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벌칙금
김 선 구
아내가 우편물을 건 내 주며 한소리 한다. “사고는 저지른 사람이 처리하는 법이에요.”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교통벌칙금 통지서였다. 교통벌칙금은 법규 위반에 따른 벌금이긴 하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교통의 흐름에 따라 운전하다보면 습관이 몸에 배어 일상생활처럼 굳어져 버린다. 따라서 운전 중 주의를 기울이다가도 잠간 방심하는 사이에 딱지를 때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 국학진흥원에서 행하는 2박3일간의 선비교육 강좌가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섰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이지만 옛 선비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허지만 안동까지 가는 길이 녹녹치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하니 직접 운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다보니 운전대를 잡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워 졌다. 그래서 복잡한 고속도로를 피하여 일반 국도를 택하였다. 경산을 출발하여 하양, 와천, 신녕, 우보, 의성을 거쳐 안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한적하고 편안 했다. 푸른 산과 넓은 들을 벗하여 맑은 공기를 실컷 마시며 달리니 이 또한 별미였다. 이제는 국도도 잘 정비되어 있어 차를 모는데 여유롭고 한가했다.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마치고 왔는데, 거기에 마가 끼어 있을 줄이야!
배달된 통지서에 뭐가 잘못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시골 Y초등학교 앞 제한속도 30Km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내가 지나가는 길가에 초등학교가 있었던가? 의구심이 생겼다. 내비게이션이 신호를 주었을 수도 있는데 시골길이라고 안심하고 달린 것이 화근인 모양이었다. 요새는 학교가 방학 때이고, 등교시간도 아닌 이른 아침이 아닌가. 거기에다 제한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속도로 천천히 차를 몰았으니 이런 함정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고지서를 보니 범칙금은 4만원인데, “벌점은 없고 기한 내 납부한다면 20% 감면해준다”는 선심성 문구가 그래도 반가웠다. 지정된 구좌로 그냥 송금해 버릴까 하다가 무언가 한마디는 항의라도 해보고 싶은 생각에 경찰서를 찾았다.
범칙금을 내고 나서 담당경찰관과 문답을 나누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가 범칙금을 부과 받으니 무언가 함정단속에 걸려든 느낌입니다.”
“예, 선생님의 경우 이른 아침이었으니 다행이지 8시 이후에 적발 됐으면 부과금이 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경찰관의 답변이다
“내 얘기는 교통이 복잡한 도심지라면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한적한 시골학교 앞에도 같은 기준으로 단속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때와 장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시골학교 앞에도 감시카메라를 24시간 가동하고 있어서 민원이 많은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법이 정한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제 주변에도 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그래서 저도 민원을 남기고 싶어 방문했습니다. 민원이 많이 쌓이면 당국에서도 이점을 고려하여 개선점을 찾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
“그런 일이라면 차라리 정당이나 국회사무실에 건의 하는 게 낳을 것입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올릴 수 있습니다만 그래봐야 결국 업무처리는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
얘기는 이쯤해서 끝냈다.
생각해보니 신문고제도는 국민들의 불편을 경청해본다는 의미일 뿐 별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얼마 전이다. 같은 아파트에 새 입주민이 이사 오면서 엄청나게 큰 개를 함께 데리고 왔다. 엘리베이터에서 개가 동승하는 바람에 주민들은 물론 내 아내가 크게 놀란 일이 있다. 개 주인에게 항의 했더니 “우리 개는 순하니 아무 걱정 말라”는 대답이었다. 애완견이라면 몰라도 송아지만한 개를 아파트에 기른다는 것은 말이 아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실과 운영위원회에 문의해도 별 대책이 없었다. 결국 시청 민원실에 불편한 내용을 올렸더니 담당공무원이 와서 법적으로 제제 할 도리가 없으니 서로 양해해서 해결해 달라는 말 뿐이었다.
법이란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불편을 겪는 경우도 발생한다. 애견가들이 개를 키우며 사랑할 권리가 있는 반면 동물로부터 오는 공포를 피할 권리도 있는 법이다. 이를 위하여 법을 만들거나 집행하는 데도 양면성을 고려 할 필요가 있다. 일방적인 집행이나 단속보다는 절충과 계도가 필요하다.
요새 “민식이 법”이 시행된 후 초등학교 앞 교통단속으로 운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지만 본의 아닌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제도를 제고 할 필요성 또한 느끼게 된다.
일찍이 독일에 있을 때 경험한 일이다. 시골길을 가는데 2차선 도로가 갑자기 1차선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2차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곳은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건널목이었다.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미리 예방하기 위한 조처였다. 감시카메라 대신에 운전자들이 스스로 저속운전 하도록 유도한 조치였다. 선진국다운 면모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감시를 통한 통제보다 주민 스스로 참여토록 유도하는 방안이 없을지 연구해 볼 필요를 느낀다.
감시카메라가 만능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첫댓글 안동 국학진흥원 입소기념 선물을 받은것 같습니다. 도로교통법은 항상 많은 민원이 발생하지만 개선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경찰서까지 가서 개선점을 건의한 성의를 보여주셨습니다. 쌓이면 언젠가 시정될것 같습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