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대마법사의 시대
제 54화. 대마법사 트레이닝
제나스가 유래 없이 수업까지 빼먹으며 달려온 곳은 이멘제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마법소였답니다. 온통 흰색 칠이 되어있는 건물에 새하얀 법복을 입고 있는 마법사들의 모습은 이 곳을 신성하게까지 보이게 하네요. 정갈한 바깥 모습과는 달리 그 안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몇 개의 긴 줄이 늘어서있고, 그들의 손아귀마다 손때 묻은 동전들이 꼬옥 쥐어져 있습니다. 접수대에 앉은 사람들은 정신없이 그들로부터 돈을 받고 무언가를 기록하는군요. 맞은편 벽에는 4개의 칸막이가 되어있고, 각각의 칸마다 흰 법복을 입은 마법사들이 서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합장을 하고 주문을 외자, 그들 앞에 흐릿하게 영상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개념으로 볼 때 일종의 전화와도 같은 이 ‘곳’은, 그러나 우리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한 것이었죠. 제나스는 접수대의 긴 줄의 끄트머리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손에 들린 10제니를 다시 한 번 쳐다보며 심호흡을 하고는, 그것을 손에 꼭 쥡니다. 오늘 여기서 고향 마을 근처의 마법소와 연락 예약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루나 지난 후에야 상대쪽 마법소와 연락을 취할 수 있죠. 연락 예약이 되면, 마법소에서는 해당 마법소에 연락을 취해서 상대방을 호출하죠. 하루는 그것에 소모되는 기간입니다. 만약 정해진 시간에 상대방, 혹은 예약자가 오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랍니다. 이런 불편함에도 가족의 얼굴을 보기 위해 마법소를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지요.
줄이 줄어드는 동안, 제나스는 품속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다시 꺼내어 읽습니다. 아놀드 자신과 고향, 제나스의 가족에 대한 안부로 시작하는 그 편지는, 조심스럽게 화제를 제나스의 두 동생이 매우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다는 이야기로 돌립니다. 그 말은 제나스를 다시 조바심 나게 만들었죠. 그녀는 한 발을 옆으로 내어 앞쪽 줄을 살펴봅니다. 그 때, 뒤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밀리는 통에 제나스는 그만 줄에서 삐져나와버렸죠. 그녀가 사람과 사람이 밀착되어 있는 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자, 여기저기서 상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그녀는 다시 줄의 맨 끝으로 가서 서야만 했죠. 그리고 줄은 어느덧 남아있던 줄의 세 배만큼이나 길어져 있었답니다.
제나스가 고작 ‘제나스 파시올러스 - 자델 타운 - 아놀드 피엔첼로 10제니’라는 글을 남기고 돌아섰을 때, 날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죠. 3개의 오후 수업도 이미 끝난 후였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면 마지막 4번째 수업도 끝이 나 있을 테죠.
gogo 飛上
「자, 그럼 지금부터 진짜 대마법사가 되는 연습을 해 보자고.」
기숙사에서 산 정상을 향해 난 샛길을 따라 올라가기를 15분.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작은 공터 위에 데미안과 아크가 마주 서 있습니다. 아크는 흥분된 표정으로 두 눈을 반짝이며 서 있었고, 그의 머리 위로는 라냐가 팔짱을 낀 채 둥둥 떠 있었죠. 그들 옆에 있는 못생긴 바위 위에선 론이 그들의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네요.
「그래그래! 난 진짜 대마법사가 되는 거야!」
데미안은 자신이 ‘진짜 대마법사처럼 보이게 하는 연습’을 간단하게 줄여버린 것을 후회하는군요. 아크는 진짜 대마법사라는 말에 너무나 가슴이 벅찬지, 그의 웃음을 그만두게 하는 데만도 10분이 소모됐죠. 대신에 뭐든 하기 귀찮아하는 아크에게 무언가를 시키기에는 안성맞춤인 상황이 되었답니다. 의욕이 넘쳐흐르는 아크와는 달리, 라냐는 시큰둥하게 데미안을 바라봅니다. 아크가 라냐를 올려다보며 칭얼대네요.
「라냐, 제발. 난 진짜 대마법사가 되야 한단 말이야.」
라냐가 머리털을 곤두세우며 중얼중얼.
「라냐, 라냐. 그러니까 좀 봐달라니까. 응? 그런 말은 너랑 있을 때 백번씩 해 주면 되잖아?」
데미안과 론은 어리둥절하게 아크와 라냐를 바라봅니다. 라냐는 네 갈래의 머리카락을 바짝 세우고 소리치다가, 이내 어깨와 머리카락을 동시에 아래로 떨어트리며 아크의 어깨로 날아와 앉는군요. 아크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역시 라냐야! 그럼, 백번이라도 말할 수 있고말고! 자유롭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물의 지배자 라냐! 자유롭고 아름다우며…」
다시 5분이 지나갑니다. 아크의 말이 끝나자, 라냐의 쌀쌀맞은 표정이 누그러지는군요. 그리고 론의 옆에 앉아서 그들의 행각을 관람하던 데미안이 일어서서 아크의 앞에 섭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대마법사 수업 첫 번째 장을 엽니다.
