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丁未) 동안거 결제 법어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잡고 한참 묵묵한 후에 말씀하였다.)
이렇고 이러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 국화 누렇도다.
기왓장 부스러기마다 광명이 나고 진금(眞金)이 문득 빛을 잃으니
누른 머리 부처는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고
푸른 눈 달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도리를 알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지며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삼두육비(三頭六臂)이니 어떠한가?
붉은 노을은 푸른 바다를 뚫고
눈 부신 해는 수미산을 도는 도다.
여기에서 정문(頂門)의 정안(正眼)을 갖추면 대장부의 할 일을 마쳤으니
문득 부처와 조사의 전기대용을 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두 번째 바가지의 더러운 물을 그대들의 머리 위에 뿌리리라.
예부터 조사 가운데 영웅은 임제 스님과 덕산 스님이라고 모두 말하니,
임제 스님과 덕산 스님은 실로 천고에 큰 안목이라, 이는 총림의 정론이다.
그중 덕산 스님 밑에서 두 사람의 큰 제자가 나왔으니, 암두 스님과 설봉 스님이다.
덕산 스님이 어느 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바리때를 들고 법당에 이르렀다.
공양주이던 설봉 스님이 이것을 보고,
“이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들고 어디로 가는가?” 하니,
덕산 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 곧장 방장으로 돌아갔다.
설봉 스님이 이 일을 암두 스님에게 전하니 암두 스님이,
“보잘것없는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나.” 하였다.
덕산 스님이 그 말을 듣고 암두 스님을 불러 묻되,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하니, 암두 스님이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그다음 날 덕산 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 전과 달랐다.
암두 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아는구나.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3년뿐이로다.” 했는데,
과연 3년 후에 돌아가셨다.
이것이 종문의 높고 깊은 법문인 덕산탁발(德山托鉢) 화두이다.
이 공안에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는 덕산 대조사가 어째서 설봉 스님의 말 한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는가,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
둘째는 덕산 스님이 과연 말후구를 몰랐는가, 말후구도 모르고서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넷째는 덕산 스님이 암두 스님의 가르침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수기를 받았을까?
그러면 암두 스님이 덕산 스님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단 말인가?
이 공안은 짐독(鴆毒) 이나 비상(砒霜)과 같아서 이렇거나 저렇거나 상신실명(喪身失命)할 것이니,
부질없는 알음알이로 조사의 뜻을 묻어버리지 말라.
사량분별인 유심경계(有心境界)는 고사하고 허통공적(虛通空寂)한 무심의 깊은 곳에서도
그 참뜻은 절대로 모르는 것이요, 오직 최후의 굳센 관문을 부수어 확철히 크게 깨쳐야만
비로소 옛사람의 입각처(立脚處)를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이 공안을 바로 알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일체 공안을 일시에 다 알게 된다.
그래서 출격 대장부가 되어, 금강 보검을 높이 들고 천하를 횡행하여
죽이고 살리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것이니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닌가?
허당 선사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바리때를 들고 방장으로 돌아간 뜻이 무엇입니까?”
“귀하게 사서 천하게 파느니라.”
“말후구도 모른다고 함은 또 무슨 뜻입니까?”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 조용한 망치를 치느니라.”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귀신은 방아를 찧고 부처는 담장을 뛰어넘느니라.”
“그다음 날 전과 다르고 또한 말후구를 알아 기쁘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칼에 맞은 흉터는 없애기가 쉬우나 악담은 없애기 어려우니라.”
도림 선사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머리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간 뜻이 무엇입니까?”
“빠른 번개에 불이 번쩍거리느니라.”
“말후구도 모른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서로 따라오느니라.”
“어떤 것이 암두의 은밀히 말한 곳입니까?”
“만 년 묵은 소나무가 축융봉(祝融峰)에 서 있느니라.”
“과연 3년 후에 돌아갔으니 참으로 깊은 뜻이 있습니까?”
“옴 마니 다니 훔 바타 로다.”
사운(師云) : 이 두 분 큰스님의 문답이 탁발 화두의 골수를 관철하였으니
실로 고금에 듣기 어려운 바라, 모름지기 간절히 참구(參究)하고 간절히 참구(參究)하여야 한다.
또 설봉 스님이 암자에 살 때 두 중이 와서 인사하니 설봉 스님이 문을 밀고 나오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하니, 그 중들도, “이것이 무엇인가?” 하므로,
설봉 스님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다.
그 중이 이 일을 암두 스님에게 전하니 암두 스님이,
“슬프다, 내가 당초에 설봉 스님에게 말후구를 일러주지 않았음을 후회하나니,
만약 그에게 말후구를 일러주었던들 천하 사람들이 설봉을 어떻게 하지 못하였으리라.” 하였다.
그 중이 법문의 뜻을 묻자. 암두 스님이 말하였다.
“설봉이 비록 나와 한 가지에서 나기는 했어도 나와 한 가지에서 죽지는 않으니,
말후구를 알고 싶다면 다만 이것이다.”
사운(師云) : 이 법문도 또한 덕산탁발 화두와 그 맥이 서로 통하는 것이니,
조상이 영험치 못하니 앙화가 그 자손에게 미친다.
뒤에 운문 스님의 직계자손인 설두 선사가 송하였다.
말후구를 그대를 위해 설하노니 밝음과 어둠이 서로 함께 비치는 때라
한 가지에서 남은 서로 다 알고 한 가지에서 죽지 않음은 모든 것 떨어졌도다.
모두 떨어졌음이여. 석가와 달마도 모름지기 잘 살펴야 하리라.
남북동서 두루 다녀와서 깊은 밤 일천 바위에 쌓인 눈을 함께 보노라.
대중들이여, 이들 공안을 총림에서 흔히들 논란하지마는 산승(山僧)의 견처(見處)로 점검해 보니,
덕산 삼부자가 말후구는 꿈에도 몰랐고 설두의 사족은 지옥에 떨어지기 화살과 같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말후구인가?
(한참 묵묵한 후 말씀하셨다.)
물소가 달을 구경하니 문채가 뿔에서 나고
코끼리가 뇌성에 놀라니 꽃이 이빨 사이에 들어간다.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치고 내려오시다.)
- 성철 스님 - 1967년(丁未) 동안거 결제 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