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자운선가에서 말썽부리다가 쫓겨나서
절에 들어가 허드렛일 하면서 지낸지 1년쯤 지났을까.
스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 OO이 니가 왜 내 옆을 못 떠나는지 알아? 내가 널 무시하기 때문이야. "
시간이 지나 무시를 겨우 면하게 되자, 저는 홀연히 절을 떠났습니다.
겉으로는 <나랑 안맞아>가 이유였지만,
이번 3박4일 수행을 하고 나서 그 때를 다시 바라보다 보니...
‘ 나를 비참하게 해 줄 ’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 진짜 이유였더라구요.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그러나 고통받아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아이.
등 돌리지 마 무서워 미워해도 좋으니까 날 좀 봐줘 우는 아이.
저는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사랑받고 있으면서도,
그 사랑을 받아 안을 줄은 모르는 아이였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 이 순간조차 똑같은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쯧.
상황만 바뀔 뿐 문제 일으키고 다니는 패턴은 대략 이랬습니다.
1 희망을 갖고 수행을 시작.
2 감정선, 감수성, 오감이 모두 열린다. 한없이 섬세해진다. 되게 재미있어한다.
(한편으로 밑바닥에서는 더 잘해야 되는데.. 이걸로는 부족해! 초조하고 불안하다.)
3 자만한다. 두려움이 없어진다. 슬그머니..아니 대놓고 딴 생각한다. 아니아니 처음부터 딴 생각 하고 있었어.
쇼 미 더 젯밥. 내 관심 젯밥.
4 마장에 걸려 넘어진다. 자신감을 잃는다.
(위 2의 성과가 크면 클수록 낙폭 또한 크다.
작년에 OO원 벌어들였으면, 그 다음해에 바로 빚을 딱 고만큼 생성하는 방식이다.
탐욕으로 능력을 쓴만큼, 딱 그 힘으로 두려움을 향해 활시위를 당겨 추락한 꼴.
그 힘듦을 공부거리로 못받아들이고 자기 악에 받쳐 씩씩거린다.)
5 넘어졌는데 안일어난다. 쪽팔리니까. 계속 '심오하게' 자빠져 있는다.
' 더 운명적으로~ 예술적(?)으로 넘어질 걸... 어설프게 금가지 말고 멋지게 확 부러질 걸...'
요런 어이털리는 생각으로 수치심을 스윽 외면해본다.
6 혹시... 계획이 잘못되었나? 더 그럴듯한 계획을 세워볼까...이거 뭘 잡고 가야할지 사실 모르는 상태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 복서 무하마드 알리.
7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렵고 슬퍼하다가 자포자기한다. 자기합리화한다. 의지를 상실한다.
8 되돌아갈 수도 없어ㅠㅠ 에라 모르겠다... (시무룩해져서) 그냥 (수행)해볼랜다...
1~8의 무한루프, 무한반복...
수행 – 자만 – 방심 – 앗뜨거 – 모르겠네 – 다시수행 – 자만 – 방심 – 앗뜨거 – 모르겠네 – 다시수행....
1~8까지의 무한반복.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것이 지난 10년동안 제 ‘얼빠진’ 루틴이었습니다.
이것도 이번 3박4일 수행지도 받고나서 뜨인 눈으로 알게 된 것들이예요.
이전엔 모르고 계속 문제를 '반복'하고만 있었어요.
...
자운님헤라님은 정신차리라고 절 혼내신 것이었으니, 그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당시의 저는. 난 턱없이 부족하다고, 더 닦고나서 자운선가 들어가야 한다며
계속 자운선가 가는 것을 미루고 있었어요.
중간에 느므느므 힘들어서 거지꼴로 2013년 4박5일 정기수행으로 세 번 들어오긴 했었어요.
하지만 그 때도 정기수행은 가능하지만, 너 행복스테이는 안된다 하시고... 딱히 다시 들어오라는 말도 없고...
들어올 생각말고 ‘나가서’ 뭐뭐뭐 해라 하시니.
아직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실은 제 내면의 아기가 흥칫뿡 삐진 거였더랬습니다.
그 아이의 완고한 삐짐으로 다시 7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흘려보내버렸습니다.
꼭 언제 들어오라고 해야 들어오나?
갈급하면, 거절 또 거절당해도
“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들여보내주실래요? ”
계속 요청하고 졸라야지..
