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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64) 밤하늘의 작은 별빛
로마에 울려 퍼진 ‘카디널 니콜라오 정진석’
- 추기경 서임식에서 베네딕토 16세가 정진석 추기경 머리에 비레타를 씌워 주고 있다.
2006년 3월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새 추기경 서임 예식이 거행됐다. 로마의 아침은 조금 쌀쌀했지만, 날이 밝자 이내 포근한 느낌이 드는 상쾌한 날씨가 됐다. 추기경 서임 미사가 진행될 성 베드로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인파가 몰려들었다. 각국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 국기를 들고 성가를 부르며 입장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유럽 등 각 대륙에서 온 순례객 대열에 한국 신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한국인 순례단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현수막과 태극기를 연신 펄럭여 외신과 세계 각지 순례객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인 순례단 중에는 평신도뿐만 아니라 신부도 있었는데, 그는 유학생 신분으로 37년 전 김수환 추기경 서임 미사 때도 참석했다. 그는 세월이 흘러 두 번째 추기경을 맞는 감격과 더불어 이 감격의 순간에 함께할 수 있는 한국인이 많아진 데 매우 놀라며 감격의 눈물을 훔쳤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광장에는 각 나라의 국기가 펄럭이며 축제의 장을 방불케 했다. 광장 앞 대형 화면은 주인을 기다리는 열다섯 개의 진홍색 주케토를 연거푸 비췄다. 다양한 나라에서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새 추기경이 임명되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광장은 한국인 순례단 700여 명을 포함해 1만여 명의 축하객들로 가득 찼다.
오전 10시가 지나자 예식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성 베드로 광장에 울렸다. 이어 성가대의 웅장한 음악이 광장을 메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앉아 있던 신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얼마 후 정진석 추기경이 새 추기경단과 함께 광장 사이로 입장했다. 신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큰소리로 환호했다. 미사 도중 엄숙한 분위기로 소리를 내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예전에 비해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고 정 추기경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환호와 함께 자신들이 들고 있는 국기를 흔들며 새 추기경단을 맞았다.
새로 임명된 15명의 각국 추기경은 순교자의 피를 상징하는 진홍색 수단 위에 하얀 중백의를 입고 있었다. 정 추기경은 ‘경축 정진석 추기경 서임’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높이 치켜든 우리나라 신자들을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한국 신자들은 37년 만에 한국인 두 번째 추기경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한다는 자긍심에 눈시울을 붉혔다. 이윽고 ‘의로운 사람들은 노래하라’는 장엄한 노래와 함께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등장했다. 교황의 시작 기도가 끝나고 새로 서임된 추기경들의 명단이 발표됐다. “카디널 니콜라오 정진석.”
- 추기경 서임 후 한국에서 온 신자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는 정진석 추기경. 가톨릭평화신문 DB.
정 추기경이 여덟 번째로 호명됐다. 한국 신자들은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기쁨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새 추기경 대표가 교황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교황의 강론이 이어졌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훈시로 추기경들에게 당부했다.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체험함으로써 신자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권고하였듯이, 새로 서임된 추기경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던 그 모습을 본받아 신앙 공동체의 성장과 복음 선포와 교리 교육, 어려운 이들에 대한 배려 등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높이십시오.”
이어서 새 추기경들의 신앙고백과 교회에 대한 충성 서약이 진행됐다. 교황은 라틴어로 “추기경을 나타내는 진홍색은 추기경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표지로 자신을 용맹하게 헌신해 그리스도교 신앙과 평화, 하느님의 백성, 가톨릭 교회의 자유와 복음 선포를 위해 헌신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훈화한 뒤 15명의 새 추기경 한 명 한 명에게 진홍색 주케토(주교 이상이 쓰는 낮은 반구 모양의 머리 덮개)와 비레타(각진 모자)를 씌워 주며 포옹했다.
추기경 석에 미리 앉아 있던 김수환 추기경은 마치 친동생이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상을 받는 모습을 바라보듯 흐뭇한 미소로 정 추기경을 바라봤다. 김 추기경은 서임 발표 당시가 떠올랐다. 서울에서 교황청의 소식을 접한 김수환 추기경은 “이제야 발을 뻗고 잘 수 있겠구나” 하며 안도했다.
새 추기경들은 로마에 있는 성당 중 한 본당의 명의 사제로 임명을 받았는데, 정 추기경은 로마 보체아에 위치한 ‘루르드의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 성당’의 명의 사제로 임명됐다.
