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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7월 29일 수요일
[(백)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는 형제 사이로,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다. 그들은 베타니아의 자기 집에 오신 예수님을 열렬히 환대하여, 마르타는 정성껏 시중을 들고 마리아는 그분의 말씀을 경건하게 들었다.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고, 그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다.
본디 7월 29일은 ‘성녀 마르타 기념일’이었으나, 2021년부터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로 변경되었다(교황청 경신성사성, 2021년 1월 26일 교령 참조).
<전례문은 주교회의 홈페이지 참조(말씀 마당, 전례문)>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서로 사랑하자며,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당신은 부활이요 생명이니, 당신을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그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요한 11,5 참조). 요한 복음사가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그리스 말 ‘아가파오’를 씁니다. 이는 요한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를 가리킬 때 쓴 낱말로(13,23; 19,26 참조) 예수님과 이들의 사이가 인간적 우정을 넘어선 인격적이고 영적인 사랑의 관계였음을 드러냅니다.
이탈리아의 신학자이기도 한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요한 1서 4장을 풀이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좀 더 인격적으로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되고 관계를 가짐으로써, 서로 공감하고 서로에게 호의를 가지며 서로를 기꺼이 도와주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 사이에는 항상 벽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 벽은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은 나와 달라.’ …… 하지만 인간이 진심 어린 사랑으로 다른 사람에게 돌아서자마자, 그들 사이에 있는 벽은 희미해지며, 벽이 희미해질수록, 진심은 더욱 순수해집니다”(『하느님의 진리와 사랑』, 197면).
마르타는 라자로의 죽음에 슬퍼하였지만 예수님을 만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인간이 가장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죽음이라는 벽을 마주하고서도 절망하지 않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희망을 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라자로의 무덤을 막고 있던 죽음의 벽을 허무시고 그를 다시 생명으로 걸어 나오게 하십니다. 이것은 오직 사랑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랑은 죽음 앞에 무력하지 않습니다. 진심 어린 사랑은 우리 안의 벽을 허물고 우리를 다시 살게 합니다.(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우리 공동체!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이셨지만, 동시에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지니신 인간이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희로애락을 똑같이 느끼셨을 것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절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남매였습니다.
예수님께도 절친이 있으셨다는 것, 그분께서도 우리와 똑같이 친구들과 둘러앉아 포도주 잔을 기울이여 두런두런 밤늦도록 담소를 나누었다는 것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세 남매의 집은 예루살렘 초입에 위치한 베타니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수시로 그들의 집에 들렀습니다. 때로 율법학자, 바리사이들과 대립각을 세우신 날, 구름처럼 몰려온 불치병 환자들을 치유하시느라 피곤에 쩌든 날이면 어김없이 그들의 집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을 찾으실 때, 절대 홀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12사도, 72사도, 굶주리고 지친 장정들 백 여명이 우르르 들이닥치니, 세 남매는 반갑고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엄청난 사람들 잠자리 준비며, 식사 준비하느라, 세 자매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식사 준비는 주로 마르타 몫이었습니다. 청소나 잠자리 준비, 식자재 구매 등은 힘쓰는 일은 라자로가 책임졌을 것입니다.
그럼 마리아는? 아마도 예수님 곁에서 손님맞이도 하고, 특강 장소를 준비하는 등, 영적인 측면에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면 그 누구보다도 완전히 매료되고 몰입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구체적인 노력 봉사에 신경을 덜 썼던 것 같습니다.
이런 연유로 갑자기 엄청난 식수 인원이 들이닥쳐 주방에서 식사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마르타였기에, 예수님 발치 아래서 말씀에 온전히 몰입해 있던 동생 마리아가 미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청합니다. 마리아도 주방에 들어와 자기 일을 좀 도와주게 하라고.
이렇게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는 예수님으로 인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항상 충만한 기쁨 속에 예수님과 일행을 환대했습니다. 형식적인 환대가 아니라 진심 어린 환대였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밋밋하고 울적하다가도 예수님께서 등장하시면 즉시 화사하고 가슴 설레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세 남매의 극진한 환대에 예수님께서도 힘든 순간, 휴식이 필요한 때,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그리울 때면 언제든지 베타니아를 찾았습니다. 우리 가정은, 우리 본당은, 우리 공동체는 어떤 분위기인지 모르겠습니다.
