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신앙의 대표적인 특징은 기쁨이다. 전도할 때도, 기도할 때도, 교제할 때도, 복음을 전하다 핍박당해도, 어떠한 일에도 기쁨이 떠나질 않는다. 믿음이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요3:5). 물은 죽음을 의미하고, 성령은 부활의 선물이다. 그러면 구원을 받는 것이다.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잘 증거하고 십자가 앞에서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면 영적인 기쁨이 충만해진다. 이게 진짜 기쁨이다.
십자가 신앙에 반대되는 것이 행위 신앙인데 이는 일종의 거래다. 대표적인 것이 불교다. 업적을 쌓았으니까 무엇을 달라는 딜이다. 거래를 통해서 구원받는다면 어느 정도까지 충성하고 헌신해야 하는지 모르니 불안하다. 유대교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면서도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충성하고 난 뒤에 행위로 구원받는다 생각하니 두려운 것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임에도 기쁨이 없다. 기쁨이 없으면 가짜다.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은 은혜다. 은혜가 사라지니 두려워지는 것.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오히려 어려워졌다. 세상 좋던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심지어 신앙생활의 해로 여겼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로 신앙은 자기의 인생이 70년 80년이라고 생각하니까 거기에 맞는 일만 한다. 기준이 천박하다. 70년 80년에 맞춰 살면 예배도 기도도 증인 된 삶도 다 때려치우고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직하고, 땅도 사고, 돈도 벌고, 사기를 치더라도 무엇을 얻어야 한다. 거기에 맞는 기쁨밖에 없다. 성도는 영원이 기준이다. 그래서 내일 죽어도 오늘 엄청나게 할 일이 많다. 병든 사람들은 내 인생 끝났다고 자포자기하고 널브러진다.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하다가 영원한 천국 가려는 기대감이 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기준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유사 기쁨들을 가지고 가짜라고 깨닫는데 30, 40년 걸린다. 그러니 헛되게 사는 것이다.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지면 예수님의 기쁨을 주신다(요17:13). 자녀들이 엄마 아빠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기쁘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 수준의 기쁨을 누리길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셔도 그 가치를 모른다. 우리는 돈을 받고, 잘 먹고, 소원을 이루면 기뻐하는데 사실은 이게 배설물이다. 나중에 해가 되는 것이고 70년 80년 지나면 다 끝나 버리는 것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수준을 높여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기쁨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산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서처럼 등 뒤에 있는 빛으로 나오는 그림자만 보고 있으면 그림자가 세상인 줄 안다. 그림자에 기쁨과 가치를 두고, 내가 너보다 그림자가 크다 싸우고 경쟁한다. 진짜 사랑한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나와 세상을 보여 줄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수준에서 기쁨을 채워 주는 것을 기복 신앙이라고 한다. 그건 저질이다. 그림자 크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이 땅에서 배설물을 많이 모으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참된 예수님의 수준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영적인 세계들을 경험해 봐야 한다. 그걸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기쁨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진리로 거룩해져야 비로써 하나님 수준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다(요17:17). 전에 기쁨(joy)이란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라고 소개했는데 요즘 버전은 Jesus overflows you. 예수님이 넘쳐흐르는 삶, 이게 진정한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