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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은 어땠느냐?"
왕이 방에서 그리 말하자, 방 밖에서 내관 한 명이 대답했다.
"수양대군께서 그러셨는데, 어느 궁인이 라이작에게 개인적인 선물로 곶감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래?"
왕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엊그제 있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엊그제에는 임영대군이 라이작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건만, 쯧!"
왕은 그러면서 서안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때렸다.
수양대군(전에는 진양대군이었으나, 지금은 수양대군으로 바뀌었다)의 일 이후 라이작이 궁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왕은 수양대군을 수장으로 삼은 기관을 만들었다.
라이작을 호위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라이작은 마법 소녀였지만 더 중요한 건 '소녀' 였기 때문이었다.
"저한테 그런 게 필요할까요? 저 엄청 세요!"
라이작이 황희의 말을 듣고 그렇게 말하자, 황희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누구도 위해를 끼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너 같이 궁궐에서 일하는 높은 신분의 아이게는 힘의 강약과는 관계없이 호위가 필요하단다"
"높은 사람들의 일은 복잡하네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하하, 이해해줘서 고맙구나"
그렇게 라이작에게 호위를 붙이는 게 성공했으니, 왕은 크게 기뻐하며 젊어지는 샘물(라이작에게 받았다고 한다)을 황희에게 세 홉을 하사하였다.
그러자 황희는 왕의 은혜에 감복해서 그런지 임금이 보는 앞에서 대성통곡하며 젊어지는 샘물 세 홉을 마셨다.
필히 조선의 큰 복이었다.
하지만 이 기관을 창설한 데에는 다른 속셈도 있었다.
라이작의 힘은 산을 뽑을 만 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 마법 소녀였다.
실제로 설악산 울산 바위를 뽑아 한강에 다리를 만들지 않았는가?
허나,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녀天女 일지라도 무한한 신뢰를 보낼 수는 없다고 걱정한 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은 수양을 필두로 한 라이작의 호위 및 감시를 위한 기관을 만들었다.
"아무 천녀라고 해도 소녀거늘, 임영대군은, 쯧! 그래서, 라이작은 그 곶감을 어찌하였느냐?"
잠시 생각을 하던 왕은 다시 문 밖의 내관에게 질문했다.
"자신이 먼저 맛을 보고, 그 다음 세손에게 나누어줬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왕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천녀께서 친히 기미를 하셨단 말인가! 하늘이 택한 원손이라 이건가? 이로서 세손의 권위는 누구도 넘볼 수 없을 것으리라!"
왕이 그러면서 크게 웃더니, 서안 구석에 놓여있던 안경을 보았다. 그것을 본 왕은 오랜만에 책이나 몇 권 더 볼까 생각해서 안경에 손을 뻗다가, 중요한 일을 깜빡한 것을 떠올렸다.
"아, 깜빡한 것이 있었구나. 임영대군을 당장 부르라! 자식도 있는 놈이 딸보다 어린 아이에게 흑심을 품어?"
*
*
*
한편, 라이작은 까치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라이작이 그러는 이유는 최근에 왕이 라이작에게 아무 일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라이작아, 네가 우리를 도와주는 건 좋은데, 너도 쉴 때는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젊어지는 샘물 더 있느냐?'
사실 라이작 덕분에 조정에 일이 늘어난 것도 있고, 자꾸 라이작에게 이것저것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왕이 생각해서 그런 거였지만 그녀가 알 일은 없었다.
"여기 오기 전에도 마법 소녀랑 같이 일하고 다녔어?"
"응. 그랬었지"
까치가 이야기하는 주된 내용은 까치가 조선에 오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였다.
"그 애 이름이 어땠어?"
"응. 유진이라고 해서, 너보다는 어리지만 귀여운 여자아이였지. 몸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나하고 계약을 하면서 건강해졌어"
"정말 다행이다"
까치는 자신이 조선에 오기 전 같이 활동한 마법 소녀 이야기를 해줬는데, 옛 기억을 더듬던 까치는 자신의 기억에 남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고 했다.
