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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맞은 한일탈핵평화순례 2
10-13일까지 경북 왜관과 부산에서 진행된 2024년 10회 ‘한일 탈핵평화순례’ 셋째 날은 다카노 사토시 연구원(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과 정수희 집행위원(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의 강의로 시작됐다.
전날 미츠노부 이치로 신부가 강연한 '일본 정부가 핵발전을 고집하는 이유'에 이어, 다카노 사토시 연구원은 일본의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현황과 문제점을 짚었다.
그는 2010년부터 3년간 한국의 탈핵 단체에서 활동하고, 에너지 정책과 숙의 민주주의, 사회운동이론을 배웠다. 현재 일본 반핵 민간연구기구인 원자력정보실에서 핵폐기물 문제를 담당하며, 일본 경제산업성 심의회 특정방사성폐기물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카노 연구원은 일본의 핵폐기물 처리 정책은 "그 전제와 현실 조건이 모두 틀린 것"이라며, 무엇보다 핵폐기물 처리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정책 이행으로 지역 주민들의 갈등과 공동체 파괴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발생한 핵폐기물을 재처리할 수 없고, 불안정한 지층 지대라는 위치 문제, 핵폐기물 총량을 규제하지 않는 문제, 지역 주민들에 대한 금전 보상을 우선하는 문제”로 이미 틀린 정책이라며, “무엇보다 지난해 일본 지질학자 300여 명이 일본에 (핵폐기물) 지층 처분 안전지대는 없다고 성명을 냈는데도, 원전 안전 신화에 빠진 이들은 다른 의견은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핵발전, 핵폐기물 처리와 관련해 국민들, 특히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불편한 진실은 결코 알리지 않으며, 공정성과 투명성 없는 정책 실행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핵폐기물 처리 정책은 경제, 사회, 환경적으로 불합리하고, 보상금과 밀실 담합에 의한 비민주적 절차이며, 비인권적”이라고 말했다.
다카노 연구원은 이런 부조리와 불합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 이행 과정에서 공론장과 같은 열린 창구와 과정이 필요하며, 이것이 제도화돼야 한다”면서, “시민들의 참여와 권한을 법으로 규정하고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제3 기구를 둬야 하며, 무엇보다 핵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사실을 알리고, 시민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탈핵평화순례 둘째 날, 정수희 집행위원(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은 부산 지역 탈핵운동의 역사를 말하고, 탈핵을 위한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현진 기자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핵발전소에 빼앗긴 삶들
이어 부산을 중심으로 한 탈핵운동 양상과 현재 상황에 대해 정수희 집행위원(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은 1980년대 고리 1-4호기가 건설되고 또 신고리 1-2호기가 추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의 삶은 이주와 이주의 연속이었으며 삶은 파괴됐다고 말했다.
부산 지역의 핵발전소 반대 운동은 추가 건설을 막기 위한 10년 싸움이 대법원 판결로 좌절을 겪고, 절망감에 따른 주민들의 태도 변화에도 다시 시작된 계기는 '밀양 송전탑 싸움'이었다.
정수희 위원은 세계 최대 규모인 765kV 송전탑이 들어서면서 밀양 주민들 역시 삶의 터전, 권리를 빼앗겼고, 주민 이치우 씨가 분신으로 사망하면서 비로소 세상 밖으로 밀양의 현실이 알려졌다면서, “송전탑 역시 핵발전의 필수 시설이다. 결국 밀양의 송전탑 반대 싸움은 반핵, 탈핵 싸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핵발전소와 송전탑 건설 지역의 문제 핵심은 다른 지역 국민들에게는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한 사람이 죽음으로 호소한 문제에 대해 전국의 환경단체, 시민들의 연대가 시작됐고, 탈핵 운동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은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은 “반핵 운동은 단지 우리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이웃이 어떤 희생을 강요받고 있는가의 문제라는 인식 전환 계기가 되고, 우리 사회에서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는 에너지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 확산을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10년, 밀양, 월성의 탈핵 싸움 10년 이후, 어떻게 탈핵 운동이 세대 교체를 이룰 것인가에 대해, “정치적 구호, 선언만으로는 안 된다. 법으로 제도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대중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리, 신고리 핵발전소를 향해 행진하는 순례자들. ⓒ정현진 기자
고리 발전소를 향하는 길. 하늘은 온통 송전탑과 송전선으로 뒤덮여 있다. 송전탑은 핵발전의 필연이며, 주민들의 삶을 파괴한 자리에 세워진다. ⓒ정현진 기자
이날 순례단은 전날 월성 핵발전소에 이어 고리와 신고리 핵발전소를 찾아 행진했다. 기도, 성가와 함께 행진하며 고리 핵발전소 홍보관에서 발전소를 향해 40여 분을 걷고 발전소를 돌아봤다.
탈핵평화순례 모든 일정은 저녁 미사로 마무리 됐다.
“순례는 성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례를 통해 핵발전소 지역을 찾아다니고 한국과 일본을 오고 가면서 어떻게 하느님을 만났는지 되돌아봅시다.”
미사를 집전한 양기석 신부는 “순례를 통해 우리가 가장 작은 사람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왔었는지 떠올려 본다. 끊임없이 희생하고 고립된 이들 또 탐욕에 빠진 자본과 권력도 만났던 우리 순례가 이땅에 하느님나라를 완성하기 위한 발걸음임을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순례는 고통 중에 있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구원을 위한 여정이었다”며,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이 여정을 훌륭히 치러내고 하느님나라를 완성할 것이다. 핵무기, 핵발전 없는 생명이 존중되고 인간 존엄이 지켜지는 세상, 그런 하느님나라를 만들어 낼 것”이라며 탈핵평화순례의 의미를 짚었다.
다음 한일탈핵평화순례는 2025년 일본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고리 핵발전소를 향하며. 한일탈핵평화순례 마지막 일정.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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