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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자 혼자가는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불루라임
바로셀로나 둘째날
오늘도 가우디 건축물들을 집중적으로 돌아 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거리에는 출근을 하는 사람과 관광객이 뒤섞여
마치 축제 같습니다.
365일을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일상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평범한것을 좋아 하지 않는 저에게는 부럽기만 하군요..
지루하지 않을것 같아...
빵 가게에 줄이 길기에 저희도 궁금해 들어 가 몇가지를 주문 했는데
저희 입맛에는 줄을 길게 설 만큼 뭐 그런 대단한 맛은 아닌것 같은데..
카사 칼베트 를 만났습니다.
너무 반가운 이건축물 앞에는 커다란 안내판도 없고 관광객도 없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전혀 모를 가우디 건축물 카사 칼베트...
1898년 가우디는 칼베트의 상속인으로 부터 제조업자 거리라고 불리던 카스페 거리에
임대 맨션 건축 의뢰를 받습니다.
당시 이건물의 설계안은 시에서 정한 조례의 높이 보다 높았기 때문에
설계 변경을 통고 받았습니다.
화가 난 가우디는 조례로 정한 높이의 첨단부에 빨간 선을 그은 도면을 갖고 가
선 위의 부분을 제거 하면 건축물이 완성 되지 않는다고 했고
시 당국은 가우디의 의견을 받아 들여 그 설계도를 묵인 으로 통과 시켜
이 건축물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00년 시에서 재정한 제1회 최우수 건축상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스페인 사람들의 미에 대한 유연한 사고를 보게 되는군요..
법적 잣대로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 보다는
그 첨단부의 아름다움을 우선한 유연한 관리들의 사고가 부럽습니다.
돈같은 뒷거래로 합법적이지 않은 것을 통과 시키는 그런 커넥션이 아닌
도시의 아름다움을 위한 묵인...
때로는 묵인이란 단어가 아름답다는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듯이 카사 칼베트의 첨단부가 옆 건물 보다 우뚝 솥았지요?!..
왜 저건물은 되는데 내건물은 안 되냐고 따지지 않는 이웃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
만약 이상황이 한국에서 똑같이 일어 난다면 ?.. 하고 상황극을 생각 해 보다
재미있는 상상 이 되어 혼자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현관 벽에는 청색 타일을 사용 했고 나무 목문에 주철을 사용한 단조 가 조화를 이룹니다.
가우디는 구리 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우디는 재학 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많은 장인 밑에서 일을 했는데
그중에는 주철, 목공, 유리등등 여러 분야를 현장에서 배울수 있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그래 그는 그 영향을 받았는지 그의 건축물에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단조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요..
물론 목공과 유리 역시...
길을 걷다 보면
인도와 차도 사이에 이렇게 벤치가 놓여 진 휴식 공간을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잔디를 심은 모습도 특이 하고
나무 아래 심어 논 갈대 비슷한 풀도 좀 특이 하군요..
그런데 이 새들은 더욱 특이 합니다.
마치 보호색 처럼 풀과 같은 색입니다^^
멀리 특이한 타워가 보이는군요..
그저 멀리서 바라 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건물이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로 가는 길 과는 딴 방향 이었지만 갔다 와 보기로 했습니다.
생각 보다 멀리 있습니다. 한 30분 이상 걸었던것 같습니다.
총알 같이 생긴 이 건물..
뭐라 말 할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한 컬러의 이 건물..
멀리서 볼 때는 어떻게 저런 칼라가 나오지?..
색 타일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페인트 칠을 한것 같지도 않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찾아 왔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참 놀랍군요...
원 건물에 색을 입힌 후 ( 재료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하단 붉은 계통에서 상단으로 올라 갈 수록 푸른계통으로)
바깥 부분에 아주 작은 플래니썸 (강화유리 종류라 생각하시면 되실듯)으로 한번 더 외벽을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암튼 참으로 매혹적이고 신선한 이 건축물이
너무 궁금 해 이 건물에서 나오는 분께 여쭈었습니다.
무슨 건물이냐고..
