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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너머 청진항 2
유 시 춘
1
최 형사는 시종 난감한 기색이었다.
“정말로 아무 데도 짐작 가는 데가 없습니까?”
냉수를 연거푸 들이켜면서도 내내 예의를 지키던 그가 나로부터 별 뾰족한 정보를 얻기는 글렀다 싶었는지 앉음새와 어투가 갑자기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꼭 이런다니까요, 젠장.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 팔십 늙은이라도 제 버릇 남 못 준다고요. 아무리 쭈그렁바가지라도 빨갱이는 빨갱인 법인데. 애 어른 할 것 없이 꼭 남의 뒤통수를 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 걔들 아닙니까?”
제 주장에 대한 동의를 구하려는 양 그는 나를 한참 동안 직시했다. 어투로 짐작건대 그는 김 노인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일부러 열흘째나 소식을 끊고 있다고 믿는 게 분명 했다. ‘빨갱이’라는 말에서 유독 튀어 오르는 그의 적의는 김 노인의 소재를 파악하는 즉시 멱살잡이라도 할 듯이 보였다. 아니 멱살잡이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패대기를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무슨 은혜를 김 노인에게 베풀었다는 말일까? 나에게 빗대어 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그것 또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김 노인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은혜라고 표현하는 것도 우습지만 김 노인은 내게 원수가 될 만한 일은커녕 터럭만큼도 나를 괴롭힌 일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지금 그의 실종 자체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김 노인이 갈 만한 곳을 모조리 수소문하다가 최 형사가 내게까지 온 것으로 미루어 그는 매우 다급해하고 있음이 분명했고, 만약 김 노인을 빠른 시일 내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의 신상에 뭔가 불이익이 생기리라는 걸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아, 이 여사만 해도 그렇지요. 불쌍한 노인네라고 살펴준 대가가 나 같은 형사한테나 이렇게……”
“저는 괜찮습니다만 정말 그 할아버지가 어딜 가셨을까요? 팔십 노인인데다 길도 잘 모르실 텐데. 어디 낯선 곳에 가서 병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하죠?”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 노인 나이 팔십이라도 아직 멀쩡해요. 밥도 젊은이 못지않게 먹고 새벽마다 양로원 뒷산으로 등산도 다녔답니다.”
“그래도 열흘씩이나…… 이런 일 처음인가요?”
“왜요. 지난봄에도 서울에 왔다가 사나흘씩 있었죠. 그땐 매일매일 나한테 보고를 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인지 뭔지 때문에 정신없이 돌아치는 판이었는데 하필이면 때맞춰 또 부득부득 외박 나가겠다고 하기에 그냥 못 본 체하고 보고만 받았지요. 지난번 서울 왔을 때 만났죠?”
“네, 잠깐 만났어요.”
“호옥 그때 뭐 좀 이상하지 않던가요?”
2
나를 빤히 주시하는 최 형사의 눈에 순간적인 긴장감이 일었다. 나는 내심 뜨끔했지만 그가 눈치 챌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의 일은 결코 발설하지 말아야 했다. 김 노인이 몇 번이고 거듭 다짐하기도 했거니와 김 노인의 일로 오래도록 최 형사와 마주 보고 앉아 있기가 싫었다.
“이 여사님, 이건 추측입니다만 그 노인이 와서 누굴 만나게 해달라거든 절대로 들어주지 마십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그 노인 내 보기엔 약간 노망기가 었어요. 하긴 옛날 같으면 고려장* 할 나이 아닙니까.”
“노망이라뇨?”
“이상한 짓을 더러 해요. 요즘 뭐 남북정상회담이네 금강산 관광이네 하고 마치 통일이 코앞에 다가오기라도 한 듯이 떠들어싸니까 노인네가 착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 그도 눈치 채고 있구나 싶었지만 나는 짐짓 김 노인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물어보았다.
“아마도 북쪽 고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정치범 교환 형식 비슷한 걸로. 흐흣 참.”
최 형사의 입가에 비죽이 번져나는 건 비웃음이었다.
“청주 보안감호소에서 나와서 부산 양로원으로 막 내려왔을 때만 해도 노인네가 얼마나 순했다고요. 속으로 김일성이도 미친놈이다 싶었어요. 저따위가 무슨 간첩이라고. 그런데 이 노인네가 차츰차츰 변해가는 겁니다. 그 노인 보다시피 무슨 정치범입니까? 북에선 까마득히 잊은 지 벌써 옛날일 텐데.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총 맞아 죽은 지리산 빨치산도 내 몰라라 한 것들인데. 사람 철저히 이용해먹고 버리는 것 그게 공산주의 아닙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내 참, 뚱딴지같은 생각을. 그렇게 어리석으니까 실컷 이용만 당하고 인생 날새 버린 것 아닙니까.”
최 형사의 장광설*은 끝내 김 노인에 대한 모멸로 끝났다. 나는 그에게 김 노인의 실종이 오래 갈 경우 그가 받게 될 불이익을 물었다.
“아무리 빨갱이가 독종이라지만 발붙일 데라곤 양로원밖에 없는데 어딜 가겠습니까. 사고라면 모를까 곧 돌아오겠지요, 뭐. 시말서* 한 장 쓸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몇 시간 전에 다급하게 내게 전화한 사람 같지 않게 그는 느긋하게 말했다.
나는 그가 건네준 명함을 받아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여사님, 노인네 분명히 전화할 겁니다. 혹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 노인이 이 여사를 각별히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이 사진이 노인네 앨범 맨 첫 장에 끼워져 있더라고요.”
최 형사는 수첩을 뒤적이더니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작년에 부산에 오셨을 때 찍은 거죠? 해운대 말입니다.”
김 노인은 최 형사의 손바닥 위에서 한없이 선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남편 진호가 워낙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몰래 죄짓듯이 혼자 내려가서 그와 함께 해운대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찍은 사진이었다. 최 형사는 미묘한 웃음을 흘리며 돌아섰다. 나쁜 자식. 제멋대로 김 노인의 소지품을 뒤지다니. 비밀 일기장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소녀같이 부끄러움에 뒤섞인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나는 최 형사의 뒷모습을 째려보았다.
김 노인은 대체 열흘 동안 어디에 가 있단 말인가. 적어도 그는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만약에 서울에 있다면 내게 전화 한 통화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삼십 년 감옥살이 끝에 보안감호소를 나서기는 했어도 그는 온전한 자유인이 아니다. 주거가 양로원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외출이나 외박 시엔 반드시 관할 담당경찰관에게 신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 없는데. 사전 신고도 없이 양로원을 나선 그가 열흘씩이나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최 형사의 말대로 김 노인이 뭔지 모를 의도를 감추고 몰래 양로원을 빠져나갔다고 치더라도 열흘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우선 김 노인에겐 열흘 동안 유숙할 수 있는 연고지가 없다. 그의 집은 저 북쪽 끄트머리 청진이니까. 57년에 그가 남파될 때 그의 부모와 아내, 자식, 친지 들은 모두 그곳에 살았으니까. 청진이라면 몰라도 대한민국 남쪽 땅엔 감옥과 양로원 외엔 그를 열흘씩이나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이다. 최 형사는 김 노인이 정확하게 며칠째 실종 상태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최 형사는 다만 양로원 노인들의 어림짐작으로 열흘이라고 알고 있을 뿐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혹시 사고가 아닐까. 그래, 사고일 수도 있다. 석 달 전에 그가 서울에 와서 겪은 일들을 생각한다면 설령 달리는 열차나 자동차에 뛰어든다손 치더라도 누가 그를 탓할 수 있을까. 아니, 사고가 아니라 그는 어쩌면 그 남자의 집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장충공원에서 걸어서 십 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을 그 사내의 집 주변을. 그랬더라면 그 남자가 나에게 연락했음 직도 한 일인데.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전화번호부에 적힌 주소 하나 의지해서 서울의 구절양장* 골목길을 찾아낸다는 건 김 노인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내의 가족들은 분명히 김 노인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제발 편지도 전화도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고. 그러고도 그 남자의 집 주변을 배회했다면 김 노인은 간도 쓸개도 배알도 없는 반푼이일 뿐이다.
