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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성경적 의미와 진정한 축복은(창 2장18-25)
성경본문:창세기 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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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생각한다!
“바다에 나갈 때는 일주일을 기도하라.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달을 기도하라. 결혼에 대해서는 평생을 기도해야 한다.”라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힘 포낙스라는 사람은 “결혼한 남자의 일생 중 가장 좋은 날은 이틀이다. 결혼하는 날과 자기 아내를 매장하는 날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씀하는 중에 보았던 결혼에 관한 한 가지 유머입니다.
두 명의 중년 신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자네 결혼기념일이 곧 돌아오지?” “그래, 아주 큰 기념일이지. 20주년이냐”
“오! 부인을 위해서 무엇을 할 예정인가?”“호주로 여행을 떠날 거야”
“음. 호주라 정말 멋진 곳이지. 아주 근사한 선물이군. 자넨 정말 멋진 남편이야. 그럼 25주년 때는 멀 할 건가?” “호주에 가서 그녀를 데려오는 거지.”
제가 <hot issues>를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드는 생각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동일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은 많은 문제가 본질적인 결혼의 의미를 찾을 수만 있으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먼저 말씀으로 풀어가기 전에 어쩌면 여러분이 겪을 수 있는 결혼에 대한 문제를 잠깐 드라마를 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만나교회 홈페이지 예배 동영상 보기 참고)
결국, 결혼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가 “돈”이라는 문제 때문에 흔들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아마도 여러분이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재클린 케네디와 선박왕 오나시스의 결혼이야기 말입니다.
재클린의 혼전 계약
1968년 10월, 저 유명한 재클린 케네디와 그리스의 억만장자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가 결혼할 때 그들은 ‘혼전계약’을 했다. 그 내용은 ‘부부의 침실은 각기 독립하고 한쪽의 허가 없이는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다.1년에 3개월은 동거 생활을 하되 9개월은 제각기 따로 생활할 수 있다.’ 동거동락을 전제로 한 남녀 간의 만남이 결혼생활이라면 이 얼마나 놀라운 계약인가? 또 이런 약속을 했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면 1년에 10만 달러로 쳐서 결혼기간에 상당한 위자료를 내고 만 5년 이상일 경우 종신 연금 1백만 달러를 준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도 일시불로 2천만 달러와 그 이후 10년간 18만 달러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이 혼전계약서에는 의상비, 미용비, 용돈 등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는 돈 중의 돈’이라서 결혼하는 세태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혹시 이러한 결혼을 보면서 “행복”을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신가요?
저는 결혼 주례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결혼식에서 누구보다도 축복을 많이 비는 사람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결혼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준비하면서 상처를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다룰 문제이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서로에게 돕는 배필이어야 함에도 외적인 일로 말미암아, 혹은 결혼이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간의 결합이라는 의미에서 진정한 결혼의 의미가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2009년 5월 6일 신문에 실린 기사 카피를 소개합니다.
체면치례. . .치솟는 예식비. . .호텔만 웃는다
“어지간하면 다 하는데. . .” 가문위세 과시 심리 퍼져 올 3-5월 1,000쌍 올려 꽃값만 5,000만 원대도 조금 더 자세히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하객 1인당 식비 6만 -15만 원, 예식장 꽃 장식비용 400만-1500만 원,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 스냅 사진 등 45-600만 원, 기념 초 20-30만 원, 6단 웨딩케이크 100만 원. 서울 시내 특1급 호텔의 결혼식 견적서에 찍힌 숫자들이다.
하객 500-700명을 기준으로 간소하게 치러도 전체 비용이 5,000만 -7000만 원은 나온다. 옵션을 더해 호사스럽게 치르면 금액이 억대로 치솟는다. 꽃값만 5000만 원을 부르는 곳도 있다. 부가세 10%와 봉사료 10%는 별도다.
위에 소개한 기사는 많은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소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99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 폐지되면서 시작된 현상입니다. 이전까지 재벌가와 연예인의 결혼 장소로 여겨지던 특1급 호텔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고액의 결혼 비용을 생각하지 않다 하더라도 결혼식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보면 과연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합니다.
