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교 |
강의과목 |
소계 |
계 (%) |
연세대학교 |
발전사회학 |
31 |
116 (37.1) |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 |
29 | ||
동아시아의 대안적 근대성 |
56 | ||
인천대학교 |
국제비즈니스개론 |
46 |
109 (34.8) |
한국의 개발경험과 국제개발협력 |
38 | ||
중국경제론 |
25 | ||
한림대학교 |
정부부패론, 비교정치론 |
51 |
51 (16.3)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
복지사회론 |
37 |
37 (11.8) |
합계 |
313 |
313 (100.0) |
2. 대학생 조사결과
2.1.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
설문은 우선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하였다. “응답자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이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0 % 에 가까운 184명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이라고 답했다 (58.8 %). 이에 반해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 건립’이라고 답한 사람은 98명이었고 (31.3 %), ‘1919년 3.1 운동’이라고 답한 사람도 15명이었다 (4.8 %). 건국이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응답도 16명이나 되었다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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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응답자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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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9년 3.1운동 15 명 ( 4.8 %)
2)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 건립 98 명 (31.3 %)
3)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184 명 (58.8 %)
4) 모르겠다 16 명 (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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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313 명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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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구성하는 3대 요소 즉 영토, 국민, 주권을 전혀 갖추지 못하였음은 물론 외국의 승인도 얻지 못한 ‘상해임시정부건립’을 건국이라고 보는 응답이 30 % 대를 넘고 있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최근 ‘1919년 건국설’을 집중적으로 유포시키고 있는 집단의 현대사 왜곡 노력이 대학생들 사이에 상당히 퍼져 있음을 반증하는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2.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사실
다음에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대학생들의 평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다음 진술 중 응답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총 12가지의 평가를 제시하고 동의하는 항목 모두에 복수로 응답하도록 했다. 12가지 응답 중 처음 6가지는 부정적인 평가, 그리고 나머지 6가지는 긍정적인 평가다. 응답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
[2]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다음 진술 중 응답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복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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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군정의 꼭두각시 99 개 (31.6 %)
2) 정읍발언으로 분단을 고착시킨 원흉 70 개 (22.4 %)
3)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무력화하여 친일파를 비호한 사람 163 개 (52.1 %)
4)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장 먼저 도망친 사람 131 개 (41.9 %)
5) 3.15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 236 개 (75.4 %)
6) 4.19 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한 독재자 130 개 (41.5 %)
-------------------------------------------------------------------------
부정적인 응답 소계 (복수응답) 829 개 (264.9 %)
-------------------------------------------------------------------------
7) 미주의 항일운동은 물론 상해임시정부를 이끈 독립투사 58 개 (18.5 %)
8) 좌파 및 북한정권의 방해를 물리치고 UN의 지지를 통해 대한민국을 건국한 대통령
110 개 (35.1 %)
9) 농지개혁을 성공적으로 실시한 지도자 48 개 (15.3 %)
10) 6.25 남침전쟁을 막아내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끈 안보 대통령 65 개 (20.8 %)
11) 교육을 보급하여 경제발전의 씨앗을 뿌린 대통령 49 개 (15.7 %)
12) 국민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하야한 용기 있는 지도자 19 개 ( 6.1 %)
-------------------------------------------------------------------------
긍정적인 응답 소계 (복수응답) 349 개 (111.5 %)
==========================================================================
전체 합계 (복수응답) 1,178 개 (3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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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는 313 명 기준.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12 개의 진술에 313명이 중복으로 응답한 결과 총 1,178개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응답의 분포를 313명을 기준으로 비율을 구한 결과가 위의 표이다. 대략 응답자 한 사람당 평균 3.7개의 복수응답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376.5 %). 이 표를 보면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를 압도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부정적인 평가의 합은 829개로 응답자 한 사람 당 부정적인 응답을 약 2.6개 선택했다 (264.9 %). 긍정적인 평가의 합은 349개로 응답자 한 사람 당 긍정적인 응답을 약 1.1개 선택했다 (111.5 %). 그러므로 부정적인 응답이 긍정적인 응답보다 약 2.5배 많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부정적인 응답 6개를 중심으로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자. 부정적인 응답 가운데 가장 높은 동의를 받은 응답은 이승만이 ‘3.15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으로 313명 기준으로 75.4 % 가 동의했다. 이어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무력화하여 친일파를 비호한 사람’이 52.1 %,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장 먼저 도망친 사람’ 및 ‘4.19 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한 독재자’가 각각 41.9 % 및 41.5 % 의 동의를 얻었다. 그리고 ‘미군정의 꼭두각시’가 31.6 %, ‘정읍 발언으로 분단을 고착시킨 원흉’이 22.4 % 의 동의를 얻었다.