몇 번이고 도리질을 했으나 김 노인의 실종은 십중팔구 그 남자와 무슨 연관이 있으리라는 내 심증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못나빠진 그 남자 손광목.
김 노인이 그토록 뭔가 간청을 한 건 그를 안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틀 동안 어디서 잤으며 무슨 일로 서울에 왔느냐는 내 물음에는 그저 건성으로 대충 대답한 그는 품속의 주머니 속을 더듬거려 무슨 보물지도나 집어내는 듯이 조심스럽게 종이 한 장을 펴 보였다. 오래전에 적어놓고 수십 번도 더 접었다 펐다 했을 듯싶은 메모지는 모서리에서 종이먼지가 하얗게 묻어났다. 메모지 한가운데는 김 노인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꼭꼭 눌러쓴 흔적이 역력한 어떤 남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 분이 누군가요?”
우선 혈혈단신인 그가 찾아볼 친지가 서울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적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고 그게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광목이가 서울에 있다이. 맞을 거야요, 틀림없이.”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몹시 감개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혈색이 붉고 아주 건강체였디요. 해방 후에 청진 와서까지 이웃에서 살았는데 그 아내 되는 사람이 그때 청진우체국에 다니는 처녀였댔디요.”
김 노인은 혼자 도취된 채 묻지도 않는 말을 오래도록 자문자답하다시피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 집도 아들이 광목이 하나이고 우리 집도 내 외아들이라 그 아이 모친과 우리 어머니, 나, 광목이, 광목이 누나 이렇게 다섯이서 앵두나무 아래 살평상*에서 의형제 언약을 맺었더랬디요. 나이가 나보다 많이 어려서요, 내가 무척 사랑해준 아이야요.”
의형제를 맺은 사이라면 쪽지에 적힌 사람도 아무리 적어야 일흔 가까운 나이일 텐데 김 노인은 계속 ‘그 아이’라고 불렀다. 사 천만이 넘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김 노인은 거의 60여 년 전에 맺은 의형제를 찾아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인물이 정말 김 노인과 해방 직후에 청진에서 이웃해서 살았던 의형제가 맞을지.
“내가 장충공원 근처에 가서 전화하면 누구라도 나올 것이야요.”
앞뒤 설명 없이 장충공원으로 데려가기만 해달라는 김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아직 손광목 본인과는 직접 통화조차 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뚜렷하게 이렇다 할 약속을 한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아무리 연극을 해봤자 소용없다이. 광목이도 아마 지금쯤 날 무척 기다리고 있을 거이야요.”
전에 듣지 못했던 심한 북쪽 사투리까지 간간이 섞어 쓰면서 김 노인은 혼자만의 골똘한 계산속에 사로잡힌 사람마냥 독백을 계속했다. 그 혼잣말을 내 나름으로 가까스로 종합한 후 얻은 결론은 어렵사리 찾아낸 의형제의 가족들이 철저히 김 노인을 따돌리고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하든 간에 훼방꾼들을 물리치고 의동생을 만나 감격적인 상봉을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김 노인이 스스로 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혹시 그분이 선생님이 찾고 있는 의형제가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서울엔 동명이인이 너무나 많거든요.”
“아니야요, 아니야요. 틀림없이 광목이 그 아이야요.”
“어떻게 그렇게 확실히 믿으세요?”
“광목이라는 이름이 흔치 않아요. 전화번호부에 어떤 이름은 같은 게 여든다섯까지도 있어요. 그래, 내 고종사촌은 확인하는 걸 포기해 버렸디요. 그 애와 같은 성명을 가진 이가 서른일곱이나 있어요. 서울에서만 그러니 전국을 합치면 아마 오백 명도 넘을 것 이야요.”
굳이 물어보지 않았지만 역시 내 추측대로 김 노인은 적어도 서울과 부산의 전화번호부를 샅샅이 뒤졌음이 분명했다. 57년 청진항을 떠나기 이전의 아슴푸레한 기억을 서울과 부산의 전화번호부 그 수십만 개, 백만 개가 넘는 이름 가운데에서 찾아냈을 거였다.
“할아버지가 요즘 좀 이상해요. 어디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지 아침 먹고 나가서 저녁식사 시간에야 들어와요. 미스 강이 우체국에 가서 우연히 봤는데 글쎄 거기서 큰 돋보기를 들이대고 전화번호부를 훑고 있더래요. 어찌나 푹 빠져서 들여다보는지 미스 강이 불러도 모르더래잖아요. 심심풀이라면 점에 십 원 하는 화투라도 칠 일이지 그게 무슨 괴짜 취미예요?”
김 노인의 안부를 물어보는 내 전화에다 대고 양로원 사무실 여직원은 그렇게 그의 근황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전화번호부 깨알글씨와 씨름을 했을 터였다.
나는 더 이상 그의 판단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엔 김 노인의 태도는 너무 단호하고 비장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럼 그 의형제 분은 언제 남쪽으로 왔어요?”
“국방군이 다시 패주할 때 있었잖아요. 거 왜 51년 한겨울에.”
“1·4후퇴*요―?”
“아, 그렇던가요. 그때 광목이네 집이 왜놈들이 살다가 버리고 간 걸 개조해서 쓴 문화주택이었더랬는데 국방군이 그 집에 오래 묵었디요. 광목이 어머니는 그저 인심 좋은 부인이야요. 국방군한테도 아마 잘해줬을 것이야요.”
“그런데 그게 죄가 됐나요?”
“아니야요. 그 어머니는 휴전되고 나서 죽었어요. 그 집에서 내처 살다가 광목이도 보지 못하구서.”
“부모형제를 버리고 왜 남쪽으로 왔지요?”
내가 그의 판단에 동의한 줄로 알았는지 김 노인은 아연 대화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실은 광목이네는 해방 직후에 토지 무상몰수하고 분배할 때 좀 손해를 본 쪽이야요. 그 아이가 눈썰미래 있어서 연변* 있을 때 자동차 기술을 익혔는데 그게 해방 직후엔 소용이 좀 닿았나요, 그저 다른 인민들보다는 좀 유족*했더랬디요. 그 아이래 왜 국방군 따라 내려왔는디는 모르겠어요.”
“혹시 전쟁 끝난 다음에 부역죄*로 숙청당할 게 두려웠던 것 아닐까요?”
“숙청요?”
순간, 나는 아차 안 할 말을 했구나 싶었지만 뱉어놓은 말을 어쩔 수 없어 가만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김 노인도 그런 나의 조바심을 눈치 챘는지 한참 있다가 나직하고 차분한 어조로 읊조리듯 말했다.
“국방군 편의 봐줬다구 그 많은 인민들 다 숙청하면 나라 건설 누구래 합네까. 그리고 광목이 어머니 내처 제집에서 무사히 살았던 것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광목이 그 아이가 원래 영리하지만 좀 소심했드랬어요.”
두 달 전쯤 그가 기독교 인권단체 사무국장으로 있는 친구 명자의 주선으로 서울에 왔을 때 그와 우리들 몇 사람은 기분 좋은 나들이 끝에 결국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처음에 문제제기를 한 쪽은 우리들이었지만 그의 분노에 찬 격한 단언 앞에 지금 와서 뭘 어쩌자고 그 말을 꺼냈던가 하고 모두 잠시 자책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토록 격한 음성으로 우리들을 질타할 수 있다니. 그날 이후, 어떤 경우가 닥치더라도 다시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말아야지 하고 나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지뢰 같고 뇌관 같고, 피해 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똥 같은 그것은 다름 아닌 ‘숙청’이라는 말이었다. 지난번과는 사뭇 다른 어조로 그는 ‘숙청’을 부인했다.
“오늘 따라 길이 몹시 막히는군요.”
광화문 네거리 신호등 앞에 차를 멈추면서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난 괜찮습네다만 근데 사모님, 바쁜데 시간 너무 뺏는 것 아니야요?”
전화로 내게 간청할 때의 조급증에서 벗어났는지 그제야 그는 늦은 인사말을 건네왔다.
“하여간 서울은 참 굉장한 도시야요. 사모님, 저기 저 건물 조선총독부*였다는 거 아세요?”
