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서울 신사동 ‘더 자스 클라이밍짐’ 실내 인공 암장에서 ‘암벽 여제’ 김자인이 홀드에 단단히 매달린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이번 시즌을 1위로 마친 그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독이며 한 홀드씩 앞으로 나아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사진 때문이었을까. 얼마 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실내 인공 암벽장에서 김자인 선수를 만났을 때 먼저 손에 눈이 갔다. 손끝에서 한참 안쪽으로 들어가 삐뚤삐뚤하게 잘린 손톱은 '짧다'는 표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짧았다. 웅크린 모양의 발가락엔 마디마다 굳은살이 포도처럼 맺혀 있었다.
곱상한 얼굴과 거친 손발, 작은 키(153㎝)와 굵직한 어깨 근육은 '균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는 '왜 이 험한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라고 말하면서 나긋나긋한 눈웃음을 지었다. "손가락 반 마디만 한 작은 홀드(암벽에 손발을 디딜 수 있게 나오거나 들어간 요철)를 잡아야 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힘을 너무 꽉 주면 손바닥이 찢어지기도 하고 그래요, 헤헤…."
스포츠클라이밍은 인공 벽을 누가 더 빨리, 효율적으로 오르는지를 다투는 경기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은 등반용 로프를 매고 약 15m 높이의 암벽을 8분 동안 누가 더 많이 오르는지 겨루는 '리드', 4m 높이의 암벽을 로프 없이 오르는 '볼더링', 7초 동안 빠르게 암벽을 오르는 '스피드' 등으로 종목을 나눈다. 김자인의 주종목은 리드다. 지난 18일 슬로베니아 크란에서 열린 IFSC 리드 월드컵 8차전 결승전에서 4등을 한 김자인은 올해 월드컵 여덟 번 중 네 번을 우승해 시즌을 1위로 마무리했다. 슬로베니아의 미나 마르코비치에게 3년 전 내주었던 세계 랭킹(최근 12개월 모든 대회 포인트 합산해 산정) 1위 자리도 되찾았다.
- 암벽을 오르다 찢어진 김자인의 손. 사람 입 모양으로 난 상처 위에 펜으로 눈과 코를 그려 넣었다(왼쪽). /김자인 트위터 오종찬 기자
김자인은 골프 선수 박인비, 스피드스케이터 이상화와 함께 2013년을 기분 좋게 마무리한 '스포츠 여제 삼인방'에 든다. 골프가 정확도, 스케이팅이 속도의 경기라면 클라이밍의 핵심은 '끈기'다. 김자인은 중력을 거스르며 꾸역꾸역 올라가야 하는 클라이밍의 즐거움이 몰입할 때의 쾌감에서 온다고 했다. "몰입을 하면 벽이랑 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에요. 벽 말고 다른 모든 것이 잘 안 보이죠. 그 몰입은 집중에서 오고 집중력은 '공포에 대한 공포'에서 와요. 공포가 오면 저는 죽도록 집중하려고 애쓰고, 몰입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공포가 기어들어 오는 식이죠."
김자인의 가장 큰 공포는 추락이다. 등반 전문가인 부모님과 먼저 클라이밍에 발을 들여놓은 오빠들을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때 클라이밍에 입문한 김자인은 어릴 때부터 높이에 대한 공포가 남보다 심했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 가도 놀이기구는 타지 않을 정도였다.
클라이밍 입문 1년 만인 중학교 1학년 때 국내 청소년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암벽을 오르는 짜릿함에 본격적으로 빠졌다는 그는 "집중을 하면 할수록 높이에 대한 공포가 줄더라. 하지만 추락은 여전히 무섭다"고 했다. "허리에 줄을 묶고 클라이밍을 하니까 떨어져도 안전하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도 추락을 하는 자체가, 떨어질 때의 현기증 나는 느낌이 요즘도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 공포를 물리치는 방법은 오직 몰입뿐이에요. 암벽과 나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에만 집중하는 거죠."
클라이밍은 거대한 힘인 중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운동이다. 한순간 한눈을 팔면 눈 깜짝할 사이에 떨어져 버린다. 독일의 클라이머 볼프강 귈리히(1960~1992)는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근육은 뇌"라고 말했다. 집중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자인은 지난해 11월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IFSC 리드 월드컵에서 집중력의 힘을 생생하게 느꼈다. 당시 김자인이 암벽을 오르기 시작하자 대회 주최 측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크게 틀었다. 나름 한국 선수에 대한 배려였는데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소리가 거슬렸던 김자인은 끝내 흐트러진 집중력을 추스르지 못했고 중간쯤에서 실수로 발이 미끄러져 암벽에서 떨어졌다. 그는 "몰입은 그저 한순간의 결심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집중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긴긴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굳은살이 가득한 김자인의 발. 발가락엔 노란색과 옅은 푸른색 페디큐어가 칠해져 있다./김자인 트위터 오종찬 기자
이렇게 '죽도록' 올라가는데도 클라이밍 경기에서 완등은 아주 드물다. 이번 월드컵 8차전 결승전에선 남녀 선수 18명 전원이 완등에 실패했다. 43개 홀드 중에 김자인은 29개까지 올라갔고, 1등을 한 일본의 오다 모모카가 34번 홀드를 잡자마자 떨어졌다. 떨어지기 직전 선수들은 모두 온몸을 비틀어 남은 에너지 한 방울이라도 쥐어짜려는 듯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힘든데 왜 자꾸 올라가는지 궁금했다. 김자인은 "인간의 본성 때문인 것 같다"며 웃었다. "우리가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심지어 앉았을 때도 중력을 이겨내고 있는 거잖아요. 우리를 끝없이 잡아끄는 압도적인 힘을 거스르면서 나아가고자 하는 본성이 인간의 안에는 있지 않을까요."
'인제 그만 내려가야겠다' 싶은 순간에 대해 묻자 그는 "거의 늘"이라고 했다. "등반하는 매 순간순간 수도 없이 '지금 (체력이)바닥이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더는 못 가겠다는 느낌은 몸에서 먼저 와요. 하지만 그대로 놓아버리면 안 돼요. 생각은 몸보다 훨씬 더 오래 버티거든요. '더 할 수 있다. 더 할 수 있다…' 다독이면서 생각이 몸을 한동안 끌고 갈 수 있다는 걸 저는 알아요. 언젠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끝까지, 죽도록 버텨요. 중요한 건 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순간을 최대한 늦추려고 애쓰는 그 과정 자체니까요."
첫댓글 제가 요즘 실내암장 등록하고.... 대학생들과 어울립니다
왼발 엄지쪽에 좁쌀알 하나생기고... 손바닥에 굳은살도...으
근디 아직도 턱걸이 하나를 못해요
섬세한 손끝을 요구하는 의사 손이거늘 ㅉㅉㅉㅉ
그 병원환자들 걱정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