다음, 긍정적인 응답 6개를 중심으로 결과를 살펴보자. 긍정적인 응답 가운데 가장 높은 동의를 받은 응답은 이승만이 ‘좌파 및 북한정권의 방해를 물리치고 UN의 지지를 통해 대한민국을 건국한 대통령’으로 313명 기준으로 35.1 % 의 동의를 얻었다. 이어서 ‘6.25 남침전쟁을 막아내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끈 안보 대통령’이 20.8 %, ‘미주의 항일운동은 물론 상해임시정부를 이끈 독립투사’가 18.5 %, ‘교육을 보급하여 경제발전의 씨앗을 뿌린 대통령’이 15.7 %, ‘농지개혁을 성공적으로 실시한 지도자’가 15.3 %, ‘국민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하야한 용기 있는 지도자’가 6.1 % 의 동의를 각각 얻었다.
이와 같은 응답 결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추가로 실시하였다. 12개의 진술 가운데 처음 6개 즉 1)부터 6)까지는 부정적인 의견이고, 나머지 6개 즉 7)부터 12)까지는 긍정적인 의견이다. 응답자가 부정적인 의견 하나에 동의하면 -1 을 그리고 긍정적인 의견 하나에 동의하면 +1 의 값을 주어 응답자 각자가 복수로 응답한 결과를 모두 합했다. 그렇게 하면 특정한 응답자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혹은 긍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정도는 어떤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특정한 응답자가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인 진술 6개에 모두 동의하고 부정적인 진술 6개에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는 +6 점을 갖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6 점을 갖게 된다. 만약 부정적인 응답에 두 번 동의하고 (-2), 긍정적인 응답에 한 번 동의하면 (+1) 그 응답자는 그 결과를 모두 합해 결국 -1 의 값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렇게 만들어진 척도는 가장 부정적인 값 -6 부터, 긍정과 부정이 균현을 이룬 중립적인 값 0, 그리고 가장 긍정적인 값 +6 사이의 값을 갖게 된다. 이를 정리한 결과가 다음의 표와 그래프이다.
점수 |
-6 |
-5 |
-4 |
-3 |
-2 |
-1 |
0 |
1 |
2 |
3 |
4 |
5 |
6 |
계 |
빈도 |
11 |
12 |
28 |
47 |
80 |
47 |
43 |
14 |
14 |
10 |
4 |
0 |
3 |
313 |
(평균: -1.53, 표준편차: 2.21, 최소값: -6, 최대값: +6)
이 척도의 분포를 보여주는 막대그래프는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방향에 치우쳐 있음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2점이 가장 많은 80명이고, -1점과 -3점이 각각 47명으로 다음으로 많다. 그리고 0점 즉 긍정과 부정이 서로 상쇄되는 경우가 다음으로 많아 43명이다. 나머지 상대적으로 빈도가 적은 경우들도 부정적인 - 값을 가진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설문조사 결과는 대학생들 사이에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평가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평가인가? 예컨대,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 평가 가운데 가장 높은 75.4 % 의 동의를 받은 ‘3.15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의 경우를 따져보자. 3.15 부정선거의 총체적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이승만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주장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3.15 선거에서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인 이승만이 무투표로 당선된 사실을 아는 대학생은 얼마나 될까? 당시 경쟁 후보였던 조병옥이 선거유세 도중 병으로 사망하였기 때문에 이승만은 경쟁자 없이 무투표 당선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3.15 부정선거는 집권여당의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였다. 그런데 설문에 응한 대학생들은 이승만을 ‘3.15 부정선거로 당선된 사람’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조사 결과는 그동안 ‘역사교육이 문제고, 언론환경이 문제’라는 주장이 너무도 사실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머지 동의를 많이 받은 부정적인 평가 또한 같은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예컨대, 이승만이 ‘미군정의 꼭두각시’라는 진술 역시 전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진술이다. 해방이 되어 남한에 들어 온 미군정은 소련과 협의하여 한반도에 신탁통치를 시행하고자 했다. 이 신탁통치에 이승만이 결사적으로 반대하자 미군정은 이승만을 따돌리고 여운형/김규식 등을 파트너로 삼아 좌우합작을 추진했다. 1946년 내내 반공을 주장한 이승만은 미군정으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이승만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심지어 미국을 방문해 미국의 고위층 인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이기까지 했다. 