그는 앞 유리창 정면에 버티고 선 국립박물관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리고요, 내가 서울에 들어와서 누굴 제일 먼저 만난지 아세요? 그때 저 건물 안에 들어갔댔어요.”
“그래요?”
“허허, 젤 처음 만난 거이 그때 부흥부* 장관 하던 이야요. 연변 영신중학교 동기생이었는데. 뒤에 내가 체포되고 난 후에 이리저리 조사받으러 다니느라 고생 했을 거야요. 미안하게 생각해요, 허허.”
“아직 살아 계신가요?”
“모르지요. 살아 있대도 날 보고 싶지 않을 것이야요.”
“그나저나 장충공원에 가서 전화하면 그분이 나올까요?”
동대문운동장을 지나면서 내가 걱정스럽게 물었으나 그는 오히려 태연했다.
“하여튼 가봅시다.”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씩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더니 이내 뿌옇게 공원 뒤컨으로부터 비안개가 묻어왔다. 평일 오후의 공원은 휑뎅그레하게 비어 있었다. 공원 입구의 휴게실로 들어가 메모지에 적힌 번호를 누르는 동안 김 노인은 귀를 전화기에 갖다 붙일 듯이 바짝 다가서서 한창 호기심이 맹렬한 나이의 소년처럼 눈을 반짝였다. 수화기를 통해 들린 여자의 목소리는 육십 대쯤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신경질과 짜증이 뒤섞인 쇳소리가 불거져 나오는 유쾌하지 못한 응답이었다. 내가 김 노인의 이름을 대자 여자는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다짜고짜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댁은 대체 뉘신가요?”
금방 나오겠다며 성급하게 수화기를 놓으려던 여자는 매우 도전적으로 내 신분을 캐물었다. 나는 명자의 직함을 말하고 김 노인의 간곡한 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노라고 덧붙였다.
“거기서 기다리세요.”
여자의 태도는 몹시 냉정하면서도 위압적이었다.
“나온답네까?”
귀를 곧추세우고 있던 김 노인은 한껏 치뜬 눈으로 내 표정을 낱낱이 살펐다.
“여자가 받지요? 그러구 광목인 먼 데 출장 갔다고 그러디요? 그 아낙이 광목이를 빼돌리는 거야요. 지금 그 아낙하고 딸이 연극을 하고 있는 거야요.”
김 노인의 말은 두서없고 황당하게 들렸고, 쓸데없는 놀음에 끌려든 게 아닌가 하는 후회와 당장에라도 김 노인을 차 속으로 밀어 넣고 그곳을 벗어나고픈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광목이가 나를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든 그 아인 날 만나러 오고 말 것이야요.”
다소 심란해진 내 기색을 눈치 챘음인지 김 노인은 갑자기 자신감에 찬 호기를 부렸다.
“사모님, 우리가 말입네다. 광목이 그 아이하고 내가 만나면 몇 년 만인지 아십네까? 그러니까 딱 사십 년 만이야요. 기가 막히디요?”
김 노인의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렸던지 휴게소 안에 띄엄띄엄 앉아 있던 손님들이 일제히 우리 쪽을 향해 의아스런 시선을 모았다.
“내가 드디어 찾아낸 것이야요. 두어 달 걸려서 말입네다. 굉장한 일이잖습네까. 하하, 하하.”
덥수룩하게 자라난 하얀 턱수염을 두 손으로 북북 문질러대면서 연신 웃어제치는 김 노인은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나는 그를 휴게실의 맨 구석자리로 안내했다. 금방 나온다던 여자는 십 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김 노인은 몇 번이고 시계를 보다가 끝내 휴게실 밖으로 나가서 공원 입구 쪽에다 시선을 못 박아놓은 채 서 있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그는 초조해진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뒷짐을 진 채 잰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말 없는 시위를 참지 못하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젊은 여자는 나간 지 오 분 됐으니 오 분만 더 기다려보라고 하며 그녀 역시 냉정하게 수화기를 먼저 놓아버리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오 분 뒤에 여자는 나타났고 짐작대로 육십 대쯤이었다. 딸인 듯한 여자와 함께였는데 둘 다 몸 전체가 빳빳한 경계심으로 뭉친 듯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모녀는 금방 김 노인과 나를 알아보았다. 모녀의 눈동자가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이는지 나는 괜스레 어깨가 움츠러들 지경이었다.
“저기로 가서 앉읍시다.”
좀 전의 초조했던 기색과는 달리 김 노인은 막상 모녀를 보자 오히려 평소의 태도로 돌아간 듯이 보였다.
“그래, 노인이 우리 애아버지를 대관절 어떻게 안다는 거예요?”
여자의 눈꼬리는 가늘게 경련을 일으켰고 딸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여자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엄마, 차근차근 말해요.”
“어휴, 당최 가슴이 떨려서. 막상 마주 보고 나니까 더 가슴이 맥히네.”
딸이 따라 준 물 한 컵을 다 들이켠 여자는 김 노인을 노려보았다.
“대관절 노인은 어디서 뭐 하는 사람이에요? 사는 데나 어디 좀 똑똑히 알고 봅시다. 전화를 하고 편지질을 하려면 자기 신분이나 밝혀야 할 것 아니오. 다짜고짜 연변에서 영신중학교 다녔지요, 해방 후에 청진우체국 골목께 무슨 주택에 살았지요, 어머니가 어드렇게 생겼지요, 51년 겨울에 내려왔지요, 장남 아무개를 모친한테 맡겨두고 오잖았어요, 아닌 밤에 도깨비도 유분수지 대관절 노인은 누구시우? 아니, 아주머니한테 좀 물어봅시다. 대체 이 노인하고는 어떤 사이우?”
여자는 방향을 조금 틀어 나를 마주 보고 앉더니 가슴을 내밀어 더욱 벌렁거리는 시늉을 했다. 다소의 과장이 섞여 있긴 했지만 그간 김 노인의 전화에 어지간히 시달린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젊은 댁이 좀 설명을 해줘요.”
어디서 어떻게 얘기를 시작해야 여자를 좀 안심시키고 대화를 할 수 있을지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좀 진정하시지요. 사시는 곳도 확실하고 신원도 분명하고 또 아주머니를 괴롭히기 위해 이러시는 게 아니니 안심하시지요.”
“나 말이오, 맹세코 경찰서라면 근처에도 한 번 얼씬거린 일이 없는 사람이오. 그런데 이 양반이 불쑥불쑥 전화해대는 바람에 팔자에 없는 경찰서옐 다 가봤다니까요.”
“경찰서라뇨?”
“아, 경찰서 몰라요? 도둑, 사기꾼 들 잡아들이는 경찰서요.”
“엄마, 좀 진정하라니까.”
그때까지 김 노인의 행색을 꼼꼼히 뜯어보고 있던 딸이 여자와 나사이에 끼어들면서 말했다.
“글쎄 이 할아버지가 자꾸 전화하고 또 편지도 하고 그러니까 수상하잖아요. 말씨도 분명히 이북 말씨고, 솔직히 말해서 할아버지가 말하는 내용이 맞는 게 많아요.”
“아니, 야가! 맞긴 뭐이가 맞는다고 그러니?”
어머니가 가로막고 나서는데도 딸은 야물딱지게 말을 맺었다.
“그래서 경찰에다 신고한 거예요. 중부경찰서요. 혹시 불순분자가 뭘 노리고 그러는지도 모르잖아요. 할아버지가 의형제라고 그러시는데요.”
“의형제는 무슨 놈의! 형제가 수두룩한데.”
여자는 다시 딸의 말을 막았다. 그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모녀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던 김 노인이 불쑥 큰 소리를 질렀다.
“응, 형제들은 많디. 그렇지만 모두 자매들이디. 아들은 광목이 하나뿐이거든. 내 틀린 말 했소? 큰딸 광자는 나하고 동갑이고 둘째 명자, 셋째 말자, 그리구 광목이 아이오? 그리고 아주머이 친정은 두만강 건너 도문이오, 도문. 내 어떻게 아는고 하이.”
