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아나운서 임택근
남아있는 사람들은 무정하게 떠난 사람을 왜! 그리워할까요? 임은 가버렸습니다. 2020년 1월 12일 향년 88세로
방송을 위해서 태어난 사나이
중요한 시합은 임택근이 중계를 해야 제 맛이 난다. 한일 프로 레스링 전에서 김일 선수의 박치기나 김기수 선수의 세계 프로권투 중계는 압권이었다.
임택근은 준수한 외모에다가 타고난 중저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뿐이 아니라 그에게는 남다른 젊은 패기와 열정에 따른 노력도 있었다.
집안 내력
‘나는 가수다‘에서 절절한 감동으로 스타 뮤지션이 된 가수 임재범이 임택근의 아들이고. 탤런트와 가수에서 벤처사업가로 변신한 손지창도 임택근의 아들이다.
조강지처 사이에서 임재범을 낳았고, 다른 여자(미스 충북 출신 김후자) 사이에서 손지창을 얻었다.
미스 코리아라는 팔등신 미녀인 어머니의 여동생 남편이 이모부다. 젊은 시절을 외롭게 첩살이를 한 어머니를 항상 곁에서 지켜준 이모부가 고마워 손지창은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임재범은 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하고 의붓자식처럼 떨어져 살았고 손지창도 지금껏 이들과 왕래를 안 하고 산다고 한다.
보통의 가족사와는 달리 질곡이 큰 사연이 궁금하지만 알 필요는 없다. 그렇게 까지 담을 쌓고 산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10년 전에 상처한 임재범도 불혹 가까운 58세다. 훨훨 털어버리고 가족을 하나로 모이는 주역이 되기를 바란다. 장례식에는 오겠지. 같이 저녁식사 하고 싶은 사람이 이문새 다음으로 임재범이었는데.
아나운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6·25전쟁으로 서울을 떠난 임택근은, 임시수도 부산에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는데. 아직 대학생활이 낮 설은 5개월 만이었다.
우연히 아나운서를 모집한다는 방송을 들었다. 알아보니 4년제 대학 졸업자에게만 응시자격이 있다고 하니 난감했다.
고민 고민 하다 생판 모르는 KBS 국장 노창성씨라는 분을 찾아갔다. 그는 한국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한 신여성 패션디자이너 ‘노라노 여사’의 아버지다. (아현동에서 신촌 굴레방다리 중간에 노라노 양장점이 있었다.)
평생 꿈이 아나운서입니다. 무엇보다 스피치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제 꿈을 무참하게 짓밟지 마십시오, 그리고 한번 제 목소리를 들어보시고 판단해 주세요.
매일 아침, 바쁜 출근길에 가로막고 졸라대는 집념과 끈기에 질려버려, 마침내 응시를 허락하고 말았다.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그는 방송사상 첫 대학 1학년 아나운서가 되었다.
허주와의 인연
시골에서 올라와 겨우 서울역과 동숭동 서울대 문리대 위치만 알던 더벅머리 애송이에게는 세상은 모든 게 신기했다.
당시에 동대문 시장에서 검게 물들인 미군 스몰바지와, 청색 직사각형 서울대 뱃지가 자랑인줄 알았다.
다른 단과대학 학생들은 ‘VERI 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라는 교훈을 넣은 삐쭉삐쭉한 뱃지를 가슴에 달고 다녔다, 그러나 교수요원을 배출한다는 문리대 학생들만은 학사모 형태인 직사각형으로 차별을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각지에 분산한 다른 단과대학과 달리 종로구에 대학본부와 같이 두었다.
3월쯤으로 기억한다. KBS 방송의 퀴즈열차에 지식인 대학생들이 나와, 10 고개를 넘지 못하고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남산이 어디냐고 물어물어 찾아가 원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보름 후였다. 마침내 촌놈 허주가 임택근 아나운서를 만났다.
개미새끼 같이 빽빽한 방청석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아나운서의 음성만 들렸다. 한 문제 두 문제 20 문제가 장원인데. 오호! 통제라! 가장 어렵게 여기던 음악문제가 17번에 나왔는데 그 고개를 넘지 못했다.
그 후에 임택근 아나운서와 만난 것은 부잣집 노란 병아리 차림 아이들이 다니던 남산의 라라국민학교 옆 외교구락부에서였다. 후학들에게 구수한 말로 당부를 하던 그분이 언제나 밥값 계산서를 가져갔다.
아나운서란?
아나운서는 사자후(師子吼) 만이 능사는 아니라 인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중들을 감동을 시키려면 말 재주 만으로 끌어드릴 수는 없는 일. 같이 울고 웃고. 무엇보다 많은 인생 경험이 요구된다.
현재 임택근 아나운서 뒤를 이어 기라성 같은 사회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김동건 송해 윤인구 이방이 뿐만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조선중앙방송 메인앵커 자리를 할머니가 되어서도 굳게 지키고 있는 낮 익은 음성 리춘희가 있다
정녕 임은 가셨습니까? 왜 대답이 없습니까?
임은 우리 옆을 영영 떠나버렸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란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 하리라.
천상병 귀천
허주의 아침산책 길에서
첫댓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란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 하리라.
천상병 귀천
허주의 아침산책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