「우선, 너의 가장 큰 문제점은 행동과 마법이 일치가 안 된다는 점이야. 너와 라냐가 어느 정도 말과 행동을 맞추기로 했겠지만, 그 정도론 부족해. 마법은, 주문을 외우는 동안 마나가 모여들지. 그리고 주문이 완료되고 기합을 넣는 순간, 모이고 조직된 마나는 비로소 어떤 형태를 갖추지.」
「복잡해.」
아크가 한 말인지 라냐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긴 합니다.
「먼저, 아크가 주문을 외워. 비록 마법이 만들어지지 않을지라도 주문은 정확해야해. 교장 선생님이나 아니타 선생님이 네 그 엉터리 주문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네 주문은 엉터리야. 그건 나중에 연습하도록 하고, 우선 타이밍을 맞추는 연습부터 하자. 네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면, 라냐가 마나를 끌어 모아. 중요한 건, 너무 빨리 모아도 안 되고 너무 빨리 마법을 형상화시켜도 안 돼. 마나를 충분히 모았어도, 아크가 주문을 마칠 때까지는 그냥 가만히 있어. 그리고 아크가 소리를 칠 때, 그 때 마나를 완성시켜. 절대, 신경이 곤두섰다고 마나 덩어리를 그냥 날려 보내면 안 돼. 인간들은 그런 짓을 안 하니까.」
「귀찮데.」
아까 한 말이 아크의 말임을 증명해 보이며 아크는 라냐의 말을 전달합니다. 데미안은 여전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재차 자신의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럴수록 라냐는 모습을 보였다 안 보였다 위아래로 왔다갔다거리며 그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라냐, 대마법사 한 번만 돼보자, 응?」
아크가 조르자, 라냐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군요. 그 때부터 아크와 라냐의 대마법사 되기 첫 번째 장 연습이 시작됩니다. 일단 주문과 기합을 ‘우물우물우물’과 ‘얍’으로 대치하고 실시된 연습은, 그러나 생각만큼 순조롭진 않았죠. 아크가 주문을 채 외우기도 전에 라냐가 얼음덩어리를 만들어버리는가 하면, 아크가 기합을 질렀는데도 여전히 마나를 붙들고 있지를 않나, 아크의 주문이 너무 길어져서 라냐가 홧김에 아크의 머리 위로 마나 덩어리를 던져대기 일쑤였답니다.
아크의 애교와 못 이기는 척 그것을 받아들여줬던 라냐 - 그 초기의 모습은, 결국 사생결단 온갖 상소리가 난무하는 싸움판으로 바뀌고 마네요. 카레스와의 시합이 바로 내일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로군요.
gogo 飛上
「이 놈들 다 어디 간 거야?」
같은 시간. 반은 학교에 남아 마법 연습을 하고 오느라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기숙사로 돌아옵니다. 그는 아이들을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만, 론이나 아크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군요. 그가 처음 발견한 것은 휴게실에 늘어져 있는 세릭이었습니다. 그는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네요.
「야, 세릭. 애들 어디 갔는지 못 봤어?」
세릭은 반의 목소리에 몸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더니 키득거리기 시작하네요. 반이 당황하며 얼굴 이곳저곳을 만져봅니다. 세릭은 난데없이 웃는 것도 모자라 동문서답을 하는군요.
「안 됐다, 반. 경쟁자가 있더라. 큭큭.」
반은 세릭의 말에 어깨를 으쓱해 보입니다. 세릭은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반의 어깨를 툭툭 쳐 보이는군요.(물론 그 툭툭에 반은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야 했지요.) 「제나스 말이야.」 반은 그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네요. 세릭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집니다. 반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을 때, 세릭의 얼굴엔 짜증이 묻어있었죠.
「이 밥통아. 돌대가리냐? 사람 말을 왜 못 알아들어? 제나스가 너 말고 좋아하는 녀석이 한 명 더 있다고. 이제 뭔 소린지 알았냐?」
세릭은 반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는 중얼거리며 휴게실을 빠져나갑니다.
「꼭 재미없게 다 말하게나하고 말이야. 닭대가리인거야 아니면 빙신인거야? 꼭 아크 같은 녀석이 있다니까. 짜증나, 짜증나.」
반은 휴게실 한 가운데 뻥찌게 서 있다가 머리를 긁적입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는 얼굴 한 가득 ‘섭섭’이란 글자를 크게 적어놓고는 뻔뻔스럽게 중얼거리는군요. 그리고 세릭에게 듣지 못한 대답의 답을 찾으러 다시 기숙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기숙사 친구들에게까지 수소문을 해본 결과, 론과 아크와 데미안이 기숙사를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반은 기숙사 뒤쪽 공터로 나가봤지만 그들의 모습은 여기서도 찾을 수가 없군요. 대신 그곳엔 낯익은 소년이 서 있었습니다. 긴 은발을 바람에 맡긴 채 불을 지배하고 있는 그 소년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봅니다. 반은 그의 양 옆으로 떠 있는 불꽃이 마법이 아닌 정령이란 것을 깨닫고 눈살을 찌푸립니다. 카레스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어오네요.
