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통치자들을 그리스도교와 연계시킬 수 있는 명분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구약성서에는 멜기세덱(Melchizedek,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창세기』에 '살렘 왕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로 나와 있으며,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따라 영원한 대사제'라고 기록되어 있다)이라는 훌륭한 모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아울러 사도 바울로는 권력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3,1
통치자는 결국 여러분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천벌을 대신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3,4
세속 통치자를 교회에 속한 인물로 보는 바울로의 통치자 개념은 통치자를 신적인 존재로 추앙하는 이교도들의 관습, 즉 황제를 '최고의 대사제장(Pontifix Maximus)'으로 추앙하는 관습과 쉽게 맞아 떨어졌다. 그리스도교 이론가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황제들로 하여금 이단과 분파들을 제압할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여 그들에게 사제권을 부여해 주었다.
멜기세덱.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로 왕이자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브람을 축복하자, 아브람은 그에 대한 대가로 그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주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후에 자신의 권위와 그리스도교를 연계시키고자 하는 세속 통치자들의 모델이 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황제의 선한 명령을 그리스도가 친히 황제에게 부여해준 것으로, 다시 말해 황제는 주교에 준하는 신성한 권력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주장하였으며, 에우세비우스 주교 또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주교의 직분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적인 황제교황주의(Caesaro-papalism)가 5세기 초에 오면 제국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가 되어 이단 분파들을 반역세력으로 간주하는 데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6세기에 출간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보면 황제는 사제의 권한 중에서 영적인 고유한 기능을 제외한 거의 모든 권한, 즉 교리를 판단하고 사제들의 자질을 평가하는 문제까지도 행사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448년에 올린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대사제장이자 황제의 신분으로 주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칼케돈 공의회(451)에서도 마르키아누스 황제는 '사제이자 군주'로 불렸다. 동방 교회의 총대주교와 주교들은 황제의 감독과 명령을 받아야 했다.
서방 교회 역시 이 같은 황제교황주의를 받아들였다. 대교황 레오 1세는 마르키아누스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나는 황제를 위하여 '통치자로서의 황제관 뿐만 아니라 사제의 지팡이도 수여해 주십시오'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황제의 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한 것이요, 하느님이 직접 제정해 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황제를 영예롭게 하는 일이 예배의 한 형태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테오도시우스 법전』(438)이 로마에서 제정되어 공표되었을 때, 원로원 의원들은 "저희들은 폐하를 통해 영광을, 폐하를 통해 재산을, 폐하를 통해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는 말을 28번이나 반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다른 찬양들도 15번이나 반복되었는데, 모두 합치면 352개 단어의 가사가 리듬에 맞춰 불려지면서 장중한 소리를 자아내었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후에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 성인들에게 청원하는 그리스도교 연도(litanies, 사제가 먼저 읊는 기도문을 따라 신도들도 읊는 형식)의 모델이 되었다. 동방 제국의 황제는 정교하게 짜여진 예배 의식에 맞춰 성당에 입장했는데, 이 의식은 극적인 효과를 자아냈다. 크레모나의 주교인 리우트프란두스(Liutprandus)의 설명에 따르면 황제는 자신의 위엄을 극대화하기 위해 뒤편에 숨겨놓은 기계를 작동시켜 자신의 옥좌를 공중으로 오르내리게 했으며, 옥좌 곁에 기계로 움직이는 사자상들은 낮선 이가 접근할 때마다 포효하면서 꼬리를 흔들어 댔다고 한다.
교황청은 다수의 세속적인 권력기구를 받아들였는데, 특히 로마 제국으로부터는 원로원과 관료제도를, 동방 제국으로부터는 장중한 의식을 차용했다. 교황청 직원들은 엄격한 계급구조 속에서 일하였으며, 정교하게 꾸며진 대기실(antechamber)은 하나같이 교황이 있는 알현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교황을 알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교황의 성좌 앞에 나아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proskynesis) 인사를 하여야 했다.
7세기 후반부터 교황은 프리기움(phrygium) 혹은 카멜라우콘(camelaucon)이라고 불리는 끝이 뾰족한 하얀 모자를 썼다. 이 모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후에 '삼층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로마 의식서(Ordo Romanus)』와 같은 책에 표현된 미사를 거행하는 교황을 살펴보면 로마 교회에서 그의 지위가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교황은 미사 자체보다는 교황으로서의 위엄과 영광스런 모습을 나타내는 데 집중하면서 미사를 매우 위엄있게 진행하였다. 로마 교황청이 비잔티움 제국과 결별하게 되면서 교황의 권한은 더욱 커져 갔다. 결정적으로 '성화상 파괴(iconoclasm)'가 제국의 정책으로 채택됨으로써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간의 정치적인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첫댓글 황제가 짱임
마활님의 비평이 기대되는군요
님 귀신.
왕권신수설은 황제교황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황제 따위는 그냥 평신도지 "사제"가 아닙니다. -_- 정통 로마 황제인 비잔틴 황제마저도 교황보다도 한 끝발 아래인 총대주교한테 니는 그냥 평신도니까 좃대로 교회 일을 휘두르려고 하지 마셈....이란 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게씁니다. 그건 그냥 반대파를 압도하려던 교회 측의 아부로 봐야 합니다.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그렇게 되어 있어도,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황제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냥 명목적이었죠.
그리고 뭔 로마 교황청이 비잔티움 제국과 결별? 웃기는 소리.....
교황의 권한과 권위는 원래 컸습니다. 어쨌든 교회의 제1인자였고 지금까지도 정교회의 명목상 1인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아니라 로마 총대주교입니다. 그리고 얼마 못가서 동로마 제국에서도 성상 파괴파들이 결국은 패배했고 동로마 교회는 일관적으로 성상 찬성파였는데 무슨 "단절?" "결별"이 아니라 그냥 동로마 제국 세력이 일시적으로 입김이 약해졌을 뿐이며, 교황은 적어도 제국이 이탈리아에 영토가 있는 동안에는 함부로 동로마를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안도와주면 노르만들하고 아랍이 어깨동무하자고 난리 피울 텐데?
신성 로마니 뭐니 하는 놈들은 지들 편할 때만 립서비스만 하지 잘 도와주지도 않고요
신성로마애들은 교황 무시하고 황제세운적도 있었는듯. ㅋ. 무싄 황제가 두명이 선출됬나 뭐랬나...
하복//하인리히 vs 루돌프외 대립황제.. 끝에는 아들과 대결하는 ㅉㅉ
근디.. 본시 로마네는.. 수많은 대외선전과 조작질을 통해.. 이뤄낸게 있고.. 포르노등... 흑역사가 있지요
이게다 먼나라 이웃나라 때문...이원복은 나의 원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