"아니, 유진이네 아빠의 현조 할아버지 친구가 어떻게 살아있었대? 100살 넘은 거야?"
"유진이 아빠 조윤이 아저씨 말로는, 아프간이라는 나라에서 미사일이랬나? 커다란 신기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고 하더라고"
"그럼 대머리가 된 거야?"
"그래. 대머리가 되면서, 안 그래도 독한 인간이 고집도 세져서 오래 사신 게 분명하다고 유진이 아빠가 그러더라"
라이작은 그 말을 듣고 유진이네 아빠의 현조 할아버지의 친구는 무슨 신선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게다가 그 사람의 후손 되는 아가씨가 유진이의 엄마라서, 유진이 아빠는 아내와 현조 할아버지에게 잡혀 살았다고 한다.
"그분은 어떤 분이셨어?"
"일본 너머 동쪽 바다 건너편 사람이라더라. 성이 조씨요 이름은 파탄이라고 했는데, 유진이 이름도 그 조씨 할아버지가 지어줬다 하더라"
"그럼 지금 쯤 돌아가신 거 아닐까?"
"아니, 지금은 팔팔하셔"
"왜?"
"유진이 아빠가 딸에게 젊어지는 샘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걸로 흑심을 품었다 하더라고"
까치가 말하기를, 유진이 아빠 김조윤은 딸이 만든 젊어지는 샘물을 보자 그걸 자기 형제에게 먹일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그래서 딸에게 '좋은 일에 쓸 건데, 아빠한테 맡겨줄래? 크헤헤헤헤!' 하면서 그걸 달라고 했는데...
"그 양반이 흑심 품은 걸 내가 알아서, 조씨 할아버지한테 내가 샘물을 몽땅 보냈지!"
"잘 됐네 그거"
"모아놓은 샘무리 한 말 정도 되었는데, 그거 마시고 젊어진 조씨 할아버지를 보고 유진이 아빠가 선 채로 기절했다더라"
그리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되찾은 조씨 할아버지는 당당하게 현역 무관으로 복귀했으니, 조국의 큰 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젊어진 그는 유진이가 마법 소녀인 걸 알고 자기도 마법을 써보고 싶다고 그랬는데, 유진이가 지팡이를 빌려 주려던 걸 김조윤이 결사적으로 막았다고 했다.
"자이언츠가 우승하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했나? 그리고 쉬는 날에는 그거 구실로 유진이 아빠 갈구고 그런다더라"
"그게 말로만 듣던 뿌린 대로 거둔 거구나"
라이작과 까치가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던 그 때, 누군가가 라이작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라이작이랑 같이 상경한 장쇠 어머니였다.
"아이고, 아이고, 참새야, 참새야-!"
"장쇠 어머니?"
장쇠 어머니는 라이작 앞으로 오더니 엉엉 울면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라이작을 올려다보며 구슬프게 말했다.
"참새야! 우리 아들 장쇠가 죽게 생겼어! 우리 아들 좀 살려 다오 참새야!"
"네? 장쇠가요?"
엉엉 우는 장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쇠가 겨우 겨우 과거에 합격했는데, 선임들이 면신례를 한 것 때문에 반 쯤 시체가 되었다고 한다.
"장쇠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세요, 빨리!"
"그래, 빨리 우리 집으로 가자꾸나!"
그렇게 라이작이 장쇠 어머니의 안내를 따라 그녀를 안아 들고 궁내를 달리니, 이를 지켜보던 기둥 속 수양 대군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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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장쇠를 치료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라이작이 지팡이를 몇 번 흔들자, 알록달록한 꽃 몇 송이가 끙끙대며 누워있던 장쇠에게 떨어졌다.
그러자 장쇠는 뼈가 다시 붙고 살이 되살아나고 피가 다시 돌면서 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어머니!"
