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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코스모 4>, 2007-이네 실바 |
베네수엘라의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4월 14일에 실시된다. 야권은 간신히 분열을 면한 모습이고, 여권은 세상을 떠난 차베스 없이 결속을 다져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차베스 생전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일이기에 새로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우고 차베스가 암 발병과 힘든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후속 조처가 잇따랐다. 국가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에 명시된 30일 이내 선거 실시 조항을 준수해 4월 14일로 대통령 선거일을 정했고, 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임시 대통령에 임명됐다. 차베스가 서거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시점에 국회 다수당인 베네수엘라통일사회당(PSUV)은 마두로를 대선 후보로 추대했고,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낙마한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민주통합원탁회의(MUD)의 야권 통합 후보 제의를 받아들였다.
갑작스럽게 치르게 된 대통령 선거 기간에 가장 큰 관건은 한 몸이 되어 정부 활동을 지지해온 볼리바리안 운동이 역사적 지도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강력한 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다. 지난해 12월 이미 차베스가 쿠바에서 네 번째 암수술을 받은 직후 반정부 세력과 언론들은 정권 내부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암투가 진행 중이라는 루머를 흘렸다. 그들이 지목한 주인공은 마두로 부통령과 디오스다도 카벨로 국회의장이었다.
베네수엘라 좌파가 걸어온 분열의 역사를 감안하면 루머가 아닐 수도 있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에서 모자이크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이질적인 세력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데 성공한 최초의 국가 지도자다. 이런 유산을 훼손하기를 원치 않는 카벨로와 마두로는 서둘러 '소문' 진화에 나섰다. 두 사람은 지난 1월 5일 회동 때 사진기자들 앞에서 포옹하는 등 서로의 우정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마두로는 "우리는 차베스의 아들들이며 서로 형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두 후계자의 관계가 돈독하다면 그토록 많은 베네수엘라인들이 볼리바리안 운동이 앞으로 분열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베스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 15년 전 시작한 운동의 통합력을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카리스마 덕분이었다. 마두로의 인기와 매력이 차베스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볼리바리안 운동의 미래가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권위에만 의존한다고 볼 수는 없다.
1958~88년 30년 동안 제4공화국에서 번갈아가며 정권을 차지한 사민주의 세력과 기독민주 세력은 카리스마적 지도자 없이도 강한 내부적 결속을 자랑했다. 철저한 내부 규율 때문이기도 했지만 양쪽 모두 석유에서 나오는 이윤을 탐냈기 때문이다. 양 정당에 포진한 이익집단들은- 오늘날 반정부 세력의 근간을 이루는 교회, 경영인, 언론, 최대 노총- 석유 이윤이 그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직결하고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은 알아서 살길을 찾는 사회구조를 원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했다.
석유 이윤의 사적 갈취를 통해 소수의 치부와 다수의 빈곤화를 구조화하는 후견인주의(Clientelism) 시스템은, 1960~70년대 베네수엘라 엘리트들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뒤 힘을 잃었다. 그때 내려진 신자유주의 처방은 환자를 치료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을 앞당기는 결과만 초래했다.
1998년 대통령 후보로 나선 차베스는 그때까지 분열해 경합을 벌이던 좌파 세력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통합력은 그의 뛰어난 웅변술, 사회정의 실현을 통한 혁명에 대한 약속과 함께 대선 승리의 주된 요인이었다. 차베스는 운동의 토대를 가장 소외되고 낙후된 사회적 계층에까지 확장하려고 애썼다. 특히 그들에게 석유 이윤의 일부를 제공하고, 지역 공동체 관리와 직장 경영에 적극적인 참여권을 주는 방식이 사용됐다.
대중의 지지가 없었다면 차베스도 없었다
전략 산업 국유화, 국영기업 다수의 노동자 협동조합으로의 전환, 농업개혁, 지역자치위원회 설립, 극빈자 대상 복지 프로그램 등 '볼리바리안 혁명'의 모든 성과 덕에 차베스는 탄탄한 대중적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과거 정권들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한 대중이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차베스의 카리스마와 무관하게 이런 대중의 지지가 없었다면 볼리바리안 운동 활동가들이 대통령과 정부에 보여준 충성도는 훨씬 약했을 것이다.