김 노인은 여봐란 듯이 씩씩하게 막힘없이 말을 이었다.
“도문? 난 아니오. 노인이 뭔가 착각하고 있소. 나는 우체국 다닌 일도 없고 도문에 가본 일도 없소.”
“거짓말! 하하.”
김 노인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여자를 찍어 가리켰다.
“들어보라이. 광목이가 도문으로 장가들 때 우리 어마이가 엿을 한 상자 고아서 부조했다이. 당신은 잘 모른다이. 국방군이 쫓겨 간 후에 광목이가 없어졌디. 그런데 광목이 어마이는.”
“시끄러워욧! 우린 청진 살지 않았어요. 사람을 잘못 알았다구요. 서울 넓은 천지에 같은 이름이 수두룩 닥상*이란 말이에요.”
“흐흣, 광목이 어떻게 생겼는고 하이 코가 우뚝하니 높고 길고 눈은 작아. 저 아이 꼭 광목이 사진이야. 그리고 혈색이 흰 듯하면서 붉지.”
여자는 아득바득 부정하면서도 김 노인의 이야기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바짝 곧추세우고 있었다. 김 노인이 딸을 손짓하며 아버지 사진이라고 하자 딸은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엄마를 다독거렸다.
“엄마, 가만있어봐. 들어봐.”
김 노인의 얘기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갔다. 여자는 무슨 말이든 더 들으려고 매달리는 데 반해 김 노인은 느긋한 자세로 그저 몇 마디 툭툭 던질 뿐이었다.
“광목이 어마이 54년엔가 죽었어. 광목이 기다리다 울다가 눈이 짓물러서* 시뻘겋게 됐다이. 국방군 쫓겨 간 뒤에 아무 일 없었다이. 그 집에서 내가 여기 내려올 때까지, 그러니까 57년 그때까지도 내처 살았으이까.”
“아무 일이 없었다고요?”
“기럼. 광자도 자주 왔지. 키꺽다리 광자 말이야.”
“그래, 54년에 세상 뜨셨다고요?”
“기럼, 휴전한 다음 해에.”
여자는 잠시 눈을 감더니 성호*를 그었다. 여자의 감은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미끄러졌다. 물꼬가 터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여자가 갑자기 정신을 수습하고 말머리를 돌린 건 한참 후였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좀 전의 김 노인 말을 곱씹어 묻는 거였다.
“57년에 무슨 일로 오셨댔어요? 그리고 지금까진 뭘 하셨에요?”
“저어, 할아버지는요…… 설명이 좀 필요한데요.”
“아주머닌 좀 가만히 있으세요.”
여자가 내게 좀 무례하다 싶게 손을 내젓는 걸 본 김 노인은 아무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나 말이오? 정치공작원으로 뽑혀 내려왔디.”
“정치공작원?”
“우리가 남북이 갈라져 있으면 안 되잖소. 통일으 해야지. 통일사업 하라고 날 내려 보낸 것이야요.”
“누가요?”
“인민들이지.”
“인민?”
“기럼, 수령 동지 하고 당에서 뽑아주어서 내처 내려왔디.”
사람의 태도가 그렇게 순식간에 표변할* 수 있을지. 그건 김 노인과 여자 둘 다 마찬가지였다. 김 노인은 갑자기 개선장군같이 당당하게 위풍을 떨었고, 여자는 눈을 내리깔더니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은 긴장태세로 단번에 돌아가 버리는 거였다.
“아이고 가슴 떨려. 그러니까 그 뭣이냐 간첩이란 말이오? 세상에! 에그머니나.”
여자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탁자 위를 재게* 콩콩 두드리기 시작하더니 옆의 딸에게로 아예 기대버렸다.
“그게 아이오! 정치공작원이란 말이오!”
“에그머니나 세상에! 신고하길 백 번 천 번 잘했지.”
“영화나 티비에서 못 봤소? 공작원은. 정치범이오.”
열흘 삶은 호박에 손톱도 안 들어갈 소리를 김 노인은 줄기차게 반복했고 여자는 ‘에그머니나 이 일을 어째, 그게 그 말이지’를 쉬지 않고 뇌까렸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끊어지고 여자가 내뿜는 거친 숨소리가 갑자기 좌석의 분위기를 팽팽한 긴장 속에 빠뜨려버렸다.
“다 거짓말이야. 우리 어미니 무사했을 리가 없지. 아마 공산당 놈들한테 죽었을 거야. 집도 땅도 다 뺏기고 오갈 데 없는 걸뱅이* 신세로 돼가지고 돌아가셨을 거야.”
여자는 표독스럽게 노인을 째려보면서 혼자만의 사설을 계속할 태세였다. 내가 개입해야 될 참이었다.
“우리 젊은 사람끼리 좀 얘기할까요?”
엉거주춤한 딸을 보고 내가 제의를 하자 딸은 의자를 끌어당겼다.
“놀라지 마시고 들으세요. 아주머니 말씀대로 할아버지는 57년에 간첩으로 내려왔어요. 하지만 누구도 해치지 않았고 북쪽과 통신 한번 못해보고 체포되어서 88년까지 삼십 년 동안이나 감옥에 있었어요.”
그래도 싸지 싸. 내려오긴 왜 내려와, 공산당 좋으면 거기서 뭉개고 있지. 여자가 다른 사람도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입옛말을 하자 딸은 신경질적으로 여자를 나무랐다.
“계속하세요. 할아버지에 대해서 우리도 알 건 알아야 되니까. 그래야 무슨 일이 생겨도……”
딸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나의 제의에 응하고 있을 뿐 그 이외의 아무런 관심도 없음을 야멸차게 내뱉었다.
“만약에 할아버지가 애꿎게도 무고한* 사람을 해쳤다거나 간첩 행위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살아남을 수가 있었겠어요? 금방 얘기했다시피 할아버지는 청진 사람이에요. 남쪽엔 피붙이가 한 사람도 없답니다. 그러니 평생 감옥 살다 나왔어도 갈 데가 있겠어요.”
“그래서, 지금 대체 어디서 살고 있는 거예요?”
“부산 양로원에요.”
“부산? 그럼 여태 부산에서 전화를 했단 말인가요?”
“아마, 그랬을 거예요.”
“우리가 저 할아버지를 어떻게 믿죠? 사십 년도 더 지난 일을 들고 나와서 뮐 어쩌겠다는 거예요?”
어머니가 완강한 거부 가운데서도 고향 이야기에 어찔 수 없이 허물어지는 허술한 구석이 있는 반면 딸은 천적 앞에 몸을 잔뜩 오므린 갑각류처럼 견고해 보였다.
“날으 못 믿어?”
김 노인은 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반문했다.
“난 양로원에 그저 잠시 있는 것이야. 법무부 장관이 통일될 때까지 있으라고 해서.”
그가 난데없이 끼어들며 법무부 장관과 통일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자 나는 너무나 당황해버렸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내 꼴에 비한다면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쯤일 딸은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침착했던지 .
“법무부 장관이 좋은 데 보내주셨네요, 뭘.”
그 싸늘하고 조용한 말씨와 표정. 나는 갑자기 가슴 한가운데가 서늘해지는 한기를 느꼈다.
“이건 할아버지가 보낸 편진데요, 할아버지 것이니까 가져가세요. 뜯어보지도 않았어요.”
딸은 손가방에서 편지 세 통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갓 한글을 깨친 아이가 정성껏 한 획 한 획 또박또박 눌러쓴 듯한 김 노인의 필체를 보자 나는 그만 울컥 눈물이 솟아나려고 했다. 한껏 모멸당하고 능욕당하는 처참함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피난살이와 다를 바 없는 양로원 방, 돋보기를 꺼내서 웅크리고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조각하듯이 써 내려갔을 편지는 뜯기지 않은 채 고스란히 딸애의 손에 들어 있었던 거였다. 딸애는 탁자 위에 놓은 편지를 지네나 전갈 같은 징그러운 절족류의 곤충을 대하듯 혐오스러운 눈길로 내려보았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편지 보내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철제 셔터의 철커덕 하는 잠김 소리. 딸의 아시겠어요 하는 다짐은 그렇게 들렸다. 어쨌든 김 노인이든 나든 편지를 집어넣어야만 했다.