수자원 관리를 하는 아그바 그룹의 본사 건물이라고 하는군요..
밤이 되면 LED조명 으로 건물 전체가 아름답게 빛난다고 하는데
밤의 야경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면 위에서 말씀 드렸던 미흡한 제 설명을 이해 하실수 있으시라 생각 되어 집니다.
마치 우리의 블라인드 같은 모양의 강화 유리가 덧 대어진것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온도 감지 센서가 있어 실내 온도에 따라 이 작은 유리 판넬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고 합니다.
다시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찾아 가는길..
고딕지구를 제외한 바로셀로나의 길은 유럽의 어느 길 보다 넓직 넓직 합니다.
한참을 걸으니 건물 틈 사이로 사그리다 파밀리아가 보입니다
멀리서 보이는 그 자태 만으로도 가슴이 콱 막힙니다..
성당을 보며 제게 이런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은 쾰른 대성당과 사그리다 파밀리아 뿐 입니다.
이 사그리아 파밀리아가 건축 되어진 배경에는 바르셀로나가 속해있는
카탈루냐가 독립 왕국 이었을때 부터 거슬러 올라가
19세기 말 일어 난 카탈루냐 문예부흥 운동 까지 이야기 해야 하는..
복잡하고 장황한 설명이 필요 하기에 생략 하겠습니다.
암튼 성 요셉 신앙인 협회 창설자 보카베리야 라는 출판 업자가
바로셀로나 확장 지역 1구획을 얻어 그곳에 교회를 짓기로 계획 합니다.
처음 이 교회를 설계한 사람은 시립 건축 학교 교장이자 바로셀로나 미술 아카데미 회원 이었던 빌라르 였고
아울러 교회 평의회에서는 기술 고문 자격으로 마르토렐을 초빙 하였습니다.
드디어 공사가 시작 되고 크리프타( 지하 성구실 , 묘실, 혹은 지하 교회등) 건설이 진행 될때 쯤
빌라르와 마르토렐 간에 공사 방식에 있어 이견이 생긴것이지요..
빌라르는 기둥을 대리석 조각만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 반면
마르토렐은 내부 기둥을 돌 조각을 쌓아 회반죽으로 칠하는 방식 으로
하여도 건물 내구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을 하지요..
이 두사람의 주장은 누구 하나 양보 할 기미가 안 보이고
빌라르는 보카베리아를 찾아 가 공사 감독의 자리를 걸고 자신의 생각을 관찰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르의 의견이 받아 들여지지 않자 사임을 하게 됩니다.
보카베리아는 마르토렐에게 공사 감독자리를 맡아 줄것을 부탁 하지만
빌라르 와 생긴 어색한 상황 때문에 거절 하는 대신
그의 협력자인 31살의 안토니 가우디를 추천 합니다.
그래 1883년 가우디는 공사 감독으로 취임 합니다.
가우디는 1883년 부터 1926년 그가 죽을 때 까지 43년간 이 교회 건설에 청춘을 다 바칩니다.
처음 몇년간은 언론은 그에 대해 침묵 했고 주최측 조차 가우디에 주목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근 8년정도 가 지나고 보카베리아가 이 건축중인 사그리다 파밀리아 크리프다에서
성 요셉 신앙인 협회 평의회 회원들을
초대해 기도와 식사를 겸한 조찬 기도회를 갖습니다.
이때 가우디도 참석하여 작품에 관한 그의 생각도 설명 해줄것을 요청 받습니다.
그래 가우디는 이때 그들에게 그가 늘 구상하고 있던 이 사그리다 파밀리아 에 대해
천천히 그러나 거침없고 자세하게 자신의 생각을 쏟아 놓습니다.
가우디는 빌라르가 설계한 처음 설계 도면을 갖고 성당을 건축 한다면
중세 대성당 건설자 들이 이루웠던 것 같은 모든 요소를 풍부 하게 얻을수 있겠지만
부지만 허락 한다면 이전 계획을 전면 수정 해서 이땅 가득히 자신이 구상한
건축물을 세우고 싶다고 자신이 계획 했던 사그리다 파밀리아 에 대한 구상을 이야기 합니다.