여기에 있는 분 중에 저처럼 결혼을 자주 경험해 본 사람이 있을까요?
고급호텔에서 결혼주례를 하는 것은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조용하고 서비스도 무척 좋습니다.
아마도 그런 결혼식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추억은 짧고 부담은 길다.”라는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반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은 비용이 조금 적게 들지는 몰라도 꼭 시장통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주례를 집례 하는 목사에게 가장 당황이 되는 것은 옆에 있는 사람과 마음껏 떠드는 하객들, 결혼 순서에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그나마 자리에 앉아서 떠드는 사람들은 양반이고 밖에서 잡담하거나 아니면 결혼식장은 들어와 보지도 않고 바로 돈을 내고는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여기를 왜 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1년에 몇 번 정도 결혼 예식에 참석하며 그 결혼식 중에 정말 기뻐서 가는 결혼식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마도 여기에 있는 여러분이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가 결혼식에 갈 때, 아니 청첩장을 받는 순간 얼마를 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시작됩니다.
2009년 5월 8일 자 조선일보에 보면 [모두가 피곤한 ‘고비용’ 결혼식]이라는 제목하에 이런 카피가 있습니다.
- 청첩장은 고지서
- “준 만큼 받자” “정서 확산 이사 가도 교회는 안 옮겨 축의금 명부는 채무증서“
요즘 많은 사람이 축의금 장부를 씁니다. 축하해준 분을 잊지 않겠다는 뜻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겠다는 ‘실용적’ 목적이 대부분입니다. 참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실용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 그렇게 계산적인가요? 우리가 받은 사랑이 그렇게 계산적인가요?
우리의 모든 삶이 그렇게 계산적으로 오갈 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나요?
참 바보 같은 구절이 많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지혜서 기자가 말합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도서 11장 1절)
여러분이 뿌린 씨를 바로 눈앞에서 거두는 것은 믿음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제가 가끔 쓰는 비유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은 땅속에 들어가 썩은 씨앗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계산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할 수 있을 때 기쁜 마음으로 물 위에 식물을 던지는 마음으로 던질 수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교회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수십 년간 내가 뿌린 것을 찾아야지 하는 심정이라면 그 신앙생활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금 이 설교를 듣는 분 중에는 이미 출가를 시킨 자녀 때문에 빚진 것을 갚으려고 생각하니 벌써 부담이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출가시킬 자녀를 생각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낸 축의금의 액수와 명단을 보니 이만큼은 들어올 것이라고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계산과 부담을 털어버리지 않는 한 신앙적인 결혼의 의미를 깨닫는 데 무척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척 어려운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줘야 될 사람과 받아야 될 사람 중에 누가 결단해야 이 고리가 끊어지겠습니까?
현재 여러분 주위에서 일어나는 가장 적나라한 이야기를 잠깐 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내용 - 만나교회 주일예배 동영상 보기 참고)
결혼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분명한 결혼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또한, 그 정의 아래서 어떤 결혼이 되어야 하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잘못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결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최초의 가정이 아담과 하와를 짝을 지어 주셨나요?
창세기 2장 18-25절에 처음의 만남이 나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결혼의 가장 큰 의미는 나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돕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이 불행해 지는 첫 번째 이유는 상대방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성경의 결혼은 부족함을 채우는 이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채워주는 이타심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일의 대부분이 나의 소원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2009년 7월 18일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입니다.
결혼 정보회사를 통해 수백억 원대의 재산가들이 공개적으로 신랑을 찾습니다. 49세의 재산가인 여인은 연하 남을 찾습니다. 그런데 직업이 전문 직종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이 이 여인의 돈을 보고는 직장을 그만두고 그 돈을 쓸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백억 원대의 재산가의 부모들이 딸들 모르게 공개 구혼을 해 신랑을 찾습니다.
첫 번째 조건은 그 재산을 잘 관리해줄 착실한 남자입니다.
