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두 번이나 강물에 빠져…‘중도 포기’ 심각하게 고민하다
왕가누이 항해 첫날은 체리 그로브에서 오히네파네(Ohinepane) 캠프촌까지 22km, 3~5시간을 강물 따라가야 한다. 카누와 친해지기, 강물의 흐름 읽기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물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만 4박 5일 145km 전 구간을 별 탈 없이 완주할 수 있다. 카누 평균 시속은 5km, 산길에서 걷는 속도보다 두 배나 빠르다.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고속도로처럼 펼쳐져 있는 장강(長江)이 내게 손짓했다.
“두려워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노라.”
강 옆에는 농장들이, 숲에서는 새들이
손아귀에 기를 불어넣어 노를 힘차게 저었다. 카누가 앞으로 2m 쭉 뻗어나갔다. 다시 노를 젓자 또 3m. 뒤를 돌아보니 안내소 직원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제부터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첫날 첫 구간은 아주 평범한 물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강 옆에는 농장들이 있고 숲에서는 새들이 노래를 했다. 평화, 그 자체였다. 이런 물길이라면 왕가누이강 끝을 통과해 호주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노를 20분쯤 저었을까. 갑자기 저 앞에 급류가 보였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물밑 공포증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때 안내소 강사가 얘기해 준 게 불쑥 생각났다.
“왕가누이 항해는 50대 50의 게임입니다. 급류를 만났을 때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반반의 위험과 행운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믿으면 됩니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물살은 더 빨라졌다. 내 뒤에 앉아 카누를 지휘하던 선장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둘 다 소리는 질렀지만 그 애탄 소리는 순식간에 강물로 빠졌다. 카누가 오른쪽 강둑에 있는 바위를 스치면서 전복됐다. 나는 뒤집어진 카누 속에, 선장은 카누 밖에 있었다.
강물을 먹지 않기 위해 입을 닫았다. 10초 정도 지나자 카누가 눈에 들어왔다. 구명조끼도 제 역할을 했다. 카누와 강물 사이에 있는 공간, 에어 포켓(air pocket)이 보였다. 그 속에서 두세 차례 깊게 호흡을 한 뒤 카누 밖으로 빠져나왔다. 카누는 우리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급류에 떠밀려 몇십 미터 아래로 흘러 내려간 상태였다.
출발 30분도 안 돼 첫 번째 전복, 호된 신고식 치러
선장은 수영도 할 줄 알고 담력도 큰 사람이다. 그는 나보다 먼저 빠져나와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장의 위용을 보여 주었다. 마침 우리 일행보다 앞서 간 다른 팀(카누 한 팀 두 사람, 카약 한 팀 한 사람)들이 구조의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릴 보며 불안한 표정으로 웃었다.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른 팀들의 도움을 받아 카누를 끌고 강둑으로 갔다. 카누를 바로 세우고 흐트러진 짐통(배럴)의 끈을 조였다. 반 시간도 안 돼 치른 호된 신고식이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강물 속에 빠진 게 개울에서 멱을 감은 것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당시에 그랬다는 게 아니다. 수습을 하고 난 뒤 그렇게 느꼈다는 말이다.)
은근히 걱정이 더해졌다. 앞으로 남은 강물이 14km도 아니고 140km나 되는 데 과연 이 항해를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뉴질랜드의 위대한 올레길을 다 돌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중도 포기’의 유혹이 내 뇌리를 스쳤다. ‘역시 물은 나랑 안 맞아’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하지만 돌아갈 방법도 없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설마 또 카누가 전복될 리가 있겠나’하는 낙관적인 희망도 품었다. 그런데…. 그 ‘설마’가 한 시간도 안 돼 발생했다. 이번에는 더 큰 악재. 강 위로 솟아난 큰 바위에 카누가 정확히 가운데 끼여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된 것이었다.
왕가누이강 290km 구간에는 총 239개의 급류가 있다고 한다. 급류를 누가 어떤 식으로 정하는지 궁금하기는 한데 급류 판정은 내 몫이 아니라 자료를 믿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중 120개는 왕가누이 항해(4박 5일 여정, 145km) 길에 있다. 하루 평균 25개의 급류를 헤쳐 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글을 쓰는 지금 알았기에 다행이지 그 당시 알았더라면 나는 결코 모험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급류 난이도는 1~5단계, 왕가누이 항해는 주로 1~2단계
급류의 난이도는 1단계에서부터 5단계(Grade 1~5)까지 있다. 왕가누이 항해 급류의 난이도는 거의 다 1~2단계에 머문다. 모르긴 몰라도 4~5단계는 전문적인 급류타기(rafting)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왕가누이강은 첫날 우리에게 전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두 번째 카누 전복 사고는 쉬운 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했다. 급류(2단계는 충분히 넘어 보였다)를 20m 앞두고 50대 50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노예와 선장의 의견이 달랐다. 내가 반기를 드는 사이 강물은 자연법칙에 따라 빠르게 흘러갔다. 카누가 굉음을 내며 강 중간에 있는 큰 바위에 거꾸로 처박혔다.