정 추기경은 오후 4시 30분 바티칸 주재 추기경과 주교, 한국인 순례객 등을 만나 인사를 주고받는 자리로 이동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한국 순례객들은 정 추기경에게 축하 인사와 함께 성가 등으로 진심 어린 축하의 뜻을 전했다. 정 추기경도 상기된 표정으로 축하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의 기도를 바쳤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던 다음날 25일 오전 10시 30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정 추기경과 새 추기경들과 함께 서임 축하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강론에서 교황은 “친애하는 추기경님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붉은색은 인류를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라며 새 추기경들의 임무와 의무를 강조했다.
- 정진석 추기경 서임식 참가를 위해 로마에 온 한국 순례단이 태극기와 추기경 문장, 추기경 서임 축하 현수막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미사 후 로마에 있는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은 축하연을 열었다. 교민 신자 등 500여 명을 초대해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 탄생을 다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는 일본 출신으로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후미오 하마오 추기경도 참석했다. 비슷한 연배인 정 추기경과 후미오 하마오(76) 추기경은 같은 해인 1970년 주교로 서품됐고, 아시아 주교회의에 각각 한국 대표와 일본 대표로 참석하면서 특별한 우정을 쌓아 왔다. 정 추기경은 로마 한인본당이 전한 축하 꽃다발을 후미오 하마오 추기경에게 다시 전달하며 두 사람 간의 우정을 과시했다. 교민 신자들은 큰 박수로 두 추기경을 환영했다.
곧이어 로마 유학 사제와 수녀 등으로 구성된 풍물패의 공연이 열렸다. 공연을 관람하던 정 추기경은 풍물패에게 다가가 어깨춤과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돋웠다. 기쁨의 한마당이 펼쳐진 뒤 신학원 성당으로 자리를 옮긴 사제와 수도자, 교민들은 다 함께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오늘날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그들에게 영혼의 평화, 마음의 평화를 주는 밤하늘의 작은 별빛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주변 사람에게 작은 별, 작은 빛처럼 마음의 평화를 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정 추기경의 강론에 신자들은 또다시 박수로 화답했다. 서임식 전날 정 추기경은 기자들에게 “영예로운 자리임이 틀림없지만 그 영예의 기쁨이 며칠을 가겠어요? 그 이후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저를 짓누를 것입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 추기경은 서임 발표 며칠 후 사석에서 “두렵다”고 여러 번 말했다.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가 너무 지나쳐 어깨가 무겁고 두려운 감정조차 든다는 솔직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이날 한인 신자들 앞에서의 강론은 사뭇 달랐다. 두려움 속에서 깊은 묵상을 한 끝에 깨달은 주님의 뜻이었다. 작은 별빛이 되겠다는 확고한 다짐을 신자들과 하느님 앞에 맹세하는 정 추기경이었다.
[추기경 정진석] (65) 생명 운동에 박차
생명나눔 동참 호소하며 육신마저 내어놓다
- 정진석 추기경(제대 가운데)과 주교단을 비롯한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장엄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2006년 9월 16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봉헌된 미사에는 1만여 명이 참석해 생명과 나눔이라는 성체성사의 정신을 되새겼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
서울대교구가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순교 160주년을 맞아 2006년 6월 18일부터 9월 16일까지 개최한 교구 성체대회의 주제다. 정진석 추기경은 생명나눔 운동을 서울대교구가 먼저 솔선수범하자는 취지로 이 행사를 기획했다. 교구 성체대회 준비위원회는 서울대교구가 2005년부터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생명 운동 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 사회에 ‘생명과 나눔’이라는 성체성사의 정신이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대하며 행사를 준비해나갔다.
2006년 성체대회는 6월 18일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및 각 성당에서 드리는 개막 미사로 시작해 9월까지 3개월간 이어지는 일정으로 준비됐다. 성체대회 준비 역시 3개월의 시간이 걸렸는데, 교구 성체준비위원회는 사후 장기기증 헌신 약속서 봉헌, 9일 기도,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의 교구 성체대회 미사 등 일정을 기획하고 발표했다.
서울대교구는 성체대회 기간 주일ㆍ평일 미사 봉헌과 성체조배 참여 운동, 생명문화 알기와 참여 운동, 영ㆍ유아 국내 입양 운동과 전 신자 장기 기증 등록증 갖기 운동, 하루 100원 모으기 100만 신자 참여 운동 등 성체성사의 삶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서울대교구 신자들은 위의 실천 방안을 실생활에서 구현하겠다는 ‘헌신 봉헌서’를 작성, 본당별로 취합해 장엄 미사 때 지구별로 봉헌하기로 했다.