모든 결혼 정보회사를 보세요. 그 문제가 무엇입니까?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혼기를 놓친 많은 사람이 솔직하게 내면을 드려다 보세요. 여러분이 상대를 찾을 때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었는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생각을 합니다. “결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야!”
그래서 사랑이 가장 큰 조건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사람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만나는 그 사람도 동일한 생각을 하고 당신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달에 “하미사”를 녹화하면서 당황이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 방송을 보다 부부싸움을 할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만나교회 예배동영상 보기 참고) 우리 연예계에 잉꼬부부로 소문난 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가수 션 과 작곡가 주영훈씨의 가정 이야기입니다.
둘 다 남편이 먼저 신앙을 가졌고 결혼하면서 아내들이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지금은 더 좋은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먼저 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얼마 전 부인이 촬영하는 장소에 장미꽃 3천 송이를 가지고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이 두 사람이 만난 지 3천일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부인은 그날을 세고 있지 않았지요. 감격스런 순간입니다.
그런데 션의 이야기를 보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는 남자랍니다.
내가 오늘을 살다 죽을지 모르는데, 만일 아내가 본 나의 마지막 모습이 화내는 모습이라면 얼마나 불행하겠느냐고 말하면서 자신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입니다. 많은 여자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남자들에게는 도전되었겠지요.
이번 상해 코스타에서 션이 강사로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2천일이 되던 날 둘이 함께 서로에게 고마운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에게 5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정혜영 씨가 마지막으로 가장 감사한 일이 “이 남자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된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고백했답니다.
자신이 결혼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줘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이 자신을 신부 삼아 주셨기에 그래서 자신이 행복한 것처럼 자신의 신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로 살아가면서 신랑 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존경을 받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아내가 남편으로 하여금 이 땅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결혼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지를 말입니다.
주영훈 씨는 신앙이 없는 이윤미 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좋은 신앙을 가지게 된 부부는 잘 때도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의 수첩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답니다.
기도제목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다 남편을 위한 기도제목, 방에 꽂혀 있는 책 제목이 다 남편을 위해 어떻게 좋은 아내가 될까에 대한 내용, 내조를 잘하는 아내, 신앙 있는 아내 등등.
두 가정이 참 행복하게 본을 보이는 이유가 있다면 둘 다 좋은 배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지요.
사실 결혼의 원리가 성경대로만 될 수 있다면 무척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세 가지 동사에 주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연합하다” “둘이 한 몸을 이루다”라는 말입니다.
“연합하다” : 연합한다는 것은 딱 들러붙어 하나가 된다(아교로 붙이다)는 의미의 히브리어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 친밀함, 서로에 대한 100%의 헌신, 사랑과 신뢰를 의미합니다.
월터 트로비쉬는 “남편과 아내는 종이 두 장을 풀로 붙여 놓은 것이다. 하나로 붙여 놓은 종이를 나누려고 한다면 이 둘을 다 찢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야 합니다. 긍정적인 플러스의 효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의 가정은 같이 살기 때문에 행복하며, 둘이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행복하십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영국의 총리였던 처칠은 도저히 건강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줄배, 폭음, 비만, 운동부족 등 성인병에 걸리기 쉬운 온갖 조건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66세에 수상에 올랐고, 77세에 재선되었습니다. 또한, 재임 기간에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전쟁 후에는 회고록을 쓰며 90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의사들은 그의 장수 비결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사는 낮잠 때문에 장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의사는 처칠의 장수 원인이 ‘화목한 가정’ 때문이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처칠이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클레멘타인의 격려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화목한 가정은 성공의 가장 위대한 비결이고,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천국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내 때문에, 당신의 남편 때문에 살맛이 납니까? 아니면, 그 사람만 없으면 살 만하시겠습니까? 아주 무섭고 근본적인 질문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에서 여자가 하는 일을 ‘살림’이라고 합니다. 그 ‘살림’이라는 말의 어원은 ‘살려 준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 말대로 여자들이 가정 살림을 한다는 것은 가정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다 :
결혼의 원리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둘이 한 몸을 이룬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 속에는 아주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 너무나 다른 성격과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런데 이 "한 몸"이라는 것이 육체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연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트로비쉬는 “두 사람은 그들의 육체나 소유물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고와 감정, 기쁨과 고, 희망과 두려움, 성공과 실패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결혼 서약할 때 꼭 빠지지 않는 말을 기억하시나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 할 때나 가난할 때, 아플 때나 건강할 때…”
이렇게 모든 순간에 한 몸을 이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까?
