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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七. 오해가 아니길…
다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홍대 정문 근처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설레임을 읽을 수 있다. 홍대 정말 간만이다.
학교 다닐 때야 클럽에 간다는 핑계로 밤새 춤추고 놀다가 새벽 이슬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한 두살 먹어갈수록 집 또는 회사 근처로 만남의 장소가 달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보통 때는 느끼지 못하는 색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음… 좋구나!
료가 홍대 근처에서 만날 수 있냐고 물었다.
거기서 일이 있는데 마치고 강남쪽까지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듯 하다고.
그래서 나도 홍대의 독특한 분위기에 젖어 그를 기다리는 중.
건널목에서 료가 내게 손을 흔든다.
고 녀석 언제봐도 참 잘 생겼다. 파란불이 켜지자 그는 뛰어와 내 앞에 섰다.
“아네고, 잘 지냈어? 나 보고 싶었지?”
“한국어로.”
“아네고, 잘 지냈어? 나 보고… 싶었어?”
“응 잘 지냈어.”
“안 보고 싶었어?”
“설마”
“쳇”
그의 토라진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볼을 꼬집어주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그리고 길을 걸었다.
“어디가?”
“내가 아는 곳이 있어. 거기로 가자.”
“응”
걸어가는 동안 료는 어학원에서 선생님께 칭찬받은 이야기를 어린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테스트 결과도 좋아서 클래스도 올라가게 되었다며 다 내 덕분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럼 오늘 저녁은 료가 쏘는 거야?”
“쏘는… 아~ 응. 내가 쏠께.”
그는 강아지가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들고 눈을 반짝거리듯 그렇게 나를 바라보았다.
“JLPT는 접수했어?”
“응.”
“2급?”
“엉, 이번엔 2급으로 하고 다음에 1급 도전해야지.”
“꼭 통과해야 할텐데… 준비는 잘 하고 있지?”
“최고의 선생님이 계시잖아. 문제없어!”
“OK! 그 기분으로 패스까지”
“한국어로 말해.”
“네.”
몇 분 후, 우리는 카페 ‘룸앤루머’에 도착했다. 내가 문을 열려고 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민지.”
나는 순간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내게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을 보냈다.
나는 그를 뒤로 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좌석은 대부분 차있는 상태.
“커튼 테이블이 비어있어요.”
재떨이와 메뉴판을 들고 내가 앉기를 기다리는 직원이 내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카운터 좌측에 있는 커튼 테이블로 갔다. 헉!
걸음을 재빨리 돌려 카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그때 카페로 들어오던 료는 내게 뭐라고 말을 걸려고 했다.
나는 급히 손가락을 내 입에다 대고 료의 팔을 잡아 끌고는 카페 밖으로 나왔다.
“왜? 무슨 일인데?”
나는 대답하지 않고 카페에서 좀 떨어진 곳까지 료를 끌고 갔다.
그리고 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한숨을 돌리며 그의 팔을 잡은 손을 풀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현숙이랑 현석이.”
“뭐?”
“커튼으로 가려진 테이블이 있거든. 그쪽으로 갈려는데 거기서 두 사람이 뽀뽀를 하면서 난리도 아니더라구.”
“현숙 누나하고 현석이 형이? 하하하”
“어. 나 지금 진정이 안돼. 세상에, 세상에 나를 속이고 감쪽같이…”
그때 료가 다시 카페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나는 그를 급히 잡으며 말했다.
“야, 어디가?”
“가서 보고 오려고.”
“야, 너 뭐야? 그거 봐서 뭐하게?”
“그냥… 가서 말 걸면 두 사람 무지하게 놀라겠지?”
“됐다. 관둬. 우리가 끼면 괜히 분위기만 깨는 거지.”
“그런가?”
“흐…흠… 하하하”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료도 나를 따라 같이 웃었다.
이거, 이거.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느꼈는데 이렇게 딱 목격을 할 줄이야.
내가 현숙에서 ‘현석이 어때?’라며 운을 띄운 적이 있었는데, 얼렁뚱땅 말을 돌리는 것이 하 수상하였다.
현숙이 요고 딱 걸렸어. 앞으로 잘못하면 이걸 미끼로 괴롭혀줄 테다. 하하하.
“아네고, 우리 그럼 어디로 가지?”
“글쎄…”
“저기… 내 집으로 갈래?”
“너네 집?”
“응”
그는 약간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집이라~ 료의 집이라~
남자가 여자를 집으로 초대한다.
같이 TV도 보고 음악도 듣고 식사도 하고 앨범을 보며 옛날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다가… TV에서 키스씬이 나오자 둘은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되지.
남자가 여자에게 약간 몸을 돌리며 다가오고 여자도 싫지 않은 듯 남자에게로…
그리고 둘은 키스를 나눈다.
키스가 길어지다가 여자는 바닥에 몸을 누이고 남자는 여자의 위로…
“안돼. 그럴 순 없어.”
