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시인의 시집 『이후의 세계』
약력 :
이토록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금오공고와
제주대학교를 졸업했다.
201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으
며, 시조집으로 『흰 꽃, 메별』이 있다.
천강문학상 시조 대상,
백수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E-mail: badcafe@naver.com
시인의 말
나는 바란다.
내 언어의 발걸음이
시조에 고스란히 스며들기를
시조에게서, 아득하게 멀어질 수 있기를
내 언어의 가시넝쿨에 맺힌
핏방울의 출처가 나이기를
2024년 7월
이토록
이후의 세계
나는 이제
몸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나비가 날고 있다
내 넋은 망설임 없이 무덤을 파헤친다
나를 떠나 누가 간다
살얼음이 사라지듯
육탈은 뼈에 남은 어제의 환영일 뿐
몸 없이 살아가는 법을
몸으로 배워야 한다
부재로만 살아가는 세계가 올 것이다
죽어서 올 것이다
꽃으로 태어났던
향기가 망설임 없이 그 몸을 버리러 간다
얼마 남지 않았다
꽃잎이 지고 있다
몸 없이 가야 할 그곳을 알 것 같다
이전의 나를 다 써버린 이후의 어디쯤
눈사람 의족
강 건너 눈보라 속 눈사람이 걸어간다
이곳에 발을 두고 어떻게 건넜을까
버려진 의족을 들고 사방을 둘러본다
발을 벗고 걸었으니 발자국도 없는 것
그는 이제 온전히 사람을 벗었을까
얼다 만 바람 소리가 강기슭에 부서진다
의족을 높이 들고 그에게 소리친다
발 없이 가는 곳은 풍문의 나라라오
한순간 의족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마이크와 메가폰
그가 죽자 마이크가 뒤쫓아 따라갔다
마이크는 낄낄대며 죽음을 조롱했다
온종일 육체의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찼다
그는 이미 하늘로 떠나고 없었지만
육체의 집사가 된 파리들을 회유했다
보아라 역겹고 추한 그를 여기 까발린다
책상에 구둣발을 올리며 낄낄댈 때
메가폰은 세상의 고막을 찢고 다녔다
그 둘은, 감방 동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사막
얼마나 더 걸어야 자루에 이르는가
모래로 배를 채운 대상들의 허기였던
자루는 모래를 다 쏟고 낙타가 되었다
얼마나 더 비워야 아득할 수 있는가
이교도가 쓰고 다닌 복면의 이름이었던
자루는, 흔적이 사라진 신기루가 되었다
한때는 터번이었다가
베일이었다가, 마침내
참수당한 머리를 엉겁결에 받아 든
자루는 피를 다 쏟고 사막이 되었다
전생이 자루였던, 사막이 내게 왔다
모래가 쏟아지는 무릎을 움켜쥐고
보았다 모든 입구가 묶인 모래자루를
부나방
나는 이제 부나방을 힐난하지 않겠다
방염복도 입지 않고 누가 저 불길 속
웅크린 검은 날개를 제압할 수 있겠는가
망설임 하나 없이 호스를 칭칭 감고
역광 속을 날아가는 부나방 아니라면
목숨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건너겠는가
하여 나는, 부나방을 경배하지 않겠다
베일을 쓴 검은 나비 조문객을 위하여
누가 또 몸을 불사를 향나무를 꺾겠는가
추천사
「이후의 세계』는 서정성의 핵심을 비유적 방식으로 정면 돌파한다. 타자를 주체화하면서 나/너의 관계를 전복시키거나 그의 몸속으로 달아나기를 반복한다. 은유/환유에 바탕을 둔 나와 타자 간의 무차별적 등가성의 원리는 '몸 바꾸기'나 '몸 겹쳐입기'라 할 만한 서술 구조를 통해 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찰나에 그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공포가 아, 입을 벌리고/내 눈을 바라보았다" '로드킬)에서 나는 살해하는 자이자, 살해당하는 자이다. “물속은 너무 단단하다/깊어지지 않는다"(「소금쟁이들, "향기가 망설임 없이 그 몸을 버리러 간다"(「이후의 세계 등을 비롯한 전편에 '삶/죽음'이 결속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한순간 의족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눈사람 의족)와 같이 불가시적 근거로서 정서적 긴장감이 넘쳐난다. 이러한 이끌림의 상태는 타자의 몸속에 스며들어 함께 살아가는 시적 순간으로 현현된다. 생의 잔혹성에 대한 응시와 동일시는 그가 가진 세계 인식의 기본 동력이자 진정성을 획득하는 기제이다. 이쯤에서 나는, 이토록의 시 세계를 '육혼의 시학' 혹은 '한 발 앞으로 제겨 디딜 곳이 없는 극한에서 오는 아찔한 현기증'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염창권(시인)
해설
몸과 그늘, 그리고 '이후'의 사랑
백인덕(시인)
시간은 우리 몸에서 다시 자연을 읽게 한다. 신과 존재로 골몰하던 머리를 숙이게 하고, 문명의 기획에 분주했던 모든 손길을 거두게 한다. 욕망의 발걸음을 멈춰 세워 깊은 그늘 속의 불안을 응시하게 만든다. 시간의 지혜는 망각이 아니라 상기에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일상의 기대는 재빨리 충족되고, '약'은 순식간에 '독'으로 변한다. 독의 공포는 우리의 운명을 상기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 누구도 나온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종말로서의 죽음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생의 결여였던 죽음을 부재로 완성하기 위해 결국 자연을 바라보게 된다. 인간을 지운 자연, 즉 야만이나 야생이 아닌 본래의 자연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no recall, 그 무엇도 반성하지 않으며 no reflection, 어떤 후회도 하지 않는 no regret다.
이토록의 『이후의 세계』는 시점, 혹은 기점을 중심으로 한 변화상의 기록이 아니다. 그때와 지금, 여기와 저기를 구분하여 비교하거나 차이를 유추하지 않는다. 즉, 선후와 인과의 원리를 결과에서부터 환원하지 않고 그 작용의 비의를 탐색한다.
이 관계성에는 주체와 대상의 대립과 공모가 날것 그대로 상존한다. 비약하면, '이후'는 이후의 전부가 아니고 '세계'는 외따로 존재하는 자연의 반대 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