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손들과 함께 돌아오게 하신 뜻
에스라 2장 36절-54절 2024년 5월 5일 주일 오전 말씀지
어린이 주일에 맞게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신 자들의 자손들을 나타내주시는데 무슨 뜻인가요?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실 때에 생육 번성하며 땅을 정복하라고 남녀로 보내셨습니다. 창1:28-
구약에는 많은 자녀들을 낳아 땅에 번성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생육 번성은 육의 자녀들을 많이 낳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로 이삭 한 아들을 주셨는데 영적으로 하늘 것을 얻는 자요 그 수는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고 성령시대에 오직 성령의 감화로 부르사 복음이 믿어지고 진리로 자라난 자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갈4:28-
이스마엘은 종의 아들이요 후처로는 그두라의 6아들을 낳게 하심으로 세상 재물을 추구하는 자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창25:6-
이스마엘이나 그두라의 자손은 이삭같은 영을 앞세워 살아가는 자들에 막대기 몽둥이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이땅에 오셔서 30세이나 결혼도 하지 않으셨으나 12제자를 아들처럼 여겨 길러가셨고 사랑의 사도 요한과 율법을 잘못 배워 핍박자였으나 사도로 쓰신 바울도 가는데 마다 오로지 영적 자녀만 낳아 기르다가 순교케 하신 자입니다. 아직도 육신의 자녀로 만족하는 자들은 구약에 머물러 있는 자들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로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세상 복이요 무조건 천국입니다. 주일마다 주신 자손들과 함께 나오는 자들은 복된 자요 신앙의 대가 계속 이어지나 영적 자손도 없는 자들은 태의 열매가 없는 자들로 별의 영광을 얻지 못하는 자 들입니다.
36절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 칠 십 삼명이요 36절부터 39절까지는 제사장들의 이름과 그 자손의 수효를 나타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11지파를 위해 기도하고 거룩한 삶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중요한 분들입니다. 여다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찬송이심’ 이라는 뜻으로 택하신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제사장 반열입니다.
37절 임멜 자손이 일천 오십 이명이요 36절부터 39절까지는 제사장들의 이름과 그 자손의 수효를 나타내주십니다. 임멜은 예수아의 집 후손 제사장입니다. (느7:40) 에스라 10장 20절에는 그 후손의 이름까지 나타내주셨으니 자식과 함께 돌아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 이름들이 얼마나 귀하면 다 기록하셔서 성령시대에 사는 우리까지 알게 하셨을까요? 역대상 9:12, 24:14, 렘20:1에도 이름들을 나타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이름도
1.하나님 아버지가 알고 계시고 (창세전 생명책) 2.예수님이 알고 계시고 (어린양의 생명책) 3.24장로들이 알고 (상받을 생명책) 4.하늘에서 천사들이 순교할자를 알고 호위하고 (단12:1) 5.영광성에 들어온 자들도 다 알게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아무렇게나 하루하루를 살 수가 있을까요? 전7:1-
38절 바스훌 자손이 일천 이백 사십 칠명이요 예레미야를 핍박한 제사장입니다. 렘20:2-
뜻은 ‘평화’인데 숫자가 다른 조상보다 많은 것은 포로 생활 고통 중에 선지자를 핍박한 죄를 철저히 회개한 자들입니다. 그 후손들이 포로 생활의 원인이 깨달아져서 많이 올라온 것입니다. (스10:22) 사도 바울도 이전에 잘못 배운 율법으로 당시에 성도들을 누구보다 심하게 핍박한 자였지만 드디어 사도로 세워 쓰실 때에는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은 생명 역사가 있게 하신 자입니다. 고전15:10-
39절 하림 자손이 일천 십 칠명이었더라 역시 예수아 집 안에 제사장입니다. 스10:21-