“광목이한테 이걸 안 전해줬구만. 전하기만 하면 되는데.”
김 노인은 혀를 찼다. 도무지 딸의 그 방자한 언행이 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였다.
“모르는 사람의 편지를 읽을 필요가 없잖아요.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모른다고 했어요.”
“그럼, 그럼. 오십 년 아니라 백 년을 헤어져 살았어도 진짜 의형제를 맺은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지.”
모녀는 서로 손발이 잘 맞았다. 뒤처져 있던 여자는 김 노인에게서 멀찍이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서 누구에랄 것도 없이 말했다.
“나라에서 양로원에 보내줬으면 주는 밥이나 잘 먹고 근신하고 있어야지 하릴없이 출입 잦으면 그것도 병통 아니오?”
나는 여자의 시선을 따라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 공원의 빈 마당에는 희부옇게 비안개가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것 보시오. 그럼 이 책 좀 광목이한테 갖다 주시오.”
김 노인은 갑자기 가장자리가 너덜거리는 낡은 비닐가방을 벌리더니 두꺼운 책을 꺼냈다. 뜻밖에도 그건 선정적인 기사로 여성단체 등에서 늘 비난의 대상이 되어온 초호화판 여성잡지였다. 만나던 순간부터 그가 들고 있는 꽤 무거워 뵈는 배불뚝이 가방을 물어본다는 게 그에게 떠밀리다시피 오느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거기 얼토당토않게 여성 잡지가 들어 있을 줄이야.
“여기 나에 관한 글이 있어. 내 어떤 생각으로 처자식하고 생이별하고 통일사업 하려고 했는지 말해놓았어.”
편지는 내가 얼른 집어넣은 후였지만 두꺼운 호화양장의 책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 나 역시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명자가 종알거리던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깜짝 쇼를 찾아다니는 상업지나 여성지의 기자들이 남파간첩의 인생역정을 오락거리로 쓰려고 자꾸만 그들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조른다고 명자는 몹시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아마도 김 노인은 그들의 인터뷰에 응했던 모양이었다. 선혈빛 입술의 모델이 요염하게 눈을 흘기고 있는 표지가 얼마나 생뚱맞아 보이고 또 그 무거운 책을 부산에서 서울까지 땀을 흘리며 들고 왔을 김 노인이 어찌나 주책스러워 보이는지 나도 모르게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김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되받아쳤다.
“우린 이런 책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애아버지는 의형제를 맺은 사실이 없다고 그러니 다시는 전화 따위 하지 마세요. 전화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잡지 표지에 굵은 글씨로 박혀 있는 특집기사의 제목을 훑고 있었다. 남파간첩 김 ○○의 한.
‘할아버지, 왜 이런 짓을.’
나는 얼른 책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김 노인을 만류했다. 순간, 그의 눈빛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밖으로 나가 모녀에게 내 연락처를 적어 주면서 상의할 일이 있거든 내게 하라고 일러주었다. 미심쩍어하는 모녀에게 나는 좀체 하지 않는 짓이었지만 남편 진호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명함을 읽어본 여자는 돌연 낯색을 바꾸더니 내게 은밀히 속삭이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젊은 댁이 좋은 일 한다고 하는 모양인데 저런 노인은 조심해야 한다우.”
그건 너와 나는 한편이야 하는 확인이었고 그 표시로 여자는 엷은 웃음을 살짝 내비쳤다. 모녀는 우산을 각각 하나씩 펴서 쓰면서도 내게 우산이 있느냐고 겉치레나마 묻지 않았다.
창 너머로 봤더니 김 노인은 요염한 표지모델이 눈을 흘기고 있는 탁자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멍하니 턱을 괴고 있었다.
‘할아버지, 처음에 나를 만나던 그때 그대로 있으세요, 제발.’
김 노인은 조금 이상해진 것이었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선뜻 그에게로 가지 않고 한동안 공원의 빈 땅을 때리는 빗줄기를 망연히 내다보며 서 있었다.
잘한 일일까? 아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서울 구경을 좀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 그런 그를 억지로 떠밀다시피 부산행 열차에 태워버렸다니. 난 그가 귀찮아졌는지 모른다. 서둘러서 골칫덩어리를 떼내 버리려고 한 것인지도. 아니다. 이미 그는 양로원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주거지가 되어버린 팔십 노인인걸. 하루하루의 잠자리를 걱정하도록 하면서 서울거리를 헤매게 하는 건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부산행 열차표를 손에 꼭 쥐고 개찰구를 빠져나가던 김 노인의 지친 뒷모습이 자꾸만 망막에 어른거리면서 나는 미열 같은 혼곤한 자책감에 빠져들곤 했다. 지난해보다 그는 눈에 띄게 쇠잔해지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못나빠진 그 남자 손광목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하다가 그를 욕해주는 것으로 김 노인이 벌인 소동을 잊어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쯤은 내게 연락해오지 않으려나 은근히 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손광목이란 이름의 그 남자는 김 노인이 부산으로 간 지 열흘쯤 지난 후에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약속장소로 나갔을 때 나는 우선 그가 나이에 비해 너무 젊어 보이는데 놀랐다.
“그러니까 꼬박 삼십 년을 감옥 살았다는 말이지요?”
“네.”
“부산 양로원에는 가보셨습니까? 어떻게 살고 있던가요?”
“무의탁 양로원이란 데가 뻔하지요.”
“그래도 먹게끔 세끼 밥은 나오겠지요?”
그 남자의 생김새는 김 노인의 말 그대로였다. 손광목은 김 노인의 근황을 꼬치꼬치 캐묻는 도중 잠깐씩 눈이 젖는 듯이 보였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떠난 뒤로 삼 년인가 더 사셨다지요? 그런데 형님은 어쩌다가 하필이면 간첩으로 내려왔답니까. 하구많은 사람 중에.”
손광목은 어머니 얘기에 이르러 끝내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고야 말았다.
“지금 와서 뭐가 그렇게 두려우세요? 할아버지를 만나보고 싶지 않으세요?”
나는 은근히 그를 힐난하며 말했다.
“어디 이용해먹을 사람이 없어 하필이면 형님을 간첩으로 보냈답니까. 형님은 정치네 뭐네 하는 거하군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요. 그저 청렴하고 순진하고…… 계산속이 너무 없었지요.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곧바로 찾아보세요. 제가 부산 양로원을 가르쳐드릴 테니.”
“그래야지요.”
손광목은 중대결심이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굳이 지난번 공원에서의 일을 들추어내어 그의 용렬스럽고 비겁한 처사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 딸이 김 노인을 만나러 가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였다. 그가 김 노인을 늦게라도 만나러 가기만 한다면 그런 처사쯤이야 자라 보고 놀란 놈이 솥뚜껑 보고도 흠칫거리도록 만든 지랄 같은 세월 탓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손광목은 그 이후에도 양로원에 결코 가지 않았다. 양로원엔 사적으로 그를 찾아온 이가 아무도 없었다. 앵두나무 아래의 살평상에서 맺은 의형제의 인연쯤이야 손광목에게는 스쳐 지나가 버린 창밖 풍경의 한 조각일지도 몰랐다.
“내가 곧바로 통화하게 되면 이 아이가 놀랄지 모르니 사모님이 생각나면 한 번씩 해보세요. 언젠가는 광목이 그 아이가 직접 전화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김 노인이 개찰구로 나가기 전에 내 손에다 꼬깃꾸깃 접은 메모지를 쥐어주면서 그렇게 간곡히 당부하지만 않았던들 나는 김 노인이 받게 될 충격 따위를 헤아리지 않고 얼른 손광목이 곧 양로원에 찾아갈 것이라고 얘기해버렸을지도 몰랐다. 김 노인이 모처럼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 없이 손광목과 만난 걸 얘기했더라면 그는 아마도 매일매일 손광목을 기다렸을지도 몰랐다. 손광목이 찾아갈 때까지 김 노인에게 그와의 만남을 발설하지 않았던 건 얼마나 잘한 일이었던가. 못나빠진 남자 손광목은 그 이후로 내게 한 번도 연락해오지 않았다.