피정 센터에서 사목한지 벌써 7년째였습니다. 저희 피정 센터 모토가 쉼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기쁘게 환대하는 공동체 건설입니다. 억지로 또는 마지 못해가 아니라 진심 어린 환대를 하고자 노력합니다. 세파에 지칠 때 마다 저희 피정집을 떠올리면 즉시 훌훌 털고 오고 싶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피정 센터 건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세상에는 어느 순간을 지나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그런 지점을 ‘임계점’이라고 합니다. 물은 100도가 되면 끓기 시작합니다. 99도까지는 뜨거운 물이지만, 100도가 되는 순간 물은 수증기로 변합니다.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상태로 바뀌는 것입니다. 또 요즘 인공지능 시대에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특이점’입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의 예측과 통제를 넘어서는 지점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도구를 만들지만, 어느 순간 도구가 사람의 삶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수학에는 ‘변곡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프가 내려가다가 올라가고, 올라가다가 내려가는 방향이 바뀌는 지점입니다. 인생에도 그런 지점이 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죄에서 회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방향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분노와 욕망의 임계점입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향한 시기와 분노가 마음속에 쌓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지만,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카인은 분노의 임계점을 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형제는 경쟁자가 되었고, 들판은 살인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다윗도 욕망의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옥상에서 바라본 한 여인을 향한 욕망을 멈추지 못했고, 결국 간음과 살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유다는 탐욕의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은전 서른 닢 앞에서 스승을 팔았습니다. 분노와 욕망은 처음에는 작은 불씨처럼 시작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성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마음을 태우는 불길이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분노와 욕망의 온도를 살펴야 합니다. 마음이 끓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말이 칼이 되기 전에 침묵해야 합니다. 욕망이 죄가 되기 전에 멈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는 아름다운 특이점도 있습니다. 사랑과 겸손의 특이점입니다. 인간의 계산을 넘어서는 사랑, 인간의 자존심을 넘어서는 겸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사랑과 겸손의 특이점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과 계산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힘과 권력을 뒤집는 겸손입니다. 베드로도 그 특이점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했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보다 더 큰 주님의 사랑을 만났고, 그 사랑 안에서 다시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실패를 넘어섭니다. 겸손은 인간의 교만을 무너뜨립니다. 은총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신앙 안에는 또한 회개와 변신의 변곡점이 있습니다.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서 자랐지만, 광야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의 인생은 변곡점을 맞이했습니다. 도망자였던 모세가 해방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이 사울의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박해자 사울은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되었습니다.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도 예수님의 “나를 따라라.”라는 한마디에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세리 자캐오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변신은 겉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변신은 마음의 중심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도 모두 신앙의 임계점, 특이점, 변곡점을 보여 줍니다. 마르타는 처음에는 분주함의 임계점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려는 마음은 좋았지만, 그 마음이 어느 순간 불평이 되었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있으십니까?” 봉사도 기도와 사랑을 잃으면 불평이 될 수 있습니다. 헌신도 겸손을 잃으면 원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라자로가 죽었을 때 마르타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분주함의 여인이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마르타의 변곡점입니다.
마리아는 사랑의 특이점을 보여 줍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마리아는 나중에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사랑은 계산을 넘어섭니다. 사랑은 효율을 넘어섭니다. 사랑은 손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서 사랑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특이점입니다.
라자로는 죽음과 생명의 변곡점을 보여 줍니다.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덤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죽음의 침묵이 생명의 말씀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무덤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라자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너무 늦은 시간이 없습니다. 은총 앞에서는 닫힌 무덤도 열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죽음의 자리에서도 다시 걸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분노가 쌓이고, 욕심이 쌓이고, 미움이 쌓이면 어느 순간 말과 행동으로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어야 합니다. 기도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는 은총입니다. 고백성사는 죄의 임계점을 넘기 전에 하느님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침묵은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마음을 지키는 울타리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특이점이 있습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내가 나를 넘어섭니다. 겸손이 깊어지면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이 중심이 됩니다. 용서가 깊어지면 상처가 은총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변곡점이 있습니다. 회개하는 순간, 말씀을 듣는 순간,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마르타처럼 분주함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계산에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라자로처럼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신앙은 무너지지 않는 삶을 약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은총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분노와 욕망의 임계점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사랑과 겸손의 특이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회개와 변신의 변곡점에서 주님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오롯한 하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갔다.”(요한 11,20ㄱ)
오시는 믿음
맞이하는 믿음
오롯한 하나의 믿음
오시는 희망
맞이하는 희망
오롯한 하나의 희망
오시는 사랑
맞이하는 사랑
오롯한 하나의 사랑
오시는 섬김
맞이하는 섬김
오롯한 하나의 섬김
오시는 살림
맞이하는 살림
오롯한 하나의 살림
오시는 기쁨
맞이하는 기쁨
오롯한 하나의 기쁨
오시는 함께
맞이하는 함께
오롯한 하나의 함께
오늘의 성인
성 라자로 (Lazarus)
활동년도 : +1세기경
신분 : 신약인물, 예수의제자, 주교
지역 : 마르세유(Marseilles)
같은 이름 : 나자로,나자루스,라자루스
병원의 주보성인.
요한 복음 11장에 의하면 성 라자로는 예루살렘 부근 베타니아에 살던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의 오빠로서 예수님의 친구였고, 4일 동안 무덤에 있다가 예수에 의하여 죽음에서 살아났다.
또 요한 복음 12장 1-11절에는 베타니아의 저녁식사 때에도 참석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신약성서에는 그가 죽음에서 부활한 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전설에 따르면, 성 라자루스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 마르타, 막시무스 및 다른 사람들이 노 없는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남서부 프랑스 지방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이곳에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으며 마침내 마르세유의 첫 주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여동생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기적적으로 키프로스에 도착하여, 키티온 또는 라마카의 주교로서 30년을 전교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전해지는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성 라자루스와 그의 누이들은 시리아로 갔고, 그의 유해는 후에 콘스탄티노플로 이장되었으며 많은 성당들이 그를 기념하여 세워졌다.