뜻은 ‘돌아오다’ 하는 뜻입니다. 벌써 제사장 집안의 자손이 3000명 이상 올라오게 된 것인데 과거에 예배했던 자들이 탕자처럼 먼저 포로 생활과 같은 고통에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40절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 사명이요 40절에서 42절까지는 레위 계통의 사람들인데 자기가 잘나서 레위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직분자들이 레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부모 때부터 하나님을 섬긴 자들로 그 자손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부모가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신 것을 다 보고 자라난 자들입니다. 오늘날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자들이 바로 레위 계통입니다. 부모가 믿었으니 자기도 믿게 되는데 부모가 한 것을 본받게 됩니다. 앞선 자가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교회 안에서 직분을 가진 것은 내가 똑똑해서 된 것이 아니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자녀들 중 그몸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 사는 나실인이 참 레위인입니다. 민6:2-
이 자손 중에 예수아가 있습니다.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심’ 입니다. 여호수아, 호세아, 예수 모두 같은 이름의 뜻인데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심’입니다. (마1:21)
갓미엘은 ‘하나님의 사자’라는 뜻으로 포로 생활 중에도 늘 깨어 백성들을 경성케 하였습니다. 올라와 앞서 성전 공사에 감독자로 일하게 하신 자입니다. 스3:9-
41절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일백 이십 팔명이요 나는 어떤 직분이 있습니까? 직분을 받으려면 새벽을 깨워 영적 성장을 이뤄야 하며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해야 합니다.
아삽은 다윗 때에 찬송 대장인데 (대상6:31) 시편에 12편이나 그의 이름도 나옵니다. 그의 자손들은 예배 때 찬송을 맡았습니다. 뜻은 ‘모아 쌓는자’ 인데 찬송이 입술의 열매인 줄 아는 자로 하늘에 상이 쌓이는 것을 기뻐하는 한 것입니다. 포로 생활 중에는 찬송도 마음껏 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던 자들입니다. 시137:3-
42절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일백 삼십 구명이었더라 다윗으로 시편 84:10에는 다른 곳에서의 천날보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낫고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문지기는 새벽 누가 오기 전에 먼저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84년 과부 된 안나 선지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니 문지기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눅2:37-
요 10:3에 문지기는 양을 위해서 문을 여는 자입니다. 막 13:34에 첫 삼년 반 환난과 공중 혼인잔치 때에 문지기는 문을 열어주는 자처럼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살룸은 ‘보응’ 이라는 뜻으로 반드시 이땅에서 열매 맺은대로 하늘에서 상으로 갚으시는 것이 믿어진 자라는 것이요 달문은 ‘포로’라는 뜻으로 포로되게 하신 뜻을 깨달은 자요 소배는 ‘포로로 데려가는 이’ 라는 뜻으로 자손들에게 포로 생활에서 원망하지 않고 돌아가게 하실 것을 자손들에게 가르친 족장입니다. 나는 오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나요?
43절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에서 레위 사람들을 도와 허드렛일 봉사자들인데 나무 패는 일과 물긷는 일을 했는데 외국인인데 기브온 족이 많았습니다. 수9:27-
포로 생활 중에서도 미천한 대우를 더욱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돌아갈 때 너무나 기뻐한 자들입니다. 시하는 ‘가뭄’ 이라는 뜻이요 느디님 사람들의 두목입니다. 자손들을 좋은대로 이끈 족장입니다. 하수바는 ‘벌거벗은’ 이라는 뜻인데 솔로몬의 신복 중에 하나로 후손들은 자동으로 종처럼 산 자들입니다. 답바옷은 ‘좋은 시간’ 이라는 뜻으로 가장 천한 일도 좋은 일로 여긴 자들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데 노동을 천한 일이라고 여기는가? 귀하게 여기는가? 부모로 인해 그 자녀들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44절 게로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과 게로스는 ‘뿔이 돋았다’ 는 뜻인데 낮은 지위에서 일하면서 성질을 잘 낸 자입니다. 그리고도 곧 회개하는 성격입니다. 시아하는 ‘의회’ 라는 뜻으로 솔로몬의 신복 중 하나로 명을 받으면 아랫사람과 의논을 잘한 자입니다. 바돈은 ‘구속’ 이라는 뜻입니다.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는 희망을 끝까지 가진 자입니다.
