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향 페트렌코 지휘, 레이 첸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오늘 롯데 콘서트홀에서 보고 왔습니다 어제는 레이 첸 협연으로 멘델스존 바협을 연주하고 오늘은 차이코프스키 바협을 연주하는 서울 시향 공연일정인데 저는 차이코프스키 협연을 선택했어요 차이코프스키 바협을 좋아해서죠
아는 맛이 무섭다지만 차바협은 들어도 또 들어도 좋아하는 곡이라 그리고 레이 첸 정도의 정상급 연주자라면 무난히 고퀄 공연일 것이라 예상하고 갔고 오늘 하이라이트는 단연 레이 첸의 차바협일 줄 알았는데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영웅의 생애>의 재발견이었죠
오늘 프로그램은
1부 베버 오페라 오이리안테 서곡
차이코프스크 바이올린 협주곡 (례이 첸 협연)
2부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영웅의 생애>
로 구성되었는데요
1부보다 2부 마지막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오늘은 예습의 장점과 단점을 다 경험했는데요
차바협은 힐러리한과 이차크 펄먼을 듣고 가서 레이 첸의 바이올린이 더 급하고 빠르게만 느껴진 것 같았고
영웅의 생애는 많이 접하지 않은 곡이라 카라얀, 클라이버, 얀손스 연주를 롯콘까지 가는 길이 막혀 다 듣고 가게 되어서 곡에 대한 이해력이 좀 생긴 후여서 그런지 페트렌코와 서울시향의 연주가 더없이 잘 들렸습니다
1부 첫 곡인 베버의 오이리안테 서곡은 오페라는 거의 연주되지 않고 서곡만 연주되는데 오페라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전형이라는데 스토리는 늘 그렇듯이 권선징악적 요소가 강합니다 주인공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것을 이용해 주변의 악인들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지만 결국 방해꾼들의 음모가 드러나고 우여곡절끝에 주인공들은 사랑을 이룬다~ 는 이야기를 서곡에서 순서대로 조금씩 보여주면서 아름답게 마무리합니다
서울시향의 오이리안테 서곡은 아주 임팩트있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깔끔한 시작이었습니다 다만 관악파트보다 현악 파트 음량이 좀 묻히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오이리안테 서곡이 끝나고 레이 첸이 환호를 받으며 등장합니다
연주는 바로 시작되었고 차바협 1악장의 아름다운 주제 선율을 기대하면서 레이 첸의 첫 바이올린 보잉을 기다립니다 근데 딴 따 따라라라 라~라라 부터 좀 빠른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레이 첸의 보잉은 힘차고 역동적이어서 기대감은 더 커졌는데 기대감에 비례하듯이 그의 속도는 점점 더 빠름 빠름입니다 그러다보니 오케스트라와의 합이 짜임새있게 들리지 않는 대목들이 좀 있었어요 관악 파트 솔로가 박자를 캄 다운 시키면 다시 치고 나가는 레이 첸 선수~ 페트렌코도 차바협에서는 협연자의 독주를 잠재우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가주어야 할 부분에서 레이 첸은 풀 스피드로 담벼락을 부수는 기세인 느낌이었고 중저음은 묵직하게 누르는 힘이 느껴지는 소리인데 고음은 날카롭고 가늘었습니다
박자가 빠른 구간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현란한 기교를 보여주기 좋은 대목이긴 하지만 빠른 속도여도 박자를 다 짚어주는 게 들리는 연주를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아서 조금씩 기대가 꺾이기 시작합니다
서정적인 2악장을 좀 감성가득한 삘 충만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는 템포를 충분히 짚어주지 않네요
테크닉이 뛰어난 것은 바로 알 것 같은 보우잉과 능수능란한 연주태도가 시종일관 보여졌지만
카덴차에서도 확 빠지지 못하겠는 건 아무래도 제 귀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
팬덤이 있는 연주자라 3악장이 끝나고 관객들 반응은 뜨거웠지만 전 좀 감동을 못 채운 배고픈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의 허기는 2부에서 부족함없이 채워졌어요
페트렌코는 신장이 월등히 큰 지휘자인데 포디엄에 선 자체로 압도적인 아우라가 있었고 자잘하게 손동작과 리드를 하기보다 큰 틀의 리드로 지휘하는 스타일이 무척 멋있었습니다. 서울 시향과의 합은 찰떡이어서 그의 손끝과 눈짓에 하나로 합체되는 시향의 연주가 '영웅의 생애' 라는 표제에 걸맞게 때론 장엄하고 때론 우아하게 한 생애를 보여주었습니다 오이리안테 서곡에서 부족하게 느껴졌던 현악파트도 인원이 다 들어와서 연주한 영웅의 생애에서는 더없이 아름다운 질감의 현을 들려주었고 관악파트의 솔로 주자들 정말 제 몫을 해내주었습니다. 안그래도 연주회 시작 전에 관악파트 주자들이 미리 나와서 끝까지 연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노력의 결실이 무대 위에서 제대로 보여진 것 같습니다.
오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 준 건 바로 영웅의 생애 연주 중 바이올린 솔로였는데요 레이 첸에게서 못 들은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는 바이올린 솔로파트를 연주한 악장 웨인 린에게서 들었습니다.
영웅의 생애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바이올린과 관악 독주악기가 번갈아 가다가 오케스트라 전 파트가 다시 화합해서 풀 사운드로 내지르기를 반복하는 와중에 눈물이 좀 울컥했습니다 험난하고 요동치는 우리의 인생같기도 하고 좀 쉬어가듯이 행복하다보면 또 폭풍이 몰아치고 그런 질곡을 빠져나오고 있는 우리 인생의 영웅들, 즉 우리들이 생각나서인가요 감동이 채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관객과 연주자가 다같이 감동을 교환하는 연주회가 쉽지만은 않을텐데요
오늘은 <영웅의 생애> 연주가 충분하고도 남을만한 감동을 주어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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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기 감사합니다.
저도 어제 2부가 훨씬 감동적이었습니다.
레이 첸은 호불호가 갈리는 연주자...기대에 못미쳤습니다.
매진된 콘서트 좋은 좌석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시향 & 페트렌코 이 조합 쭉 갔으면 좋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