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김두호] 최근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87)의 3남인 현진씨가 국제통일교회재단(UCI) 세계회장에, 7남인 형진씨는 서울 용산에 있는 통일교 청파교회의 당회장 목사로 취임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번 통일교회의 인사가 교회 조직의 후계구도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따른다. 하버드대에서 철학과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형진씨는 형이 타계하면서 충격으로 한 때 불교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으나 통일 교회로 복귀해 주변의 우려를 씻었다.
바로 문 총재의 아들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겸 이사장에게는 시동생들이다. 사돈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또 사돈관계를 맺게 되면 겹사돈이 된다. 이를테면 한 부모가 낳은 두 자녀가 또 다른 한 가정의 두 자녀와 혼인을 하게 되는 겹사돈 관계는 동서고금의 혼인문화에서 그렇게 흔한 사례가 아니다.
1984년 2월 초 통일교회 문선명 총재와 당시 통일교 실력자였던 박보희씨(한국문화재단 총재)가 겹사돈이 된다는 소문을 듣고 사실 확인을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해외에서 종교 활동과 관련해 뉴스의 초점이 될 때였다. 아마도 교회 측이 비공개적으로 소리 없이 추진할 거라는 예측에서 확인 작업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기자들이 취재 활동 중 가장 부담을 느끼고 기피하는 대상이 종교단체나 목사 등 종교인이 연계된 사건이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확인 취재에 들어간 지 얼마 후 통일교 관련 출판사를 운영하는 시인의 도움으로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기사로 옮겼다. 보호 차원에서 제보자도 밝히지 않았다. 미국 뉴욕의 교회수련원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고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미국에 있어서 더 이상의 확인이 쉽지 않아 다소 불안한 상태에서 보도가 됐다. 매우 희귀한 사례라 행여 기사에 사실이 아닌 점이 있다면 통일교 측의 호된 항의와 법적인 문제까지 각오해야 하는 두려움이 따랐다. 독점이나 특종 따위의 기사란 게 기자에게는 최고의 성취감을 주지만 정확한 기사를 써도 한구석은 그처럼 늘 불안하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후 누구도 항의를 해오지 않았다. 오히려 통일교 관련 언론인이 어떻게 알았느냐는 격려전화를 해왔고 그 후 그 기사 덕분에 도쿄에서 통일교 재단이 주최한 세계언론인대회에 한국 대표 일원으로 초청받는 혜택도 돌아왔으니 오히려 호응을 받은 셈이었다.
문훈숙 단장의 영혼 결혼식이 포함된 문총재와 박보희씨 양가 자매의 합동혼례는 1984년 2월 20일 뉴욕의 통일교 벨베디아수련원에서 마련됐다. 문단장은 박보희씨의 3녀로 문총재의 차남 흥진씨(84년초 사망)와 영혼결혼후 현지 전통 방식대로 남편 집안의 성을 따랐다. 문총재가 직접 주례를 선 이날의 또다른 한 쌍은 박보희씨의 차남으로 훈숙씨의 오빠되는 진성씨와 문총재의 둘째 딸인 인진씨 였다. 올해 44세인 문단장이 23살 때였다.
환상적인 자태와 천부적인 발레리나의 예기를 가진 훈숙씨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스위스 로잔발레콩쿨에서 상위권에 입상했고 영국 로열발레스쿨과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쳐 세계 정상급 발레리나로 성장해왔다. 당시 측근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영혼결혼식이 있기 전 이미 어른들과 당사자들 간에 결혼 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혼 신랑이 된 흥진씨는 결혼식 두달 전인 83년 연말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치료 중 84년 1월1일 숨졌다. 그의 육신은 미국에서 곧 서울로 운구해 일주일후 국내 통일교회 신도들이 ‘승화식(昇和式)’이라는 그들 교회의식으로 영결식을 치룬 후 안장했다.