결국 가우디의 구상을 들은 평의회 회원들은 감동을 받고
설계는 변경 되어 가우디의 설계에 따라 이 성당은 지어지게 되지요.
성당을 직접 가셔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세기도 넘게 지난 지금도 참으로 독특한 성당인데..
하물며 당대에는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그런 건축 구상을 믿고 맡겨 준
보카베리아나 평의회도 참으로 대단 하단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랜 관습을 깬 다는것은 참 어려운일이지요..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본다는것..
그것도 한 두푼이 드는 그런 공사가 아닌 엄청난 비용의 성당을 짓는것인데
지금 보아도 파격적인 새로운 시도의 건축물이
완성 되었을때 상상했던것과 전혀 다른 결과물로 나올까봐 두려워서라도
이제 까지 늘 지어 보았고 또 그래 대충 결과물이 그려지는 안전한 첫번째 설계 대로
지으라고 말했을것 같은데..
삼십대의 젊은이의 천재성과 예술성을 믿어 주고 설계 변경을 허락 해준 이들도 정말 대단하단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말이 생각 납니다.
가우디가 건축 학교를 졸업하고 건축기사 자격증을 줄때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내가 이 자격증을 천재에게 주는것인지 미치광이에게 주는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분명 그 둘중에 하나 일것이라고...
너무도 정확한 표현 같아 제가 한참을 빙그레 웃었던것이 기억 납니다.
어찌보면 당대에는 전혀 이해 할수 없는 미치광이같은 파격적인 천재성..
가우디에 대한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중세의 성당들이 몇 백년에 걸쳐 지어지듯
가우디의 일기장 비슷한 메모에
"슬프게도 내손으로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완성시키지 못할것 같다.
내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교회는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라고 쓴것을 보면
가우디도 자신 당대에 이 건축물이 완성 되지 않을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는 살아 생전 교회 전체의 모형을 이미 만들어 놓았고
교회의 모든 요소에 대한 상징적 인 해석도 설명해 두었습니다.
그래 가우디가 1926년 사망 한 후 지금 까지
많은 건축 학자들이 그의 설계에 어긋 나지 않게 공사를 이어 나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우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 까지 공사를 마무리 하려 노력 한다고
언젠가 보았던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제껏 보아 왔던 중세의 성당들은 대개 한개의 피사드를 갖고 있지요..
( 피사드 라는것은 언젠가 말씀 드렸듯이 건물의 주 출입구가 있는 지붕 까지 포함한 정면부 입니다)
그런데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동쪽에는 예수의 탄생부터 유년기, 청년기를 기념하는 "탄생의 피사드" 를
서쪽에는 예루살렘 성 입성 부터 십자가를 지시고 책형을 받기 까지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 되는 "수난의 피사드" 를
남쪽에는 성삼위 일체, 성가족,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덕과 모범에 영광을
그리고 신앙, 희망, 사랑 의 가르침과
요한 계시록에 그려진 장면을 근거로 벌을 받고 또는 칭찬을 받는 사후 세계의 영혼의 모습을 그린 "영광의 피사드" 를
설계 하였습니다.
또한 탄생, 수난 , 영광, 3개의 피사드에는 각각 4개씩 총12개의 12사도를 상징 하는 첨탑,
후원 부분에 중간 정도 높이의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첨탑,
사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4개의 첨탑,
십자가가 걸릴 예수님께 바치는 중앙 첨탑,
그래 총 18개의 첨탑을 설계 하였습니다.
탄생의 피사드 의 모습 입니다.
첨탑의 모습입니다.
수난의 피사드 입니다.
가우디 사후인 1976년인가?..아마도 그때 완성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곳으로 더해도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사신 나이 33이 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 입맞춤 하는것으로 로마 군인에게 예수님 임을 알려 주는 가롯 유다의 모습이 옆에 있군요..
성당 내부로 들어 가면 지금 까지 보지 못했던 너무도 색다르고 신선한 모습에
보는이 모두 엄숙하고 경건하며 경이로움까지 갖게 하는것 같습니다.
