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코넬대 인간행동연구소의 신디아 하잔 교수팀은 사랑이 우리 몸 속 화학물질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하잔 교수팀에 따르면 사랑을 시작할 때 특정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고 퍼뜨리며 평소와 다른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2년이 지나면 사랑의 감정은 우리 몸이 이 물질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내면서 종말을 맞는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우리 몸 안에서는 어떤 화학 물질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뭐가 다르지?
호르몬 은 1905년 영국의 생리학자 어니스트 스탈링(Ernest Henry Starling)이 그리스어로 '자극하다' '흥분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hormaein'이라는 단어에서 가져와 만든 이름이다.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혈관을 타고 여러 세포에 도착해 세포를 흥분시키는 역할을 한다. 각 호르몬마다 각각 고유의 수용체가 있는데 자신의 수용체를 가진 세포만을 흥분시킨다. 때문에 호르몬에 따라 분비되는 위치, 영향을 끼치는 부위와 효과가 다르다. 호르몬이 작용하는 표적 기관은 내장기관들이다.
신경전달물질 은 뇌에서 활동하는 호르몬으로 뇌내 호르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호르몬이 주로 내분비계에서 분비된다면 신경전달물질은 뇌에서 분비되며 신경세포로 신호를 전달한다. 대개 인지, 주의, 감정, 중독 등에 관여한다. 내분비계 호르몬이면서 신경전달물질 역할을 하는 것도 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분비된다고 알고 있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은 신경전달물질이다. 하지만 췌장에 분비돼 우리 몸의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은 호르몬이다. 아드레날린은 우리 몸에서 긴장과 스트레스, 흥분 상태와 관련 있는 신경전달물질이지만, 간과 근육에서는 호르몬으로 작용한다. 이 화학물질들은 우리 몸 안에서 소통을 담당한다. 우리 몸에 나타나는 변화를 파악해 실시간으로 주변 세포와 장기에 자극을 줘 상태를 전달한다. 위험물질을 확인하거나 공격, 대처하도록 도우며, 신체가 항상성을 유지할수 있도록 한다.
사랑의 시작 : 도파민
도파민이 분비될 때 활성화되는 대뇌의 미상핵 /KBS 생로병사의 비밀 '사랑은 900일의 폭풍' 캡처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순간 우리 몸에 분비되는 물질은 도파민(dopamine)이다. 사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들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촬영(fMRI)을 통해 살펴보면 대뇌에서 본능을 관장하는 미상핵(尾狀核·caudate nuclei)이 활성화된다. 이 부분은 도파민이 작용하는 쾌감 중추의 메인 신경이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좋아하는 것을 보거나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도 활성화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 뇌는 도파민이 퍼져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쾌감은 흥분 상태를 지속시키면서 활력이 넘치게 만든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돌고 일상에 적극적으로 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쾌락과 관련 있기 때문에 일시적인 쾌감을 주고 중독으로 빠지는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도파민 조절이 잘못되면 무언가에 의존하게 되는 정신적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에서 벗어나 쾌락을 주는 마약이나 흡연, 도박에 빠지는 경우이다. 도파민이 지나친 활성은 조현병과 관계가 있고, 너무 적을 경우 파킨슨병을 발병한다.