영혼 결혼식은 육신으로 못 이룬 사랑을 영혼으로 맺겠다는 일종의 간곡한 혼자만의 약속인데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도 간혹 이루어져 새로운 사례는 아니다. 당시 결혼식에 참석한 신도는 아버지 박보희씨의 팔에 이끌려 신랑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사뿐사뿐 주례(시아버지가 된 문총재) 앞으로 들어서는 훈숙씨의 표정은 시종 미소를 띈 밝은 표정이어서 숙연한 분위기에 감동을 더해 주었다고 전했다.
워싱턴발레단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결혼식을 올린 훈숙씨가 결혼식후 뉴욕시 맨해턴센터에서 가진 피로연 때 시부모인 문선명 한학자 총재부부에게 바친 인사말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어머님께 특별히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흥진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어머니의 슬픔을 저는 너무도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저의 웃는 얼굴을 보시고 위로 받으시고 다시는 흥진님 때문에 눈물 흘리시지 마시기 바라옵니다. 제가 흥진님 대신에 효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땅위에서 흥진님께서 못다 사신 노정을 제가 대신 열심히 보람되고 의롭고 힘차게 살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제 저를 위하여서는 조금도 염려하시지 아니 하셔도 됩니다. 또 저는 참 부모님의 참 자녀님들과의 우애하고 사랑하며 특별히 인진님(이날 문단장과 함께 결혼식을 올린 오빠 진성씨의 부인으로 시누이겸 언니관계)과 하나가 되어 부모님의 기쁨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예술에 열심을 내어 하나님과 참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많은 무용을 만들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제일 복이 있고 행복한 여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다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이제 저를 낳아주신 아빠 엄마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를 낳아주셔서 오늘의 축복을 받기까지 길러주신 아빠 엄마 정말 감사합니다. 영원히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또 인진님과 진성 오빠의 축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예진 진휘 효진 난숙 은진 현진 국진 권진 선진 영진 형진 연진 정진님(문목사의 자녀들 및 사위와 며느리), 이렇게 훌륭하신 형님 오빠 올케 시누이 시동생들과 살게 되어서 저는 정말 기쁩니다. 흥진님을 보시듯이 저를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흥진님도 지금 이 자리에 저와 함께 서 계시며 이 날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는 죽어도 흥진님께 실망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곱게 피어난 한 송이의 꽃. 이제 막 꽃잎을 펼친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간절하고 순결한 사랑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통일교는 세계 130여 개 국에 한 때 3백여만 명의 신도(1984년 미국의 뉴스 위크지 보도기사 참조)를 두고 한꺼번에 수천명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문총재가 즉석에서 인연을 맺어주는 합동결혼식으로 빈번하게 화제에 오르곤 했다. 문총재는 13남매의 자녀를 두었으나 흥진씨의 사망으로 슬하에 12남매가 있다.
한층 특별한 것은 문총재가 박보희 씨 집안에 앞서 1981년 5월에는 역시 주력 막료인 홍성표 전 주식회사 일화 사장과 먼저 겹사돈을 맺었다는 점이다. 문총재의 장녀 예진씨가 홍사장의 장남 진휘씨와 부부가 되고 장남 효진씨는 홍사장의 장녀 난숙씨와 결합했다.
통일교 사람들은 발레리나들이 대개는 결혼과 함께 꿈을 접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더 열정적인 발레리나의 길을 걸어온 것도 훈숙씨의 비장한 각오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훈숙씨는 그 한 번의 약속을 지키며 한 번도 고독의 그늘을 보여준 일이 없이 발레단을 이끌며 왕성한 공연활동을 해왔다. 발레단 단장에서 이사장을 겸직해 지금은 공연보다 운영에 더 열정을 쏟고 있다. 그동안 650여회의 국내외 공연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지젤을 잘 추는 ‘영원한 지젤’이라는 호칭을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언론과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받아냈다.
지젤은 애틋한 사랑을 춤으로 그려낸다. 그녀의 사랑은 천상의 영혼과 이어져 그래서 더욱 애절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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