제 사진으로는 그 아름다움이 전혀 표현 되지 못했습니다만
많은 이들이 제자리에 멈춰 서 눈물을 흘립니다.
저 또한 벅차오르는 감동에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습니다.
바르셀로나에 가시면 꼭 한번 들러 보시기를 권 해 드립니다.
어떤분은 입장료가 비싸다고 가우디의 유명 건축물을 밖에서 외관만 보시고 돌아 가시는 분이 있는데
저는 정말로 어리석은 분이라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 먼나라 스페인 까지 오셔서 카사 바트료나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들어 가 보지 않는다면
오히려 항공료가 아깝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사진을 올려 보겠습니다.
가우디는 자연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자연을 성당 내부에 옮겨 왔습니다.
성당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후 밖으로 나왔습니다.
점심을 간단하게 한다면 오늘 구엘 공원 까지 다녀 올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친구가 왠일로 성당에 한번 더 갔다 오겠다고 하는군요..
그래 저는 그러라고 하고는 그 사이 크리프타에 내려 가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 했던것 보다 많이 넓어 친구가 나와 기다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아주 급 하게 둘러 보고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친구는 아직 안 왔군요.. 그래 저는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친구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 제가 친구를 찾으러 다시 성당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요?!..
친구는 성당에도 없습니다.
수난의 피사드 쪽으로 갔다가 다시 탄생의 피사드로 성당을 사이에 두고 왔다 갔다를 반복 해도 친구 가 없습니다.
"무슨일 일까?.." 암만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설마 내가 없다고 가버렸나?.. 가버렸다면 어디로?..
구엘 공원으로?. 그곳은 더 복잡해 나를 만날수 없다고 생각 했을텐데...
그럼 호텔로 돌아 갔다고?..
그런가?.. 아니야 그럴리 없지..
이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으니 우리가 만날곳은 이곳 밖에 없다고 분명 생각 했을텐데..
그럼 좀더 기다려 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저는 1시간 이상을 또 기다립니다.
그사이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 8대에서 내립니다.
과연 관광도 대국 답게 8대 버스라니 ..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번에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립니다.
저는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친구가 한편 야속 하기도 하고
좀 짜증이 나기도 하다가 다시 이 황당한 상황을 머리속으로 꼼꼼히 정리 해 봅니다.
그결과 문득 든 생각이 "혹시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나?..
갑자기 으슥한 구석에서 코 에다 마취제 수건을 덮어.. 기절 시킨 뒤 어디로 끌고 갔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미 두시간도 넘었는데 이 빤한 곳에서 보이지 않다니..
설마 이 에리아를 벗어나 호텔이나 다른곳으로 갔다는것도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고..
그러니 이건 납치거나
아님 뭔가 친구에게 큰 일이생긴거야.."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니 눈 앞이 깜깜 한것이 와락 겁이 납니다.
만약에 친구가 잘못 되면 모든것이 내 탓인것만 같은것이
이일을 어쩌면 좋은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며
윗 사진의 관리자 같은 사람에게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셀폰을 제게 빌려 주며 친구에게 전화를 해 보라는군요..
저희는 셀폰을 갖고 오지 않았다고 하니
마침 저쪽에 있는 경찰관을 가르키며 저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 하라고 합니다.
그래 제가 다시 경찰관에 가서 이야기를 하려는데 이분 영어가 잘 안되시는지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하며 막 그냥 다른곳으로 가 버리십니다.
그래 저는 다시 사진의 윗분들에게 가서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냐고 제게 묻는군요..
거룩한 성당이기에 안될것이 99% 일것이라고 짐작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1%의 끈을 잡고
가능 하다면 안내 방송을 부탁 한다고 했습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안내 방송은 할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수난의 피사드 앞에 안내 센터가 있는데 그곳에 가서 이야기 해 보라고 합니다.
그래 저는 다시 안내소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했습니다.
제 친구는 아주 스마트한 아이이고 영어도 잘 하니 이 안에서 길을 잃거나 할일은 절대 없을텐데
2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고 있다고..