김 노인은 대체 어디 가 있을까. 무사하기나 할까? 최 형사의 관찰대로 김 노인이 좀 이상해진 걸까? 적어도 지난번 공원에서 그 모녀에게 하던 행동은 그랬다.
“얘, 물정 모르는 소리 작작 하렴. 제 부모형제도 사상범이라면 숫제 삼십육계 줄행랑인 채 의절하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줄잡아 60년도 더 된 의형제 인연을 찾아낸 그 할아버지가 비정상인 거야. 그게 무슨 유비 관우 도원결의*도 아닐 테고.”
고심 끝에 명자에게 상의 했지만, 십여 년간 시국사범 뒷바라지로 뼈가 굵은 그녀답게 전혀 놀라워하지 않았다.
“국민을 불순분자로부터 보호한답시고 십몇 년을 기약 없이 가둬놓은 그 위험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너 봤지? 평균연령 칠십 세 고령에다 하나같이 지병 가진 환자 할아버지들이야. 그이들 중에 그 할아버지처럼 북에서 내려온 사람은 그만두고라도 남쪽에 연고 있는 이들도 친지들이 인수를 안 하겠대서 양로원 가 있는 이들이 많단다. 네가 정 그렇게 걱정되면 내 수소문 한번 해볼게.”
시큰둥하게 대꾸하긴 했지만 명자는 이내 연락을 해주었다. 김 노인이 한 번쯤 들렀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는 곳은 음성 꽃동네였다.
“너 태호 알지. 네가 일 년간 옥바라지 해준 제주도 학생. 그 애가 지금 나하고 비슷한 데서 일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음성엘 다녀왔대. 거기 청주 출신이 세 명인가 수용되어 있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감호소에서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냈다는구나. 태호한테 할아버지 안부를 묻더랜다. 태호가 마침 동행해줄 수 있다는구나.”
그간 나는 진호에게 김 노인에 대한 얘기를 일체 하지 않았던 터라 새삼스럽게 꽃동네에 가는 경위를 설명해줄 수가 없었다. 그의 퇴근 시간 전에 귀가하려면 서둘러야 했으므로 진호가 출근하자마자 집을 나섰다. 김 노인을 만나러 처음 부산에 갈 때도 그랬듯이 나는 무슨 도둑괭이처럼 살짝 집을 빠져나왔다가 흔적 없이 감쪽같이 귀가해야만 했다. 도저히 진호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간첩이란 말에 손광목의 아내처럼 가슴을 발딱거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까. 진호에겐 간첩이란 곧 피와 살육의 동의어일 텐데도. 진호는 아내인 내가 간첩과 이렇게 잦고도* 심상치 않은 통신을 지속하고 있다는 걸 알면 뭐라고 할치. 아니, 어쩌면 진호는 이미 동남아에다 그가 속한 재벌그룹의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진출시키는 그 외의 모든 관심사를 놓아버린 건지도 몰랐다. 87년 대통령선거 이후에 출옥한 태호 등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가끔씩 술판을 벌이며 5공 핵심들의 구린내 나는 부패상을 잘근잘근 씹어대기를 즐기던 호사벽마저 딱 끊어버린 듯했다. 87년 6월 내내 열에 들떠 일부러 시청 앞 광화문 등지로 맴돌던 그때의 남편은 얼마나 눈빛이 반짝였던지. 진호는 이즈음 들어 아예 뉴스조차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명자의 남편처럼 전두환을 미워한 것만큼 야당과 재야를 싸잡아서 드러내놓고 속 시원하게 욕해 준다면 그건 차라리 겪어볼 만한 일일 텐데. 그렇게 싸늘한 진호에게 김 노인의 실종을 상의한다는 건 가당찮은 짓이었다.
“선배님, 어딜 보세요?”
터미널 실내에 들어섰는가 했는데 뒤쪽에서 익숙한 소리가 울렸다. 태호. 86년에 집권당의 당사를 떼거리로 점거하고 불을 지르려다 무더기로 감옥행을 했던 대학생. 언제 봐도 거리낌 없는 태도에 웃음 소리가 걸걸한 그 애가 왠지 오늘은 어깨가 늘어져 보인다.
“제가 안 보이세요? 선배님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줄곧 보고 있었는데. 어서 타세요. 곧 출발입니다.”
태호는 내 팔을 끌고 개찰구로 급히 뛰어나갔다.
“선배님, 큰 기대는 하지 마십쇼. 할아버지 거기 다녀가지 않았을 겁니다. 쉽게 면회 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왜 시간 허비하면서 헛걸음을 하니?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오랜만에 바람 좀 쐬는 거죠. 뭐, 다른 두 분도 궁금하고.”
“대체 부산 할아버지는 어떻게 된 걸까? 사고나 아닌지 모.르겠다.”
“……사고라면 차라리 괜찮은 편이지요.”
태호의 어투에서 묻어나는 뒤틀린 자조의 느낌. 갑자기 그 애가 낯설어지면서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김 노인 문제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태호의 근황을 묻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보면 영락없는 건달이죠 뭐. 5공 때는 그래도 목에다 힘주고 다닐 수 있었는데. 무슨 낯짝으로 민주화운동 한답시고 계속 이럴 수 있겠습니까. 무슨 비전이 보여야죠. 때맞춰서 동구권 줄줄이 초상집이죠. 저도 올해 안으로는 태도 결정을 해야 합니다. 감귤농사 뼈빠지게 지은 돈으로 서울 유학 온 처지 아니겠어요. 선배님, 뭘 하면 좋겠습니까? 기왕에 법과대학 물을 묻혔으니 죽기 살기로 출세길로 나서볼까요? 아니면 재벌그룹 입사시험이라도, 후흣. 근데 여당 당사에 불 지르려다 콩밥 먹은 전력을 숨길 수 있을지 그게 문젭니다.”
십수 년 선배에 대한 깍듯한 존대와 행여 간간이 풀어져버릴 법한 예의를 깐깐하게 지키고 있는 품이 태호는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전후좌우 살피지 않고 술술 풀어내는 말이었지만 왠지 친근하고 순박하고, 무엇보다 정직해 보이는 게 태호의 화술이었다. 그사이에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련만 왠지 그 애의 어투는 몰개성하고 비정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태호가 그런 낯선 태도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본래대로 돌아가 버린 건 아마 그 애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 거였다.
김 노인과 보안감호소 바로 옆방에 있었다는 이를 마주했을 때, 태호는 순식간에 쩔찔매면서 허둥거렸다.
태호와 내가 찾아 나선 이는 석 달 전에 그가 거처했던 건물에 있지 않았다. 꽃동네 입구 커다란 표지판에 쓰인 그대로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나님의 은총’인 나라 안의 온갖 불구자, 부랑인들의 집결지답지 않게 꽃동네 안은 모든 게 정돈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김 노인이 거처하는 양로원에 비긴다면 밝고 트이고 아름답기까지 한 곳이었다.
면회 신청 창구에서 그의 면회카드를 보았더니 석 달 전에 태호가 왔다 간 이후 아무도 그를 만나러 온 이가 없었다.
“그분 좀 이상해서요. 얼마 전에 요 아래 요양원으로 쓰는 집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연락해놓을 테니 내려가 보시지요. 혹시라도 자극적인 말이나 행동 같은 건 삼가주십시오.”
건물 밖으로 나와서 안내인이 가리켜준 곳은 꽃동네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나서 멀찍이 아래켠에 웅크리고 있는 외딴집이었다. 집은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슬레이트를 덮어놓은 것 같은 퇴락한 구옥(舊屋)이었다. 요양원이라면 환자를 수용하는 곳일 텐데 꽃동네 안의 정갈함이나 정성스러운 환경에 비추어 그곳의 부속시설이라기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곳이었다. 벌겋게 녹슨 함석 대문짝이 허술하게 열려 있는 안쪽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맨 먼저 눈에 띈 건 첫눈에도 얼른 정신병자임을 알아챌 수 있는 노인네가 너부죽이 우리를 향해 절을 하는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연락을 해놓았던지 우리가 찾는 이는 옛날 초가에 달려 있던 문고리 달린 밀창을 반쯤 밀어놓은 채 얼굴을 내밀었다.