내가 왜 이러지 : 아드레날린·노르아드레날린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심박수가 증가하며, 평소와 다른 긴장과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긴장으로 근육이 수축되고 동공이 확장된다. 마치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는데, 모두 아드레날린(adrenaline)과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이 분비되었기 때문이다. 뇌의 신경전달물질이자 신장의 위에 위치한 부신에서도 분비되는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은 각각 외부의 적에 맞설 수 있도록 흥분 상태와 각성 상태를 유지하여 신체의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인다. 두 물질 모두 신체가 위험에 처했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나타나는 스트레스성 호르몬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역시 우리 몸은 이를 비일상적인 경험으로 인식해 이 두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이렇게 두 물질 때문에 긴장하고 각성된 상태에서 상대를 만나면, 상대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고 상대에 대한 정보를 더욱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너 밖에 안보여 : 페닐에틸아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켜 '콩깍지가 씌었다'라고 표현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평범한 사람도 내 눈엔 특별해 보이고, 그 사람의 단점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보고 있는데도 그립고, 먼 길을 달려서 한숨에 상대를 보러 가기도 한다. 이렇게 제어하기 힘든 열정적인 사랑의 상태는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 때문이다. 신경전달물질 '페닐에틸아민'의 농도가 상승하며 이성이 마비되고 열정이 샘솟는다. 상대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너그러워진다. 감각중추뿐만 아니라 인지 능력에도 영향을 끼쳐 천연 각성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성분은 초콜릿에도 많이 들어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초콜릿을 주고받는 것은 어쩌면 이 물질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질수록 커지는 사랑 : 옥시토신
그리스어로 '일찍 태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진 옥시토신(oxytocin)은 수십 년 동안 오로지 모성애와 직결된 호르몬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70년대에 새로운 기능이 발견되면서 오늘날 신경과학의 가장 흥미로운 연구 주제의 하나로 부상했다. 옥시토신이 성생활이나 대인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부드러운 근육을 자극하고 신경을 예민하게 하므로 남녀가 상대방을 꼭 껴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포옹, 피부접촉 등 스킨십을 통해서도 분비가 늘어나는 옥시토신은 '페어 본드 (Pair bond)'라고 불릴 정도로 친밀감에 영향을 줘 서로 간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킨다. 이렇게 파트너와 강한 일체감을 느끼게 되면 두 사람은 아이 양육에 더 협력적이고 적극적일 수 밖에 없다. 인류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필수적인 호르몬이다.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 : 바소프레신
바소프레신(vasopressin)은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남성형 애정 호르몬'이다. 분비되는 부분과 역할, 구조도 비슷하여 옥시토신의 형제 호르몬이라고 불린다. 바소프레신은 남성들이 여러 여성을 만나려는 마음과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을 피하도록 돕는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남성들은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의식이 높아져 '지켜줄테니 따라와',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 남성적 애정표현이 강해진다. 다른 이성에게 한눈을 팔지 않으며 자기 영역권 안에 있는 사람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바소프레신이 줄어들면 이혼율이 높아진다는 통계도 있다.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 : 세로토닌
신경세포가 만나는 접합부인 시냅스(synapse)에서 분비되어 뇌를 자극하는 호르몬이자 신경전달물질이다. 식사, 수면, 기분 등 전반적인 우리 몸의 생리적인 욕구에 관여한다. 특히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 우울감과 크게 관련이 있다. 세로토닌(serotonin)은 평온하고 안정감을 주는 호르몬이다. "넌 이제 행복하고, 편안한 상태이다" 연애를 한창 하게 되면 행복한 감정에 푹 빠지게 되는데 이것은 세로토닌 덕분이다.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안겨준다. 기분을 좋게 하고 심신이 안정되고 평화로울 때 많이 분비된다. 멜라토닌(melatonin)과 함께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시냅스(synapse) : 신경세포를 서로 연결하는 부위. 신경 정보를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전달할 때 통로가 된다. 그리스어로 ‘함께’ 라는 뜻의 ‘syn’ 과 ‘접촉하다’ 는 뜻의 ‘haptein’ 에서 나온 조어(造語)다. 뇌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마지막 정착지는 처음 시작했던 출발지와 같다. 사랑의 감정으로 활성화 되었던 '미상핵(尾狀核·caudate nuclei)'이다. 머리 양옆에 하나씩 쌍으로 구성돼 있는데 크기는 각각 새우만하다. 타자를 치거나 운전하는 법 등 행동양식이나 습관이 이곳에 저장돼 쉽게 잊히지 않는다. 처음의 불 같았던 사랑은 사라지지만 곧 오랫동안 지켜야 할 의무의 감정으로 변해 지속하는 것은 미상핵 때문이다. 연인 관계의 최종 목표는 '우정 같은 사랑(companionate love)'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랑은 대부분 편안한 관계로 종착되며,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과학자들 주장이다. |
첫댓글 배운것들을 복습하게 해 주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