문제는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서로의 선택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부에서 설교할 때마다 교회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많이 권면합니다.
나이가 들면 그 사람 자체를 보지 못하고 조건을 보기 때문에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사랑할 수 있는 신앙인을 만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만나지만, 윤리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이지 만남 자체는 아주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조건보다는 배우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 대상자를 보는 기준은 이 사람이 가진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뚜렷한 비전이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눈동자가 살아 있고 삶의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헌신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설교를 잘 들으세요.
그런 대상자를 찾는다면 여러분은 결혼하기 참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면 참 많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게 산다! 아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혹시 결혼이 사명이라는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의 삶에서 '사명' '부흥' '축복'이라는 것은 "고난"과 함께 올 때가 참 많습니다.
아니 이 과정을 거쳐야만 만들어져 가는 것이 행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참 좋아하는 말씀 중의 하나가 욥이 고난 가운데서 고백했던 "주가 모든 것을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가 아닙니까?
부부가 하나가 되는 과정도 때로는 정금같이 단련되어 나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일방적인 한쪽의 희생과 기도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명을 알고 기도하는 사람의 그것 말입니다.
우리 한국 초대사에 나오는 김덕신이라는 정말 무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시골에 살던 여인, 아들 때문에 신앙을 가지게 된 여인.
어느 날 밤 교회를 다녀오는데, 그것이 못마땅한 남편이 칼을 들고 기다리고 성경을 든 아내의 손을 내리쳤습니다.손을 잘라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손은 잘라지지 않았지만, 피투성이가 되었고 이 여인의 핍박을 아는 여인네들이 모여 이 가정을 위해 중보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보면 김덕신이라는 시골 아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은 지 4년, 내 남편이 예수를 믿는다고 나를 핍박하고 내 팔을 자른다 하여 어떻게 포기할 수 있으며, 어떻게 남편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 기도의 여인을 위해 모여 기도하던 모임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선교회가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한 일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파송한 일이었다는 역사를 아십니까?
하나님은 지금 가정을 이루는 여러분의 삶에 문제가 없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 가운데 함께 하시며 그 문제 가운데 복된 가정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떠나다 : 떠난다는 것은 부모로부터의 외적인 분리뿐 아니라 내적인 분리도 포함합니다. 이제까지 부모에게 의존되었던 관계를 버리고 새로 독립된, 스스로 책임지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09년 9월 한겨레신문에 “엄친아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김선주 칼럼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요즘 젊은 판사들 가운데 판결에 앞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어봐야 안심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위 ‘엄친아’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새로 임용되는 판사 열 명 가운데 네 명이 특목고와 강남 3구 출신이라는 뉴스를 들으며 과연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한 근거가 있구나 싶었다.
… 문제는 엄친아와 결혼하면 부모의 후광과 재산과 함께 엄친아의 엄마까지 세트로 딸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엄친아들의 이혼이 많다는 소문도 있다.
부부 싸움을 하고 방으로 들어간 신랑 신부들이 밤새 ‘엄마’에게 전화 걸어 보고하고 코치를 받고 다음날 다시 새로운 논리를 내세워 부부 싸움에 나서기 일쑤라고 한다.
엄친아가 지배하는 세상은 불행하다. 결혼할 때 엄마가 딸려오는 것은 개인적 불상사에 그친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인물이 그들 부모의 가치관의 그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중요 정책이나 재판의 형량까지 영향을 받는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암울하다.
자!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의 의미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부모를 떠나”라는 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결혼식은 양가 부모의 위세를 드러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 들어서 호화 결혼식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결혼식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관행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우리가 실천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부분입니다.