배가 고프면 지가 숟가락을 들어야지..니 밥을 남이 떠먹여주랴?
왜. 아예 콧구멍으로 튜브꽂아서 주사기로 죽을 넣어달라고 하지? 입벌릴 일도 없게~
...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같습니다.
어머니께 뭔가를 물어보면 바보같은 소리한다고 야단맞던 어린 시절의 기억,
늘 짜증나 있던 엄마를 성가시게 하면 안된다고 여기며 눈치를 보던 유년시절의 경험정보,
시키기 전에는 하고 싶은 것도 계속 참다가, 시키면 비로소 안심하고 깨작깨작 했어요. 눈치보면서.
잘 안되면, 엄마가 시켜서 한거잖아요 내가 원해서 한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 책임 아니예요. 뭐라하지 마요...
엄마에게 야단맞고 버림받는 게 너무 두려웠던 아이.
그 아이가 저로 하여금 질문을 멈추고 혼자 망상하게 만들었어요.
사실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상처받은 어린 나를 ‘타자화’해서 걔 핑계, 상황 핑계대며 남탓(?)하고
지금의 나를 합리화하고 절대 안 바꾸고 싶어하는 마음이 꿈틀거리는 게 제 안에서 느껴집니다.
예전같으면 그 느낌은 그저 알 수 없는 불편함이었을거고 그냥 주욱 ‘착각’만 하며 계속 답답한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그냥 좀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어쩌다’ 필이 꽂힌 방법이 ‘하필이면’ 수행이었던 걸까요.
명상! 그러면 폼 좀 나고 말이죠.
하... 현타... 아니 수치심 올라오네요. 으흑.
‘ 나 아직 자운선가 들어오려면 멀었다는 거구나. 밖에서 더 닦고 준비해서 들어와야 하나보다 ’
하고는 세상에 나가서 이리저리 치이고 굴러다니다 보니
쫓겨난 지 3년 뒤 잠깐의 복귀, 그리고 다시 6년, 도합 9년이 흘러버렸어요.
세상에서 깨지면서 깊게 파묻혀있던 두려움이 호로록 다 올라와서,
예전에는 작동하지 않던 위험경보가 울리는 것은 천만 다행입니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썩은 연못에서 이무기로 평생 살 것만 같아 무서워요.
수행 시작한지가 첫 수행단체 입회기준으로는 무려 23년차인데...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진실을 보게 하는 빨간 약을 이제야 삼키고,
폭망해버린 현실을 마주하고서 뜨악하는 기분입니다.
내가 전에 삼킨 건 빨간 ‘약’ 아니고, ‘눈깔사탕’ 이었나봐요.
한두개 삼킨 것도 아닌데... 왜 이제 제대로 보이니....
이제라도 보여서 다행입니다. 만약 더 늦게 봤으면 제 관념두께로는 가망없을 뻔 했어요.
2월 한 달, 행복스테이를 들어갑니다.
제 안의 애기가 울고불고 난리났네요.
여지껏 고상한 척, 귀마개 끼고 안보이는 척, 눈가리개하고 모른 척 내일은 나아지겠지 근거없는 희망으로 버텼는데.
정신차려보니 좀만 더 지나면 그 애기가 싸놓은 똥오줌눈물콧물에 잠겨서 '더럽게' 죽게 생겼습니다.
뭘 이렇게 많이 쌌니.... 먹성이... 좋구나....? ㅡㅡ;;;;;
뭐 별 수 있나요. 치우고 씻기고 약바르고 안아주고 달래야죠.
제 애를 제가 안챙기면 누가 챙기겠어요. (세상 모든 부모님들 존경합니다...)
P.S.
저는 십여년전 자운선가에서 수행하면서 크고 작은 말썽을 피웠었어요.
시키는 거 안하고, 대들고... 마지막에는 큰 잘못도 저질러서...
자운님헤라님께서 (일종의) ' 너 이놈 사회 나가서 손들고 서있어 '를 시키셨어요.
근데 막상 자운선가 밖으로 나와서 의지할 스승과 도반없이 혼자 덩그러니 있으려니까
아프고 무서운 걸 바라볼 용기가 안 나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상태를 점검받을 수 없었기에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어떤건지
알 수 없었던 게 큰 공포였어요.
여러분... 자운선가에서 받아줄 때, 사랑 줄 때, 품어줄 때 잘하셔요...
