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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무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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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쉼터 스크랩 봄비 이은하
체어맨 추천 0 조회 100 17.02.05 14: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봄비 - 이은하.

 

 

 

봄비 - 이희우 작사 김희갑 작곡 이은하 노래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 밖을 보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이은하는 1961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이배영은 유명한 아코디언 연주자였고 그녀는 약 5세부터 아버지를 따라 음악학원에 다니며 트로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무대에 출연하면서 음악적 능력을 길렀고 아버지로 부터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허스키한 목소리였던 이은하는 소울로 전향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닐 무렵, 1973년에 가수로 데뷔하였다. 당시 무명 가수였던 이은하는 밤무대나 나이트 클럽에 나가서 노래를 불러야만 했고 1975년에 방송상 엄정한 규제때문에 당시 미성년자는 무대에 출연할 수 없었으므로 1958년생으로 3살 올려 등록하였으며 나이를 속일려고 일부러 화장을 짙게 하면서 20대 아가씨로 위장하여 가수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첫 히트곡이 된 1976년에 발표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태정 사/원희명 곡)이 처음으로 유행세를 타고 난 이후 1978년에 유승엽이 작곡하고 작사한 <밤차> 를 부를 때 찌르기 춤을 선보여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디스코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1979년에 발표하고 본인이 처음으로 작사한 <아리송해>(이은하 작사/이승대 작곡)가 대박을 떠뜨렸고 그 해에 KBS 가수왕상을 수상하였다. 그런데 이 곡으로 송해라는 이름이 들어가 송해에게 혼났다는 얘기도 있다. 파워풀한 가창력을 인정받았던 이은하는 1981년에 KBS 세계 가요제의 그랑프리에 자신의 곡 <밤차> 로 출전하여 우수가창상을 수상하였다.

 

1982년에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탑스타 이은하는 영화계에 발을 디뎠으며 처음으로 성인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인영화에 출연하는데 꺼려했던 아버지 이배영은 당시 국민배우 이대근의 설득으로 이은하의 영화 출연을 허락했었다.

1970년대부터 허스키한 목소리와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당대 최고의 댄스 가수로 각광받았던 이은하는 그녀의 라이벌이던 혜은이와 함께 경쟁하면서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1986년, 이은하(본인)이 작사하고 장덕이 작곡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이라는 서정적인 사랑의 노래를 불러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

 

 이 곡으로 연속 10번째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려 했으나 당시 정수라가 대폭적인 인기를 얻고 수상하여 실패하기도 했다. 1989년, 전영록이 작사/작곡한 <돌이키지마> 가 마지막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곡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은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는 10대 가수상을 9년 연속으로 수상한 이례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 동안에는 콘서트나 뮤지컬을 하기도 했다. 약 15년간의 공백을 끝내고 2007년에 가수로 복귀하였고 그 해 서울가정법원에 호적정정허가신청서를 냈으며 자신의 실제 생년을 주민등록상으로 1961년으로 정정되었다. 2012년에는 5년만에 새롭게 재즈분야의 음악으로 전향하여 활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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