성체대회 개막 미사에서 정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고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양식으로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이웃의 생명을 돌보고 자신의 생명을 나누며 성체성사의 정신을 우리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자”고 강조했다. 또 “이번 성체대회를 생명의 복음을 우리 삶 안에서 실천하며 생명을 위해 봉사하고,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생명을 존중하도록 세상에 생명의 존엄성을 전파할 수 있는 계기로 삼자”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서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홍보대사’도 임명했는데, 방송인 최유라(안나)씨가 위촉됐다. 그는 “작은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소홀히 취급되는 요즘, 생명위원회 홍보대사로 임명된 제가 해야 할 역할이 크다는 책임감이 느껴진다”며 앞으로의 활발한 활동을 약속했다. 당시 16년째 맡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매주 목요일 심장병ㆍ백혈병 어린이와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한 코너를 10년째 진행하고 있던 그였다.
2006년 6월 23일에는 ‘사제 성화의 날’ 행사가 열렸다. 교구 성체대회 중 열린 ‘사제 성화의 날’을 좀 더 특별하게 보내기 위해 정진석 추기경이 발 벗고 나섰다. 정 추기경은 이날 공개적으로 ‘뇌사 시 장기 기증’과 사후 각막 기증 등 ‘사후 장기 기증’ 서약서를 썼다. 이어 서울대교구 전체 사제 가운데 유학 중인 사제 등을 제외한 600여 명이 사후 장기 기증에 동참했다.
- 서울대교구 동서울지역 대표가 성찬전례에서 한마음한몸운동의 17년간의 성과를 적은 도자기를 봉헌하는 모습.
가톨릭에서는 생존 시 장기 기증보다는 ‘뇌사 시 기증’과 ‘사후 장기 기증’을 권장하는데, 뇌사자 발생은 전체 사망자의 1% 정도로 추정된다. 뇌사 판정을 받은 뇌사자 1명이 8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선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뇌사자 장기 기증이 턱없이 부족했다. 반면 ‘사후 장기 기증’은 심장, 호흡기, 뇌 기능 등 모든 생체 징후가 사라져 사망 판정을 받은 이후에 장기를 기증하기 때문에 기증할 장기에 제한이 있다. 각막이나 뼈ㆍ피부 등의 조직 기증에 한정된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 실정에서는 사후 장기 기증도 절박했다.
장기 기증 서약서에 서명하고 나오는 정 추기경에게 교계 매체뿐 아니라 일반 매체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나눠주는 것은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만약 우리가 생명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다면 그 생명을 받는 사람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소중한 것을 나눴다는 생각에 모두가 행복해지며 생명을 주고받는 사이에 사랑과 행복이 더 커집니다. 사후 장기 기증은 재산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는 자신이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갈 장기들을 나누겠다고 약속하는 일이므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큰 행복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므로 많은 이들이 사후 장기 기증 운동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이날 사제 성화의 날을 마치며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가 벌이고 있는 ‘생명 존중과 나눔 운동’에 많은 신자들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저출산과 낙태 등의 풍조에 맞서 생명수호의 일꾼이 되겠다며 신자들도 그 사명을 새롭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저녁 여러 방송 뉴스에서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과 교구 사제 600여 명이 사후 장기 기증을 서약했다는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리고 17년째 이어진 서울대교구의 생명나눔 운동을 소개하고, 앞으로 일반 신자들을 대상으로 장기 기증 서약을 받을 예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각 본당 개막 미사로 시작한 2006 성체대회는 교구장과 사제들의 적극적인 생명수호 실천 활동을 기반으로 9월 16일 ‘성체대회 장엄 미사’까지 서울대교구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2006년 성체대회는 ‘말’뿐만이 아닌 구체적 ‘행동’을 통한 성체성사 정신 구현으로 신자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우고, 지속적 실천에 나서도록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추기경은 성체대회를 통해 미래의 사목적 주안점이 생명 운동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추기경 정진석] (66) 생명의 신비상
죽음의 문화 만연한 사회에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다
-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 후 열린 축하연에서 축하떡을 자르고 있는 수상자와 관계자들.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 2005년 생명위원회를 발족할 당시 특별히 지지해주고 힘을 보태준 세계 교회에 보답할 방법을 궁리했다. 마치 외국 교회에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 곳곳에서 생명 존중 가치를 근본으로 연구하거나 활동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 결과 우리 사회가 죽음의 사회에서 생명의 사회로 발전하도록 장려하는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생명의 신비’라는 명칭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4년 ‘세계 병자의 날’에 발표한 자의교서 「생명의 신비(Vitae Mysterium)」에서 따온 것이다. ‘생명의 신비상’은 생명 존중에 대한 업적을 기리는 상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었다. 정 추기경은 생명의 신비상에 매년 총 3억 원의 기금을 출연하기로 하고, 이를 생명과학과 인문과학 분야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증진하는 데 공로가 큰 연구자들과 생명 존중을 위해 사회에 헌신한 활동가에게 포상하기로 했다.