「네가 반이지?」
「맞아. 넌 제 1클래스의…」
「카레스 레브넌트다.」
「그래, 카레스. 네 옆에 있는 건… 정령인가?」
카레스는 반의 놀라는 표정을 침묵 속에서 한참동안 즐깁니다. 그의 가벼운 손짓으로 정령들은 하늘에서 춤을 추었고, 반은 그 모습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죠. 그리고 그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한 후, 카레스는 정령을 거두는군요. 그리고 반에게 말합니다.
「처음 보는 건 아니겠지?」
반은 카레스가 말한 의도를 대번에 파악하고는 얼굴을 찡그리는군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카레스가 대신 말합니다.
「네 녀석은 알고 있겠지? 아크가 정령의 힘을 이용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정령술사에게 ‘정령의 힘을 이용’한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정령을 부린다고 하지요. 설사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다 하더라도, 반은 충분히 카레스의 말에 놀랍니다. 아니, 놀라기 보다는 불쾌하다는 표정이었죠.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반은 자신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한마디 때문에 이놈저놈에게 치여야 한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던 겁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아크 녀석의 일로 말이죠.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그래.」
「아크의 비밀, 네가 말했던 거 아냐? 아크는 정령을 가지고 대마법사 행세를 하고 있고, 그 특유의 멍청함으로 자신의 어설픈 행동을 변호하고 싶을 테지만, 내겐 다 보인다고.」
카레스는 반의 표정에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실하고도 확실한 자신감을 가지고 미소를 띱니다. 반은 일단 어떻게든 그의 말을 부정해보고자 한 마디 합니다. 물론, 치명적인 실수였죠.
「거짓말. 그 정령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런가? 어쨌건 있다는 건 사실이군. 고맙기도 하지, 반.」
반은 카레스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간신히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그는 시선을 하늘로 돌리며 괜한 땅에 발길질을 합니다.
「젠장. 그래, 아크 녀석은 정령의 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이제 아크를 학교에서 쫓아내기라도 할 건가?」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난 아크에게 아무런 원한이 없어. 단지 류첼이 그런 얼간이를 인정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쁠 뿐이지. 전혀 류첼답지 않은 짓이야. 그리고 교장이나 아니타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학교에 남을지 쫓겨날지를 정하는 시험 따윈 연극일 뿐이야.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으니까.」
반은 카레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죠. 어느새 그의 앞까지 다가온 카레스는 그를 스치고 지나가며 말합니다.
「아크에게 내일 시합에나 늦지 말라고 해. 시합에 나오지 않아도 도전장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말하겠다고 하면 안 나오진 못하겠지. 정령 교감 능력 따윈 정령사의 발끝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냉정한 표정이 마지막 문장에 접어들면서 이를 부드득 가는 성난 표정으로 바뀝니다. 반은 순간 섬뜩함을 느끼며 몸을 움츠렸죠. 그는 잠시 겨울바람이 불어왔다고 생각하며 북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바람은 남쪽에서 선선하게 불어오며 그를 감싸 안았죠. 그가 다시 카레스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이미 공터에서 내려가고 난 후였답니다.
자, 신기한 장소, 마법소가 등장했습니다. 짜잔~
마법소의 기능은 두 개가 있습니다. 원거리 통신, 원거리 이동. 두가지 모두 마법의 힘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양쪽에 마법사가 있어야 두 행위가 가능하죠. 전세계의 마법소는 아카디아의 지혜의 탑의 관리를 받고 있지만, 유독 롬바르디아만은 백색탑 휘하에 마법소가 있답니다. 그것은 두 마법왕국의 자존심 싸움이며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두 마법 학파의 싸움이기도 하답니다. 카이세라즈와 엘마라스 간의 대립 말이에요.
원거리 통신은 그나마 저렴하여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반면, 원거리 이동은 그 값이 어마어마하답니다. 그리고 후유증이 상당해서, 왠만한 귀족들도 원거리 이동 대신 마차를 이용하죠. 때때로 원거리 이동 중 아공간 속의 미아가 되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원거리 이동은 상당히 재미없는 사업이 되어버렸죠.
요즘들어 카레스가 자주 등장하죠? 카레스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으신다고요? 비상 앞부분에서, 최초로 클래스 대항 마법 대결을 획책한 것이 카레스랍니다. 하지만 류첼이 아크에게 '지는' 바람에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죠. 그 이외에... 등장한 적이 거의 없군요. 불쌍한 인생, 이제라도 빛을 보게 해 주어야죠. 하지만, 이번 건이 지나면 또다시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것 같네요. 여전히 불쌍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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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세상, 즐거운 하루, 즐거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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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인간들은 그런 짓을 안 하니까.」 「귀찮데.」 아까 한 말이 아크의 말임을 증명해 보이며 귀찮네 아니에요? 뭐, 나중에 고치면 이 말 지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