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동거하는 시대
올 1인 가구 수는 617만 가구로 약 31.7%에 해당 되지만,
10년 뒤에는 30대 중 절반이 1인 가구가 될 전망이다.
자립한 청년층, 만혼, 비혼, 이혼 등으로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중 장년층
그리고 배우자와 사별 후 홀로 사는 노년층 등 비율로는 1:1:1로 나타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문제는 중 장년층이다.
연 2,000여 명의 고독사 중 70%가 중 장년층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년층 200만 1인 가구는 가난과 고독 그리고 질병과 싸우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젊은 층의 1인 가구는 중 장년과 노년과 차원이 다른 미래 국가역량과 관련이 있는 문제였다.
지금 젊은이들은 1인 가구 중 60%가 결혼은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시대는 변하고 있다.
경제적 부담과 개인적 성향이 강해지면서 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요즘 불경기라 건설 경기는 더 얼어붙었음에도 신기하게도 동네마다 짓는 건물은 대부분 원룸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행되는데 인구까지 급감하면서
초고령화 사회는 결국 1인 가구를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어찌할 수 없는 1인 가구로 평생 살려면 먼저 철저한 경제적 준비가 요구된다.
코로나 이후 1인 가구 월 소비로 141만 원이 나왔는데,
60 살에 은퇴하여 90 살까지 30 년을 계산해보면 약 5억 원이 필요한 셈이다.
혼자 살면 필요 경비가 줄어드는 일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소비되어 돈 모으기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더욱이 나이 들수록 의료비는 증가될 수밖에 없기에,
철저한 재무설계를 하지 않으면 은퇴 이후 삶은 경제적 부담으로
더 외롭고 힘겨운 노후생활이 되지 않겠는가.
북한사람들은 대부분 못 먹어서 생긴 병이라 병 고치기가 쉽지만,
남한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어 생긴 병들이라 오히려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못 먹을 땐 배불리 먹기만 하면 만사형통인 줄 알았는데,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게 된 후에야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온갖 병에 더 노출될 뿐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는 채웠는데 설령 혼자 살지 않고 같이 산다 해도
가슴에 담겨진 공허감, 권태감을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기에
분주히 손이 움직임에도 왠지 텅 비어 있는 느낌과
고독감은 오늘도 길 잃은 새처럼 방황한다.
‘우츄프라 카치아’라는 식물은 결벽증이 너무 심해 누가 만지면 말라 죽는다.
하지만 동일인이 지속적으로 만져주면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식물은 실존하는 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왜 감동을 주고 있을까.
마치 어떤 사람에 대한 실상을 알고서도
계속 사랑하는 이유는 그 허상 속에서 자신의 위선을 본 것처럼,
비록 가상의 스토리지만 알고 보니 그 꽃은 결백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너무 고독해서 죽는다는 점이 자신과 많은 공유점이 있었기에 감동을 받는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돈 버는 일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었고,
외모까지 철저히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상품성을 높이는
수단이 되는 사이 심령은 말라가고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은
힘을 잃고 슬픈 자아상을 지닌 채 생각 없이 살아간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정을 나눌 수 없다는 극한의 외로움과
끊임없는 이기적 삶의 방식들이 자신을 더욱 외로운 고슴도치가 되게 한다.
모두가 앓고 있는 이러한 외로움을 무기로 온갖 서비스업종들은
불황임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없기에
근본적인 방법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소외’라는 정신적 질병은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원초적 고통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생각해 볼 일은 외로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몸과 그림자는 하나이듯이 사람은 그러한 고통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는 통과 의례와도 같은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어쩜 이 의식들을 제대로 지나가지 않으면 일평생 두려움과 분노,
우울증이라는 거짓 자아 앞에 무릎을 꿇게 될지도 모른다.
외로움은 본시 사람에 대한 잘못된 기대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외로움은 어쩜 이기적인 인생의 여정 속에서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본시 사람이니까 외롭다고 자위해보지만 생각해 보면 외로움은
또 사람 때문에 생겨난 바이러스이기에 외로움이 온몸을 감쌀 때마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버릴수록 좋다.
흔히 정치권이 가장 무정하다고 말하지만, 세상이 다 무정하다.
인간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무정하다.
사람은 의지하고 기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용납할 대상임을 기억하고
실망스러울 때마다 홀로 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모든 기대를 내려놔야만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인이 머리가 아픈 가장 큰 원인은 생각 과다에 있다.
두통이 올 땐 생각을 줄여야 하듯이
외로울수록 자신을 묶고 있는 생각을 내려놔야 한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더 많다.
자기 생각에 빠질수록 억울하고 비참하고 바보 같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벨트마냥 허리를 두르고 있던 뱃살도 살포시 내려놓아야 하듯이,
뱀처럼 머리를 감싸고 있는 기가 막힐 생각들을 내려놔야만
외로움에서 벗어나 일상의 행복이 가슴에 새겨진다.
나이 들수록 꿈은 갖데 욕심은 내려놔야 우울하지 않고 외로워도 견딜 수 있다.
내 안의 욕심을 비운만큼 이웃이 들어온다.
부버의 <나와 너>에서 말하듯
‘나와 너’는 인격적 만남이 되어야 함에도 ‘나와 그것’ 처럼 물질적 관계가
되어가기에 관계는 병과 상처를 안겨준다.
문제는 이 두 관계 형성에 따라 삶의 양상이 달라지기에
부버는 더불어 살아가는 인격적인 관계형성을 통해서만
참다운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나도 외롭고 약하지만 나보다 더 외로운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해야
<나와 그것>이 <나와 그>가 되므로 인생의 멋과 맛을 알고
외로움 속에 사랑이라는 새순이 돋아 눈을 떠도 두렵지 않은 것이다.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출처 : 경포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