마침내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1947년 3월 공산주의와의 대결 즉 ‘냉전’을 선언하면서부터 이승만의 입지는 비로소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신탁통치 및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미 군정장관 하지와 엄청난 갈등을 빚은 이승만을 ‘미군정의 꼭두각시’라고 보는 대학생들의 인식은 정말이지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황당한 인식이다. 다시 한 번 ‘역사교육이 문제고, 언론환경이 문제’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같은 문제는 다른 부정적인 의견에서도 반복된다. ‘정읍발언으로 분단을 고착시킨 원흉’은 북한이 당시 이미 사실상 정부를 구축하고 있었던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무시하는 객관적이지 못한 평가이다. 1946년 6월의 정읍발언 이전인 1946년 2월 이미 북한은 사실상의 국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이어서 3월에는 정식 국가가 출범한 이후에나 가능한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그러므로 분단의 고착은 이승만이 정읍발언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이 일방적으로 국가를 먼저 수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무력화하여 친일파를 비호한 사람’이라는 비난 또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처한 입장을 입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의견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승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시 이미 정치적으로 사망한 친일파를 정리하는 문제보다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부상하고 있던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기 때문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장 먼저 도망간 사람’이라는 비난 또한 마찬가지다. 기습 남침으로 서울이 함락되어 대통령이 거처하고 집무하는 경무대가 적의 수중으로 넘어갈 판인데,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거기에 남아 적의 포로로 잡히거나 전사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무사히 후퇴한 덕분에 우리는 나중에 반격을 할 수 있었고 나아가서 통일을 향해 북한에까지 진격도 할 수 있었던 사실을 왜 외면하는가?
‘4.19 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한 독재자’라는 비난 또한 마찬가지다. 이승만 대통령이 4.19 발발에 대한 정치적 및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위대에 대한 발포는 당시 내무장관 최인규의 독단적 판단이라는 사법당국의 재판결과에 따라 이승만은 법적 책임을 면하였다. 그리고 그는 국민의 요구에 따라 하야했다. 도대체 세상의 어떤 독재자가 국민이 물러나란다고 물러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는 독재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승만은 오히려 ‘국민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하야한 용기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2.3.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사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대학생들의 평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방식으로 문항을 구성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다음 진술 중 응답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총 12가지의 평가를 제시하고 동의하는 항목 모두에 복수로 응답하도록 했다. 12가지 응답 중 처음 6가지는 부정적인 평가, 그리고 나머지 6가지는 긍정적인 평가이다. 응답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
[3]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다음 진술 중 응답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복수 응답-필수)
-----------------------------------------------------------------------------
1)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한 친일파 129 개 (41.2 %)
2)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된 사이비 정치인 46 개 (14.7 %)
3)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하여 정신대/위안부 문제를 외면한
사람
148 개 (47.3 %)
4) 정경유착으로 재벌을 살찌우고 노동자를 착취한 독재자 140 개 (44.7 %)
5) 반공을 국시로 삼아 인권을 억압하고 유신을 하여 장기집권을 도모한 독재자
232 개 (74.1 %)