‘아, 잘못 왔구나.’
그의 얼굴을 보자 나는 그만 얼른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정상인의 눈빛이 아니었다.
“아저씨, 저 모르겠어요?”
“응, 흥식이? 명자? 왜 왔어? 어제 왔다 갔잖어.”
“아저씨! 나 보세요! 나, 나 몰라요?”
“응, 어저께 서류 갖고 왔잖어. 태호가 왔다 갔잖어.”
“그래, 맞아요. 아저씨, 나 태호잖아요. 그리고 여기는 왜 전에 청주 있을 때 158호 면회 갔던 사모님. 지금 부산에 계시는 158호 할아버지하고 친했잖아요. 알아요?”
태호는 나와 그를 번갈아 손짓하면서 그의 귀에다 대고 소리쳤다.
“응, 알아, 알지. 근데 왜 인제 왔어. 나 빨리 나가야 해. 대전에, 대전에 금옥이 만나야거든. 금옥이가 밥해놓고 기다리고 있어. 여기 이 사람들 큰일이야. 나를 15일까지 여기 가두어놓고 있잖어. 16일이면 인민군대 내려오는데. 내가 마중 나가야 되는데 이 사람들이 날 안 놓아주잖어. 나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 판문점에서 만나기로 돼있어.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랬거든.”
그는 글자 그대로 횡설수설이었고 우리들의 면회를 지켜보는 이도 없었다. 태호가 끈질기게, 그를 잠시라도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그에게 익숙했을 말을 반복해서 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횡설수설 속에서나마 다소 간추릴 수 있는 줄거리는 있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과 나가고 싶다는 소망을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전 어딘가에 딸이 하나 있음직했고, 인민군과 고향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미루어 필시 북쪽이 고향일 터였다.
“선배님, 이것 보십시오.”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태호가 갑자기 그의 양 팔뚝을 걷어 올렸다.
팔뚝 가운데에 문신이 선명했다. 한쪽엔 한자로 ‘멸공’ 이라고 새겨져 있었고 다른 한쪽엔 ‘조국해방’이란 조악한 한글이었다. 태호는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청주 보안감호소 있을 때 선배님처럼 서너 번 면회 갔던 사람에게서 들은 건데요, 아무도 이분의 이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대요. 고향이 황해도라는 거하고 거제 포로수용소 출신이란 거, 그다음에 하도 고문을 당하니까 누군가가 이 문신을 새겨주었다는 거예요. 양쪽으로 다 면피용으로 쓸 수 있게시리. 그런데 무슨 소용입니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결국 보안감호소에서 십 몇 년 썩고 나온 걸요.”
누군가 집안의 환자들을 감시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중증의 정신질환자인 그는 완전히 방치된 상태였다.
“지난번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어요. 세상에 이럴 수가.”
계속해서 뒤죽박죽으로 사설을 늘어놓고 있는 그를 잠시 내버려두고 다시 꽃동네 안 면회안내실로 올라가 보았다. 법무부에서 그를 이곳으로 보낼 때 무슨 참고서류라도 첨부했으리란 한 가닥 기대에 의지한 채. 그러나 태호와 나는 금방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들은 그가 보안감호소 출신이라는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니 보안감호소란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고 해야 옳았다.
“다음에 또 올 테니까요, 식사 잘하고 계세요. 아시겠어요?”
태호는 그의 양손을 붙들고 몇 번이고 다짐한 후 돌아섰다. 집을 나서면서 태호는 시삘겋게 충혈된 눈시울을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문질렀다.
그는 다른 행려병자와 함께 똑같이 외딴집에 버려져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같은 보안감호소 출신인 사람들의 이력을 몇이나 더 알고 있는가. 우연히 기회가 닿은 김 노인 이외의 어느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 게 아닌가. 어쩌면 그를 기소하고 판결한 사람들,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근거 없는 예단* 하나로 사람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은 채 커피를 마시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2년마다 구금을 연장하는 서류에 날인을 했을 사람들은 그의 이름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을 것이었다.
꽃동네 앞의 국도를 걸어서 버스를 기다리고 다시 음성에서 서울행 버스를 갈아탈 때까지의 그 긴 시간 동안 태호와 나는 한마디 얘기도 하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막 음성 인터체인지에 올라섰을 때 온종일 음산하게 내려앉아 있던 잿빛 대기는 굵은 빗방울을 내리쳤다. 중증의 정신질환자인 그의 팔속에 새겨진 문신이 빗물이 맹렬하게 부딪고 있는 버스 유리창 위로 어른거렸다. 환갑이 채 안 돼 보이는 그가 만약에 참전용사였다면 아마도 열대여섯 소년병이 아니었을지. 그의 처참한 몰골에 비긴다면 김 노인은 얼마나 꼿꼿한가. 내가 최 형사에게 발설하지 않고 있는 그 의형제 찾기 소동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김 노인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반듯하지 않았던가.
김 노인은 변하고 있는 걸까? 혹시 눈앞에 다가와 있는 죽음을 감지하고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일까.
“원래 간도지방은 조선인들 세상이었어요. 중국인은 그저 다섯에 하나 정도 있었을까요. 수령 동지는 일본제국주의 피해서 온 민족주의자의 아들이야요. 그 부친이 타계하고 길림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어요. 중국공산당원인 것이 뭐 이상합니까. 원래 일국 일당이 원칙이잖아요? 만주사변 일어나기 이전부터도 간도에는 조선인 유격대들이 많이 있었어요. 일본제국주의와 반동지주 타도하는 공산주의 운동은 대부분 조선인이 해냈던 것이야요. 왕청, 훈춘, 연길, 화룡 등지의 유격대 모두가 그랬어. 이거이 나중에 수령 동지가 이끄는 동북인민혁명군이 된 것이야요. 학교에서 력사시간에 보천보 전투에 대해 배우지 않았어요? 보천보 전투는 항일 무장투쟁의 빛나는 승리야요. 어떻게 승리했는지 아세요? 조선 독립을 위해 그때는 조선과 중국이 합동투쟁을 했어요. 수령 동지가 이끄는 부대하고 중국공산당 두 개 부대가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무산으로 짓쳐* 들어가 왜놈들 주재소를 쳐부순 것이야요. 이때 수령 동지 부대가 보천에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조선 내 청년들이 합류해서 왜놈들이 들어앉은 주재소, 면사무소 등 관공서를 불태우고 철수했겠지요. 그러자니 왜놈들이 어떻게 했겠어요? 오가와라구 악질 왜놈 경부*가 뒤쫓아 추격을 했는데 말짱 헛수고만 했지요. 그뿐만 아니야요. 독사처럼 약이 오른 왜놈들이 이번에는 경 찰이 아니라 군대를 풀어서 토벌하겠다고 쫓아갔다가 누구를 만났겠어요. 보천을 공격한 수령 동지 부대하고 안도, 화룡을 거쳐 무산을 공격한 부대하고 장백에 있던 부대가 삼각형 골짜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일본군을 공격한 것이야요. 이때부터 조선 인민들 사이에 ‘김니첸’ 이 유명해진 것이지요. 이거이 어째 조선해방전쟁이 아닙니까? 이렇게 엄연한 력사적 사실을 왜 리해하지 않으려구 합니까. 우리 조선의 력사인데. 이렇게 수만 명 인민들이 목숨으 걸고 투쟁했는데 어째서 조선이 순전히 쏘련이나 미국으 힘으로 해방됐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리해하지 못하겠어요.”
그날, 어쩌자고 우리들은 김 노인을 가운데 두고 그런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았던 것일까. 그것도 명자네 집에 김 노인을 초대 형식으로 부른 자리에서. 명자의 사무실 옆방, 진보적 기독교 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 둘이 동석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 노인이 기거하는 곳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이니만큼 기독교에 귀의해서 인생을 정리해보라는, 전혀 악의 없는 권유에서 발단된 화제는 급기야 북의 통치자를 향한 비난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통치자의 전력이 날조된 걸로 알고 있다는 후배의 말에 김 노인은 어찌나 조목조목 반박하고 설득하려 드는지, 또 어디서 그런 놀라운 기억이 숨어 있다가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술술 풀려 나오는지 나와 명자는 그저 놀라워했을 뿐이었다.
