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호 시인의 「늦가을 장미」는 시든 장미를 통해 인간의 신념과 이념이 시대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변모하고 무력해지는지를 성찰한 작품이다. 이 시는 늦가을의 쓸쓸한 풍경을 배경으로, 한때 활기차고 열정적이었던 신념이 소멸한 후 남겨진 공허함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 시든 장미는 더 이상 아름다움을 지니지 못한 채, 앙상한 가지로만 남아 인간의 집착과 고독한 내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초장에서 “앙상한 가지 위에 아집만 걸려있고”라는 구절은, 시든 장미의 메마른 가지를 통해 생명력을 잃은 존재를 묘사한다. ‘앙상한 가지’는 더 이상 꽃이 피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쇠락한 신념을 상징한다. 이때 남아 있는 ‘아집’은 고집스러운 인간의 자아, 곧 끝까지 붙들고 있는 고집스러운 신념이나 이념을 나타낸다. 이 구절은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해도 놓지 못하는 인간의 집착과, 그것이 결국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강조한다. 앙상한 가지에 걸린 아집은 이미 힘을 잃은 채 허망하게 떠 있는 상태로, 고립된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장의 “최후의 파르티잔 불꽃마저 흔들린다”는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저항과 투쟁의 마지막 흔적을 형상화한다. 여기서 ‘파르티잔’은 저항과 혁명의 상징적 인물로, 한때 강렬했던 열정과 신념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불꽃마저 흔들린다’는 것은 그 열정이 이제는 거의 꺼져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불꽃은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마저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표현한다. 이는 한때 타오르던 이념이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면서, 인간이 붙들고 있던 저항의 정신도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장의 “사람은 어디로 가고 이념 혼자 졸고 있나”라는 구절은, 이 시에서 그려진 상실감과 허무함의 정점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남아 있는 것은 그들이 붙들고 있던 이념뿐이지만, 그 이념마저도 이제는 ‘졸고 있다’. ‘졸고 있나’라는 표현은 이념이 더 이상 활기를 띠지 못하고 무력해져 있음을 상징한다. 한때 강렬했던 이념이 이제는 그 힘을 잃고, 그 어떤 행동이나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잠들어 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력함과 허무함으로 가득 차 있다. 장미는 더 이상 그 화려함을 지니지 못하고, 인간의 신념과 이념 역시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불꽃처럼 타오르던 저항과 신념은 이제 사라졌고, 남은 것은 그저 지나간 시대의 잔재에 불과하다. 김달호 시인은 늦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통해, 이념과 신념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쇠락해가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념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발생하는 상실감과 공허함이 강렬하게 전달된다. 「늦가을 장미」는 개인과 사회적 이념이 어떻게 얽히고,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무력하게 변해가는지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늦가을 장미’라는 상징적 이미지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이념과 신념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남겨진 고독과 공허함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김달호의 이 시는 인간의 신념과 생명이 맞이하는 허무한 순간을 통찰하며, 시대와 함께 쇠퇴해가는 이념의 모습을 깊이 성찰한 작품이다. (리뷰: 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