6) 여대생을 술자리로 부르는 등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 81 개 (25.9 %)
-----------------------------------------------------------------------------
부정적인 응답 소계 (복수응답) 776 개 (247.9 %)
-----------------------------------------------------------------------------
7) 수출주도 경제발전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하고 중산층을 양산한 부국 대통령
200 개 (63.9 %)
8)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촌은 물론 도시와 공장의 근로의욕을 북돋운 인물 169 개 (54.0 %)
9) 서독, 월남, 중동 진출을 통해 국력을 일으킨 대통령 108 개 (34.5 %)
10) 김일성과의 남북대결을 역전시키고 자주국방을 이룩한 안보 대통령 58 개 (18.5 %)
11) 산림녹화 및 환경보존 등의 정책을 추진하여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활용한
대통령
48
개 (15.3 %)
12) 과학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며 방위산업을 일으킨 과학 대통 44 개 (14.1 %)
-----------------------------------------------------------------------------
긍정적인 응답 소계 (복수응답) 627 개 (200.3 %)
=============================================================================
합계 (복수응답) 1,403 개 (448.2 %)
-----------------------------------------------------------------------------
*) % 는 313명 기준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12 개의 진술에 313명이 중복응답을 한 결과 총 1,403개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응답의 분포를 313명을 기준으로 비율을 구한 결과가 위의 표이다. 대략 응답자 한 사람 당 평균 4.5개의 복수응답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448.2 %). 이 표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 역시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보다 우세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와 비교하여 현저히 약하다. 부정적인 평가의 합은 776개로 응답자 한 사람 당 부정적인 응답을 약 2.5개 선택했다 (247.9 %). 긍정적인 평가의 합은 627개로 응답자 한 사람 당 약 2.0개를 선택했다 (200.3 %). 그러므로 부정적인 응답이 긍정적인 응답보다 약 1.2배 많음을 알 수 있다. 이승만의 2.5배에 비하면, 박정희의 1.2배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평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부정적인 응답 6개를 중심으로 결과를 살펴보자. 부정적인 응답 가운데 가장 높은 동의를 받은 응답은 박정희가 ‘반공을 국시로 삼아 인권을 억압하고 유신을 하여 장기집권을 도모한 독재자’라는 응답으로 313명 기준으로 74.1 % 가 동의했다. 다음으로는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하여 정신대/위안부 문제를 외면한 사람’이 47.3 %, ‘정경유착으로 재벌을 살찌우고 노동자를 착취한 독재자’가 44.7 %,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한 친일파’가 41.2 % 의 동의를 각각 받았다. 여기에 더해 ‘여대생을 술자리로 부르는 등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 25.9 %,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된 사이비 정치인’이 14.7 % 의 동의를 얻었다.
다음에는, 긍정적인 응답 6개를 중심으로 결과를 살펴보자. 긍정적인 응답 가운데 가장 높은 동의를 받은 응답은 ‘수출주도 경제발전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하고 중산층을 양산한 부국 대통령’로 313명을 기준으로 63.9 % 의 동의를 받았다. 이어서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촌은 물론 도시와 공장의 근로의욕을 북돋운 인물’이 54.0 %, ‘서독, 월남, 중동 진출을 통해 국력을 일으킨 대통령’이 34.5 % 의 동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김일성과의 남북대결을 역전시키고 자주국방을 이룩한 안보 대통령’이 18.5 %, ‘산림녹화 및 환경보존 등의 정책을 추진하여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활용한 대통령’이 15.3 %, ‘과학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며 방위산업을 일으킨 과학 대통령’이 14.1 % 의 동의를 받았다.
이와 같은 응답 결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앞에서 제시한 이승만과 같은 방법으로 분석을 추가로 실시하였다.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경우도 이렇게 만들어진 척도는 가장 부정적인 값 -6 부터, 긍정과 부정이 균현을 이룬 중립적인 값 0, 그리고 가장 긍정적인 값 +6 사이의 값을 갖게 된다. 이를 정리한 결과가 다음의 표와 그래프이다.
