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교도소와 이원택 의원의 탈장수술
저녁 어스름한 시간이었다.
노곤한 몸을 달래며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다급하였다.
“원택이가 죽어가고 있어요!”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이 달달 떨리기 시작하였다.
“머라고요?”
“원택이가 죽어가고 있다고요! 누님! 저는 원택이 친구여요. 오늘 면회 갔는데 탈장으로 고생하고 있어요. 수술을 해야 하는데 교도소에서 수술 허락을 해주지 않아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어요. 이대로 두면 원택이 죽어요!”
앞이 캄캄해졌다. 그런데 탈장과, 단식투쟁으로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께 아뢰며 울었다. 그리고 광주민가협 회장으로 수고하는 안장로님과 진주시에서 목회하고 있는 정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도움과 방문을 부탁하였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청와대에 근무하고 계시는 교우님께도 도움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진주교도소 소장님께 두 통의 편지를 썼다. 한 통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한 통은 내 이름으로 써 보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감동감화와 도우심을 구하며 금식을 시작하였다.
당시 관산에서 전경으로 복무하였던 원택이 둘째 형이 제대를 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집안 분위기가 무거웠다. 원택이 둘째 형이 근무 중에 태풍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부하를 구하였으나 정작 자신은 기진맥진하여 표류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며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을 때 거대한 파도가 자기를 해변으로 몰고 와서 바위에 내동댕이쳤다는 것이다. 통증을 느끼며 의식은 깨어났으나 그는 허리를 다쳐서 꼼짝하지 못하였다. 곧 바로 광주병원으로 이송되고 그의 제대는 무려 한 달이상이나 지연되었다. 아들의 제대 일을 손꼽아 기다리시던 부모님은 소식도 없이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눈물로 밥을 삼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였다. 한 달 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기쁨은 컸으나 그 후, 부모님은 아들의 치료를 위해 마음고생과 돈 고생을 하셔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원택이의 탈장과 단식투쟁 소식은 청천의 벽력이었다.
광주에서 안회장님이 진주교도소에 강력하게 의사전달을 하였다는 소식을 주셨다. 진주에서도 정목사님이 교도소에 다녀왔으며 진주민가협을 통해서 의사전달을 하였다고 하셨다. 그러나 교도소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오지 않았다. 눈물과 탄식으로 일주일의 금식을 마치고 몸을 추스른 후, 진주교도소 정문 앞에서 단식 투쟁하기로 비장한 결심을 하고 진주로 내려갔다. 면회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데 원택이가 나오지 않고 교도관이 나오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고 누님! 오늘 아침에 원택이 진주 시내 병원으로 이송되었어요.
지금쯤 수술 끝났을 거요. 빨리 가보세요. 부모님께는 연락을 드렸는데 누님께는 미처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교도소 밖에서 이런 수술이 허용된 것은 진주교도소 수십 년 역사 속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기적입니다! 원택이와 가족들의 진심이 하나님을 감동시켰고 하나님께서 교도소 소장님을 비롯한 우리 교도관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배후에 누님의 기도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잘 다녀가세요.”
순간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터져 나왔고 기쁨으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단식투쟁을 하러 왔던 내 발걸음을 새처럼 날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을 기다리는 동생의 얼굴이 숲속 나무사이로 퍼져 나오는 아침 햇살처럼 빛나 보였다. 곁에서 젖은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락없는 김제 만경들판의 밟히고 또 밟히면서도 끈질기게 꽃 피는 민초이었다.
2026년 3월 21일 토요일 진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