2006년 2월 11일 제14차 ‘세계 병자의 날’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생명의 신비상’ 제정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2년에 제정한 ‘세계 병자의 날’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을 위로하고 의료보건 분야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한 날이었다. 교구는 생명ㆍ인문 과학 분야와 활동 부문을 총망라한 생명의 신비상 제정을 특별히 ‘세계 병자의 날’에 발표했다. 난치병 치료 등에 필요한 연구 업적을 내거나 생명 존중 문화 확산에 기여한 사람들을 포상하는 것은 한국 종교계에서 처음이었다.
정 추기경은 ‘생명의 신비상’ 시상위원회 위원장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김운회 주교를 임명했다. 김 주교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톨릭 교회의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우리 사회가 생명 존중을 근본으로 하는 사회로 발전하는 전환점이 마련되기를 바란다”며 “생명과학과 인문과학 분야의 연구진을 격려해 최근에 많은 논란과 우려를 불러일으켰던 생명과학계에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는 2006년 6월까지 ‘생명의 신비상’ 추천 신청을 받아 제1회 시상식을 2007년 2월 11일에 한다고 잠정적으로 발표했다.
- 생명의 신비상 첫 수상자들과 관계자들의 기념 촬영.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스그레치아 주교, 정진석 추기경, 글렌던 교수,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 염수정 주교, 김운회 주교, 김중호 신부, 오태환 교수, 뵈슬러 소장, 정명희 교수, 조규만 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드디어 2006년 12월 3일 ‘생명위원회 설립 1주년 기념 생명 미사’에서 제1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생명 현상의 핵심 분야인 ‘산소라디칼(활성산소)의 생체 내에서의 역할’에 대해 수준 높은 연구를 하고 있는 정명희 교수, 척수 손상 치료제 개발 연구를 한 오태환 교수, 독일 막스 플랑크 뇌연구소 소장인 하인즈 뵈슬러 교수가 선정됐다. 인문과학 분야에서는 교황청 생명학술원 원장 엘리오 스그레치아 주교와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그리고 활동상에는 메리 앤 글렌던 교수 등이 수상자로 결정됐다.
인문과학 분야 수상자로 결정된 스그레치아 주교(현 추기경)는 생명윤리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역설하며 오랫동안 생명수호 의지를 천명해온 인물이다. 생명학술원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4년 설립한 교황청 기구로 생명윤리 문제에 관한 교회 최고 전문 기관이다. 스그레치아 주교는 생명학술원 원장으로 임명된 후 낙태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공 수정, 유전자 조작, 안락사 등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를 지적해 왔다. 스그레치아 주교는 또 살아 있는 인간 생명인 배아를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비윤리적ㆍ반생명적 행위라는 교회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 글렌던 교수에게 시상하는 정진석 추기경.
활동상을 받은 하버드대 법학 교수 글렌던은 가톨릭 신자로, 1994년 교황청 사회학술원 설립과 함께하며 학술원 위원으로 활동해왔다. 2004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사회학술원 원장으로 임명됐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보스턴 로스쿨 법학 교수였던 글렌던은 생명윤리와 인권법 및 비교 헌법 분야 전문가다. 글렌던 교수는 교황청 사회과학원 원장으로서 사회 정책에 관한 최고위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4년간 미국 대통령 생명윤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정책 수립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30여 년간 낙태, 안락사 반대에 관한 저술 활동 등으로 생명수호 운동에 헌신했다. 글렌던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태아를 비롯해 어린이와 노인, 빈곤층 등 전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함으로써 ‘죽음의 문화’가 만연해 있는 사회에 ‘생명의 문화’를 심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수상자를 결정하고 이들을 초청해 우리나라에서 시상하게 된 것에 대해 감격했다. 한국 교회가 보편 교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정 추기경은 한국 교회의 위상이 불과 20~30년 전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에 감사했다. 정 추기경이 제정한 ‘생명의 신비상’은 지난 2007년 제1회부터 2017년 제11회까지 해마다 생명 운동에 큰 업적을 남긴 이들을 발굴해 수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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