점수
-6 |
-5 |
-4 |
-3 |
-2 |
-1 |
0 |
1 |
2 |
3 |
4 |
5 |
6 |
계 | |
빈도 |
2 |
9 |
16 |
28 |
48 |
57 |
62 |
34 |
24 |
16 |
10 |
3 |
4 |
313 |
|
(평균: -0.48, 표준편차: 2.29, 최소값: -6, 최대값: +6)
이 척도의 분포를 보여주는 막대그래프 역시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다소 치우쳐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래프는 우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균형을 이루는 0 점의 빈도가 가장 많아 62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다음으로는 부정적인 평가인 -1 점이 57명 그리고 -2 점이 48명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긍정과 부정이 대충 균형을 이루면서 분포한다. 예컨대 +1 점이 34명으로 그 다음 순서를 차지한 하고, 이어서는 -3 점이 28명, 그리고 다시 +2 점이 24명 등과 같이 교차하면서 분포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대학생들 사이에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이승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가운데, 부정적인 평가가 다소 우세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평가는 역사적 사실에 얼마나 부합하는 평가인가? 예컨대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평가 가운데 가장 높은 74.1 % 의 동의를 얻은 ‘반공을 국시로 삼아 인권을 억압하고 유신을 하여 장기집권을 도모한 독재자’의 경우를 따져보자. 우선 당시 고조되고 있던 남북대결에 대비하여 총력체제인 유신을 단행한 일은 국가의 운명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당시 전개되던 국제환경의 변화 즉 닉슨독트린으로 인한 주한미군의 철수 및 미국과 중공의 수교에 따른 대만의 고립과 월남의 패망 등과 같은 변수는 물론이고, 청와대까지 침입한 1.21 무장공비 사건과 미군 군함 푸에블로호를 북한이 납치하고 미군 정찰기 EC121를 북한이 격추시키는 등과 같은 안보불안이 대통령에게 유신과 같은 비상체제를 추동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선택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가를 객관적으로 따져 보는 작업을 마쳐야만 답을 구할 수 있다.1) 첫째, 그와 같은 상황변화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유신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둘째, 그와 같은 상황변화에 대한 인식이 올바른 것이었기 때문에 유신을 단행했어야만 했다. 셋째, 그와 같은 상황변화에 대한 인식이 비록 올바른 것이라 해도 여전히 유신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과연 이 세 가지 대안적 판단 가운데 무엇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해석인가?
이 글은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글이 아니다. 다만 이 글은 10월 유신 나아가서 인권탄압이나 장기집권과 같은 쟁점이 매우 논쟁적인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응답한 대학생들이 과연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설문의 응답을 선택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응답자인 대학생들은 성장하면서 노출된 교육과정은 물론 언론이나 인터넷 환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강요된 단순하고 사려 깊지 못한 평가를 별 생각 없이 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10월 유신이라는 매우 복합적인 역사적 쟁점을 입체적으로 접근하며 심사숙고한 결과로 이러한 응답이 나온 것이 아닐 것이란 추론이다.
나머지 동의를 많이 받은 부정적인 평가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예컨대, 박정희가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하여 정신대/위안부 문제를 외면한 사람’이라는 응답 역시 역사적인 사실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응답이다. 왜냐하면 정신대/위안부 문제는 김영삼 정부 들어오면서부터 문제가 제기된 쟁점이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던 시기에는 정신대/위안부 당사자들을 포함하여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문제로 인식되지도 않은 쟁점을 근거로 박정희의 외교를 굴욕외교라고 치부하는 일은 정말이지 반역사적인 인식이다.
또한 ‘정경유착으로 재벌을 살찌우고 노동자를 착취한 독재자’라는 응답도 동일한 문제를 드러낸다. 당시 정치는 경제가 정치논리 즉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도록 경제를 정치로부터 철저히 분리하는 역할을 제공했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될 수 있었다는 해석이 오늘날 학계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다시 말해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면서 오히려 둘 사이엔 협조적인 시너지가 나타날 수 있었다. 나아가서, 박정희 시대는 노동자를 착취한 시대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물론이고 농민까지도 중산층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층의 상승이동 사다리가 활짝 열려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는 기업과 노동자가 ‘동반성장’ 하던 시대였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한 친일파’라는 응답 역시 식민지 시대에 군인이 되기 위해 일본의 군사학교를 다닌 것을 두고 친일파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동일하게 일본 육사를 졸업한 장개석은 물론 지청천을 두고 누구도 그들이 친일파였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박정희에게만 낙인을 찍고 있다.
나아가서 보통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여대생을 술자리로 부르는 등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정희는 서민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또한 도덕적으로 청렴하여 서거 후 단 한 푼의 부정한 돈도 발견되지 않은 지도자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된 사이비 정치인’이라는 평가와는 정반대로 박정희는 영호남 농촌의 지지로 도시의 지지를 받던 윤보선 후보를 선거에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 대통령이다. ‘여촌야도’(與村野都)가 당시 선거의 일반적인 구도였다.
