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마늘 심는 날
2023. 8.4
오늘 일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풀마농(잎마늘)을 심었습니다.
금년에는 2개월 전에 손목 골절상을 당해서
한 손을 쓸 수 없어 더욱 힘든 날 이었습니다.
옥수수 밭에는 풀이 무성하고 옥수수대도 그대로 있어
1주일 전 일꾼 2명을 사서 밭 정리작업을 했습니다.
마늘 종자를 밭으로 옮기는 것도 조그만 통에 담아
수십 번을 날랐습니다.
태풍 카눈이 올라온다는 소식과 불볕 더위 속에서도
다행히 간간히 바람이 불어 4시경 끝냈습니다.
저에게 풀마농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겨울철 3개월 동안(12월~2월)은 창고에 혼자 앉아서
휴대폰으로 신부님들 강론도 듣고
조용히 제 삶을 돌아보기도 하며
피정하는 마음으로 잎마늘 작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장 큰 수입원입니다.
수입액은 다른 분들의 10분의 일도 안되지만
텃밭에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은
잎마늘 농사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매일 경매를 하고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을
확인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잎마늘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종자마늘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심고, 키우고
다듬어서 출하작업까지 힘든 일이지만,
저에게는 즐거운 직장이며 친구입니다.
앞에 보이는 것은 땅콩
양 옆에 무성하게 숲처럼 보이는 것은 들깨
제주도는 참깨는 많이 심지만 들깨는 심지 않습니다.
나물 무칠 때나 요리할 때 우리는 들기름을 더 좋아하기에
마늘밭을 줄여서 들깨를 심었지요.
태풍이 몰아치면 가지를 모두 날려버려 절단이 나지만
수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샤워하고 쉬고 있는데
게스트를 운영하고 계신 이웃에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집은 세를 주고 1주일 후 서울로 이사를 가신다고 했습니다.
사연인 즉 아버지께서 얼마 전 돌아가셔서(1달 전 서울로 모셔감)
어머니 혼자 계시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어서 라고 했습니다.
갑작스런 소식을 듣고 위로도 드리고 아쉬움을 나누기 위해
3가족이 모여 그 동안 추억을 나누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2년 계약이기에 그 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2년전 쓴 글을 읽어 봅니다.
좋은 이웃 송계아(宋季雅) 이야기
2021.4
저의 집 주위에 게스트 하우스 운영하시는 노부부
남편은 월남하신 분으로 90세이며
전주출신의 현재 부인과 결혼하여 해로하고 계십니다.
제가 농사지은 것 가져다 드리면
음식솜씨 좋으신 할머니께서 반찬을 만들어 갖고 오시고
자식들이 다녀간 후엔 과일, 고기등도 갖고 오십니다.
저희도 마찬가지로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눕니다.
특히 좋은 안주거리가 있으면
함께 모여 인생이야기를 곁들이며 술잔을 기울입니다.
여기에 또 한 가족이 동참합니다.
해외에 사업체를 갖고 있다 최근에 접고
밭농사와 친척 야채배달 일을 도와주고 있는 제주 토박이 부부.
이 분들도 좋은 먹거리재료나 먹거리가 생기면
연락하여 서로 나눕니다.
이렇게 세 가족은 주로 먹거리를 주고 받으며
가끔은 함께 모여 인생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어렸을 때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이웃에 마실가서 막걸리 한 잔 주고받던
부모님과 이웃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사(史)에 보면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 관리가 정년퇴직을 대비하여
자신의 노후에 살 집을 보러 다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천백만금을 주고
여승진(呂僧珍)이란 사람의 이웃집을 사서 이사하였죠.
백만금 밖에 안되는 그 집값을
천백만금이나 주고 샀다는 말에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송계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백만매택(百萬買宅)이요,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
백만금은 집값으로 지불하였고
천만금은 당신과 이웃이 되기 위한
프리미엄으로 지불한 것입니다.'
백만금으로 집값을 주고,
천만금을 주고 좋은 이웃 프리미엄으로
지불하였다는 송계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의 이웃에대해 생각해봅니다.
첫댓글
참 삶의 이야기 한 페이지
언제 아름답습니다
와...
마늘을 저렇게 넓은 평수에 심으시는군요
풍작을 기원드립니다
이 음악 참 오랜만에 듣습니다
누군가 기억은 이름이요
감사합니다.
응겨운 노래소리에 옛 감흥들을 느낄수 있습니다요.
부디 태풍에 피해 없으시고
마늘 수확을 기대할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