만 얽매인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고 영원을 소망하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