그 후 예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따랐으며 예수 승천 후에는 30년간 주교로서 설교와 많은 희생을 바쳤다고 한다.
성녀 마르타(Martha)
신분 : 신약인물, 동정녀
활동지역 : 베타니아(Betania)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마르따, 말따
성녀 마르타는 성녀 마리아(Maria)와 성 라자루스(Lazarus)의 누이이고 예루살렘 근교 베타니아에서 살았으며 집안일을 맡았던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의 친구였으며, 주님은 그들의 집에 자주 머무신 듯하다.
성녀 마르타는 활동적인 여성이었던 것 같다. 루카 복음 10장 38-42절의 사건은 그녀의 성격을 잘 묘사하는 내용이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이런 기사 때문에 그녀는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상징이고, 성녀 마리아는 관상생활의 모델처럼 공경을 받는다.
성 라자루스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 연락했던 이는 성녀 마르타이고, 성녀 마리아는 집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요한 11,20). 어떤 전승에 의하면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루스는 예수님의 사후에 프랑스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성녀 마르타는 요리사의 수호성녀이다.
성 올라보 (Olave)
활동년도 : 995-1030년
신분 : 왕, 순교자
지역 : 노르웨이(Norway)
같은 이름 : 올라부스, 올라프
노르웨이의 귀족 하랄드 그렌스케(Harald Grenske)의 아들인 성 올라부스(Olavus, 또는 올라보)는 흔히 ‘팻트’란 별명으로 불렸다. 한때 그는 해적질을 했다는 말도 있다. 그는 1013년에 세례를 받았고, 덴마크를 공격하는 잉글랜드(England)의 에텔레드(Ethelred) 왕을 도우려고 영국으로 간적도 있으나 포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왕위에 올랐다.
그는 제국을 통일하는 방편으로 그리스도교를 적극 권장하였으나 1029년에는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잠시 멈칫한 사실이 있다. 그 후 러시아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싸우다가 스티클레스탓(Stiklestad) 전투에서 살해되었다. 그는 노르웨이의 가장 위대한 영웅중의 한 명이고, 노르웨이를 그리스도교화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1164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노르웨이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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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우르바노 2세 (Urban II)
활동년도 : 1035-1099년
신분 : 교황
지역 :
같은 이름 : 어번, 우르바누스, 우르반
프랑스의 귀족 가문의 후손인 외드 드 샤티용쉬르마른(Eudes de Chatillon-sur-Marne)은 1035년경 샹파뉴(Champagne) 지역 샤티용쉬르마른에서 태어나 랭스(Reims)의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성 브루노(Bruno)로부터 신학을 배웠으며, 이곳에서 1055년경부터 대부제로 일하였다. 1070년경 클뤼니(Cluny) 수도원에 입회하여 성 후고(Hugo)의 지도하에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 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의 요청으로 로마(Roma)로 파견되어 교황의 교회 개혁 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1078년 오스티아(Ostia)의 주교 추기경이 되었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수석 보좌관이 되었다. 또한 1082-1085년에는 프랑스와 독일에 대한 교황 특사로 파견되었다. 이때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에 의해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1088년 3월 12일 빅토르 3세(Victor III, 9월 16일) 교황을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또는 우르바노)로 이름을 정했다.
그러나 그는 대립교황인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의 등장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1089년 가을 70명의 주교들이 멜피(Melfi)에 모여 시노드를 개최하였다. 여기서 성직매매와 성직자 혼인을 반대하는 선언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1090년 마침내 로마의 교황좌에 착좌하였다. 1095년 이탈리아 피아첸차(Piacenza)에서 개최된 시노드는 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에게 내린 파문이 정당함을 확인해주었다. 교황은 그해 11월 프랑스의 클레르몽(Clemont)의 노트르담 두 포르(Notre-Dame du Port) 성당에서 개최된 시노드에서 1089년의 칙령을 재확인하는 한편 ‘신의 휴전’(Treuga Dei)을 처음 선언하였다. 또한 본처를 두고 재혼한 프랑스의 필리프 1세를 간통죄로 파문하였다. 그는 클레르몽에서 제1차 십자군에 참여하도록 호소하고 격려함으로써 십자군 규합에 성공하였다. 그 후 그는 그 사이 다시 클레멘스 3세가 차지하고 있었던 로마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이리하여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교황권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결국 하인리히 4세 황제는 이탈리아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1098년 10월 그는 바리(Bari)에서 시노드를 소집하여 동방과 서방 교회의 화해를 모색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교황은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2주일 전인 1099년 7월 29일 피에르레오네(Pierleone)에 있는 자신의 후견인의 저택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였고, 그의 재임기간은 세속의 통치자인 하인리히 4세와 필리프 1세와의 투쟁의 연속이었다. 교황의 시복식은 사후 800여 년이 지난 1878년 7월 1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거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