카누를 돌려놓기 위해 용을 썼지만 변심한 애인의 따귀를 후려치는 배구선수의 스매싱 속도만큼 물살은 거셌다. 20여 분 찬물 속에서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썼지만 카누를 되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탈출. 카누를 물속에 남겨두고 강둑으로 몸을 피했다. 선장도 수긍했다. 물살이 너무 거세 지원팀의 구명줄을 이용해 겨우 강 밖으로 빠져나왔다. 열 길 물속은커녕 한 길 물속도 정말로 무섭구나, 하는 걸 실감한 시간이었다.
샘, 로지 그리고 크리스…왕가누이 항해 85% 같이한 동료들
웃통을 벗고 햇볕에 몸을 데웠다. 지원팀이 동료애를 발휘해 우리와 함께 쉬어 주었다. 두 팀 세 사람, 이들은 그 뒤 여정을 85% 같이했다. 간단하게 그들을 소개한다.
카누팀.
선장은 70대 초반의 스리랑카 남자, 이름은 샘이다. 웰링턴에 살고 있고 오랫동안 투자 상담가로 일했다. 와이카레모아나호수를 카약으로 일주한 경험이 있는 카약과 카누타기 전문가이다. 노예는 20대 중반의 여자, 이름은 로지다. 오클랜드 미들모어병원(Middlemore Hospital)에서 약사로 일하다가 코로나가 창궐한 사이에 뉴질랜드 남북섬 3,000km를 종주하는 테 아라로아(Te Araroa) 여정에 있는 용감무쌍한 매력녀이다.
전혀 조합이 맞지 않을 것 같은 이 둘이 한 팀을 이룬 이유는 카누는 무조건 둘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만나 카누 경험이 없지만 힘은 센(여리여리하게 보이지만 강단이 있어 보였다) 로지가 노예의 역할을 다했고 구릿빛 피부를 한 샘이 스리랑카부터 해온 카약 경험을 살려 자연스럽게 선장 의자에 앉았다.
카약팀.
카약은 주로 혼자 탄다. 카누는 노의 한쪽 면(blade)만 사용하지만 카약은 노의 양 면을 다 쓴다. 카누는 둘이 일심동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고 카약은 카약인(kayakist) 자체로 완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카약인의 이름은 크리스, 네덜란드에서 온 그는 로지보다 세 살이 적다. 키가 180cm 이 훌쩍 넘는 훈남이다. 고국에 있을 때부터 카약을 즐겨 탔다고 한다.
‘되돌아 갈 수 없다면 앞길로 가면 되지’ 도전 의욕 생겨
지원팀들이 끓여준 커피에다 간단한 간식으로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물 속에서 외롭게 분투하고 있는 우리의 카누는 강물을 온몸으로 막으며 버티고 있었다. 우리 뒤로 따라온 몇 팀이 신나게 노질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 중 한 팀에게 본부(앞의 말한 안내소 직원)에 전화해 우리 카누를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수상 택시를 이용해 끄집어내는 방법.)
하지만 그것도 힘들었다. 전화가 안 터져 본부에 접촉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엎어진 김에 쉬다 간다고 했지만 그 ‘쉼’이 좀 길어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위대한 도전은 여기서 막을 내려야 하는 것인가, 하는 실망감도 강물만큼 불어났다.
울며겨자먹기식으로 30분이나 쉬었을까. 뒤에 오던 한 카약인이 우리에게 소리쳤다. 문제가 뭐냐는 거였다. ‘보면 모르냐?’는 말이 속으로 나왔지만 우리는 그에게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환히 웃으며 자기가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성큼성큼 물에 들어간 그는 1분도 안 돼 카누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자기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요령이 있다고 했다.
첫날 한 시간도 안 돼 두 번이나 카누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의욕이 확 줄기는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야릇한 도전의욕이 생겼다. ‘되돌아 갈 수 없다면 앞길로 가면 되지.’ 나 혼자만의 객기였는지도 모른다.
그 뒤 두 시간은 순풍에 돛 달듯이 순항했다. 삼세번의 실수는 어떻게 하든 피해야 한다는 나와 선장의 묵계가 우리 둘의 노에 이심전심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첫날 숙소(텐트촌)인 오이네파네에 도착했다. 카누가 강물에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밧줄을 이용해 고정한 뒤 텐트를 쳤다.
밤은 깊어 가는 데 잠은 오지 않고…별들에게 물었다
우리를 두 번이나 도와준 지원팀과 일시 작별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멀리 가서 거기서 저녁을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아쉬웠지만 곧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에 눈물 없는 악수를 했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나흘간 123km를 더 노를 저어 가야 한다는 게 큰 돌덩이짐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위대한 올레길 아홉 곳을 이미 다 완주한 내가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고….’ 고지가 바로 저 앞에 있는 데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감기 기운에다 목까지 칼칼해 심란한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았다. 파나돌 두 개로 임시 처방을 했다. 밤은 깊어 가는 데 잠은 오지 않고. 텐트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별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길을 더 가야 합니까?”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첫댓글 우~ 도전 정신과 새로운 모험 그리고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직접 체험하신 모험담을 듣는 것으로 저는 대리 만족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듣고 상상하고 헤아리기 에는 너무나 부족하겠지만 ......
"내가 이 길을 더가야 합니까? " 네, 항시 묻고 되 묻는 물음이지요... 누구에게나 , 어디에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