"아이고 우리 아들 장쇠야!"
그리고 모자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자, 라이작은 예전에 광평대군을 창진(瘡疹. 천연두)로부터 살렸을 때처럼 기분이 좋았다. 이게 다 까치가 알려준, 꽃밭의 꽃을 불러내는 마법 덕분이었다.
"아이고, 참새 누님 덕분에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장쇠야? 면신례라는 게 뭐야?"
"그것이, 성균관에 들어가고 윗사람을 찾아가 인사를 했는데, 술상을 내라고 하시더라고요"
다행히 술상은 장쇠 어머니가 궁에서 받은 게 있어서(천녀를 한양으로 모시고 온 보상이라고 했다) 무난하게 상을 올릴 수 있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음식을 또 바치고 벌을 받고 그런다고?"
"예에. 얼굴에 낙서를 하거나 진흙탕에서 구르는 건 가벼운 수준입니다"
"뭐 그런 게 다 있대요?"
그러자 라이작이 화나는 것은 당연했으니,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새 누님, 어디 가시려고요?"
"당연히 그 나쁜 녀석들을 그냥!"
"아이고, 참새야, 그러다가 너 큰일 나! 다들 유생이잖니? 양반이라고!"
그러자 라이작은 발을 멈췄다. 현재 자신은 일개 궁녀로서 궁에 들어와 살고 있으니, 장쇠에게 면신례를 한 유생들을 찾아가 해코지를 했다간 보통 일이 아닐 것임이 분명했다.
"그건 그래도!"
"얘는, 네가 그러면 뒷감당은 어쩌려고? 장쇠 어머니랑 장쇠가 후폭풍을 맞을 지도 몰라"
"까치야, 그러면 참아야 한다는 거야? 사람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될 뻔 했는데?"
"어쩔 수 없어. 신분의 벽이 있으니까. 지금 시대는"
까치가 한 말에 라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 때, 밖에서 누군가가 헛기침을 하면서 들어왔다. 수양대군이었다.
"혹시 라이작 안에 있느냐?"
"어라? 대군님께서 여기에는 무슨 일이세요?"
"네가 장쇠 어머님을 안아 들고 궁내를 달렸다 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그리고 수양은 라이작과 장쇠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으니, 한 쪽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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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수양 대군이 목격자였던 궁녀의 말을 듣고 상소를 올렸어.
그러자 세종은 이 일에 대해 크게 분노하면서 이에 대해 조사하라고 했었고,
그 결과, 신고식을 했던 유생 두 명이 잡혀서 옥에 들어갔어.
이름은 정확이 알려져 있지 않아. 김아무개라고 그렇게 되어 있어서.
다행히 그 둘은 잘못을 뉘우치고 있어서 곧 풀려날 거였다고 실록에서 그러더라고.
궁녀에게 먹을 것도 얻어 먹고 그랬다 그러더라.
그런데 그 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생들이 옥사 앞에 몰려와서 문을 두드렸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신고식 전쟁 - 성균관의 이름이 바뀐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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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작은 면신례 사건이 끝난 이후 새로운 일이 생겼다. 전옥서에 가서 사람들에게 먹을 걸 챙겨주는 일이었다.
"여기 먹을 거 가져왔어요!"
"어이쿠, 이건 무슨 고기냐?"
"궁궐 뒷산 가서 잡은 호랑이 꼬리요. 국마다 한 꼬리 씩 넣었어요"
라이작이 그렇게 고깃국을 전옥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니 다들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전옥서에서 일을 하는 이유는 왕의 명령 때문이었다.
'네 이야기를 수양에게 다 들었다. 네 기분은 이해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법과 절차대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머리를 식힐 겸 해서 두 죄인을 가둔 옥사의 일을 돕도록 하거라'
그 말을 들은 라이작은 처음에는 입을 삐쭉 내밀었지만, 지금은 그런가 보다 하면서 먹을 걸 챙겨 그곳을 드나들었다.