저도 청첩장이 오면 화환을 보내거나 축의금을 보냅니다. 사실 우리 삶이 그런 관계를 단절하고 살 수 있나요? 상대방이 그것을 원하는데 모르는 척, 나만 의롭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이 얼마나 이기적이라고 욕을 먹겠습니까?
올바른 결혼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신앙적인 결단 그리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바로 여러분의 자녀에게서부터 결혼이 부모와 가문의 위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떠난 여러분의 자녀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의 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녀가 가진 것, 그 자녀의 사회적 지위에서 결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녀가 잘못되지 않습니다. 허황되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어떤 것이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해주는 것이 결혼이 되기보다는 결혼하는 당사자의 시작이 결혼이 될 때 훨씬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혼수”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결혼은 분명하게 양가를 떠난 홀로선 사람들의 의식이라면 가족과 친지들에게 주었던 우리의 풍습이 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데, 왜 주변에 친지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합니까?
신랑과 신부에게 주는 지나친 혼수용품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그런 물질적 가치로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꼭 표현해야 하나요?
구약적인 개념이나 고대에 결혼하면서 서로 돈과 가축을 상대방 가정에 주었던 이유는 두 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한 여자를 데려오면 그 가정에 노동력이 손실을 보기 때문에 보상하는 의미에서 이거나 혹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귀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오늘 결혼하는 여러분에게도 맞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의미에서 저희 가정이 조금은 모범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형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대로 물건을 받아 쓸 준비를 하고 또 제 동생은 저의 물건을 받아 쓸 준비를 하고 필요한 것 이상의 지출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을 원하는 것으로 채우려고 하면 행복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을 채워가는 것, 그리고 필요한 것의 기준도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삶의 단계를 뛰어넘는 것이 절대 당사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혼식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신랑과 신부 두 사람입니다.
제가 조금 앞서가는지 모르겠지만, 결혼식 당일에 입는 드레스의 비용을 생각해 보세요. 이왕이면 결혼식에서 입은 옷을 빌리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에도 입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 결혼식의 모양이 언제부터 만들어진 문화인지 모르지만, 그 문화를 바꾸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문화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신앙인들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까지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이상적인 결혼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분과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힘들고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부터 성경적인 좋은 결혼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실천하기
1. 결혼은 무엇보다 진정으로 축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채무관계가 아닌 사랑의 빚을 진 자들의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도 참 많은 사람이 왔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아내 때문에 오신 분보다는 저희 부모님과 처가의 교인이 더 많았지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을 저는 얼굴도 보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결혼을 인격적인 두 사람의 만남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얽혀진 가족 관계와 사회적 관계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결혼이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지 지금까지 적금 들듯이 낸 부조금과 결혼 비용을 충당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흔히 우리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빠가 현직에 있을 때 결혼해야 손님이 온다는 것, 그리고 결혼식을 꼭 주말에 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많이 와야 가문의 위세,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결혼이 하나님 앞에서 두 사람이 신실하게 만나서 시작하는 것이라면 꼭 축복해줄 사람들의 모임이 가능한 장소와 시간을 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 때부터 실천하려고 합니다. 꼭 와야 할 사람들이 함께 축복하는 결혼이 되도록 말입니다.
부모 때문에 축의금을 내고 온라인으로 내고 식사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꿈꾸는 일 중의 하나가 만나교회 티디관에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서 가족이 함께 결혼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쁨이 될 사람들을 초청하고 축복하는 결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 비용에 관한 문제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결혼식 전날 저는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혼이 난 경험이 있습니다. 먼저 결혼식 순서지가 너무 화려하며 첫날을 워커힐 호텔에서 지내도록 형이 예약해 주었는데, 전도사로서 너무 사치스럽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목회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기에 좀 과하게 혼난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결혼이 비용적으로 너무 과하게 들어가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결혼은 완성이 아니고 시작이기에 점점 나아지는 삶의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먼저 교회에서 사용하는 예식장이 가지는 장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며 먼저 교회에서 결혼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음을 알려 드립니다.