2.4.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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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 대한 진술 중 응답자가 보기에 맞는 것은? (복수 응답-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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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대전의 승전국 동맹 공산국가 소련을 향해 1947년 3월 ‘냉전’을 선언한
대통령
107 개 (34.2 %)
2)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을 참전시킨 대통령 110 개 (35.1 %)
3) 6.25 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하자 3차 대전으로의 확전을 경계한 대통령 65 개 (20.8 %)
4) 6.25 전쟁이 끝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대통령 89 개 (28.4 %)
5) 모르겠다. 131 개 (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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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복수응답) 502 개 (1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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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는 313명 기준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 관한 5개의 진술에 313명이 중복응답을 한 결과 총 502개의 응답이 확인되었다. 이 응답의 분포를 313 명을 기준으로 비율을 구한 결과가 위의 표이다. 이 가운데 ‘모르겠다’를 제외한 4개의 응답 가운데 역사적 사실과 맞는 것은 1), 2), 3)의 응답이다. 이 세 개의 응답 가운데 한 가지라도 맞는 응답에 동의한 학생을 모두 합하면 응답자 313명의 90.1 % 를 차지한다. 그러나 맞는 응답을 모두 고른 즉 1), 2), 3)에 모두 동의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4)의 응답은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응답이다. 왜냐하면 ‘6.25 전쟁이 끝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응답에 동의한 학생이 전체 응답자의 28.4 % 에 이르고 있다. 또한 특기할 사항은 ‘모르겠다’ 를 선택한 학생이 전체의 41.9 % 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응답의 분포는 앞에서 지적한 ‘역사교육이 문제고, 언론환경이 문제’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응답의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5. 이승만, 박정희, 트루먼에 대한 종합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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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종합적 평가 가운데 응답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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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은 별로 없고 과가 절대적이다 54 명 (17.3 %)
2) 공보다 과가 많다 133 명 (42.5 %)
3) 공과 과가 반반이다 69 명 (22.0 %)
4) 과보다 공이 많다 24 명 ( 7.7 %)
5) 과는 별로 없고 공이 절대적이다 5 명 ( 1.6 %)
6) 모르겠다 27 명 ( 8.6 %)
7) 무응답 1 명 ( 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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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313 명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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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부정적인 응답 즉 ‘공은 별로 없고 과가 절대적이다’가 54명으로 17.3 %, 그리고 ‘공보다 과가 많다’가 133명으로 42.5 % 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 두 범주를 합한 부정적인 평가의 합계는 187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59.8 % 에 이른다. 반면에 긍정적인 응답 즉 ‘과보다 공이 많다’는 24명으로 7.7 %, 그리고 ‘과는 별로 없고 공이 절대적이다’는 5명으로 1.6 % 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 두 범주를 합한 긍정적인 평가의 합계는 29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9.3 % 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승만 대통령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한편, ‘공과 과가 반반’이라는 중립적인 응답은 69명으로 전체의 22.0 % 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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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종합적 평가 가운데 응답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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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은 별로 없고 과가 절대적이다 20 명 ( 6.4 %)
2) 공보다 과가 많다 75 명 (24.0 %)
3) 공과 과가 반반이다 129 명 (41.2 %)
4) 과보다 공이 많다 66 명 (21.1 %)
5) 과는 별로 없고 공이 절대적이다 10 명 ( 3.2 %)
6) 모르겠다 12 명 ( 3.8 %)
7) 무응답 1 명 ( 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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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313 명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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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부정적인 응답 즉 ‘공은 별로 없고 과가 절대적이다’가 20명으로 6.4 %, 그리고 ‘공보다 과가 많다’가 75명으로 24.0 % 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 두 범주를 합한 부정적인 평가의 합계는 95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30.4 % 를 차지한다. 반면에 긍정적인 응답 즉 ‘과보다 공이 많다’는 66명으로 21.1 %, 그리고 ‘과는 별로 없고 공이 절대적이다’는 10명으로 3.2 % 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 두 범주를 합한 긍정적인 평가의 합계는 76명으로 24.3 % 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응답이 긍정적인 응답보다 조금 많을 뿐이다. 이승만 대통령 보다는 박정희 대통령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결과이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 ‘공과 과가 반반’이라는 응답이 129명 즉 전체의 41.2 % 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이 응답에 동의하고 있는 모습도 흥미로운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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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한 일을 응답자가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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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은 별로 없고 과가 절대적이다 10 명 ( 3.2 %)
