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주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오니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도록 나를 붙드소서.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과 동일한 것은 이들과의 교제 또한 주의 사랑과 은혜로 행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함께 나누며 함께 공유하는 이 자리가 곧 하나님의 나라요 영생의 자리임을 믿습니다.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오니 지혜와 계시의 영을 허락하사 깨닫는 은혜와 더 깊은 복음의 진리를 알게 하시고 오늘 하루가 영생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나의 생각과 행동으로 지은 모든 죄를 주의 보혈로 덮어 정결케 하시고 주님과 더욱 친밀한 자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빌 1:1-11
제목 : 스플랑크스, 곧 주님의 심장을 내게 이식하여 주셨으니 이제는 나의 심장을 주님께 드리나이다.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 나의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축복한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간구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복음을 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복음에 함께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복음에 동참하고 있는 그 일은 곧 착한 일, 선한 일이며 이 일을 빌립보 성도들의 힘과 능력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시작하셨고 이제 마지막 종말의 때까지 함께 하셔서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
빌립보 성도들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이유는 그들이 바울의 마음에 있으며 또한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이나 복음을 증거하는 모든 일에 그들이 함께 고락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얼마나 많이 보고 싶어 하는지는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 주신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들의 사랑이 날마다 더 커지고 그 사랑으로 더 풍성한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되고, 선함과 악함을 분별하여 선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자가 되어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까지 깨끗하고 흠이 없는 모습으로 서게 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시는 의의 열매로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이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때로부터 이 편지를 쓰는 당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동참하여 함께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이 일을 가리켜 착한 일이라고 표현한다.
복음을 위한 일 곧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하셨고 또한 주께서 재림하실 마지막 때까지 함께 하실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한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복음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그들이 항상 자신의 마음에 있다고 한다(7a).
여기서 마음은 헬라어 ‘카르디아’로서 이는 지정의의 좌소이며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신앙적 중심지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 정도로 바울의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생각이 자신의 마음 중심에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매우 소중한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로 그럴 것이 빌립보는 유럽 곧 마게도냐의 관문이자 첫 성으로서 이곳에서 기도처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을 때 자주 옷감 장사 루디아를 만났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할 처소가 필요하다고 할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자신의 집을 내놓으며 기도처로 삼으라고 하였다(행 16:12-15).
이곳이 바로 빌립보 교회의 효시이다.
이런 충성된 이로부터 시작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복음을 듣고 충성스런 이들로 채워졌는데 그것은 복음에 뜨겁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아끼며 사랑하되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그런 사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사랑이었다.
여기서 심장은 헬라어 ‘스플랑크스’로서 심장을 비롯한 사람의 중요한 내장을 종합적으로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사람의 육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심장인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심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라면 이것보다 더 확실한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바울은 자신의 심장을 떼어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수술을 하였다.
그래서 그의 심장에서는 자신의 심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며 고동치고 있는 것이다.
그 심장의 고동소리가 동일하게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서도 들리고 있었으니 이는 복음을 외치는 소리이자 복음을 외치는 바울의 협력자로서 소리 없이 자기들에게 맡겨진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심장을 찢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심장은 곧 생명인데 단순히 육신의 목숨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는 창세전 언약에 근거하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로마군병 하나가 예수님의 가슴을 창으로 찔렀는데 그 때 심장이 파열되어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완전히 죽으셨다.
그 심장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식하여 주신 것이다.
따라서 바울만 아니라 오늘 우리도 그 주님의 심장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고 있는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는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박동하고 있는가?
예수님도 심장이 파열되므로 완전히 죽으셨다.
우리 또한 육신의 심장은 언제든지 멎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심장은 육신의 심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인 영생이다(딛 1:2).
육신의 심장만 이식받아도 말로 형언하지 못할 축복인데 한시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받았다면 이는 가진 것도 없지만 그나마 있는 것이라도 나의 것을 다 내놓아도 아깝지 않아야 하는데 과연 나는 주를 위하여 다 내어 놓을 수 있는가?
주님께서는 나에게 당신의 생명을 파라디도미(내어줌) 하셨기에 나도 주님께 나를 파라디도미 해야 하는데 나는 무엇을 파라디도미 할 수 있나?
사실 예수님의 몸을 파라디도미 한 이들은 많았다.
제일 먼저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파라디도미 하였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빌라도에게 파라디도미 하였으며 빌라도는 로마군병들에게 파라디도미 하였다.
로마군병들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는 일을 함으로써 파라디도미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역사적 사실일 뿐 아무런 생명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생명을 주는 복음이 되는 진정한 파라디도미가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파라디도미 한 것이요 또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파라디도미 한 것이다.
이것을 믿고 인정하는 것이 곧 진리이며 이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이다.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내 안에 고동치고 있는 심장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나에게 이식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요 또한 내 안에 주께서 주신 아들의 생명이 있다.
이 영생을 받은 자가 이제 주를 위하여 나를 내어 놓을 때이다.
나를 내어 놓는다는 것은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은 주님과의 연합(요 6:56)을 의미하며 주님과의 연합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요 6:54)이요 이것이 믿음(요 6:47)이다.
이 믿음을 통하여 영생을 얻게 되고(요 6:47) 영생은 곧 주님을 아는 것(요 17:3)이며 아는 것은 곧 교제와 사귐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주목하여 손으로 만지는 생명의 실재이다(요일 1:1-4).
나는 이런 생명의 실재를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무엇이 믿음이고 무엇이 신앙생활인지 늘 헷갈리고 혼란스러웠다.
많은 이들이 자기의 경험을 말하면서 이것이 진짜 믿음이라고 하면, 그것이 그런가 하면서 그쪽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기의 간증을 통해서 이것이 진짜 신앙생활이라고 하면 그것이 또 그런가 하면서 그쪽으로 달려가곤 하던 자였다.
내 안에 참 복음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주님께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이 복음을 통하여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주셨다.
이 은혜는 창세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신 생명의 약속이다(딤후 1:1,9).
오늘도 주님 주신 이 생명의 약속이 나의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주님의 은혜로 한 것임을 고백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오늘이 8월의 첫 날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여 늘 넘어지는 자이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은 나에게 주신 그 생명의 약속과 주님을 힘입어 아버지의 품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파레시아 때문임을 믿나이다.
나에게 당신의 심장과 생명을 주셔서 여기서부터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복음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나의 파라디도미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이 철천지원수 같은 나를 품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나이까?
이제 나의 스플랑크스 곧 나의 심장을 주님께 드리나이다.
나의 남은 인생을 주의 손에 맡기오니 나를 사용하옵소서.
나는 주님의 것이니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