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김정식'이 태어났다. 세 살 때에 '김정식'의 아버지는 일본인들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 '김정식'은 할아버지 집으로 옮겨 아픈 상처를 가진 채 성장하였다.
이후 오산학교에 진학한 '김정식'은 세 살 많은 누나 '오순'을 알게 된다. '김정식'은 오순과 마을 폭포수에서 종종 따로 만나며 마음을 의지하였다.
정식이 14살이 될 때까지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일제 강점기 하에 서로 상처를 치유해 주며 연인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김정식'에게 행복은 너무 짧았다. 그가 14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가 강제로 혼인을 올리도록 명령한 것이다. 혼인의 상대는 할아버지 친구 손녀 '홍단실'였다. 당시에는 집안 어른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정식은 말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홍단실과 결혼을 하였다.
세월이 흘러서 오순이 19살이 됐을 때에 그녀도 다른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둘의 연락은 끊겼지만 정식은 자신의 아픔을 보듬어 주던 오순을 잊지 못했다.
더욱 가슴이 아픈 사건은 이후에 일어났다. 세상은 정식에게 작은 그리움도 허용하지 않았다. 3년 뒤에 오순이가 남편에게 맞아 사망한 것이다. 오순의 남편은 의처증이 심했고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정식은 아픈 마음을 안고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였다. 그리고 사랑하였던 오순을 기리며 시를 한 편 썼다.
초혼(招魂)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가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