45절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 르바나는 ‘향로’ 라는 뜻으로 낮은 지위 포로 생활 중에도 늘 기도와 감사를 잊지 않은 자들입니다. 하가바는 ‘메뚜기’ 라는 뜻인데 떼를 지어 날라가는 메뚜기입니다. 늘 단체를 중요하게 여긴 자들입니다. 잠20:27-
악굽은 ‘교활하다’ 는 뜻인데 포로 생활 고통 중에 자기 자신을 내려 논 자들입니다.
46절 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하갑은 하가바 라는 이름과 비슷하여 역시 뜻은 ‘메뚜기’ 입니다. 느7:53절에는 그 이름이 나오지 않음으로 다른 데로 간자들입니다.
하난은 ‘자비가 많은’ 이라는 뜻인데 포로생활 중에 자기도 힘들면서 남을 도운 자들입니다.
47절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깃델은 ‘강대하다’ 는 뜻으로 자손들을 강하게 인도한 자입니다. 가할은 ‘후퇴한다’ 는 뜻인데 앞으로 나아가다가 또 잠시 멈추기를 잘하는 자들입니다. 지금도 영적 생활을 멈춘 것은 후퇴와 같습니다. 르아야는 ‘여호와께서 보시다’ 라는 뜻으로 늘 행동도 조심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믿은 인도자입니다. 렘17:10-
48절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느고다는 ‘분별함’ 이라는 뜻인데 진리로 자라나 선과 악을 거짓을 분별한 인도자입니다. 갓삼은 ‘자르다’ 라는 뜻으로 진리로 자라나면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49절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웃사의 이름의 뜻은 ‘능력’ 인데 다윗 때에 법궤를 옮기다가 여호와께서 충돌하여 죽은 자입니다. 삼하6:7-
아버지가 그렇게 죽고 난 이후 자손들은 더욱 조심한 자들입니다.
50절 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 아스나의 이름의 뜻은 ‘가시나무’ 로 남을 찌르기를 잘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포로 생활 고통 중에 남을 미워하는 그 가시가 다 빠진 자입니다. 느7:60-
므우님은 ‘대답함’ 이라는 뜻인데 앞선 자의 물음에 가장 먼저 대답하는 총명한 자입니다. 느부심은 ‘확장’ 이라는 뜻인데 자기일 뿐 아니라 남의 일까지 거들어 주는 부지런한 자입니다. 롬12:13-
51절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박북은 ‘그릇’ 이라는 뜻인데 무언가 담기면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는 자입니다. 하그바는 ‘몸을 구부림’ 이라는 뜻으로 남 앞에서 늘 겸손한 자들입니다. 항상 남 앞에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일한 자입니다.
52절 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바슬룻은 ‘벌거벗김’ 이라는 뜻인데 늘 부끄러운 생활하던 자인데 포로 생활 고통 중 깨닫고 가죽옷 구원과 십자가 구원을 입힌 것이 깨달아진 자입니다. 하르사는 ‘귀머거리’ 라는 뜻으로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을 먼저 많이 하는 자입니다. 과거에 남을 답답하게 한자입니다. 약1:19-
53절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시스라는 ‘전쟁을 배열함’ 이라는 뜻인데 사사기에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이 아닙니다. (삿4:5:) 데마는 ‘다스리는 자’ 라는 뜻으로 같은 이름이 많으나 포로 생활 중에 돌아온 외국인입니다. 그들이 할 일은 성전에 잡일이었습니다.
54절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 느시야는 ‘현저함’ 이라는 뜻인데 현저는 밝히 드러나는 것으로 숨어있는 일들을 밝히는 자였습니다. 하디바는 ‘붙잡은’ 이라는 뜻인데 뒤엣것은 포로 생활을 교훈삼고 그 몸을 성전 삼고 앞엣것을 붙 잡으려 달려간 자입니다. 빌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