집나가면 고생이랍니다... 저는 10년 나갔다 와보니까 알겠어요...
제가 오싹한 얘기 하나 더 할까요?
수행 안하면, 그리고 잔머리 굴리면서 제대로 안하면.
저처럼 됩니다~
에비.
첫댓글 후기를 읽는데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픔이 절로 절로 느껴져요. 나름 수행을 하다보니 저도 머리굴리며 요령피웠고 의심으로 믿음을 약하게 했고 제 아집으로 스승님들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보다님의 글을 읽으며 참회하며 눈물을 흘리고 다시한번 열심히 수행하리라 다짐해봅니다. 시행착오를 줄여주시려 절절한 마음으로 후기 올려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맑은샘이님 감사해요. 사실 아직 더 '아파야' 정상인데 마비되어 곪아가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라서...저같이 심한 시행착오는 드물겠지만 그래도 반면교사로 삼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함께 가요 ^-^
마장과 저항이 큰 만큼 다시 돌아오셨기에 더 큰 그릇으로 더 크게 세상에 쓰임받으실 것 같아요.
진솔함에 감동받고 그 용기에 저도 용기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네 한참만에 돌아왔으니 그동안 미뤄둔 마음의 빚을 갚아야죠... 지내다보니 빚만큼 기분나쁜 것도 없더라구요. 샥 갚아내고 그릇 싹싹 비우고 닦아서 쓰일데가 있기를 희망해요. 용기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음으로 멋진 글을 써주신 보다님. 후기 읽는 내내 가슴이 쪼그라들고 쑤셔대다가 눈이 따꼼 벌개질때쯤 글이 마무리되면서 실실 웃음이 번져 나오네요~ 행스하시는 동안 크게 행복하세요~. 인생나눔글 완전 대박 따봉 감사함당.♥♥♥
아따 리얼하게 읽으셨나봐요ㅋㅋ 쪼그라들고 쑤셔대고....ㅠㅜ 행스 어찌될 지 감도 안오지만 마스터분들 믿고 가보려구요~ 행스행복축원해주시는 마음 대박 따봉 감사해요^-^♡
보다님 리얼한 인생수업이네요 선배님의 귀환을 축하합니다 진솔한 후기글이 마음 깊이 두드립니다 행스 대박!~응원합니다^^
바운스님 복귀축하와 응원 감사해요.
인생 참...네...네...ㅋㅋㅋㅋ
진지하고 솔직하게 나아가겠습니다! ^-^♡
보다님~~
보다님의 수행일대기를 소소력력하게 올려주셔서 읽는내내 만감이 교차했어요~~
참나를 만난다는것 깨달음으로 간다는것이~~
진정 참스승님을 만난다는것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복을지어야 인연이 된다고 했었는데~~
참말로 고생많으셔서요~~
앞으로는 어떠한 상황과 경계에 부딪쳐도 뛰어넘어 실것같으신 보다님~!!!
행스까지 들어가신다니 진심 축하드리며 보다님의 각오와 의지에 큰박수를 보냅니다~~
머잖아 자운님 혜라님의 기쁨이 되실것이라 믿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부모품속에서 사랑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셔서면 좋겠어요~~
도반님 원오가 마니마니 응원합니다~♡♡♡
네 원오님 맞는 말씀 하시네요.. 복빨(?) 끝장나는 듯 해요. 이 정도 참스승님 만나는 복이면 신라백제고구려 한 3개 나라쯤은 구했지 싶어요. 진격하라 맨 앞에 서서 깃발 들고 뛰던 그 놈이 제가 아니었을까 해요 ^-^
말씀대로 어떠한 상황과 경계(ㄷㄷ)도 넘어가겠습니다! ♡
보다님~ 10년 세월의 후유증(?) 얘기를 너무 재미(?)나게 올려 주셨네요. ㅎㅎ
근데 그 10년이 너무 아깝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이렇게 크니 다행이잖아요. 이걸 얻기 위해서 였을테니요.
이젠 뭐 폭풍 성장만 있겠죠?
보다님의 순풍을 받으며 항해하는 배가 그려지네요.
다시 돌아 오신 보다님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 드립니다~^^♡♡♡
진각행님 감사합니다! 후유증이 있네요ㅋㅋ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려구요.
더 위험할 수 있었는데...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성장하고 완성하겠습니다.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