혹 무슨 나쁜 일이 생긴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도와 달라고..
그러나 그곳에서 들을수 있는 답 역시 셀폰을 빌려 주겠으니 연락 해 보라는것과
안내방송은 곤란 하다는것..
그러니 만나기로 한곳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다는 이야기 뿐 이었습니다.
사실 이 상황이 제가 생각해도 하도 기가 막히고 엉뚱해
그들에게도 뭐라 할 명분도 없고 해서 돌아 서다 말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곳이 안전한 곳 이냐고?..
그가 그렇다고 답 하는군요..
그래 제가 다시 그의 눈을 뚫어지게 보며
혹시 마취제 같은것을 써서 사람을 납치하거나 뭐 그런 경우는 없냐고 힘주어 물었습니다.
그 직원이 단호 하게 답 합니다. 그런일은 없다고..
그래도 굳히기를 하기 위해 저는 다시 묻습니다. "그러니 이곳은 안전한곳이지요?.."
그가 웃으며 말 합니다. 그러나 자신 있게 "그렇습니다 "라고..
휴~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되는군요..
그래 제가 다시 말 했습니다.
그럼 나는 호텔로 돌아가겠으니 혹 이곳에 나처럼 코리언을 찾는 한국 여자가 오면
친구가 호텔로 가 기다리겠다고 했다고전 해 주겠냐고..
그러겠다고 하는군요..
저는 호텔로 돌아 가는길
걸어서 1시간 반정도의 거리인데 점심도 먹지 못 했고 걱정도 되어 한 30분 쯤 걸으니 쓰러질것 같았습니다.
할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몇호선인지 지금은 잊었는데 암튼 호텔로 가는 지하철 넘버를 말하고
타는 정류장 의 위치를 물어 지하철을 탔습니다.
휴~ 부디 친구가 호텔에 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호텔 앞의 지하철 역을 나와.
호텔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 가는데 뒤에서
김현숙... 이렇게 내 이름 같은 소리가 꿈처럼 흐릿하게 들립니다.
저는 정말 이상하게도 바로 뒤돌아 서지 못하고 아주 짧게 멍하니
걸음을 멈추었는데 이번에는 또렷하게 들립니다. 김현숙..
나는 순간 홱 돌아 섰습니다.
거기에 꿈 같이 친구가 서 있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안심 되기도 하고 뒤이어 서운 하기도 하고 해서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미안해 할까봐 눈물을 참으려 노력하며
"휴~ 다행이다.. "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된일이냐고 물으니 성당을 나와 보니 내가 없어서 왔다 갔다 몇번을 하다
내가 호텔로 돌아 간줄 알고 호텔로 돌아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호텔에 와 봐도 없어서 다시 성당으로 돌아 갔다 가 거기도 역시 없어서
다시 호텔로 돌아 오는 길이라고 합니다.
제가 말 했습니다.
거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어찌 내가 그 약속을 어기고 너를 성당에 놔둔채로 호텔로 혼자 돌아 오겠냐고..
암튼 이렇게 무사히 만나 다행이다 그러며 웃었습니다.
친구가 "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합니다.
"그래 가자.." 저도 웃으며 말 했습니다.
보상이나 하듯 우리는 그날 좋은 음식으로 푸짐히 점심겸 저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 와 그 문제를 더이상 서로 따지지 않고 잠을 잤지만
두고두고 참 황당한 사건이란 생각이 들어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한편 으론 내친구 다운 행동이란 생각을 합니다.
친구는 그런면이 매력이지요..
그래 어쩌면 그토록 애를 태웠음에도 불구 하고 친구에게 화를 내지 않은 이유 같습니다.
친구 역시 그때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고요...
첫댓글 좋은 여행기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내년도 4월 초,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면서, 성가족성당을 공부하였는데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좋은 여행 마무리하시길 기도합니다.
스페인은 여러곳을 가봐야 최고의 별미죠 또한 포르투갈을 추가해서 가면 더더욱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스페인여행을 현재 계획중인데 바로셀로나에 꼭 가보고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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