"아이고, 우리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구나"
"괜찮습니다. 아, 두 분 모두 많이 반성하셨다고 들었어요"
"전하께서 그렇게 성을 내실 줄은 몰랐다. 맞다, 우리 둘 다 부모님께 곤장을 맞았는데, 네가 치료해준 덕분에 살았다. 정말 고맙구나"
"네가 아니면 우린 이렇게 앉아 있지도 못했을 거야"
"그런 말은 장쇠에게 해주세요. 걔가 부탁했거든요"
"그래. 장쇠한테 사과해야지. 엎드려 절이라도 하마!"
"절만 해야겠나? 술상도 허참례 때보다 거하게 차려줘야지!"
감옥에 갇힌 두 관리는 라이작에게 치료를 받은 걸 감사하며, 장쇠에게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장쇠가 두 유생의 처벌에 대해 선처를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 분들도 비슷한 걸 당했었다고 그랬어요. 어찌 보면 그분들도 피해자잖아요.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하니까 용서해주시면 안될까요?'
장쇠가 임금에게 그렇게 부탁했다는 이야기를 라이작에게 들은 두 죄인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덕분에 면신례로 인해 일어난 일은 두 유생이 옥에 갇히고 반성하면서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끝날 것 같았다.
"이 문 열어라, 이놈들아!"
성균관의 유생들이 전옥서에 쳐들어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람?"
유생들이 아우성을 치며 문을 두들기자 전옥서 관리들이 깜짝 놀라더니, 섣불리 문을 열기 보다는 그들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기로 했다.
"다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기에 있는 죄수는 함부로 석방할 수 없습니다. 체포를 명령한 사람이..."
"됐고 당장 풀어내란 말이다! 신고식은 엄연한 관행인데, 관행을 불법으로 정하고 감옥에 가두다니 이게 배운 자가 할 짓인가?"
"맞는 말이다! 누가 가두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을 석방하라!"
"석방하라!"
유생들이 하는 말을 정리해 보니, 신고식이라는 엄연한 관행을 불법화하고 그걸 한 관리를 가두었으니 항의를 해야 마땅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아니,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어?"
"우리는 여기 있을 건데? 왜 너희들이 제멋대로 꺼내려 그래? 돌아가! 돌아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두 유생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뒷목을 잡았고, 나중에 큰 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까지 들었다.
"얘, 애야, 저, 전옥서 사람들 좀 도와다오! 우린 나가지 않을 거라는 말도 하고!"
감옥에서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유생들이 라이작에게 부탁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옥서 대문을 향해 갔다. 그곳에서는 전옥서 관리들이 대문을 막으며 유생들을 막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성균관의 유생들이시면 다들 배운 분들이실 건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요? 여기 계신 두 분께서는 옥에 계속 계실 거라고 하셨어요! 다들 돌아가 주세요!"
전옥서 관리들의 말에도 유생들이 고성을 지르며 문을 두들기자, 라이작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밖에서 떠들석거리던 유생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도, 돌아갔나?"
전옥서 관리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 순간, 대문 밖에 다시 시끄러워졌다.
"저놈이 그 궁녀인가 보다!"
"그들을 밀고한 여자다!"
그리고, 전옥서 대문을 두들기는 소리고 더 커지기 시작했다. 문의 판자 몇 개가 찌그러지더니, 틈새를 비집고 튀어나온 도끼날이 반짝거렸다. 그걸 본 전옥서 관리들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러자 라이작은 전옥서 관리들을 뒤로 물리고 대문 앞에 섰다.
"저 놈을 학궁으로 끌고 가자!"
그리고, 몇 번의 도끼질 소리와 함께 전옥서의 대문이 부서졌다.
"네놈들! 당장 멈추지 못할까!"