“어이… 아네고. 무슨 상상한거야?”
엥? 뭐야? 료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양팔을 교차해서 가슴을 가리고 서 있었다.
아~ 이 무슨 망신이람…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사실… 누구 때문에 요즘 엄청 피곤하다구. 어제도 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거든. 카페도 좋지만 역시 집이…”
료를 피곤하게 만드는 그녀는 누구일까? 그녀는 아마도 민지겠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냥 흘려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
하지만 나는 나, 료, 민지, 그리고 재민씨의 관계에 예민해진 상태라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몫임을 알고 있다.
민지는 나와 만나는 걸 싫어할텐데… 료, 너는 괜찮은 거야?
우리 이렇게 그냥 편안하게 만나는 거… 더 이상은 힘들겠지?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정말… 정말 너는 민지를 좋아하는 거야?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감정이 단순히 양방향이기만 하면 좋을텐데…
복잡하게 서로 얽히고 설키지 않으면 행복할텐데…
하지만 더 이상 이런 료를 향한 질문들을 머리 속에 넣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그만큼이나 소중한 재민씨가 있으니까.
그 둘을 놓고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고 비중을 따지라고 한다면 나는 할 수 없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형태가 틀리고 느끼는 감정이 틀리니까.
하지만 내게 먼저 손을 건네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손을 잡을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손을 잡고 나서 나는 후회하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네고, 괜찮아?”
그는 걱정스러운 듯 내게 말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장난끼 가득한 표정, 퉁명스럽게 툭툭 내뱉는 말투, 가슴을 떨리게 만들던 미소…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야?”
라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내민 손을 약간 흔들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내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료.”
“왜?”
“료. 고마웠어.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장난스럽게 웃던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장난하지마. 왜 그래?”
나는 땅에 시선을 떨구었다가 다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난 아니야.”
“뭐라는 거야, 지금?”
“일본어로 말할께. 이제 그만 만나.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그만둘 것까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의 그에게, 너의 그녀에게… 괜한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 그럴 수 있잖아… 괜한 오해로 이별하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 좋은 사람이야. 그 사람… 음… 주말에 만나서 공부하는… 것만 안 하는 거지… 그래, 가끔 카페 모임에서도 만나고… 전화도 가끔 하면 되지. 그동안 고마웠어.”
그의 눈이 심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을 읽은 여력이 없었다.
단지 빨리 이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현숙과 현석에게 고마웠다.
료를 오늘 만나면 ‘교환 학습 그만 두자.’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 마음으로 같이 긴 시간을 보낸다는 건 내겐 엄청난 곤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 그 시간을 이렇게 줄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는 함참동안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은 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그 사람… 사랑해?”
“응. 사랑해. 이렇게 료를 만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그를 사랑해.”
그는 또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그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나는 급히 말을 꺼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해서 내 결심을 흔들지 몰라 두려웠기 때문이다.
“료, 그 동안 정말 정말 고마웠어. 정말로.”
조금 뒤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씨익하며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잘 됐네, 아네고. 축하해. 나도 그 동안 고마웠어. 오늘이 마지막을 기념하며 같이 식사라도 하는 건 어때?”
“으응… 그러지 않는 게 좋겠어. 그럼 료… 한국어 열심히 공부해, 알았지?”
악수했던 손을 놓으려고 하자, 료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곧 그의 손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를 향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고는 뒤돌아 섰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내가 뒤돌아 걸어갔을 때 그도 돌아섰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걸어가는 길을 누군가가 뒤에서 쳐다봐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거기서 멈춰 설 순 없었다.
거기서 멈춰서면 풀렸던 매듭이 다시 엉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 경주,
첫댓글 드디어 아네고가 재민이를 선택을 하네요......료는 받아 들려지만 마음은 아프가본데.....료가 좀 불쌍하네요...다음편 기대 기대~~~~
그러게요. 저도 마음이 아파서... 다음 편 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왠지 재민이 양다리일듯 ㅠㅠ 아 싫다 ㅠ
양다리일까요? 아니면 좋을텐데...
으아~~이럴순 없어~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둘 다 선택할 수는 없는 일.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저도 재민씨가 양다리인것같아요..으앙~ 료~~~
글쎄요... 다음 편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기대 많이해주세요!
ㅜㅜ발리 올려주세요.. 예전에 봤던 아네고가 떠오르며..ㅋ 료가 너무 멋있어여
넵! 되도록이면 빨리 올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저도 야마삐를 좋아한답니다.ㅋㅋㅋ
맞아요 재민이는 양다리에 선수 같은 느낌이 팍팍 오는데 료는 자기 감정에 충실해서ㅠㅠ
선수? 글쎄요~ 미흡한 글에 이처럼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주랑 나이가 같아서인지 너무 재미나게 읽고 있는데요 자꾸 불안해요 재민씨의 선민이라는 친구가여
재민이란 사람 유부남 or 이혼남 ...일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원인은 멀꼬??-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