“그런 말은 모두 가짜야요. 독립군 토벌에 나섰던 왜놈이나 또 왜놈한테 매수당해서 민족 팔아먹은 자들이 모함하는 소리를 귀담아 들으면 절대 안 되는 것이야요. 만주 공산게릴라만큼 목숨 바쳐 애국한 이들이 없어요. 그걸 모르구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김 노인은 몹시 화가 난 채 내친김이란 듯이 연이어 말했다.
“남로당 숙청 했다는데 난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수령 동지는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아니야요. 노동인민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는지 모를 거야요. 미제의 폭격으로 북조선에는 성한 건물이 하나도 남아나지 못했시요. 잿더미를 순전히 인민의 자력으로 건설한 것인데 인민이 수령 동지를 믿지 않는다면 누구래 기렇게 열심히 일했겠습니까. 난 잘 모릅니다만 당과 수령 동지가 아주 그릇되게 판단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 것이야요.”
이십 대 후반인 후배가 딱한 눈으로 김 노인을 바라보았고 그는 그 눈빛의 의미를 얼른 알아차린 듯했다.
“내 못나서 인민을 위해 봉사한 것이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변절으 아니했습니다. 지금 다시 감옥으로 가란대도 인민을 위한 사상 버릴 수 없지요.”
김 노인은 뉴스나 신문을 보지 않았던 것일까? 양로원 방 안의 고물 TV가 아주 고장이 나버린 것이었을까. 김 노인은 그즈음 요란을 떨고 있던 루마니아 차우체스쿠 정권의 붕괴를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후배들은 김 노인에게 그 사실을 환기시키지는 않았다. 누가 그를 팔순 노인이라고 할지. 그의 눈은 연애에 탐닉한 사람처럼 맑아 보였고, 어조는 다소 흥분한 탓에 무심결에 툭툭 북쪽 사투리가 간혹 섞여 나오는 것 외엔 정확하고도 분명한 것이었다.
“아무리 올바른 리념이나 정책도 시행과정에서는 잘못될 수 있지요. 해방 후에 토지 무상분배 때도 말단에서는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친일분자 숙청했다고 하지만 아주 악질적인 매국노 빼고는 모두 자아비판한 후 조국 건설에 참여시켰드랬어요. 제국주의에 빌붙은 일부를 뺀 전 인민의 동의와 협동이 아니면 어드렇게 그렇게 빠른 시간에 공화국을 건설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할아버지, 당신은 결과적으로 이용당한 것이고 그리고 지금은 남북이 모두 버린 거예요’라고 후배들이 눈으로 말하고 있었고 명자 역시 암묵적으로 그들에게 동의하는 빛이 역력했는데도 김 노인은 조금도 겸연쩍어하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의 변함없는 소신을 토로했다. 약한 술기운처럼 붉으레하게 상기된 주름투성이 노안(老顔)이 어떤 한순간에 사랑을 고백하는 풋내기 소년처럼 느껴졌다.
“명자 사모님. 내 부끄러운 얘기 하나 할까요? 내가 수령 동지하고 동갑인데 거기다 생일까지 수령 동지 바로 뒷날이랍니다. 하하.”
그렇게 말하고 모처럼 활짝 웃는데 보니 그는 윗니가 모두 빠져나가 빈 잇몸을 드러낸, 오갈 데 없는 팔순 할아버지인 것이었다.
어리석은 건 그가 아니라 아마도 명자나 후배나 내가 아닐까. 삼십 년 감옥 속에서 부둥켜안고 있었던 걸 머나먼 동구 어느 나라 정권의 몰락이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고 손쉽게 생각했다면.
‘할아버지, 제발 그전처럼 그냥 그대로 있으세요.’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중부고속도로가 거의 끝난 지점에 이르자 이른 저녁인데도 양켠 난간을 따라 불빛을 촘촘히 거느린 한강 다리들이 보였다.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을 통해 비쳐 든 다리의 풍경은 거대한 규모일 텐데도 왠지 따사롭게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드넓은 강폭을 높직이 가로지르고 있는 올림픽대교의 난간을 따라 점선으로 켜져 있는 불빛들의 윤곽이 꼭 어머어마한 크기의 배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도도한 해양이 육지와 만나 멈추어버린 그 항구에 닻을 내리고 유유히 정박해 있는 큰 배. 배는 우람하게 높은 키를 뽐내며 꿈쩍 않고 정박해 있는 중이었다. 김 노인이 교수사업을 했다는 청진의 포구에도 지금 이 시간쯤엔 크고 작은 숱한 배들이 머무르고 있을까? 그를 깜쪽같이 청진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을까?
천하에 둘도 없을 바보, 청맹과니.* 제 인생을 구겨버린 당과 수령을 증오하기는커녕 금이야 옥이야 껴안고 있다니.
“선배님, 그 사람들 요즈음 죽고 싶을 거예요 아마.”
시종 말이 없던 태호가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누구?”
“사회주의 혁명에 몸 바쳤던 혁명 1세대들 말입니다. 소련 붕괴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닐까요?”
태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최고 통치자를 향해 거침없이 퇴진을 요구하고 그의 상징인 정당 당사에 쳐들어가서 불을 질렀던 열정과 용맹을 태호는 이제 잃어버린 걸까? 얇은 눈꺼풀 주변에 서려 있는 그림자 같은 게 느껴지면서 나는 그 애가 어쩐지 측은해 보였다. 그들이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정치결사체를 만든 것도 아니고 더욱이 소련이 붕괴된다고 해서 당장에 그들에게 무슨 변화가 닥칠 일도 아닌데.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할아버지도 제정신이라면 고통스러울 거예요. 인생을 통째 압류당하면서까지 껴안고 있었을 텐데.”
태호의 말대로 김 노인이 차라리 그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실종은 결코 그 때문이 아닐 것이었다. 태호는 모르고 있었지만 김 노인은 작년쯤에 우리들을 야단치던 그의 모습에서 이미 너무 많이 비껴 서 있기 때문에, 그가 더 많이 변하기 전에 그를 청진으로 보낼 수만 있다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은 뿌연 비안개 속에 펼쳐져 있었다. 멀리 내가 건너야 할 다리가 보였다. 교각 위에 떠 있는 다리는 무척 아름다웠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 같은 불빛이 빗속에 아롱아롱 조는 듯이 떠 있는 거! 그것 역시 거대한 배의 형상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 여기가 바로 청진이고 저 불빛들이 등을 켜기 시작하는 밤배라면. 김 노인은 못나빠진 의형제를 찾기 위해 유령마냥 거리를 배회하진 않을 텐데.
예상보다 좀 늦어버린 시각이었다. 다리 건너편, 나의 아파트가 보였다.
당신 요즈음 뭐 하는 거야? 말도 없이 어딜 싸다녀. 늦은 시간에. 그리고 웬 놈의 형사가 무슨 일로 전화질을 하논 거야?
아파트 군으로부터 진호의 심드렁한 말이 들려왔다. 지금쯤 그는 귀가해 있을 것이었다. 오늘도 7시, 9시, 마감뉴스 등 모든 TV 뉴스는 밧줄에 목이 매달린 채 끌어내려지는 레닌의 동상을 비추어줄까? 진호는 어쩌면 그 뉴스만은 열심히 보고 있을지도.
김 노인은 대체 어디에 가 있을까.
『창작과 비평』 77호(1992년 가을); 『안개 너머 청진항』 (창비 1995)
유시춘(柳時春)
1950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여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3년간 교편생활을 했다. 1973년 『세대』 지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건조지대」 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오랜 공백기간을 거쳐 80년대 중반 작품 활동을 재개한 뒤, 이 시대의 인권유린 현장과 역사에 희생된 인물들의 삶을 주로 형상화했다.
소설집 『살아 있는 바람』 『우산 셋이 나란히』 『안개 너머 청진항』, 장편소설 『찬란한 이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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