차베스가 또 다른 후견인주의 체제를 만들어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이 경우에는 소수가 이익을 얻기 위해 차베스에 대한 지지를 이용하는 대신 다수 대중이 사회 변혁 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칠레의 여론조사기관 라티노바로메트로(1)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베네수엘라인의 다수가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에 만족한다'고 답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일부 조사에서 '베네수엘라인이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이라는 결과(2)가 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높은 범죄율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생각하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더욱이 볼리바리안 정부는 이에 대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석유 이윤의 재분배 정책은 사회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창출한다. 오늘날 그 결과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분열된 야권 세력에 비해 좌파 중산 계급(사민주의 좌파)과 대다수 서민층으로 이루어진 친정부 세력은 훨씬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MUD는 계파 간 싸움으로 언제 해체될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반면, 볼리바리안 운동에 참여하는 조직들은 차베스가 치료를 받느라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어떤 긴장이나 대립 양상을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통일된 힘을 보여주고 있지만 후계자 문제만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익집단들은 역사적으로 국가 기구와 맺어온 관계를 완전히 단절한 적이 없다. 그들이 정치권 앞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석유산업의 의존도가 높다보니 공권력으로 사회·경제 세력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자리잡았다.
볼리바리안 정부가 의지하는 3개의 핵심 세력은 시민사회, 군대, 산업이다. 정부 내에서 마두로와 전 부통령 엘리아스 하우아가 대표하는 사회운동 세력이 중심을 이루고, 그 주위에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작은 그룹인 가령 소농, 원주민, 차베스 지지 학생 그룹이 포진해 있다. 군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한쪽에는 '온건파' 혹은 '반대파'로 불리는 그룹이 있고(카벨로가 이들을 대표하는 주요 인사로 알려졌다), 다른 쪽에는 내무부와 법무부 장관 출신의 라몬 로드리게스 차신이 대표하는 더 급진적인 그룹이 있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 사장 라파엘 라미레스가 이끄는 석유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들 역시 발언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미구엘 페레스 아바드가 회장으로 있는 중소기업인들의 모임 베네수엘라 공업협회(Fedeindustria)와 석유산업 분야의 개인 사업자들도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상공인연협회(Fedecamaras)는 반정부 성향을 보인다.
차베스는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이 이익집단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 비결은 그들에게 제시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었다. 석유 이윤의 분배와 정치권 진출이 대가로 제공됐고, 퇴직을 앞둔 군인들에게는 공공기관의 요직을 약속했다. 마두로 역시 대통령에 당선되면 같은 방식을 택할 것이다. 시민사회에 확고한 지지 세력을 가진 그로서는 신뢰 구축을 통해 군부와 산업계 인사들(특히 카벨로와 라미레스)의 지속적인 정부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차베스의 흔들림 없는 권위가 사라진 공백 속에서 마두로는 규율이 약화된 다수 세력을 토론과 갈등 속에서 이끌고 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군사적 단결의 고리, 미국의 위협
볼리바리안 혁명을 지속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 앞에서 볼리바리안 운동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모험에 빠져들 가능성은 별로 없다. 더욱이 운동의 지도자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반면 가능성은 아주 적지만 마두로가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내부 분열의 기미가 표면화될 것이다. 볼리바리안 운동 역시 야권이 보여준 분열 양상을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볼리바리안 혁명의 미래에 관한 가장 시급한 질문은 차베스의 후계자가 정치적 방향성을 전환할 것인지 여부다. 많은 전문가들이 마두로가 차베스보다 사회운동 세력의 의견에 더 귀기울일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최소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다. 차베스가 공직 진출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군인들을 우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사회·경제 정책을 수립할 때는 자주 대중 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또한 마두로는 자신의 지지 기반인 노조나 지역 활동가들 중에 숙련된 행정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국가 기구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군 출신 인사들의 도움이 불가피하다.
정부 내 세력 규합을 강화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미국이다. 볼리바리안 운동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특히 오랜 세월 좌파 활동에 몸담아온 이들은 워싱턴이 괘씸한 베네수엘라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포함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볼리바리안 운동의 지도자와 활동가들 눈에 미국의 개입이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자신의 분열이나 나약함을 드러낼 만한 모든 징후를 차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차베스가 남긴 미완성 프로젝트의 미래는?
