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은 중독이다
보고 또 보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집착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집착하는 것이다.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집착하는 것이다. 집착은 돌이키기 어려운 다리를 건넌 것으로 극단적 행위다. 극단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싫어하는 것으로 배척한다. 극단은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으로 노력한 만큼 대상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이런 상태는 지성이 마비되어 중독된 것이다. 중독이 된 사람은 자기가 중독이 된 것을 모른다. 이러한 중독은 업을 생성하여 새로운 태어남을 만든다. 인간의 윤회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흐르며 진행된다. 극단은 무엇이나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좋은 것도 너무 열심히 노력하면 극단에 속한다. 극단적인 노력은 적절한 노력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따른 후유증이 생긴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큼 바라는 것도 많아져서 아무리 좋은 결과가 생겨도 만족하지 못한다. 이것이 탐욕의 특성인데, 탐욕에 집착까지 붙으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결국 나도 이성을 잃지만, 세상의 집단지성도 몸살을 앓는다. 욕망에 집착이 결합하면 제한된 그릇에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물을 채우려는 것과 같아 끝 모를 갈증으로 산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대상이나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욕망은 목마름으로 갈애라고 한다. 갈애는 세 가지가 있는데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다. 이 모두가 타는 목마름의 상태다. 그리고 이것들은 아무리 얻어도 만족을 몰라 얻은 것이 아니다. 갈애보다 집착은 더 강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집착은 네 가지가 있는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 견해에 대한 집착, 계율이나 의식에 대한 집착, 유신견인 자아에 대한 집착이다.
이상의 갈애와 집착이 결합한 7가지는 강력한 힘으로 업을 생성한다. 이 힘이 연기를 회전시켜 윤회를 돌린다. 이러한 업의 결과가 새로운 태어남이다. 이때 내가 있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업의 생성이 다음 생을 태어나게 한다. 결국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태어남이라는 결과가 생긴다. 이러한 태어남은 반드시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맞이한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누구나 예외 없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태어났다. 이때 내가 태어난 것이 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태어난 생명은 과거로부터 상속되어서 태어났으므로 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혀 다른 새로 태어난 생명을 나라고 할 수도 없다. 바로 원인과 결과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