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예배 설교 제목을 기억하십니까?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웠습니다. (14절 다시 강조 함께 읽는다 )
그렇습니다..... 복음의 현장에서 당하는 일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다면 내가 받는 고난 자체가 복이기에 ”아멘“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복음의 현장에서 고난 받는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나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의를 위한 고난은 거룩한 순교나 거친 핍박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핍박이나 고통이 없었다하여도 평탄한 일상 자체가 결코 영적 나태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내면의 제자도란 말이 있습니다. 어려움 없어 보이는 일상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유혹을 이겨내며, 말씀의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세상의 흐름에 거스르는 거룩한 싸움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의라 할수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이 복이 되는데 그 주체가 누구인가? 사도베드로는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의를 위한 고난의 주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의를 위해 어떤 사역을 하셨고 부활이후에 나타난 최후 승리의 대 선언을 이루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의의 고난의 주체이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부릅니다. 또 부르며 싫증을 느낄 정도로 자주 외쳐며 기도하며 내 가슴에 품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곧 의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18절 시작은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역을 하셨다고 사도베드로는 고난받는 초대교회성도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단번에”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단번에 헬라어 원어로 ‘하팍스’라는 단어인데 단 한 번으로 완벽하게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난은 두 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단 한 번에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마음 판에 깊이 세기고 기억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믿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고통을 주고 어렵게 하려는 ‘형벌’이 아닙니다..... 죄 없으신 우리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지시고 단번에 십자가에서 끝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예수님 의를 위해 고난의 주체가 되시는데 분명한 목적은 무엇일까요?......저와 여러분을“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란 단어를 자주씁니다. 인도란 헬라어로 ‘프로사고게(prosagoge)’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고대 왕정 국가에서 특별한 상황일때 쓰이던 단어입니다.
왕정시대 일반 백성은 왕의 얼굴을 함부로 볼 수 없었습니다. 만약 허락 없이 왕 앞에 나아갔다가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직 왕이 가장 신임하는 ‘인도자가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왕의 보좌 앞으로 데려갈 때만 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로 얼룩진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이신 예수님이 친히 우리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어 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떤 고난도 두려움이 아닌 것은 주님이 우리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강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히 4:16)
그런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9절을 보면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선포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그들은 전에 누구입니까? 노아의 시대에 끝까지 하나님을 비웃고 불순종하다가 심판을 당한 자들입니다.
노아의 시대를 상상해 보십시오. 세상 모든 사람이 죄악과 쾌락에 빠져 살 때,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짓던 노아를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비웃었겠습니까? “저 바보 같은 사람 노아를 좀 보소!~~ 멀쩡한 날씨에 무슨 배를 만든다고 저 고생인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노아는 지극히 외롭고 초라해 보이지만 쏟아진 홍수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왜요! 방주에는 문이 오직 하나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길도 오직 한 길입니다.
요1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0: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지위가 높은 자도, 재물이 많은 자도 오직 그 하나의 문을 통과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스펙이나 조건은 구원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겨우 8명만 구원받았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의 문으로 들어간 자들만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일부 성도들은 노아의 홍수 때 '물'을 통과해 방주로 구원받은 역사적 사건을 오해하여, 세례를 받을 때 몸을 씻는 물 자체에 신비한 구원의 효력이 있다고 착각하곤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잘못된 교리와 신앙 형식주의를 단호하게 경계하며 물은 육체의 때를 씻어내는 것 뿐, 우리 영혼의 죄를 절대로 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이며, 그 능력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한 양심'임을 믿습니다.
2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무슨 뜻입니까? 간구는 기도요 응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해진 선한 양심을 가진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이제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자발적으로 응답하고 결단하는 것이 진정한 세례요 결단입니다.
지금 구원받는 자가 소수 같고 세상 사람들에게 지는 것 같으나, 우리는 이미 ‘예수’라는 완벽한 구원의 방주 안에 있습니다.
구원의 방주는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비웃음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타고 있는 방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 자에게 22절에서 이렇게 맺습니다. 다 함께 한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모든 권세를 발아래 두시고 고난의 모델이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낮고 천한 구유에 계시지 않습니다...... 피 흘리며 고통받던 십자가에 머물러 계시지 않습니다........ 무덤 속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사 우주의 가장 높은 자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세상의 모든 천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능력들이 다 누구에게 복종합니까?....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빌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였다 말씀하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날을 ‘D-Day(결정적 승리의 날)’라고 부릅니다.
이 작전이 성공한 순간, 전쟁의 승패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당시 독일 히틀러의 군대는 패배한 것이나 다를 봐 없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완전히 전쟁이 끝난 날은 11개월 뒤인 1945년 5월 8일이 ‘V-Day(최종 승리의 날)’였습니다.
그 사이 11개월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이미 패배가 확정된 독일군은 발악하며 마지막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그 사이에 연합군과 수많은 전투가 있었고, 여전히 군인들의 희생과 고난은 계속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바로 디데이(D-Day)와 브이데이(V-Day) 사이의 영적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결정적인 승리(D-Day)를 이미 거두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는 온 우주는 완벽한 최종 승리(V-Day)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며 겪는 질병의 고통, 물질의 어려움, 믿음 때문에 당하는 억울함과 의의 고난은 계속 될 것입니다. 원수 마귀는 여전히 의롭게 살며 고난 당하는 자들에게 찾아와 포기하도록 속삭이며 마지막 발악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이미 전쟁은 끝났습니다.
우리 대장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고, 세상의 모든 권세는 지금 그분의 발아래 복종하고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먼저 고난을 걲으시고 모범을 보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십자가 군병으로 어떤 고난이 임하여도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