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雲鳥樓)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103
국가민속문화재 제8호인 운조루는
풍수학자들이 조선의 3대 길지 가운데 하나라고 일컬을 정도로 명당 중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는데
운조루(雲鳥樓)란 '구름 속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과 함께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도 있다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구절인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네"에서 글자를 취했다
운조루(雲鳥樓)는 조선 영조 52년(1776년)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1726~1797)가 세운 것으로
당시는 99칸의 대규모 주택이었으나, 지금은 70여 칸이 남아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대문 앞을 흐르는 냇물로 일차적으로 외부 공간과 구역을 정리한 뒤
남쪽에는 연지를 두었고 북쪽에는 대문간과 행랑채를 놓았다
집 중심에는 안채를 두고 남향의 건물군이 동서축으로 길게 배치된 장방형이다
연지(蓮池)
이 연지가 있어 운조루의 운치가 더 살아나는 것 같다
연지는 북쪽의 계족산 화기(火氣)를 막으려고 조성했다고 한다
연못 가운데는 둥근 섬이 조성돼 있는데
이것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이 깃들어 있다
솟을대문 한 쪽에 놓여있는 원통형 쌀독 모형
<참고사진> 집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나무로 된 쌀독
쌀독의 아랫부분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한자가 보인다
'누구나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으로
마을의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쌀을 퍼 갈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영남에 최 부자가 있었다면 호남에는 운조루가 있었던 것이다
대문 안쪽에 걸려있는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 복사본
1800년 경 그려진 ''전라구례오미동가도'는 운조루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는 큰 사랑채와 아래 사랑채가 ㄱ자로 연결된 형태이고 안 사랑채는 소실되었다고 한다
안채는 지금 한창 공사중에 있었다
아래 사랑채인 귀래정에서 안채로 올라가는 길은
노약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로 계단이 아닌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돋보인다
큰 사랑채와 연결된 누마루
집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던 곳이다
솟을대문을 사이에 두고 18칸의 행랑채가 양쪽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헛간과 창고, 마구간 등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노복 수십 명이 기거했던 곳이다
위성류
류이주가 중국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나무로
진시황이 수도로 삼았던 곳의 옛 이름이 위성이며 버드나무를 닮은 나무라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250년 세월의 연륜을 보여주고 있는 나무 둥걸
가지 끝에 누런 꽃을 피우고 있는 위성류
운조루 인근 길가의 향나무 군락
누군가가 오래동안 정성들여 손을 본 흔적이 역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