그리고, 전옥서의 대문이 부서지고 유생들이 그 안으로 물 밀듯이 들이닥친 그 순간, 말을 탄 수양 대군이 사람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
*
*
교수님이 이야기 했죠? 세종 시기의 전옥서 습격 사건.
전옥서라는 게 뭐냐면, 조선 시대 감옥이라고 생각하면 돼.
1445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조선까지 이어진 신고식 문화가 사라진 계기가 됐어.
신고식을 해서 갇힌 유생 두 명을 빼내려고 성균관 유생들이 전옥서에 쳐들어갔는데, 문을 도끼로 부수고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전옥서 관리들을 때려 눕히고, 죄인들에게 밥시중을 하던 궁녀를, 성균관에 끌고 가려고 했대!
그 궁녀가 유생들을 밀고했다고 생각한 거야. 내부고발자처럼.
마침 전옥서를 시찰하던 수양 대군이 유생들 무리를 뚫고 그 궁녀를 구했는데, 그 궁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더라고.
머리도 엉망이고, 옷도 거의 반 쯤 벗겨지고 찢겨졌다더라.
그런데 그 다음에도 문제가 되었는데,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고, 사발통문을 돌리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대상이 수양대군이 아니라 그 궁녀더라고.
왕족 상대로는 겁이 났던 가봐.
*
*
*
"할머니, 저 그냥 집에 갈까요?"
"왜 그러니?"
온돌방에 누운 라이작이 그리 말하자, 찢어진 옷을 깁던 장쇠 어머니는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장지문 너머의 누군가가 움찔거렸다.
"저에 대한 상소가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대요"
"나도 들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거라"
"제가 괴력뭐시기니까 쫓아내야 한다고, 유생들이 그러고 있대요. 선비는 죽일 수 있어도 모욕할 수는 없다면서"
"신경 쓰지 말래도"
"저 때문에 전하랑 대군 저하도 욕을 먹고 있다고..."
"얘는! 더 말하지 말고 자!"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까치는 옛날 생각이 났다. 옛날에도 이런 일 대문에 마법 소녀 한 명이 실의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때를 떠올린 까치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울었다.
"그럼 집에 갈까?"
"진짜로?"
"그래. 괜찮다면 장쇠 어머니하고 장쇠도 모시고 가자"
"홀홀, 나도 챙겨줘서 고맙구나"
까치는 울먹거리는 라이작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장쇠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었고, 장지문 너머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진이 같은 애를 또 만들기 싫으니까. 임금님하고는 이야기 할 거야?"
"편지만 쓰려고. 나 임금님께서 만드시고 계신 문자 쓸 줄 알아. 그걸로 쓸래"
"그래. 그럼 적을 거는 내가 가져오마. 참새 너는 여기서 몸 좀 더 덥히고 있으렴"
그러면서 장쇠 어머니가 나가자, 라이작은 참새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했다.
"참새야, 그런데 왕이 싫다고 하면 어쩌지?"
"임금님보다 빨리 도망치면 되지. 산 같은 곳에 숨어 살거나"
"그것도 괜찮겠다. 신선처럼"
그러던 그 때, 장지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라이작 누나, 괜찮으세요?"
"세, 세손 각하?"
"아이에에에! 세손? 세손께서 여기서 왜? 세손 왜?"
라이작은 장쇠 어머니가 돌아왔구나 생각했지만, 나타난 인물은 라이작이 같이 놀아주던 세손이었다. 그러자 라이작은 깜짝 놀라고, 까치는 부리가 쩍 벌어졌다.
"누나께서 떠나신다고 들었어요. 누나 진짜 집에 가요?"
"아, 그게..."
"진짜로 가는 거예요?"
세손이 그러면서 울먹거리자, 라이작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세손의 양손을 맞잡았다.
"안 가요! 저는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진짜요? 내일도 놀아주실 거예요?"
"네, 네! 우리 세손 각하랑 놀아줄 테니까 걱정 말아요"
까치는 그렇게 생각하며 세손이 라이작의 손을 잡는 걸 보고 있었다.