적은 사람이 함께하는 <아가페홀>,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프라미스 홀>,그리고 계절적으로 좋다면 파구스 앞의 공간을 잘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탄천을 끼고 주변에 나무들과 푸른 잔디 등 아름다움 결혼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몹시 어려운 분을 위해서는 무료로 드레스를 대여해 주는 방법,그리고 장소는 교회에서 하되 필요한 사진과 화장 드레스 등은 각자의 선택에 의해서 찾도록 하는 것. 또한, 식사도 사치하거나 낭비하지 않도록 차등을 두어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여러분이 교회에서 결혼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도록 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린 주보에 교회에서 결혼하는 데 필요한 guide line을 잘 소개해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용을 절약하는 차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가진 자연적 환경과 주차장을 잘 활용하세요. 그리고 결혼하는 신랑신부가 시간에 쫓겨서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 가장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결혼 순서를 만들 때 신랑 신부에게 많은 자율권을 줍니다. 그들의 평생에 가장 중요한 일인데 의미 있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만나교회가 가진 첨단의 기계, 음향 시설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조용한 가운데 진정한 축복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중요한 일인지를 생각해 보세요.
혹시라도 한쪽이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 때문에 가족 간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프라미스 홀을 일반 결혼식처럼 꾸며 놓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래는 흡연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결혼을 교회에서 하는 축복,결혼을 목사님의 축복 속에 하는 것,
그리고 제가 모든 주례를 할 수 없어서 토요일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선순위는 결혼 예비학교를 마친 사람에게 있고요. 토요일이 아닌 평일에 결혼한다면 제가 수고를 감수하고 주례를 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 신앙적인 결혼을 위해.
바로 전에 언급한 것처럼 신앙적인 결혼을 위해 결혼 장소가 성전이 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결혼 후에 주일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만나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요?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뿌리를 내릴 교회에서 주일도 지키지 못하면서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 신혼여행을 가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못하면서 시작한다면 신앙적인 결혼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 군데서 결혼 주례를 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는 것이 일생에 한 번 있는 결혼식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결혼을 위해 금전적인 것이 결부되지 않도록 하세요.
이제는 축의금 문화가 아니라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문화가 되도록 고리를 끊는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 먼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돈이 없는 사람도 결혼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무료로 합니다. 음식은 사치스럽지 않게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단지 여러분이 책임져야 하는 것은 여러분의 결혼을 위해 과외로 수고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례입니다.
왜냐하면, 일하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에는 이 돈의 액수가 청소하는 분, 영상과 음향 담당자들을 다 포함해도 20만 원을 넘지 않는 수준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관련된 부분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결혼 주례를 하면서 주례 비를 받습니다. 물론 아무 사례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요. 제가 받은 사례보다 제가 더 많은 돈을 부부에게 준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에게 기준은 무엇인지 또는 서로 민망한 일도 있습니다.
제가 명확하게 지침을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결혼을 주례하는 목사님을 찾아 인사하는 것은 예의입니다. 여러분의 형편에 따라 적절한 선물을 하세요. 넥타이, 와이셔츠, 양복 형편에 따라 하세요.
그러면 그 많은 것을 제가 어떻게 다 입을까요?
물론 제가 입는 것도 있지만, 어려운 교역자들에게 선물하려고 합니다.
정 주례 비를 줘야겠다고 생각하면 많이 주세요.
지금부터 들어오는 주례 비는 따로 통장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사용하려고 통장을 만들 겁니다. 행복하게 결혼하며 기쁨으로 준 주례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쓰인다면 참 좋겠지요.
저도 주례 비를 받는 것이 무척 기쁜 일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유로워지라는 것입니다. 주례자에게 선물하는 것은 예의의 차원에서만 하시면 됩니다. 감사는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하면 됩니다.
결혼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에게 가장 기쁜 날,축하하러 오는 사람들이 행복한 날,주례를 하는 목사가 진정으로 축복할 수 있는 결혼,무엇보다 하나님이 두 사람의 결혼을 보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크리스천 문화를 만들어가는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혼으로 출발하는 가정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해주시리라는 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