2) 공보다 과가 많다 27 명 ( 8.6 %)
3) 공과 과가 반반이다 63 명 (20.2 %)
4) 과보다 공이 많다 25 명 ( 8.0 %)
5) 과는 별로 없고 공이 절대적이다 7 명 ( 2.2 %)
6) 모르겠다 177 명 (56.5 %)
7) 무응답 4 명 (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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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313 명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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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한 일에 대한 종합적 평가에서는 ‘모르겠다’는 응답이 177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56.5 %). 또한 긍정과 부정 어느 쪽이건 합해서 10 % 내외의 응답을 보일 뿐이다. 이 결과는 대학생들이 전반적으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란 인물을 잘 모를뿐더러 그가 대한민국에 제공한 업적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 응답자의 의견 형성 시기와 영향을 미친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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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번 설문조사에서 밝힌 본인의 의견이 형성된 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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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생이 되어서 141 명 (45.0 %)
2)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124 명 (39.6 %)
3) 중학교 재학시절에 15 명 ( 4.8 %)
4) 초등학교 재학시절에 3 명 ( 1.0 %)
5) 모르겠다 30 명 ( 9.6 %)
6) 무응답 4 명 (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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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일부 복수응답) 317 명 (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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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는 313명 기준
응답자 313명이 중복으로 응답한 경우를 모두 포함해 응답한 전체 숫자는 317명이었다. 이 가운데 ‘대학생이 되어서’라고 응답한 사람은 총 141명인데, 이를 313명 기준으로 비율을 구하면 45.0 % 이다. ‘고등학교 재학시절에’라고 응답한 사람은 총 124명인데, 마찬가지 방법으로 비율을 구하면 39.6 % 이다. 따라서 응답한 대학생들의 현대사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대학 진학 후 혹은 그 직전인 고등학생 시절에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재학시절에’라고 응답한 사람은 15명으로 4.8 %, ‘초등학교 재학시절에’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3명으로 1.0 % 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르겠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30 명으로 9.6 % 이고, 문항에 대해 전혀 응답하지 않은 사람은 4명으로 1.3 % 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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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번 설문조사에서 밝힌 본의의 의견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집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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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형제 등 가족 36 명 (11.5 %)
2) 중고교 시절의 교사 75 명 (24.0 %)
3) 대학생이 된 후 수강한 과목의 교수 47 명 (15.0 %)
4) 가까운 친구들 19 명 ( 6.1 %)
5) 신문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보도 64 명 (20.4 %)
6) 인터넷 매체를 통한 정보 94 명 (30.0 %)
7) 관련된 주제에 관한 독자적 연구 (문헌연구 등) 33 명 (10.5 %)
8) 모르겠다 39 명 (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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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일부 복수응답) 407 명 (1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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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는 313명 기준
응답자는 313 명이 중복으로 응답한 경우를 포함해 응답자 전체 숫자는 407명이었다. 이 가운데 대학생들의 의견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우는 ‘인터넷 매체를 통한 정보’로 94명이고 (30.0 %), 그에 이어 ‘중고교 시절의 교사’가 75명 (24.0 %), ‘신문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보도’가 64명이었다 (20.4 %). 그 다음으로는 ‘대학생이 되어 수강한 과목의 교수’가 47명 (15.0 %), ‘부모형제 등 가족’이 36명 (11.5 %), ‘관련된 주제에 대한 독자적 연구’가 33명 (10.5 %) 등의 순서였다. 가장 영향을 작게 미친 집단은 ‘가까운 친구들’로 19명이었다 (6.1 %). ‘모르겠다’는 응답도 39명이나 되었다 (12.5 %).
이러한 응답의 결과는 앞에서 이승만, 박정희, 트루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문제를 항목 별로 깊이 있게 검토할 때 지적한 문제 즉 ‘역사교육이 문제고, 언론환경이 문제’라는 지적이 사실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역사교육과 인터넷을 포함한 언론환경이 대학생들의 현대사 인식을 부정적으로 유도하고 있음을 이 설문결과가 명백히 뒷받침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터넷’ (30.0 %), ‘교사’ (24.0 %), ‘매스미디어’ (20.4 %) 라는 세 가지 소스의 영향력을 합치면 무려 74.4 % 라는 영향력을 이 세 항목이 행사하고 있다. 이는 ‘부모형제 등 가족’이 미치는 영향 11.5 % 보다 무려 7 배에 가까운 영향력이다.
