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연좌제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고 처벌하는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과거 박해시대에도 가족중 누군가가 천주교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다른 가족들이 피해를 받는 경우가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은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그죄를 묻지 다른 사람에게는 그 죄를 전가시키지는 않습니다. 그와 비슷하다면 과거에는 특히,이스라엘 민족들은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과 죄를 연관시켰습니다.
자신이 아픈것과 죄를 짓는 것은 별개의 일임에도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은 당사자가 혹은 다른 가까운 누군가가 큰죄를 지어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난감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하나 허투루 들을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중풍병자에게 왜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ᆢ라는 물음 속에 머물러봅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보셨던 것은 그의 몸의 불편함을 바라보기 이전에 그가 받았을 상처를 보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건강했을 것이고 그러다 중풍이 오게되어 몸이 불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안스럽게 바라보면서 동시에 그가 무슨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되었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환자로 바라보면서도 죄인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그 눈초리 그 분위기가 큰 상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로 그를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몸의 치유를 넘어 온전한 치유를 이루어주십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가진 마음 속 상처를 어떻게 대하고 또 치유해줄 것인지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