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아이의 소원, 남을 도우며 사는 일
- 박경선의 꿈을 빛내는 아이들(지식산업사, 2025)을 읽고
김 종 헌
꿈을 이룬 제자의 꿈 축하식
박경선 작가의 동화책 꿈을 빛내는 아이들을 받고 뜸을 들이던 중에 작가로부터 카톡 문자 한통을 받았다. ‘이번 토요일에는 사대부초 때 제자가 변호사 시험 합격한 축하식을 해주려고 현수막도 주문하고 시골집 잔디밭에 잔디 깎으러 왔어요.’ 하며 꿈을 이룬 제자의 꿈 축하식을 할 시골집 풍경을 찍어보냈다.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박경선 작가를 잠시 소개하는 게 좋겠다. 작가는 대구교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동화창작 강의를 한동안 맡았었다. 초등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였는데, 그 사이 아동 잡지와 신춘문예를 통해서 동시와 동화 분야의 신인을 배출하였다. 초등 교육현장에서 어린 제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이끄는 일도 중요하지만, 문학 수업으로 신예작가의 길을 열어 주는 일도 중요했다. 교육대학교 대학원은 문예창작을 전문으로 하는 학과가 아니다. 그런데 박경선 작가는 이들에게 문학의 꿈을 키워주었고 좋은 결실을 맺게 하였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창작의 꿈과 재능을 읽어내는 스승의 눈이 남다르다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초등교육을 담당한 교사의 입장에서 배출한 제자가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다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흐뭇할 것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또 연봉이 많은 직장에 취업하는 제자를 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사람과 어울리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제자를 보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스승의 보람일 것이다. 진정한 스승의 길은 타자의 꿈을 읽어내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이 아닐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제자를 초대해서 축하해 준다는 문자는 그 연장선에 있다.
뜬눈으로 밤을 새는 별처럼
이번에 상재한 동화집 꿈을 빛내는 아이들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러나 스스로 잘 모르고 있는, 그 꿈을 찾아내어 모순과 결핍의 부조리한 세상을 헤쳐가게 하는 이야기의 모음이다. 이 동화집에 있는 12편의 동화를 가로지르는 핵심어는 ‘나도 그랬으면’이다.
우주에 사는 착한 별들이 힘들게 사는 지구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밤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받으며 자랐지요.
동화집 「머리말」의 첫 구절이다. 박경선 작가는 저 하늘 어디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별들이 이 땅에서 힘들게 사는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한 ‘엉뚱한 아이’였다. 그 엉뚱한 생각에서 작가의 세계관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어린이)의 마음속에 있는 별을 찾아내어 빛나게 하는 것이다.
이 동화집에 나오는 어린이화자는 모두 결핍의 공간에 살고 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은 감동이(「아침의 별 에렌델」), 새엄마와 살고 있는 나라의 사촌누나(「마음속 숨은 바보」) 또 재석이(「엄지척」), 보육원에서 자란 남석이(「왕따당한 예수님」), 아빠 없이 힘들게 사느라 학교에 못가고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비셀(「요술거울 나라 선생님」), 동생을 낳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바운(「게르 학교의 꿈」) 등이다. 절망의 그 순간에 있는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꿈을 찾고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은 그들 곁에서 틈새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이다. ‘채소도 자기를 알아주면 마을을 열제’라는(「할머니의 비밀 탐정」) 정우 할머니 말처럼 말이다. 그것은 꿈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하는 바운에게 ‘그냥 유목민으로 살기는 억울할 테지, 떠나보렴’하며(「게르 학교의 꿈」) 바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목소리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자기편이 없다고 생각하는 남석이에게 건넨 ‘네가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라는(「왕따당한 예수님」) 한마디 말이다. 대수롭지 않은 말 같지만 그들의 틈을 읽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누군가를 인정해 주는 한마디는 곧 그 사람에게 꿈을 심어 준다. 소원을 들어주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나도 그랬으면’ 했던 작가는 이렇게 결핍의 공간에서 외롭게 있는 어린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다. 그 바탕에 흐르는 기본적인 정서는 나눔과 배려이다. 그것은 자본의 논리에 편승하여 부를 얻거나 기득권을 얻는 출세를 성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즉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동화는 타자를 무시하는 태도가 아닌 눈웃음으로 소통하는 ‘에렌델별’의 공간에 있으며, 박경선 작가는 ‘키를 낮추고 몸을 반쯤 접고 앉아 비셀이랑 눈을 마주치는’ 「요술 거울 나라 선생님」의 굿시크이다. 이렇게 엉뚱한 아이는 그 소망은 고스란히 동화 속에 담아냈다.
겉과 틈의 미학
박경선 동화는 잃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게 타자의 마음을 열어준다. 이를 위해서 동화의 곳곳에 필요한 삽화를 끼워둔다. 동화책의 맨 앞에 실려 있는 「아침의 별 에렌델」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꿈을 잃어버린 감동이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마술이 그것이다. 십년 전에 에렌델 별에 감동한 소년이 어머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꿈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술로 꿈을 찾아주는 이야기이다. 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천문학자가 되라는 욕망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결핍을 메우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이야기 속에 삽화로 들어온 마술은 놀라움과 재미를 위해 끌어온 유희적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결핍을 복구하는 동화의 장치인데 여러 편의 작품에 나타난다. 「무사의 코로나 일기」에서 개장수와 떠돌이 개 무사로 설정하고 코로나 펜데믹의 심각성을 무사의 일기로 보여주었다.
따스하게 감싸줘서 고마워요. 남을 돕는 향기로 오늘도 온 가족이 무사하게 살아있네요.(「무사의 코로나 일기」)
땅바닥에 이렇게 긁적거린 무사의 일기는 비단 코로나19를 이겨낸 기록만이 아니다. 펜데믹을 이겨낸 우리의 일기이다. 또 「왕따당한 예수님」에서 예수를 왕따로 묘사하여 남석이의 절박한 처지를 공감하게 한 것 등은 그 좋은 예이다. 박경선 동화는 웃고 지나가는 찰나의 재미가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치 캄캄한 밤하늘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는 별처럼. 즉 작가는 겉으로 보이는 인물의 관계의 틈새로 결핍을 보고 그 곁으로 다가가, 어린이화자를 만나 환상과 조화를 꿈꾼다.
또 다른 박경선 동화의 특징은 현재의 일상을 후경에 두고 서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과거를 소재로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를 배경으로 한다. 코로나19의 급습이나 자본의 욕망이 인간을 잠식하는 무한 경쟁과 무관심, 현관 한 쪽에 빛나는 유리거울과 그 옆에 놓인 신발장도 놀라움의 대상이 된 보육원 출신의 남석이, 네팔의 산골마을에 사는 비셀의 처지 등은 철저하게 현실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이런 현실에 사는 어린이는 어른의 삶보다 더 막막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사회적 모순을 동화의 후경으로 풀어내어 꿈을 찾아주고 그것을 이루도록 한다. 무엇이 되라는 메시지가 아닌, 곁에서 틈새로 비치는 그 속을 들여다보도록 유도하는 동화 기법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 베풀고 나누며
박경선 작가는 소외된 곳에서 꿈을 잃은 아이, 왕따, 외로움을 타는 아이를 찾아내어 꿈을 응원하며, 무엇이 되라는 말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그것이 어릴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나도 남을 돕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던 엉뚱한 아이의 꿈을 실천해가는 일과 연결되어 작가가 평생 써온 동화의 기본 속성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김종헌 | 교수, 동시인, 문학평론가, 계간 동시발전소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