4. 맺는말
대학생 3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우리의 젊은이들이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동상을 건립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살펴 본 건국·호국 대통령 이승만 그리고 부국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대학생들의 평가가 이를 확인해 준다. 또한 우리나라를 6.25 전쟁에서 구해준 동맹국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예 잘 알지 못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유라시아 대륙이 온통 공산주의로 붉게 물들 때 한반도 남쪽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를 온갖 역경을 뚫고 세우고 또한 6.25 남침 전쟁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이승만 대통령을 우리 대학생들은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비록 그가 말년에 실수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실수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에게 제공한 공로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젊은 대학생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대학생들의 평가가 이승만 대통령보다는 다소 우호적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부정적인 경향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5천년 가난을 물리치고 경제를 건설하여 마침내는 북한을 압도하는 국력을 일궈내며 민족중흥을 실현하였다. 물질적은 번영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자극으로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대통령이 바로 박정희다. 박정희 또한 잘못이 없는 완벽한 지도자는 아니지만, 그의 기여 덕분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서 모범적인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거쳐 이제는 선진국 문턱까지 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 또한 젊은 대학생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
무엇이 젊은 대학생들에게 이런 의식을 갖게 만들었는가? 이 조사 결과는 바로 ‘교육이 문제고, 언론이 문제’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 환경이 바로 ‘인터넷’ ‘교사’ 그리고 ‘매스미디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부정적인 인식이 입력되는 시기가 ‘대학생이 되어서’와 그 바로 전 단계인 ‘고등학교 재학시절’이라는 사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줄기차게 문제가 제기되어 온 ‘교육과 언론’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법원에 의해 ‘법외노조’라는 판결을 받은 전교조의 활동을 제거하여 우리 젊은이들이 고등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부도덕한 국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부하는 현대사 교과서를 적절히 수정하여 있는 그대로의 역사, 즉 자랑스러운 현대사를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매스미디어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대한민국을 근거 없이 비방하는 악의적인 여론이 퍼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감시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효순·미선 사건’은 물론이고 ‘광우병 사태’ 그리고 ‘천안함 사건’ 등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경우다. 다시는 이런 근거 없는 대한민국 폄훼가 우리사회에 똬리를 틀고 젊은 세대의 영혼을 갈아먹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 정부는 물론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각각의 가정에서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부모가 소통하며 확인하여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가와 가정이 힘을 합해야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그리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다. 물론
‘교육’이나 ‘언론’ 그리고 ‘인터넷’이 이를 비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위대한 지도자 이승만, 트루먼, 박정희 세 사람의 동상이 건립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록: 설문의 배경설명과 응답자의 인구사회적 배경
대한민국 현대사 관련 설문조사 (대학생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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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문조사는 연세대 류석춘 교수(사회학)가 최근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비롯한 현대사의 논쟁점에 관해 대학생 여러분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실시하는 조사입니다. 조사시점 현재 응답자가 가진 생각을 기탄없이 제시해 주십시오. 결과는 통계적으로만 처리될 뿐, 개인적인 사항은 절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해당되는 선택지에 동그라미로 표시하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의: 연세대 위당관 510호, 조교 유지윤 010 4306 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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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응답자의 성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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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 169 명 (54.0 %)
2) 여자 144 명 (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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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313 명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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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남자인 경우 군복무 여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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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필 41 명 (24.2 %)
2) 군필 120 명 (71.0 %)
3) 면제 6 명 ( 3.6 %)
4) 무응답 2 명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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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남자 169 명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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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응답자의 학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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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학년 44 명 (14.1 %)
2) 2학년 75 명 (24.0 %)
3) 3학년 99 명 (31.6 %)
4) 4학년 93 명 (29.7 %)
5) 무응답 2 명 ( 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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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313 명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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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응답자의 학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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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학번 43 명 (13.7 %)
2) 15학번 44 명 (14.1 %)
3) 14학번 47 명 (15.1 %)
4) 13학번 69 명 (22.0 %)
5) 12학번 53 명 (16.9 %)
6) 11학번 29 명 ( 9.3 %)
7) 10학번 혹은 그 이전 28 명 (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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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313 명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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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응답자의 전공계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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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연과학계열 21 명 ( 6.7 %)
2) 인문사회과학계열 285 명 (91.0 %)
3) 예체능계열 4 명 ( 1.3 %)
4) 무응답 3 명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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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313 명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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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춘근, 2016, “10월 유신의 국제정치학적 해석” 박정희연구회 발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