'왕 이 녀석, 선수를 쳤군! 이런 치트키를 쓰다니!'
그리고 라이작이 눈물을 닦는 세손을 안심시키려고 같이 한 이불에서 자자고 하는 걸, 까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
*
*
"형님, 저의 계책이 어떻습니까?"
"아주 잘했다, 유야!"
세자는 그러면서 수양 대군의 어깨를 꽉 잡았다. 왕도 크게 웃으며 수양 대군의 등을 두드렸다. 장쇠 어머니가 나가는 걸 본 수양 대군이 그녀를 불러 자초지종을 알자, 수양 대군은 세손을 투입했다.
그리고 효과는 굉장했다.
"세손 덕분에 천녀가 떠날 일은 없겠구나. 그나저나, 수양 네가 전옥서에서 유생들과 크게 싸웠다고 들었다"
"예, 그렇다고 합니다 아바마마"
세자의 말을 들은 왕은 수양의 양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이겼냐?"
그러자 수양은 방긋 미소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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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인해 궁녀가 크게 슬퍼하자, 세종대왕은 특유의 애민 정신을 발휘했어.
성균관에 끌려갈 뻔한 궁녀가 계속 궁에 남을 수 있게 도와줬고, 전옥서에 쳐들어온 유생들은 확실히 처벌했어.
전옥서에서 난동을 부린 유생들을 전부, 과거 금지를 먹인 거야. 엄청 과감한 처벌이었지.
여기에 조정 대신들이 모두 동의했다 그러는데, 그들이 보기에도 유생들이 한 짓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한 걸 거야.
그리고 세종대왕이 또 대단한 걸 만들었는데,
여자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세운 거야. 이름을 이화당이라고 했는데, 그 궁녀도 여기에 입학했고. 여기는 나중에 이화여대의 전신이 되었어.
나중에 여기서 훈민정음을 가르치기도 했어. 그 일은 수양 대군이 직접 참여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성균관은 이 일에 대한 처벌로 인해 이름이 바뀌었어.
부정을 관행이라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 잠겨 있고(沒), 억울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게 했으니(淚)
세종대왕은 성균관을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하여 몰루당(沒淚黨)이라고 개명을 시켰어.
나중에 다시 성균관으로 개명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몰루당이라고 답지에 쓰는 사람들 있더라. 다들 잘 기억해 둬야 한다. 알겠지?
자, 오늘 교수님이 과제를 하나 낸다. 잘 들어라.
세종대왕이 말이야, 이 신고식 사건을 일부러 크게 낸 다음, 이 사건을 명분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이화당을 만들었다는 음모론이 있더라고.
드라마에도 나오고 말이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면서 신하들이 반대하지 못하게 하고 그러잖아.
그래, 신고식 사건이 세종대왕의 자작극이라는 거야.
그래서 중간 시험 대신에 이에 대한 토론을 열 거야.
반대 의견 찬성 의견 조를 만들어서 토론을 할 거니까, 다들 조 짜서 토론 준비해와.
2주 준다. 오늘 강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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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고식 같은 거 안 좋아합니다.
그런데 가끔씩 현대 파트 들어가는 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이작이 벌인 일을 현대에서 어떻게 평가할까 생각하니 저런 걸 쓰게 됐네요.
나중에 저 교수에게 이름이라도 지어줄까 합니다. 키부츠치 무잔 교수라던가.
현대 마법 소녀 이야기도 조금 심어줬습니다. 2부가 나온다면 쟤가 임진년이나 정묘년에 날뛸지도 몰라요.
아니면 대한 독립군으로 날뛰거나, 미군에서 날뛸지도 모르죠.
아니면 현대 마법 소녀 이야기를 외전으로 낼지도?
어딘가의 검은 머리 대원수가 생각나는 이름이라면 정답입니다.
첫댓글 뭐가 됐든 개그감만 유지하면 되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