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나 77년 성서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그가 받은 정규교육의 전부인 시인이 있다. 87년 그가 시집을 냈을 때 시단詩壇에서는 이상 이후 최고의 해체 시인이 나타났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가 쓰는 모든 글은 쓰자마자 출판사들이 우선적으로 실을 정도로 그의 필력은 대단했다. 그가 바로 장정일이다.
쉬인
장정일
솨람들은 당쉰이 육일만에 우주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틀리는 말입니다요. 그렇읍니다요. 당신은 일곱째 날 끔찍한 것을 만드쉈읍니다요.
그렇읍니다요 휴쉭의 칠일째 저녁. 당쉰은 당쉰이 만든 땅덩이를 바라보쉈읍니다요. 마치 된장국같이 천천히 끓고 있는 쇄계! 하늘은 구슈한 기포를 뿜어올리며 붉게 끓어올랐읍지요.
그랬읍니다요. 끔찍한 것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온갖 것들이 쉼히 보기 좋왔고 한없이 화해로왔읍지요. 그 솨쉴을 나이테에게 물어 보쉬지요. 천 년을 솰아남은 히말라야 솸나무들과 쉬베리아의 마가목들이 평화로왔던 그때를 기억할 슈 있읍지요.
그러나 당쉰은 그때 쇄솽을 처음 만들어 보았던 쉰출나기 교본도 없는 난처한 요리솨였읍지요. 끓고 있는 된장국을 바라보며 혹쉬 빠뜨린 게 없을까 두 손 비벼대다가 냅다 마요네즈를 부어 버린 당쉰은 셔튠 요리솨었읍지요.
그래서 저는 만들어졌읍니다요. 빠뜨린 게 없을까 생각한 끝에 저는 만들어졌읍니다요. 갑자기 당신의 돌대가리에서 멋진 쇙각이 떠오른 것이었읍지요 기발하게도 〈나〉를 만들자는 쇙각이 해처럼 떠오른 것이었읍지요.
계획에는 없었지만 나는 최후로 만들어지고 공들여 만들어졌읍니다요. 그렇읍니다요 드디어 나는 만들어졌읍니다요. 그러자 쇄계는 곧바로 슈라장이 되었읍니다요. 제멋되로 펜대를 운전하는 거지 같은 자쉭들이 지랄떨기 쉬작했을 때!
그런데 내 내가 누 누구냐구요? 아아 무 묻지 마쉽쉬요. 으 은유와 푸 풍자를 내뱉으며 처 처 천년을 장슈한 나 나 나는 쉬 쉬 쉬 쉬인입니다요.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기발하고 거침없는 필치筆致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가 이런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학교’라는 틀에 박힌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박기영 시인에게 시를 배웠고, 만 25세에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었으며, 첫 시집인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7권, 소설, 희곡, 서평, 해설, 에세이, 비평, 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표현을 구사하는 그의 글쓰기는 문학에 대한 우리의 관념의 세계에 제시하는 바가 크다. 항간에서는 그의 독학이 창조적인 글쓰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장정일의 자전적인 기록에서는 독학이 그의 콤플렉스였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과대망상과 자기비하가 시계추처럼 늘 오락가락하며 정서불안을 형성해놓고 있던 내게 독학은 정신을 피폐하게 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 사람은 자신의 스승이 있음으로 하여 항상 모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인자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겸손해지는 것이다. 반면 독학자는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여 독학자가 세상에 대하여 키우는 것은 시기와 질투와 원한과 독선과 오만이다.”
장정일이 다양한 장르의 독서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난하여 삼중당 문고를 독파했고, 육체노동자로 일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독서는 그의 시 「삼중당문고」에 나타나 있듯이 삶의 방향과 방식을 틀 지운 원천, 즉 세상에서의 도피처이자 세상과의 싸움 도구였다. 독서를 통해 그는 공부를 했고, 세상에서 정한 잣대인 서류상의 학력이 아니라, 치열하고 적극적인 투쟁으로서의 학력을 갖췄다. 그의 독학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독한 것이었으며, 학력으로서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 그의 시 「삼중당문고」를 보면 알 수 있다.
삼중당 문고
열다섯 살. 하면 떠오르는 삼중당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문고 경제계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간 삼중당문고 급우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 내려간 삼중당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문고 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온 삼중당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 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 집에 숨겨둔 삼중당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워했던 삼중당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문고 고참들의 눈치 보며 읽은 삼중당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 삼중당문고 삼성전자에서 일하며 읽은 삼중당문고 문홍서림에서 일하며 읽은 삼중당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문고 시 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문고 시영물물교환센터에서 일하며 읽은 삼중당문고 박기형 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 집 식탁 위에 올라앉던 삼중당문고 앞산공원 무궁화 휴게실에서 일하며 읽은 삼중당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문고 너무 오래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혹자는 내게 말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읽기를 멈추어야 한다. 철학책도 멀리하고 다른 이의 시도 읽지 말라.” 넣지도 않고 나오기를 바라라는 말인가? 만약 아는 척하지 말라는 뜻이었다면, 또 다른 이의 글쓰기를 모방하지도 흉내 내지도 말라는 뜻이었다면 표현 방법을 바꿔야 할 것이다.
교육이란, 정해진 틀에 따라 많은 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현실의 교육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게다. 삶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것들, 직접 가보지 않고서도 책이나 영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간접 경험들, 뒷골목에서든 대로에서든 부딪고 나서야 알게 되는 모든 것들이 배움을 주는 것들이다. 스펙이 중시되는 현실에서 장정일은 분명 불리한 위치에 있다. 종이 한 장으로 증명되는 스펙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고, 대학원을 나오고 유학을 했다고 해서 그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경험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독학’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배움이 모자란 사람, 무학 등으로 생각하지는 않는가?
물론 독서는 성찰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 또는 배움으로 가는 길은 되지만, 배움 자체가 될 수 없다. 정규교육에서 정한 답안이라는 것이 독서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정일은 독서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아낸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독학자이고, 그의 학력은 인정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학력과 비학력의 경계는 세속에서 말하는 스펙이 아니라 적극적인 배움의 수용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