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프리드먼, “내가 잘못 짚었네!” /
2022.07.29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 분야에서 자기의 생각과 다른 증거가 확실해지면 오류를 인정하는 지적 정직성이 필수적입니다. 지동설을 제기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몰아세웠던 당시 학자들 중에는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틀렸다(Mea culpa)’하고 생각을 바꾸는 일은 지능과도 상관없이 쉽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사회 현상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칼럼을 쓰는 글쟁이들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최근 뉴욕타임스지(紙) 오피니언 란은 정기적 칼럼니스트들 8명이 자신들의 과거 견해를 재평가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저서와 칼럼으로 유명한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도 그중 한 명으로, 과거 머지않아 중국이 언론 통제를 풀 것이라는 관측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고해(告解)합니다.
자신의 오류가 중국이 하이텍 성장을 계속하려면 언론(정보)의 원활한 양방향 흐름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기인했다고 진단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오판이 중국의 독재적인 정치 구조를 간과했기 때문이거나, 중국에게 필요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헛된 기대 때문이 아니었기를 바란다는 우려 섞인 희망을 피력합니다.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중국을 자주 왕래했는데, 당시 일부 중국 경제지들이 경제·기업 분야 관심사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 이슈들도 다루는 것에 깊게 인상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징후를 큰 변화의 조짐이라고 해석한 것이지요. 중국이 세계경제에 진출해 진정 경쟁력 있는 일원이 되려면 중국의 차세대 혁신가들에게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이 필수적이다, 그러니 경제지들이 쐐기가 되어 언론 전반의 개방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분석한 것이죠. 그의 이런 예견은 1999년 발간된 베스트셀러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도 수록되었습니다.
프리드먼은 구체적으로 ‘좋았던’ 과거를 회고합니다. 약 20년 전까지 상당히 자유롭게 중국 내 여러 대학과, 베이징과 상하이의 서점들에서 저서 기념 강연을 했을 뿐 아니라 지린(吉林)성 시골을 방문해 마을 단위 선거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 합니다. 이런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기술혁신 추이를 종합하면 조만간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허락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갖게 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시진핑 주석 집권 후 지난 10여 년 사이에 이런 추세가 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언론 자유가 퇴보한 증거는 넘치고 있습니다. 당국은 프리드먼이 일찍 주목하였던 진취적 경제지 ‘Southern Weekly(南方周末)’를 검열로 무력화하고, 이 시대 열린 정보창(窓)의 상징 구글(Google) 검색을 계속 막고 있으며,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2020년 금융당국을 비판한 후 한동안 그의 행방이 묘연했었지요. 최근에는 제로코로나 정책 강행으로 대도시들을 봉쇄하는 조치가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는 한 경제 연구원장의 글이 문제가 되며 구독자가 많은 그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이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는 중국 공산당이 서구적 언론의 자유가 세계경제의 주축이 되는 것과 21세기 첨단 산업을 지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중국이 약 40년 사이에 매우 가난한 나라에서 엄청난 사회 간접자본을 보유한 중위 소득국으로 부상한 것만 본다면 그들의 판단이 맞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그동안 중국이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지 못해 선진국에서 탈취해오고 아직도 이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이 옳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합니다. 백신, 소프트웨어, 반도체, 로봇 등과 같은 21세기 첨단 기술 분야을 생각해보면 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개발된 것이죠. 어느 한 국가도 필요한 인력과 재능을 다 독점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개발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프리드먼은 경제 대국 중국의 기업이 아니라, 대만의 TSMC가 애플과 같은 첨단 기업들에게 기술 탈취가 없을 것이라는 신뢰를 얻어 첨단 반도체 주문 생산의 세계 최대 기업이 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칼럼을 읽으며 필자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약 5년 전쯤 아직 홍콩이 자유스럽던 시절 학교 행사로 학생들과 홍콩·심천을 짧게 방문했습니다. 둘째 날 전철로 인근 중국의 심천으로 이동했습니다. 밤에 숙소에서 별생각 없이 홍콩에서처럼 경제 뉴스를 보기 위해 개인 컴퓨터의 블룸버그통신 홈페이지를 열었는데 먹통이었습니다. 다른 서구 뉴스 홈페이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낮에 번듯하게 잘 정비된 심천 신도시를 보며 여기도 곧 홍콩이 되겠구나 했었는데 뜻밖의 언론 통제 민낯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우리나라는 눈치 보기가 한창입니다. 오랫동안 인접 대국 중국의 문화가 지배적이었고, 지난 30년 간 몇 배로 늘어난 인적·물적 교류로 한국과 중국은 불가분의 관계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죽(竹)의 장막을 더 촘촘히 치고 있습니다. 보편적 인권이 무시되고, 악랄한 약탈자 푸틴 대제(大帝)를 두둔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가치동맹’이라는 관점에서 과연 바람직한 동맹국인지 확신이 없습니다. 사정이 달라지길 기다려야 될 듯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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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