차베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 공개 석상에서 자주 지지자들에게 "단결, 단결, 단결"을 외쳤다. 그 역시 볼리바리안 운동의 갈 길이 아직 멀었음을 잘 알고 있기에 후계자들에 의해 마지막까지 운동이 지속되기를 바랐다. 베네수엘라의 사회학자 자비에 비아르도는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차베스에게 정치적 비극은 그의 정부가 혁명적 방향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인식- 암묵적인 자기비판- 속에 있었다."(3) 2012년 10월 재선에 성공한 뒤 차베스가 한 연설에도 그런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는 1999년 헌법에 기초한… 새로운 법적 뼈대를 갖추고 있다. 지역 위원회, 코뮌, 지역 경제, 경제발전을 위한 지역 주체들에 관한 법률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법률 적용의 첫 번째 책임자임에도 이 법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차베스 사후에도 '21세기형 참여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그의 목표는 노련한 혁명가, 지역 활동가, 진보적 장교, 다양한 경제적 이익집단으로 구성된 볼리바리안 운동의 새로운 목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차베스의 14년 집권 기간에 그랬듯이, 이 그룹들이 다시 한번 자신의 요구를 단일한 그림으로 엮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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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그레고리 윌퍼트 Gregory Wilpert 사회학자. <Changing Venezuela by Taking Power>(Verso·런던·2007)의 저자.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프랑스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1) www.latinobarometro.org.
(2) ‘Venezuela happiest country in South America’, http://venezuelanalysis.com, 2012년 6월 10일.
(3) http://saberescontrahegemonicos.blogspot.com, 2013년 2월 2일.
차베스에 대한 비판
멕시코에서 사파티스타의 싸구려 오페라가 서막을 연 뒤, 라틴아메리카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차베스가 등장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위협이 되고 있다. 향후 베네수엘라-쿠바-아이티의 포퓰리스트 카르텔은 콜롬비아까지 확대돼 이 지역에서 획득한 민주적 성취를 제자리로 되돌리게 할 것인가?
-알렉상드르 아들러, 에세이스트, 2000년 11월 23일
부자들에게 대항하라고 가난한 이들을 선동하는 그의 열정적인 웅변이 가장 큰 문제다.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포>, 2002년 4월 11일 쿠데타 발생 3일 뒤
일반적인 여론에 따르면, 혁명을 일으킨 적도 없으면서 반혁명의 궤도를 따라가는 우고 차베스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자크 쥐야르, 언론인, 2002년 6월 6일
못생긴 사람들일수록 차베스를 지지한다. 그들은 여기저기 얻어맞아 이를 몽땅 잃고 나서도 차베스를 지지한다. 주변을 둘러보라. 이곳(전통적으로 차베스에 반대해온 부유층 지역)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2002년 12월 21~22일자에 인용된 한 반대자의 말
우고 차베스는 현대판 시몬 볼리바르가 되기를 꿈꾸지만 실은 하찮은 불량배에 지나지 않는다.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의장, 2006년 9월 21일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와 개인이 등장하기 전의 원시사회다. 그곳에서는 인간들이 아직 군중으로만 존재하고, 그들이 자신의 주도력과 자유의지를 양도한 반신(半神)이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노벨문학상 수상자, 2013년 3월 10일
차베스는 노골적으로 반유대주의적이다. 또한 그는 살인을 업으로 삼는 군대 패거리들과 탄압을 자행하고 언론을 입막음하고 있다.
-아리엘 위즈만, <카날 플뤼>, 2007년 11월 20일
그 입 좀 닥치지 못해!
-2007년 열린 이베리아-아메리카 정상회담장에서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우고 차베스를 향해 소리친 말
사회주의의 조국 베네수엘라는 믿음도 법도 사라진, 울트라-자유주의가 도달한 최신 버전이다.
-<카날 플뤼> 방송 프로그램 <특별 추적>, 2012년 10월 8일
베네수엘라 지표
연평균 성장률
1999~2012년 3.2%
2003년(석유 생산 중단) -10%
2004~2012년 4.3%
2012년 공공 적자 7%
2003~2012년 자본 유출 1500억 달러
불평등 베네수엘라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빈곤층 비율
1999년 49.4% / 2010년 27.8%
극빈층 비율
1999년 21.7% / 2010년 10.7%
중등교육 취학률
2000년 53.6% / 2011년 71.1%
2000~2010년 보건 지출 증가 61%
1998~2011년 퇴직연금 수령자 수 증가 472%
석유 생산
1998년 하루 35억 배럴
2012년 하루 25억 배럴
*베네수엘라는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한다.
소비재 수입 비율(2012) 80%
기본 식료품 수입률
1998년 90% / 2012년 30%
미국이 반정부 그룹들에 제공하는 자금
2000년 23만 달러 / 2003년 1천만 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