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생물학자 벤 바레스(본명 바버라 바레스)가 2017년 12월 27일 향년 63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가장 많은 뇌세포 유형인 신경아교세포(glia)가 뇌발달과 질병발병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열정적으로 연구했으며, 과학에서의 성평등 캠페인(참고 1)에 앞장서기도 했다.
바버라와 벤(그는 1997년 성전환을 했다)으로서, 바레스는 수많은 기념비적 발견을 했다. 그중에는 시냅스의 형성과 제거를 촉진하는 신경아교세포유래인자(glial-derived factor)의 발견, 말이집(myelin: 축삭의 겉을 여러 겹으로 감싸고 있는 인지질 성분의 막)의 형성을 유도하는 신호의 특징 기술(記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바레스는 마지막 10년의 상당부분을 '내가 여성으로서 과학 분야에서 직면했던 도전'을 대중에게 알리고 '여성과 소수자들에 대한 근본적 편견을 조장하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 헌신했다. 또한 그는 멘토들에게 "대학원생 및 박사후연구원의 훈련과 성공을 위해 좀 더 분발하라"고 요구했다(참고 2).
바레스는 '중요하지만 소홀히 취급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노력하는 것을 큰 보람으로 삼았다. "신경과학자의 99%가 흥미로운 문제의 1%를 연구한다. 취급되지 않는 미스터리를 연구하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롭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자신의 논문과 학회에서 언급했던 주제들은 '신경아교세포가 뇌의 발달과 기능, 질병에 기여한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참고 3).
바레스는 뉴저지 주 웨스트오렌지에서 성장했고,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을 사랑했다. 그는 ‘계집아이’로 취급받는 것을 언짢게 여겼다. 학창 시절, 바레스는 과학과 공학 강의를 수강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마침내 여름학기의 과학 프로그램에서 성차별을 하지 않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로부터 과학과 공학 수강을 허용받아, MIT에서 생물학 이학사(bachelor of science) 과정을 밟기에 이르렀다.
1979년 바레스는 뉴햄프셔 주 하노버에 있는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뉴욕 시에 있는 웨일코넬 의과대학에서 신경학 레지던트 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많은 뇌질환과 신경계 질환이 신경아교세포와 관련되어 있다는 데 흥미를 가졌지만, 당시에는 신경아교세포에 관한 신경생물학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바레스는 신경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의학계를 떠나, 하버드 의대에서 '신경아교세포에서 양이온 채널의 기능과 분포'를 연구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박사후과정을 밟는 동안, 바레스는 '발달하는 뉴런이 축삭을 절연(insulation)하기 위해 희소돌기아교세포(oligodendrocyte: 수초화를 담당하는 신경아교세포)에 신호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레스는 1993년 스탠퍼드 의대의 신경생물학과에서 자신의 연구실을 열어, 수십 명의 학생과 박사후연구원들을 지도했다. 그의 연구실 미팅은 빡세기가 역대급이었다. 미팅에는 청강생들이 많고, 토픽이 워낙 광범위한 데다, 바레스가 공개적이고 때로는 구조화되지 않은 토론(unstructured discourse)을 장려하는 바람에 세 시간 이상 계속되기 일쑤였다.
'내 연구실 사람들은 중요한 과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회의에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며 질문을 던져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무한한 협동연구와 무제한 실험을 허용하고, 원하는 모임이라면 어디든지 참여하되 반드시 질문을 하라고 독려했다. 혹독한 훈련을 받은 덕분에, 그의 제자들은 미국, 유럽, 아시아의 주요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바레스의 연구실에서는 '발달하는 뇌 안에서 시냅스의 형성 과정'에 대해 많은 발견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시냅스의 제거 과정에서 상이한 유형의 신경아교세포(별아교세포, 미세아교세포)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규명되었다. 또한 바레스는 손상된 뉴런 및 시신경의 생존과 척수재생에 영향을 미치는 신호를 연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뇌로 유입되는 혈액에서 특정 분자들을 차단하는 장벽'의 조립 및 유지 과정을 규명하는 데도 기여했다. 2013년 바레스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임되었는데, 성전환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멤버로는 그가 처음이었다.
벤은 거의 초인적인 연구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루에 18-20시간 연구해도 힘들지 않아요. 왜냐하면 과학은 흥미로운 데다, 중독성이 있는 놀이거든요." 그는 만년에 스탠퍼드 주변의 언덕에서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 또한 그는 자신만의 커피콩을 볶아, 연구실 멤버들에게 ‘건설적인 피드백’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해리포터의 광팬이었고, 그의 연구실에 들어가려면 최신영화를 반드시 관람해야 했다.
2016년 4월, 벤은 진행성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반복적으로 치료받는 와중에서도 매일 연구를 계속하고, 연구비 신청서를 작성하고, 과학에서의 성평등을 옹호했다. 학생과 박사후연구원들에 대한 멘토링을 멈추지 않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그들의 경력향상에 보탬이 되도록 추천서를 쓰고 업데이트를 했다. 벤은 로맨틱한 관계나 아이를 갖는 등의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동료들을 늘 가족으로 여겨왔고, 학생과 박사후연구원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해 왔어요." 학생과 연구원들이 성장하여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게 그의 큰 기쁨 중 하나였다.
벤의 동료와 제자들 역시 그를 흠모하고, 바레스 연구실을 일종의 가족처럼 여겼다. 내가 기억하는 한, 벤 연구실의 현관 문은 다양한 멤버들의 그림과 사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 그들의 자녀와 애완동물, ... 물론 신경아교세포의 그림과 사진도 빼놓을 수 없었다. 모든 멤버들은 지금껏 벤에 대한 애정과 감사, 그의 헌신적인 멘토링, 별난 행동, 불굴의 정신을 매개로 똘똘 뭉쳐 있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바레스는 자신의 삶과 질병 앞에서 매우 담대하고 사색적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뜻대로 살아왔어요. 원하던 성전환을 감행했고, 원하던 과학자가 되었고, 원하던 신경아교세포 연구를 수행했어요. 나는 내 믿음을 유지했고,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최소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어요. 나는 후회가 전혀 없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나는 진정 멋진 삶을 살았어요." ※ 필자 앤드루 D. 후버먼은 스탠퍼드 의대의 신경생물학 교수로, 바레스의 연구실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그는 벤의 가까운 친구였다.
※ 참고문헌 1. https://www.nature.com/articles/442133a 2. https://www.nature.com/news/stop-blocking-postdocs-paths-to-success-1.22515 3. https://www.nature.com/news/neuroscience-map-the-other-brain-1.13654
※ 출처: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7-0896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